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1( 소나무숲길에서 우이령길지나 미술관까지)

2010. 10. 28. 22:01둘레길

 

일 시-2010.10.28.목.

구 간-수유역 3번출구-우이 치안센터-우이 먹거리마을-우이 탐방소-우이령길-교현 탐방소

         -구파발-성북동-간송미술관-귀가

참가자-이윤정.손진.제성숙.한인숙

 

가을이 한 가운데로 와 있다.

파란 하늘은 자꾸 높아져 가고,

아름다운 이,가을이 도망이라도 칠까봐

내가 니들 곁으로 간다.

 

북한산 국립공원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으로

둘레길이 조성되어 무릎이 시원찮은 사람까지 가세해

주말엔 인산인해를 이룬다.

모처럼 평일 산책길을 안내 맡아 길치인

내가 제대로 찾아나 갈까 고민했는데

잊어버리고 싶어도 잊을수 없도록 외길인 길이 둘레길이다.

우이령길.충의길,효자길,내시묘역길,마실길,구름정원길,

예성길,평창마을길,명상길,솔샘길,흰구름길,순례길,소나무길로

총 길이 44km인길을 서너차례로 나누어 하면 무리가 없다 한다.

 

오늘 우리가 산책할길은 예약이 필수인 우이령길로

소귀고개로 알려진 길이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와

서울 우이동 일대를 연결하는 도로였다.

전쟁 당시 미군 공병대가 작전도로로 개설하여

차량 통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피난길로 이용되기도 하였던 이길은

1968년 1,12 무장공비 침투사태이후

1969년부터 국가 안보및 수도 방어를 목적으로

2009년 6월까지 민간인 출입 금지였다.

1968년 사방사업 당시부터 자연친화적으로 정비공사를 완료하여

2009년 7월 전면 개방 실시 하였으나

아직은 하루에 1000명내 선착순 이란다.

 

나 빼고, 전전날 명성산 산행으로 그녀들이 힘들까봐

내 생각만 하고 한시간 늦게 11시에 만나니

명성산 억새에 취한 삼녀는 볼그족족한 얼굴로 나타났다.

120번 마을버스를 타면 종점이고, 택시로도 금방이라

택시를 잡아타고 우이령 치안센터 고갯길 입구에서 하차했다.

오십넘어 구녕구녕 힘이 딸린 여자들은,사녀는 화장실부터 찾았다.

 

본격적인 산책길로 행하는 우이동 먹거리 마을로 진입하여

인터넷으로 검색한 음식점 이름들이 지나가니

언제쯤 한번 와본거리인양, 착각이든다.

주말이나 여름 피서철에는 차들과 사람으로 분비는 거리가

가을 호젓한 산책길이 되었다.

부드럽게 바람 스치고 지나가니

진이가 걷는 발자국옆으로 푸른색 은행잎들이 떨어진다.

"저것들은 익지도 않았는데 떨어질게 뭐람.

야들아,니들은 이파리 주울래?은행알 주울래?"

이파리 주워 꽃다발도 만들고 알멩이 주어 먹기도 하자.

아, 가을은 이렇게 깊어만가고 있고,

우리도 탐방소에서 신분증 확인 받으려면 부지런히 걸어가자.

 

 

 

 

 

 

나만 숨이 차는 약간 오르막길을 지나서 탐방소를 거쳤다.

바위고개 언덕을 넘다가 옛님이 그리워

눈물나는 그 고갯길이 우이령길이라고 하더만,

사녀들은 눈물대신 웃음꽃을 피우며 걸어갔다.

 

뱃살이 좋아하는 프림 섞은 봉지 커피를

집에선 안먹다가 치즈빵과 궁합맞춰 먹으려고

보온물통까지 메고와서 무거워 죽겠다고 하니

진이 베낭으로 그것은 이사가고,

성숙이는 무거운것은 일단 먹자고한다.

북한산 나무들만 이슬로 목욕하는줄 알았지,

이슬차 한잔으로 내 목구멍을 씻을줄은...

인숙이가 사온 김밥이 아직도 훈기가 남아

내 김밥은 얼굴도 못내밀고  뱃살은 잠시 접고

김밥,떡,빵 등짝에 무거운짐을 뱃속으로 반이나 치웠다.

매화차로 마무리까지 하고 다시 일어섰다.

 

 

 

 

 

 

 

가을 속으로 걸어가는 그녀들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41년간 출입이 통제될때나 지금이나 가을이면 무심히

피어나는 길가의 구절초가 애처롭다.

추석 명절전에는 그리도 많은 폭우를 쏟아내더만

요새는 가뭄이 들었는지 나뭇잎들이

말라깽이가 되어서 떨어진다.

우리 나이가 점점 허옇게 말라가는 가을 같아서

안그래도 서글픈 가을이

더 헹랑하고 비비꼬여 애처롭다.

 

 

 

 

 

전쟁시에 위의 벽돌들을 뉘여 길을 가로막는다는

이길은 사람들이 제일 사진을 많이 찍는곳이다.

걸음 빠른 삼녀들의 촛점 맞추기가 어려워 사진이 별로다.

얼추 반이나 지나 교현리까지 3km남았다.

여기서부터는 계속 내리막길과 평지란다.

평지나 산악 마라톤을 하는사람들은 뛰어서 내려가는곳이란다.

뛸게 뭐 있나,슬슬 걸어가도 금방인걸,

"살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때는 죽음에 그 전부를 죽어야 한다."고 하잖아.

우리 오늘 느긋한 가을 산책을 하러 왔으니

한번 늘어지게 가을 냄새를 다 들어마시고 가는거다.

얼마쯤 세월이 흘러 가을날 그길에서

니들과 웃었던 추억을 얘기 할수 있을거다.

 

 

 

 

 

 

도봉산 봉우리중 다섯봉우리가 나란히 있다하여 오봉이란 이름 붙여졌다.

북한산 둘레길에서 도봉산을 바라보는 오봉 전망대에서 나란히 섰다.

특별히 사람보다는 젖꼭지 다섯개가 붙은것처럼 보이는

오봉이 잘나오게 찍어달란 부탁대로 멋지게 나왔다.

 

오봉의 전설은

동네 다섯 총각이 한처녀를 한심 사기위해

바위위에 돌멩이를 던져 올리는자가

그녀에게 다가 가기로 하고 게임을 했는데

다섯명 모두 바위위에 돌멩이가 앉았다는 전설이란다.

한여자에 다섯남자라,그여자는 감당못할 복이 터졌다.

남자 하나도 딱딱 못 맞추어 아직도 찌그락 짜그락 하는 

나같은 사람은 많아도 골치다.

 

구름 한점 없는 가을 하늘이 눈이 시리다.

사방사업 당시 세워졌던 비석이 돌덩이를 부숴서 만들었는지

글씨 또한 육십년대 못살았던 그옛날이 보여진다.

물이 마른 계곡길로 접어들면 북한산 상장능선으로 올라가는 코스고

우리 일행은 어디선가 훈련중인 구령소리를 듣고 내라막길을 걸었다.

 

 

 

 

 

 

 

 

 

 

 

 

 

 

 

 

 

 

 

1719부대 유격훈련소에서 울려퍼지는 함성이 북한산 자락에 공명된다.

부대 막사와 유격장과 군사 시설이 있어 군인차량들은 수시로 드나든다.

자연은 혜손하기는 쉬어도 복원시키기는 어려운데

사람도 놀라는 총소리에 산새나 작은 곤충이나

또 나무들은 얼마나 떨릴까,

억새밭에서 놀다온 그녀들은 길가에서 흔들며 봐달라는 

작은 몸부림을 보기는 했을까,

마라톤화에 마사이신발에 패션화까지 신고 걷는 걸음은 빨라

3시간 30분 걸린다고 한 우이령길은 두시간 조금 넘게 걸린것같다.

트랙킹화 신은 나도 따라가기는 별 무리가 없는걸보니

왔던길을 되돌아가도 괜찮고 아님,다른길로 계속 연결해도 될것같다.

교현리로 무사히 빠져나왔는데도 태양은 아직 머리끝에 걸린 한낮이다.

 

송추계곡으로 몇 정거장 나가 소문난 송추 가마골집에서

저녁까지 해결 하려했던 계획은 어긋나고

일행은 버스를 타 구파발 지하철역에 도착해

성북동 간송미술관으로 향했다.

발빠른 삼녀덕에 오늘 두탕이나 뛰게 생겼다고 하니

모 라도 심으러갈 허벅지라며 자신 만땅이다.

"어디 가을 걷이할 일꾼들이 필요하면 여기 있소,해라,

애들아,니들 사위감 선을 보려거든 반바지부터 입혀봐 

허벅지 굶은놈을 좋다 해야 니 딸들이 행복 하단다."

전철속에서는 조용하게 소곤거려야 하는데 그게 잘안된다.

타고 내리는 위치와 시간까지 정확한 성숙이와

미술관 가는길을 소상히 아는 진이 안내로

이달 말일까지 하는 전시를 보았다.

 

 

 

 

 

 

 

 

 

 

 

 

 

 

 

 

 

 

 

 

우리나라 최초 민간 미술관이고 국보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의 입장료는 무료란다.

"화훼 영모 대전"이라 쓴 대문을 들어서니

성숙이가 자랑했던 흰공작이 먼저 반긴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와 지 눈이 딱 마주쳤는데도

날개죽지를 꽉 붙인채 벌릴줄을 모른다.

공민왕의 얼룩양 두마리가 그려진 이양도를 비롯해 

 100여점이 전시된 전시관에는

김홍도의 한쌍의 까치가 기쁨을 알리는 쌍작보희와

노란고양이와 나비의 황묘농접등

주로 가을과 동물 곤충들의 만남이 이번 전시의 테마란다.

도둑쥐가 수박을 파먹는 그림,

유난히 고양이의 그림이 많이 보인다.

"얇은 저고리밑,가슴속 가득한점은 붓끝으로 전하노라."의

신윤복의 미인도는 전시장 입구 다른 많은 액자와 함께 있었다.

 

날씨도 좋고 공기도 좋고 친구도 좋아

이른 저녁을 먹었다.

겉은 공사중인것 같고, 속은 유럽풍에 젊은 감각이 돋보이는

셀프 식당을 전에도 와본 친구덕에 별의별 요리도 맛보았다.

호밀빵으로 에피타이저를 한뒤

검정콩을 갈아 만든빵속에 연어샐러드와

와플과 샐러드를 겯들여 원두커피와 함께 먹고

배가 불러 방금전 전시장에서 본 변상벽씨의

국화꽃 핀뜰에 축 늘어진 가을 고양이처럼

게슴치레 눈이 감긴다.

 

 

산과 자연과 친구를 사랑하는 삼녀와의 만남을 뒤로 하고  

결혼기념일은 내일인데 떡본김에 제사 지낸다고

나온김에 해버리는것도 좋아서

딸내미가 오라는 경복궁역으로 갔다.

경복궁 역사에서는 공무원 미술대전에서

수상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가는곳마다 작품으로 눈호사는 제대로 하는것 같다.

 

북한산 둘레길에는 내가 갔다 왔구만,

남편은 방풍자켓에 등산화까지 신고 나타났다.

내등에 붙었던 베낭은 이제야 제자리로 찾아가고

삼계탕집은 어디나 다 있는데

꼭 토속촌 삼계탕집으로 가야한다니.하고 들어섰다.

음악을 전공과 동시에 아빠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들처럼 뒤바라지를 제대로 못해줘 항상 미안한데

음악 잡지 편집기자로 일하면서도 공부를 게으르지 않는 딸은

예능이든 무슨일이든 지가 행복하면

뒤빽이 없이 할수 있다는걸 보여주고 있어 든든한 큰딸이다.

쥐꼬리만한 돈좀 번다고 밥을 산다니 흐뭇할 따름이다.

 

한옥지붕은 금방 무너질듯 낮고 신발 벗고 온돌로 들어가니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로 만원이다.

운동은 쬐끔하고 이것저것 먹어 삼계탕까지 먹다가는

배터져 죽겠다 싶어 두마리 닭속에 들은 수삼 두뿌리만 빼먹고

국물맛을보니 잣을 갈아 걸죽한 국물이 색달랐다.

 

 

 

 

 

 

 

 

 

 

 

 

 

 

 

 

긴하루가 지나 어둠이 찾아오고

서울 한복판 거리는 불빛들로 더 환하다.

내자동으로 걸어나와 50년간 이자리에서 과자를 구운

할머니의 샘베과자 두봉지를 사서 들고 집으로 왔다.

서울 백과사전에 나오는 곳을

오늘 하루에 네군데나 구경한 셈이다.

오밤중이 되어서야 들어온 아들내미는

결혼기념일로 엄마가 좋아하는 홍시감 6개를

이마트에서 샀다고 하며 들고 왔다.

"길거리 것이라도 좋다 씻으면 되는걸,"

 

꽃피는 봄날 태어나

억새꽃 출렁이는 가을날 결혼하고

죽는다면 이렇게 찬란한 가을날에 죽고 싶다.

 

오늘 만난 진이 숙이,또 숙이야,

말주변 변변찮은 내가 말실수나

행여 언짢은 일이 있었다면 용서해라.

그리고,행복한 가을날이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노래는 가슴을 후벼파고,

시월의 마지막밤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움이 목까지 차오르면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