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쓸쓸한 당신

2009. 8. 28. 16:21독후감

박완서

시골에서 교장선생님이라면 동네의 유지이고 지식인인 동시에 어른이시다.

몇십년을 교직에 있고 연수를 받고 또 줄을 잘서야 빨리 교장직을 하는것도 다 아는사실이다.

서울에서는 50대 후반이나 되어야 되는데 동창들이 벌써 교장선생을 한다는것을 보면

 시골에서는 훨씬 빠르게 진급이 되는 모양이다.

 

당신은 단상에만 오르면 그놈의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목에 힘이 주어지는 남자이고 남편이고 아빠이다.

사택에 살면서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에 들려오는 남편의 잔소리 같은 훈시를 지겨워 하는 아내는

딸내미의 서울 유학과 함께 아들 딸 뒤바라지를 위해 별거가 시직된다.

 

그러다 딸내미 졸업식에 올라온 아버지의 후줄근한 모습에 딸도 아내도 챙피해 한다.

자기식구끼리만 이었다면 그리 챙피하지 않으련만

우리 사회가 체면을 중시하고 남의 눈치를 보는 사회라 그런지는 몰라도

사돈 눈치는 더보는것같다.

그래도 딸 가진 죄인이라고 한수 접고 들어간 당신과 나는

아들 졸업식때가 되어 비위가 상하고 만다.

잘난 아들 가진 위세라도 떨고 싶었는데

 처가집 눈치를 보며 벌서부터 데릴사위가 되어버린 아들을 두고 뭐라 할수도 없고

 복잡미묘한 감정을 엮어낸소설로 공감이 되어 웬지 내가 다 쓸슬해졌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봐도 누가 얼마나 잘사는지 척도를 재는것 같은 현실이다.

당신네 보다 잘사는 처가집의 배려로 신혼여행도 가고 유학도 가는게 못내 기분좋지만 않은 부부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러브호텔이라는데 들어가

 다 늙어버린 남편의 축쳐진 뱃살과 줄줄 세는 허벅지와 비비꼬인 종아리를 보고야 때늦은 후회를 한다.

젊었을때 그런 권위의식은 어디 가고 초라하고 찐득한 땀만 비질거리는 영감탱이가 앞에 있다.

그동안 한번도 남편이 혼자 사는 거처를 가보지 않은 독하고 정떨어지는 아내는 죽기 전에 그래도 모기물린 남편의 종아리를 매만진다.

 참 쓸쓸한 두내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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