이어서 삼청공원-팔각정-백사실계곡

2009. 5. 10. 07:28둘레길

공원속 철쭉

짧은 봄을 아쉬어 하며 긴여름을 맞이하는꽃.

한낮은 이미 초여름의 문턱에 와 있다.

 

 

 

 

 

 연녹색이 제법 푸르러져 진한색을 띠고 있다.

산책길이 잘 정리되고 아름답다.

 

말바위로 향하는 길은 온전히 계단으로만 되어있었다.

가볍게 공원에 들렀다 산책이 산행으로 바뀌어 버려 나의 실망은 컸다.

공개한지가 얼마 안되었다며 좋아하는 남편은 다 왔다며 부축인다.

순대국을 먹고 환타로 입가심 할때부터 알았어야 하는데 오늘의 나들이는 힘들거라는것을...

추억의 데이트코스로 즐거웠던 기억이 점점 숨찬계단공원으로 인식되어가고 있었다.

 

 

 말바위정상에 올라서보니 자리깔고 누워 자는사람,앉아 쉬는사람 많았다.

싱그런오월의 햇살을 받으러 할머니 어린이까지도,

찍소리 못하고 다음 일정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공원정상에서 앞산을 한컷,

 

북촌의 고관 대작들의 집은

낮게 또는 높게 병풍처럼 펼쳐진 능선들이 감싸고 있고

 골짜기사이 흐르는 물길로 배수가 잘 되어 그야말로 배산임수인 명당이라 볼수있다.

 북촌은 권문세도가들의 주거지로 안성맞춤이다.

그들의 근무지인 궁궐이 가깝고 양반님들의 사교와 향락에 도움되는

 물자가 팔도 각지에서 모이는 장소이기도 했으니까

어디 김히 양반님들이 이높은 곳까지 행차하신단 말인가?쌍것들이나 뽈뽈 기어 산에 오르지,그리 생각했을런지도 모른다.

사실 양반을 실어다주는 하인의 다리심이 더좋을수밖에...

 

 옛추억이 서린곳을 온다며 가볍게 청바지를 입었는데,이어지는 산행길로 힘든 나의모습 조금 삐졌다.덥기도 하고,

 

 

 

 

 

 

 

 

내친김에 숙정문 까지 왔다.

재작년 아들 여름방학을 맞이해 셋이서 창의문까지 들렀던곳이다.

숙정문은

서울 성곽의 북대문으로

 남대문인 숭례문(예를 숭상한다)는 뜻과 대비하여 '엄숙하게 다스린다'뜻으로 이름붙여졌다.

태조 5년 (1396) 처음 서울성곽을 쌓을때는 지금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있었으나

연산군10년(1504)에 성곽을 보수하면서 옮겨졌다고 한다.

 숙정문은 본래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 지은것이 아니라 서울 성곽 동서남북에 사대문의격식을 갖추고,

비상시 사용할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평소에는 굳게 닫아 두어 숙정문을 통과하는 큰길은 형성되지 않았다.

가뭄이 심할때는 숙정문을 열고 남대문을 닫아 두었다고 하는데,

이는 태종16년(1416)에 기우절목을 만들면서 북쪽은 음 남쪽은 양이라는 음양의원리를 반영한것

 숙정문은 오랫동안 문루가 없이 월단,무지개모양의석문 만 남아 있었는데

1976년 북악산일대 서울성곽을 보수하면서 복원된다.

 이문을 통과하기는 지금도 신분증은 필수

 

 

 

 

 

 서울 성곽

북악스카이 팔각정으로 올라가는길에 뒤돌아 보니 이어진 성곽이 멀리 보인다.

조선왕조 600년 우리의 삶과 숨결의현장

1392년 개성 수창궁에서 조선왕조를 개국한 이태조는 한양천도를 명하고,

한양에 경복궁,종묘 사직단을 완성하자 정도전이 수립한 성곽을 수축하기 시작한다.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을 잇는 총길이 18.2km의성곽으로 평지는토성 산지는산성으로 하여 축조되었다.

그뒤 세종은 성곽을 석성으로 수축하는 보수사업을 벌이는데 이것이 서울 성곽의 골격을 이룬다.

 

숙종30년(1704)까지 260년간 북한산성을 쌓으면서 꾸준한 보수작업을 하였다.

임진왜란때는 선조가 의주로 피난가면서 성곽에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간  전차을 부설하면서 동대문과 서대문부근의 성곽이 헐리고

1900년 용산과  종로 사이 전차부설로 남대문 부근이 헐린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서대문과 혜화문(동소문)이 헐리고 사실상 평지 성곽은 모두 철거가된다.

오늘날에는 총길이 18.2km중 10.5km만 남게되었다.

죽일놈들..민족의 정기를 끊는다고 여기저기 쇠말뚝을 박지않나,

 

 

 

 

 팔각정에올라 바라본 인왕산

 

 북악스카이 팔각정 정상

연인과 또는 가족과 드라이브코스로 인기가 높은곳이다.

한옥으로 만들어진 정자는 서울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차를 타고 와도 한참을 올라야 되는곳을 걸어왔으니

난 이미 지쳐 서울 풍광이 아름답기는 하나 빨리 집에가고 싶은 생각이 앞선다.

남편은 아이스케키 하나씩 물고 성북동으로 넘어갈까,백사실계곡으로 갈까 하는데,

난,전을 준다고해도 싫고 한옥도 싫고 집에가서 자고만 싶다.

정자 위층에 카페도 있더만 우리는 숲속에서 빵빠레 하나씩 먹고 계곡으로 내려오는길을 선택했다.

 

 백사실계곡은 백석동천이라 할만큼 아름다운 경치와 맑은 물이 있어 도롱룡,버들치,가재가 서식하는 계곡이다.

 

 

 계곡을 거의 내려오면 백사 이항복(1556-1618)이 살았다는 집터가 아직도 있다.

선조때 문인으로 우리에게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하다.

사랑채와 안채가 있었을터에는 주춧돌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연못과 정자가 있었던 터다.

조선의 상류층이 기생을 끼고 풍류를 즐겼을곳으로 연못터가 제법 깊고 넓다.

 자하문으로 내려와 집으로 향하는 오늘 난 다섯시간을 걸었다.

차속에 있었던시간을 빼고....

그리고 이박 삼일 흰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야만 했다.

당분간은 함께 나가자는 말은 없을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