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동학

2014. 2. 12. 11:46참고


 
갑오년에 1894년의 동학을 생각하니,

갑오년에 1894년의 동학을 생각하니,

 

아침은 오고 어김없이 저녁이 온다. 이렇게 오고 가는 시간의 반복 속에 어느 새 2014년이다. 1894년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지 두 번째 갑오년을 맞은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새장을 열어젖힌 동학농민혁명, 백 주년이 되던 해가 1994년이었다. 그해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행사를 치루고 난 뒤에 동학농민혁명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별로 의미를 두는 사람도 많지가 않았다.

글쎄, '잊어버릴 줄 모르는 이 마음이 슬픔이요"라는 구절이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잊어버리자. 아니 그냥 모른 체 하면 된다. 이 세상엔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 많은데, 그까짓 것 백여 년 전 일을 곱씹고, 곱씹고 한단 말인가?

생각해도, 가끔씩 머리를 들쑤시고 일어나는 것이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이자 희망이었던 동학농민혁명이었다.

그 동학을 창시한 사람이 경상도 경주 사람인 수운 최제우였다. 수운이 우여곡절 끝에 깨달음을 얻고서 한울님으로부터 처음으로 들었다는 계시가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즉 “내 마음이 네 마음이다‘라는 말이었다.

최제우가 동학사상을 펼쳤던 그 시대는 암흑의 시대였다. 그가 펴고자 했던 사상은 국가적으로 보면 이단이었다. 그러한 시대에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한울님이 있다고 설파한 그의 사상은 얼마나 불온한 것이었던가. 결국 그는 대구 장대에서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고, 그의 글과 사상은 그늘진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봄소식을 고대하나 끝내 봄빛은 오지 않았네. 춘광호(春光好. 당唐의 곡조曲調)가 없지 않으나 봄이 오지 아니하니 때가 아닌가보다. 이제 절기가 다다르니 기다리지 않아도 스스로 오는구나. 간밤에 봄바람이 불어 온갖 나무가 일시에 깨쳐 하루에 한 송이가 피고 이틀에 두 송이가 피어 삼백 예순 날에 삼백 예순 송이가 피니 온 몸이 온통 꽃이요. 온 집안이 온통 봄이다.”

봄은 아직 멀었지만 봄이 오면 여기 저기 꽃이 피어나길 갈망했던 수운의 뒤를 이어 동학의 2대 교주로 동학을 재건한 사람이 해월 최시형이었다. 조선 후기 거듭되는 동학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수많은 피난처를 찾아서 잠행했던 최시형이 1896 년, 청주의 신도 서택순의 집에 들렀다. 그때 방에서 베 짜는 소리가 들리자 그 신도에게 물었다

"지금 누가 베를 짜고 있는가?"

그때 신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며느리가 베를 짜고 있습니다."해월이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누가 묻거든, 우리 며느리가 베를 짠다고 하지 말고, 일하는 우리 한울님께서 베를 짠다고 하게"

해월이 말한 것은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한울이다.’ 그것일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한울님께서 상주하고 계신다.‘는 이야기이다.

며느리 마음속에도 한울님이, 시어머니 마음속에도 한울님이, 자식들의 마음속에도 한울님이 선생님, 제자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한울님이 계시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 모두의 가슴속에 한울님이 계신다."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사람들은 섬긴다고 말한다. <성경>에서도 실려 있지 않은가?

"우리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섬기러 왔고" 라고, 그렇다 모두가 모두를, 섬기는 세상에서는 어떠한 불신, 어떠한 무시, 미움, 증오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전쟁까지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는 말했다.“나는 밥이다. 나를 먹고 내 피를 마심으로써 나를 기념함으로써 평화를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

수운은 말했다. “흙이 똥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오곡이 풍성하게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수운은 “사람이 바로 한울님이니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같이 하라.”고 하였다.

이것이 수운과 해월이 설파했던 동학의 핵심사상이다. 그러나 동학사상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채,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이 활약한 1892년에서 1894년까지의 동학농민혁명만 부각되고 말았다. 그래서 동학을 깊이 공부한 사람들이 아니면 그 사상을 알 수 없었던 것이 수운이 설파한 동학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뒤, 뒤를 이어서 화엄 적 후천개벽사상을 설파한 증산 강일순은 “선천시대는 양陽의 시대이고 후천시대는 음陰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말 한 뒤, 후천세계에는 여자를 대장부大丈夫라고 부르게 된다고 했다.

오늘날의 표현을 빌린다면 여성 해방 선언이었다.

“이 때는 해원 시대라 수천 년 동안 남자에게 시달림을 받았던 여자의 원을 풀고 이 후로는 새로운 법을 다시 만들어 여자의 말을 듣지 않고는 함부로 남자의 권리를 행하지 못할 것이다.”

수운이 창시한 동학에서 말하는 사람의 덕의 표준은 "말이 없고 어리숙하고 서툰 곳에 둔다."고 보았다. 그러한 삶이 바로 우리민족에서 대대로 이어져 온 인간이 지녀야할 가장 큰 덕목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러한 사람은 도저히 이 세상에서의 삶을 영위할 수가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동학의 현장을 찾아다닌 지 어언 삼십여 년, 그 사이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1980년 대 후반까지만 해도 ‘동학’이나 ‘황토현’이라는 말만 나와도 색안경을 끼고 보았고, ‘요시찰’ 인물로 낙인을 찍었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동학’을 인정 한 뒤 ‘유족회’를 비롯한 무수한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져 공식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여기 저기 기념물들이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로서는 꿈도 꾸지 못한 여자들이 이 세상을 주도하는 음의 세상이 온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도 수운이, 해월이 꿈꾸었던 세상은 도래하지 않아서 그런지 여기 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해월 최시형崔時亨 선생은 『개벽운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의 운수는 개벽의 운수라 천지도 편안치 못하고 산천초목도 편안치 못하고 강물의 고기도 편안치 못하고 나는 새 기는 짐승도 다 편안치 못하리니 유독 사람만이 따스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으며 편안하게 도를 구하겠는가. 선천과 후천의 운이 서로 엇갈리어 이치와 기운이 서로 엇갈리어 이치와 기운이 서로 싸우는지라 만물이 다 싸우니 어찌 사람의 싸움이 없겠는가?"

최시형 선생의 말처럼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 오늘날 세계의 추세이지만 지금은 그저 지켜 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설날을 앞두고 비가 내린다. 이 비 그치면 남도에서 꽃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동백꽃 무성하게 피고 지는 자리에 매화꽃이 피고, 매화꽃에 뒤질세라 산수유 꽃이 무리지어 피어나면 벚꽃과 자운영 꽃이 피어날 것이다.

무수한 꽃들이 불을 밝힌 그 길을 걷다가 보면 새로운 세상이 문득 열리지 않을까.

 

“겨우 한 가닥 길을 찾아 걷고 걸어서 험한 물을 건넜다. 산 밖에 다시 산이 나타나고 물밖에 또 물을 만났다. 다행히 물 밖의 물을 건너고 간신히 산 밖의 산을 넘어서 바야흐로 넓은 들에 이르자 비로소 큰 길이 있음을 깨달았네.”

 

내일 발간되는 <갑오동학농민혁명 답사기> 서문입니다.

 

갑오년 이월 열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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