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3. 20:59ㆍ참고
[서울톡톡] 6호선 전철 마포구청역(7번 출구)로 나오면 막 한강으로 합류하려 힘차게 흘러가는 홍제천을 만날 수 있다. 하천 양쪽으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잘 닦여있어 눈 내린 겨울이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페달을 밟으며 개천가를 달렸다. 홍제천 신구간 길 위엔 고가도로(내부순환도로)가 지나가는데 다행히 높게 세워져 있어 차량 소음이 들리지 않고 여름엔 시원한 그늘 역할까지 해준다.
원래 수량이 적은 모래하천이면서 1999년 홍제천 위를 지나는 내부순환로 설치로 인해 더욱 물줄기가 마르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서대문구는 하천의 신구간(5.3km)에 인위적으로 물을 흘려보내는 하천 개발을 하게 되었고, 송수관을 통해 하루 4만 3,000톤의 한강물을 홍제천으로 끌어올린 뒤 다시 한강으로 흘러가도록 했다.
그 급수 관리소가 있는 곳이 홍제천의 명물 중 하나인 인공폭포다. 산에서 폭포수가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모습이 정말 자연스럽다. 한 여름에는 늦은 밤까지 인근 주민들에게 최고의 피서지다. 그 옆으로 물레방아와 함께 나 있는 길은 안산으로 가는 들머리로 '안산 자락길' 코스가 이어진다.
신구간 하천길은 도로와 주차장에 막혔다가 3호선 전철역 홍제역 인왕시장 앞 효제약국 건너편 홍제교에서 옛구간 하천길로 이어진다. 인왕시장 주변은 2호점까지 있는 오래된 전통의 헌책방 '대양서점'이 있는가 하면 맥도널드와 편의점들도 시장 주변에 같이 있어 도시의 다채로운 모습을 품고 있는 곳이다. 홍제천 옛구간이 말하자면 구(舊)홍제천이자 개천의 상류지역이다.
옛구간에는 산책로만 있을 뿐 흔한 자전거도로도 없고 개천가에 작고 낮은 집들이 올망졸망 들어서 있는 게, 소박한 풍경이다. 그 옆으로 이름도 특이한 '포방터 시장'. 부근에 포병부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상인 아저씨는 저 앞 청와대가 있는 북악산을 가리키며 이 부근이 옛날부터 수도방위의 중요한 지역이었다고 설명해줬다.
얼어붙은 홍제천 썰매장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지나가다보면, 문화재청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한 옥천암 마애보살좌상(玉泉庵 磨崖菩薩坐像)이 힘차게 흐르는 홍제천 앞에서 명상을 하고 있다. 거대한 바윗돌에 새겨진 이 불상은 흰색 호분(胡粉)으로 칠해져 있어 '백불(白佛)' 혹은 '백의관음(白衣觀音)'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어서 나타나는 큰 성문인 홍지문과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 위로 하얀 눈이 포근하게 덮혀 있다. 홍지문(弘智門)은 숙종 45년(1719년)에 만든 탕춘대성의 출입문이다. 탕춘대성은 조선시대 서울의 북서쪽 방어를 위하여 세운 성곽으로 서성(西城)이라고도 한다. 인왕산 정상의 서울 성곽에서부터 북쪽의 능선을 따라 북한산 서남쪽의 비봉 아래까지 연결된 산성으로 길이가 약 5㎞에 이른다.
이곳 홍제천 상류는 도시에선 보기 드물고 자연적인 개천 풍경을 보여준다. 거친 바위들과 나무 많은 언덕, 옛사람들의 암자와 누각, 성벽, 수문,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 같은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 남아있다. 날아갈 듯 너른 바위 위에 올라앉은 세검정(洗劍亭) 누각은 그 정점이다. 북한산과 인왕산, 북악의 산세가 겹칠 듯 맞대고 있다. 1941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겸재 정선이 그린 <세검정도>를 바탕으로 1977년에 복원하였단다.
홍제천과 어울린 경치가 아름다워 오래전부터 정자를 세워 풍류를 즐기던 명소답게 위치가 참 좋다. 홍제천의 정겨운 우리말 이름 '모래내'는 맑은 냇물이 흐르면서 모래가 많아지고 물이 모래 밑으로 스며 내려간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칼을 씻는 정자'라는 뜻의 한자 이름엔 조선중기 인조반정 때 거사 동지인 이귀·김유 등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 폐위 결의를 하고 칼을 씻었다하여 이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세검정 누각에 편안히 앉아 쉬고 있는데 벌써 하루해가 북악산 너머로 뉘엿뉘엿 지려한다. 참 다양한 풍경과 이야기가 있는 하천길이다.
김종성 시민기자는 스스로를 '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이라 자처하며,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과 사진에서는 매일 보는 낯익은 풍경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 서울을 쾌나 알고 있는 사람들, 서울을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이 칼럼을 추천하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