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4

2011. 5. 11. 19:18일반산행

 

어제의 심술보가 오늘은 걷힌듯,

아침겸 점심을 먹고 아파트14층 베란다에서 어제 다녀온 산성을 바라보니

부드러운 능선위로 흰구름이 봄 이불마냥 하늘거린다

어제 포기한 북문에서 벌봉을거쳐 동문을 빠져나오려는 생각에

초코렛 몇알과 생수 한병을 들고 집을 나섰다.

 

터널만 통과해 곧바로 내리면 남문 주차장이고

한정거장만 더가면 종점인 산성종로인 로타리가 나온다.

로타리를 중심으로 네방향으로 4대문이 있고 모두 가까이에 있다는것을

확실하게 알수있었다.

 

 

 

 

 

어제의 식당에 다시 들러 이름이 왜 돌집인가 했더만

산성에 걸맞게 벽이 돌이었다.

이름이 뭐라 했는데 3개월 되었다는 누렁이는 개띠인 나를 쳐다보고

나는 누렁이 강아지를 쳐다보았다.

자족 마을이었던 동네는 남한산성 구경하러 오는 손님들 대접에

온통 먹을것 천지인 식당 마을로 변해있다.

눈이 초롱초롱 이쁜 누렁이가 여름 복날을 잘 넘길지 염려가된다.

 

 

 

 

성안에서 바라본 북문(全勝門)에 섰다.

비에 젖은 어제의 사진을 보다가 하룻만에 더 파랗게 보이는 나뭇잎색과

단풍철이 아니어도 빨간 단풍나무와 성곾의 운치에 감탄이 절로 나와

부글거리던 가슴의 응어리가 내려간다.

혼자이면 이렇게 마음이 편안 한것을 잘왔다는 생각을 하며

기껏해야 스무명의 인원이 스무명의 생각으로 갈라진 어제의 일을 떠올린다.

시동을 걸지 않음 그자리에 가만 있는 자동차 걱정을 시작으로

폐가 조금 작아, 심장이 벌떡거려,숨이 차,추워서,더워서,

끈적거려,다리 아파,배가 고파,등산화를 안신어,등산복을 안입어,

사진을 찍으러,미운 가시내와 머시매가 있어,

단체 행동에 흩어진 가지가지 이유중에 가장 큰이유는 공지를 올린 내탓이 제일이고

조금 위로를 삼는다면 부처님은 왜 비를 맞고 태어났는지 애꿎은 비 탓일것이다.

어제 내린비로 땅은 폭신하고 공기는 상큼해

어제가 오늘 같았음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컸다.

 

 

 

 

 

 

남한산성안에는 소나무가 유난히 많다.

구불구불 소나무들은 치욕의 세월을 견뎌낸듯 한이 셔려있다.

사실은 일제시대에 마을 주민 303명이 국유림을 불하받으후

벌채를 금지하는 금림조합을 만들어 보호했다 한다.

400m도 안되는 북문 성벽 너머로 바라보이는

검단산과 북한산이 손에 잡힐듯 선명하다.

 

 

 

 

북문에서 벌봉까지는 암문이 세개가 나오는데 첫번째 암문섰다.

암문밖은 일천육백년전 계묘년에 젊은 온조가 나라를 세웠던 하남시이고

안쪽은 성남시로 여기부터가 남한산성의 백미라고 할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데

어제 동무들은 그걸 놓쳤다.

왕조가 무너져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고

또 다른 세상이 와도 세월의 더깨 만큼 뿌리내리고 휘어진 아래나무처럼

대대세세로 삶은 영원히 이어질것이다. 

 

 

 

 

 

 

 

 

 

햇빛도 안보이는 날씨가 더워 모심는 패션으로 변장하고

동장대터에서 두개의 암문을 빠져나오면

벌봉에 위치한 봉암성으로 향하는 산책길이 나온다.

 

남한산성을 보호하기위해 만든 또 다른 성은 거의 다 무너져 있어

보수가 필요할 정도로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재작년 가을 낙엽에 쌓였을때 와보았던 그길을 봄날에 걸으니 더 상쾌하다.

벌봉위에 한봉까지 세겹으로 보호되는 남한산성에 갇히면 꼼짝없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어서 최명길이 주장하는 살아서 나가도 죽은것이고

김상헌이 주장하는 싸워서 죽어도 죽은것이다.

내 삶을 살지 않는한,

형제의 예를 갖추었던 명이나 군신의 예를 갖추었던 청이나

별반 다르게 없단 말이다. 

 

 

 

 

 

암문밖에서 보면 바위가 벌처럼 생겼다하여 벌봉이라한다.

청태종이 정기가 서린 벌봉을 깨트려야 산성을 함락 시킬수있다며  

바위를 깨트리고 산성을 굴복시켰다는 개같은 전설이 있는데

실제 두동강이 나있는 바위를 볼수있다.

해발 512,2m 로 수어장대 497m보다 높아 산성의 서쪽내부와 동쪽성벽이 훤히 보인다.

병자호란 당시 청에게 이곳을 빼앗겨 청이 우리 동태를 파악하고

화포로 성안에 포격했던 곳이다.

 

어제 내린비로 바위에 붙은 이끼는 축축히 젖어있고

분홍색 산 철쭉은 피어서 병자년 겨울을 덮으려 한다.

 

 

 

 

 

방치된 옹성의 성은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하남시로 넘어가는 암문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위태한 암문안으로 왔던길을 돌아 동장대터로 올라

산성의 벽을 따라 걸으면 또 다른 장경사신지 옹성을 나온다.

동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해 산성신축때 지어졌던 것이

18세기에 무너지고 서장대와 남장대는 다시 수축하였으나

동장대와 북장대는 터만 남아있다

장경사신지옹성에 가려면 또다른 암문으로 들어간다.

암문은 적의 눈에 띄지않는 비밀통로로 16개의 암문중에

본성에11개 봉암성에 4개 한봉에 1개가 있다.

 

 

장경사신지옹성은

둘레가 159m로 옹성끝에는 2개의 포대가 있었다 한다.

남한산성에는 성을 보호하고 요충지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5개의 옹성이 있는데

장경사신지옹성은 한봉성과 봉암성에 대한 방어를 주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전쟁시에는 험악할지 몰라도

발 아래 푸른산이요 머리 위에 파란하늘이 아름답기만 하다.

 

 

 

 

 

 

 

 

 

 

휘어진 산능선을 따라 지어진 성곽이 멀리서 바라보면

용이 하늘 향해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커다란 돌덩이위에 작은 돌덩이로 그위에 머리를 이은 형식의 성벽은

그옛날 수축보다 못한 보수에 보수를 거듭해 아까운 세금만 축난다.

빙둘러친 성벽안의 작은 마을은 평화로워 보이고

마을 안쪽에는 임금의 거처인 행궁과 만해 한용운 기념관

그리고 역사 전시관도 있다.

어제는 왜 그생각도 못했는지,여러 행궁중에 유일하게 종사를 갖추었던곳으로

일제때 허물어진것을 작년에 복원하였는데 구경할것을

오래간만에 만남은 수다가 더 급해 잊어버렸다.

 

 

위태롭게 붙어있는 바위는 정자가 있었던 자리란다.

황진이 바위라 했던가,황진이는 인조 훨씬전 중종때 기생인데 여기서 술을 마셨나,

다음번 다시가면 그곳을 유심히 관찰해 보련다. 

 

 

해발 370-400여m의 산능성 따라 축성된 남한산성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어제는 남쪽에서부터 높은 서쪽과 북쪽을 돌아

오늘은 낮은 동쪽으로 내려온것이다.

동문에서 마을로 향하는 큰 도로를 가로질러서 마지막 성곽을 걸으면

처음 시작한 남문이 나와 성을 한바귀 빙 도는 순례길이 되나

11,7km중에 약9km를 걸었다.

드디어 동무들과 함께 하려고 공지했던 동문(左翼門)이 나오자

안도감에 혼자라도 해냈다는 기쁨이 앞선다.

 

 

 

 

 

로타리 한가운데 지수당이라는 연못이있다.

연못옆에 부서진 비석과 부인이 죽고 새로 만든 비석 두개가 있다.

바로 서흔남,김훈의 소설에서는 대장장이 서날쇠라는 인물로 각색되어

삼남지방으로 격서를 들고 뛰었던 자이다.

원래는 하찮은 나뭇꾼 이었던 그가

남한산성 피신길에 군신들도 도망가 몇안되는 어가행렬에서 빙판길이 무서워

벌벌 떠는 인조를 업고 산성안으로 들어와

수어청 병사의 사노로 무당과 와장등 직업을 전전하였다.

청이 성을 에워싸 외부와 연락이 단절되자 지 목숨 귀한것만 아는 양반놈들과는

달리 스스로 자원해 연락병을 맡은자이다.

병자,불구자,거지등으로 변장하고 청군 병사를 살해하면서 청군진영을 세번이나 왕복하였다.

그공으로 노비신분에서 면천되고  당상관되었다.

그뒤 효종때도 그는 성벽 보수공사와 목재 조달업무을 맡아 후에

종2품 동지중추부사로 승진하게된다.

중부면 검복리 병풍산에 있던 묘를 1998년에 이곳으로 이전시켰다 한다.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쳤던 1636년12월30일

청나라 임금인 청태종은 대군을 이끌고 왔다. 

광진,삼전도,헌능은 적병들로 꽉 차 우리군사들은 싸울뜻도 없고

한조각 빛도 없었다.

성안에서 믿을수 있는건 삶과 죽음의 정의 뿐이었다.

 

남한산성의 고통의 시간은 겨울에서 봄이 오듯이 지나가 버렸으나

석촌호수 뒷편에는

"청 황제의 은혜로 조선의 사직이 보존 되었으며, 백성들이 편하게 살게 되었다."라고 적힌

대청황제공덕비 즉 삼전도비가 있다.

아직도,아니 영원히 치욕의 흔적은 남아 있어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것이다.

 

 

 

 

오월 봄날~~

어릴때 동무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자 마련한 산행이

우중산행으로 우울한 하루가 되어버려 슬펐다.

단체생활에서의 예의와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 미비 한것같아 섭섭하기도 해서,모든게 부족한  내탓이다.

삼전도에서 수항단이라는 9층계단 위에 앉은 청태종을 향해 

이마가 박살 나도록 찧어댔던 것처럼

삼배구고두라도 하라면 해야할것이다.

 

다음 기회가 주어줘 또다른 산행이 있을시에는

회장과 내가 사전답사를 갔다 온후에

옆길로 빠질수 없는 외길을 선택하던지 아님,

튼튼한 회장은 선두대장을 맡고 양때들 몰고 가듯, 비실한 내가 후미대장을 맡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총회장이 사진기를 미고 중간에서

자연을 닮아가는 가시내와 머시매들을 앞으로 뒤로

렌즈속으로 집어 넣으며 가야 도망가지 않을것 같다.

그것 또한, 내 어리섞은 생각일수도 있다.

만나서 헤어짐으로 하루를 보냈어도

글을 쓸수 없는 비사진을 원망하는 나에게 흔쾌히 사진을 허락한 용철과

병돈,석래,성섭,동웅,춘구,용석,성용,성덕,의성,명구,우,

경옥,정진,정희,향님,용자,복례,인자,

뒤늦게 달려와준 덕희, 대형.

내 생에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준 동무들 고마웠다.

그리고,사랑한다.

 

 

 

글, 사진: 李 貞

 

참고:백지원의 '왕을 참하라'

       김훈의'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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