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불광중-마실길-내시묘역길-효자길-충의길)

2011. 2. 6. 22:20둘레길

구름정원길-마실길-내시묘역길-효자길-충의길로

 

북한산 둘레길은 기존의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수 있도록 조성한 저지대 수평 산책로이다.

전체 70km중에 현44km만이 개통되었으며

도봉산지구를 포함한 나머지 구간은 2011년이후에 개통될 예정이란다.

 

오늘로  다섯번째 날이다.

하루나 이틀만에 돌아버리는 발빠른 남들과

비교 하기도 부끄러운 느린 발걸음덕에 사진도 찍고

이름을 들어도 그게 그모양같은 북한산에 봉우리를 다시볼수 있었다.

해를 넘기지 말고 한바뀌 돌려고 했던것이 맘먹은 대로 안되고

신묘년 새해를 맞이하고 또 진짜 설날까지 지나 입춘을 넘기고야

이어진 나의 둘레길 탐방은 서서히 마무리를 하나보다

춥다고 바쁘다고 아프다고 걸렀던 이유도 각가지여서

가을날 단풍을 보며 시작한 탐방이 한겨울을 지나고

봄을 기다리는 2월 안개낀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 3호선 불광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 독바위역에서 하차

전번에 끝긴 불광중학교까지 걸어나가 둘레길 표지따라 가면

우리 일정은 시작된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매섭던 추위가 수그러진탓에

둘레길과 산행을 나서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멀쩡한 나무들을 잘라내서 굳이 둘레길을 만들어야 하는지,

오솔길이면 충분할 둘레길에는

토막낸 나무기둥들이 시체처럼 누워있다.

 

 

 

"끝까지 해 보라

네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마주보고 당당하게 맞서라

실패할수 있지만,승리할수도 있다.

한번 끝까지 해 보라!

네가 근심거리로 가득차 있을때

희망조차 소용없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나 지금 네가 겪고 있는 일들은

다른이들도 모두 겪은 일일 뿐임을 기억하라.

실패한다면, 넘어지면서도 싸워라.

무슨 일을 해도 포기하지 말라

마지막가지 눈을 똑바로 뜨고 머리를 쳐들고

한번 끝까지 해보라."

미국 -에거드 A. 게스트

내게 남은 구간을 끝까지 하라고 하는 말처럼

공원입구에 시구가 적혀있다.

 

 

 

 

 

 

북한산의 많은 사찰중 선림사를 지나 진관사행으로 가는중이다.

외벽과 기와는 전통 한옥처럼 보이나 실제는 콘트리트벽인 선림사 절은

은평뉴타운 아파트속 깊숙히 있다.

뉴타운이라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도 입주민이 얼마 안되어

북한산 리조트에 여행온듯 차가운 공기는 더 맑고 썰렁했다.

간판도 내걸지 않은 상가들과 베란다 삿시도 없는 빈집들이 이렇게 많은데

전세난으로 서민들은 갈곳이 없다는게 아이러니한 일이다.

둘레길을 걷는라 아파트사이를 통과하는 내 앞으로

지하 주차장에서 나온 까만색으로 썬팅한 차 한대가 쌩 지나간다.

 

 

 

기자촌이라는 동네이름으로 살다 뉴타운이라는 도시로 거듭나기위해

치뤄지는 몸살은 군데군데 있었다.

집 구들터인듯 덩치큰 돌맹이와 부서진 연탄재등 가난하여 궁핍했던

삶의 현장들이다.

 

그곳에도 한편의 명언은 있다.

"사랑에 관하여

남성들이 여성을 사랑할때는

그들 삶의 일부분만 주지만

여성들이 남성들을 사랑 할때는 지니고 있는것 모든것을 준다"

-아일랜드 오스카와일드(Oscar wilde)-

 

사랑이 남자라고 조금주고 여자라고 전부를 내준다니

그런 이상야릇한 사랑의 정의를 명언이라 둘레길에 꼿혀있다.

사람마다 지각각인것을 왜 모를까

새로운 도시개발로 삶의 터를 빼앗기고 받은 알량한 보상비로

전세로 월세로 떠난 그들에게도 봄이 있단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우리 살아가는 일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이

어디 한 두번 이라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나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김종해-

 

시인의 말대로 멀티 전자기기로 살기편한 세상이 돌아왔건만

누릴수 없는 불쌍한 사람들은 낮게 낮게 엎드려 살면서

상처받은 사랑이 아물때까지

봄을 기다려야 하는가보다.

 

 

 

 

 

 

 

 

 

"내 안에 크는 산

좋아하면 할수록

산은 조금씩 더

내안에서 크고 있다.

엄마 한번 불러보고

하느님 한번 불러보고

친구의 이름도 더러 부르면서

산에 오르는 날이

많아질수록

나는 조금씩

산을 닮아가고 있는것일까

하늘과 바다를 가까이 두고

산처럼 높이

솟아 오르고 싶은걸 보면

산처럼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그냥 마음이 넉넉하고

늘 기쁜 걸 보면"

-이해인-

 

 

아무리 산처럼 넉넉한 맘을 닮고파 올라도

산에 오르는일은 숨차고 힘든건 힘들어

쉼터 의자에 앉아 귤 하나를 까먹으며

가까이와 있는 북한산 조망을 바라보고 있는데

육십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내옆의자에 와 앉는다.

남편인듯 뒤따라오는 남자 왈 "의자가 차가운데"

하며 자신이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여자 엉덩이에 깔아 준다.

산에 갈때 다리 아프다고 징징댈때마다 써먹는다고 사온

등산의자를 딱 한번 사용하고 집에 모셔둔채 그냥와

나는 맨의자에 앉아서도 아무말 않고 남편이 자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더 자상한 남편은  북한산 둘레길에 있었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듯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인수봉 등허리엔 흰눈이 얹혀있다.

빵과 뜨거운 물로 간단한 점심을 요기하고

구름정원길의 끝과 마실길의 시작인 생태다리앞까지 왔다.

여기서 부터는 난이도는 하로 걷기에는 무리없는 구간이다.

이웃집에 놀러간다는 뜻인 마실길은

식사후 동네 한바뀌 돌아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으면서

생각하고 쉴수 있는곳이다.

 

 

 

 

 

 

 

 

 

 

 

진관생태다리에서 방패교육대까지 1,5km를 가볍게 지나

걷기에 급급한 나는 방패교육대 부대를 자세히 보지 않고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를 지나 얼어있는 창릉천 건너서

효자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시묘역길로 들어섰다.

'무리지어 있어도 남에게 기대지 않고

홀로 서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군신의 예를 목숨처럼 여기며

왕을 그림자처럼 보좌하던 내시들의 묘소가 많은곳이다.

 

내시묘역길 구간에는 여기소 경로당이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따로따로 나뉜방에서

할머니는 화투놀이를 할아버지는 바둑과 장기를 두고 있는데

나는 경로당 화장실을 고맙게 사용했다.

여기소(汝其沼)터는 조선 숙종때

북한산성 조성 축성을 위해 동원된 관리를 만나러

시골에서 온 기생이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연못으로 뛰어들어 그녀의 사랑이 잠긴못 이라는 전설이 있다.

죽은뒤 하루지나 님은 내려왔건만

오 그대가 여기소에서 죽었단 말인가,

 

 

 

 

 

 

 

 

내시묘역길은 실개천이 흐르는

작은 마을 동네길을 지난다.

담장 낮은 뜰안에 묶인 말라메튜종으로 보이는

두마리 개가 꼬리를 살살 흔들어 준다.

호호 저것들도 내가 개를 닮고 개를 좋아하는

개띤줄을 알고 있었다.

 

둘레길 목책밖으로 오래되어 글씨도 희미한

비석하나가 서있다.

1614년에 세워진 경천군 송금물침비(慶川君 松禁勿侵碑)이다.

조선시대 일본과의 화평교섭에서 크게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경천군으로 봉해진 이해룡(경주이씨)의 사패지(임금이 하사한 토지)이자

그 주의사항을 알리는 비석이다.

경천군 이해룡은 한석봉과 함게 당대의 명필로서 사자관을 담당했으며

임진왜란을 즈음하여 통신사의 일행으로 활약했다.

왕조시대에는 나라의 모든 토지가 왕의 것이였기 때문에

공이 있는 신하에게 땅을 주거나 땅에서 나는 땔감등의 생산물을 거두어 갈수 있게끔 하였는데

바로 이비석을 통해서 사패지를 알수있다.

비석앞에는 경천군에게 내려준 이땅에 함부로 들어가거나

소나무를 베지말라는 뜻이 담긴 글이 써있다.

 

송금물침비를 지나고  내시묘역이 저멀리 있어 바라만보았다.

군데군데 묘지들로 이동네는 과거에는 공동묘지 였을것이다.

밤에 이길을 지나치기란 머리카락이 쭈빗쭈빗 설게고

대낮에도 으시시한 길은 심장 약한 사람은 다리도 풀릴것 같아

빨리 이길을 벗어나는게 상책이다.

 

 

 

 

 

 

 

탐방지원센터에 오자 등산객들로 붐비고 등산용품을 판매하는

상점들과 음식점이 눈에 띈다.

둘레길교의 경치가 아름답다.

여름에는 계곡에 사람들로 북적대는 곳이란다.

오십중반을 넘어 육십을 바라보는 남편은

그동안 며칠채 감기몸살로 바짝 늙은이가 되었다.

온 식구가 돌아가며 감기를 앓아도 건너뛰던 남편은

이번에는 사이좋게 나눠가져 감기중이다.

하루 아프면 일년 늙어버리는것 같다.

골골 백년은 살지 말아야 하는데 사시사철 계절별로 감기와 친한 

내가 더 걱정이다.

 

 

 

 

 

"산중문답

묻노니,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

웃을뿐,답은 않고 마음이 한가롭네.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 가나니.

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네."

-이백-

 

계곡앞에 휘어진 소나무 한그루가 인간세상 아닌

그곳에도 희노애락은 있다 한다.

계곡 지나 저 너머 북한산 꼭대기가 하늘과 닿아

그곳이 별천지란 말인가,

산중문답에 답할자 진정 산꾼일게다.

 

 

 

 

내시묘역의 끝자락인 고양시 효자동으로 들어서면

이구역의 산이 효자농원의 사유지인듯

곳곳에 효자농원의 유지양 대표께서

둘레길에 도움을 주었다는 푯말이 나온다.

 

효자리 입구로 나와 송추방향으로 달리는 도로따라 2km를 걸으면

박태성 효자비가 나오고 다시 숲으로 들어가게된다.

전설속에 나오는 효자 박태성과 그효심에 감동하여 박태성을 따랐던

인왕산 호랑이에 대한 전설을 간직한 효자비란다.

박태성 장려비로 서있는 비석의 사진을 놓쳤다.

 

예로부터 밤나무가 많아 밤골이라 불리우는 밤골공원지킴터가

효자길의 마지막 관문이다.

참나무과인 밤나무는 다산과 부귀의 상징으로 그 쓰임새가 많아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재배를 장려 했었다.

밤나무와 소나무로 숲이 우거지고 아기자기해

걸으며 묵상하기엔 딱인 길이다.

 

 

 

 

 

 

 

 

사기막골 입구인 충의길로 접어들기전에는

늦여름 북한산 백운대 올라갔다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오면서

생생한 작두총각 굿패를 구경했던 국사당이 나온다.

한번 경험으로 만족하고 다시는 못오를 백운대는 어찌어찌해서 올랐으나

지금도 숨은벽능선을 생각하면 오금자리가 땡긴다.

 

"고귀한 자연

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것은

나무가 크게만 자라는 것과 다르다.

참나무가 삼백년 동안이나 오래 서 있다가

결국 잎도 피우지 못하고 통나무로 쓰러지느니

하루만 피었다 지는

오월의 백합이 훨씬 더 아름답다.

비록 밤새 시들어 죽는다 해도

그것은 빛의 화초요 꽃이었으니,

작으면 작은 대로의 아름다움을 보면

조금씩이라도 인생이 완벽해지지 않을까."

-영국 벤 존슨-

 

 

밤골에서 사기막골 공원 지킴터까지 1km는 한겨울이었다.

겨울 눈산행에서 사용했던 아이젠을 꺼내 등산화에 끼고

머지않아 밟지못할 눈을 더 콕콕 찍고 내려왔다.

아침에 피었다 지는 나팔꽃같이 짧은게 인생이라는데

몇백년을 살것처럼 내려놓기가 쉽지 않은것도 인생이다.

꽃은 꽃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그 아름다움을 보자고 다짐한다.

 

얼추 걷기 시작한 시간이 네시간이 지나고 산길도 다내려와

예비군 훈련장이 길을 따라 즐비하여 서울지역의 군부대가 밀집한

아스팔트 도로만 남았다.

북한산을 빙도는 둘레길의 의미보다는

군시절의 추억을 연상케하는 구간을 끝으로 우이령길입구와 만나면

아직 예약제로 들어갈수있어 제일먼저 돌았던

마지막 13구간인 소귀고개라고도 하는 우이령고개가 나온다.

 

하루종일 응등거려 불편한 하늘은 아스팔트위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였다.

단풍들고 낙엽이 하나둘 질때 시작한 북한산 둘레길을 드디어 끝내고

송추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걷기가 끝났다는 안도로 연신 하품과 피로가 몰려왔다.

갈비탕으로 유명하다는 송추 가막골에서 갈비탕 2인분을 사서들고 집으로 돌아와

여고 동창과 함께한 우이령길 빼고 나머지 구간을 안내하면서 속이 탔을 남편은 소주로

나는 포도주로 자축했다.

 

힘들어 높은곳에 오르지 않고도 북한산의 경치를 보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걸을수 있어 둘레길은 좋은길이다.

 

1구간(소나무숲길)바람이 흔들면 솔향기는 떨구고

2구간(순례길)자유와민주 정의가 숨쉬고

3구간(흰구름길)땅길이 끝나면 구름이 오고

4구간(솔샘길)자연풍경이 생태숲을 만들고

5구간(명상길)숲에서 나를 찾아내고

6구간(평창마을길)어제의 창고가 오늘 내일이 되고

7구간(옛성곽길)유서깊은 도읍의 성문을 통과 하고

8구간(구름정원길)하늘과 구름이 만나 길이 되고

9구간(마실길)동네를 나서다 이웃을 보고

10구간(내시묘역길)군신의예는 목숨임을 깨닫고

11구간(효자길)숲속에 효심 짙은 녹음을 보고

12구간(충의길)애국은 올바름의 길이고

13구간(우이령길)맘과몸을 위로받고 치유할수있어

홀로서도 외롭지 않는 자연의 길을 함께 한다면

더 좋은 길이 될것이고

바람 따라 걷노라면,

산새와 구름도 동행 할것이다.

 

길,

그길을 걷는자 외롭지 않을것이고

길,

그길을 걷는자 슬프지 않을것이다.

길,

그길을 걸으며 젊은날 추억은 웃을것이고 

길,

그길을 걸으며 정열의 영혼이 깨어날것이다. 

 

 

 "  "로 인용된시는 북한산 둘레길의 9구간~12구간에서 만날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