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극

2014. 4. 28. 14:16참고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소설가 김별아

 

노란리본

내가 인간이라면, 모든 인간적인 것은 나와 무관하지 않다.

--테렌티우스

내가 악마라면, 모든 인간적인 것은 나와 무관하지 않다.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중에서

[서울톡톡] 고대 로마의 희극작가 테렌티우스와 19세기 유럽의 변경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가 2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한 지점에서 만난다. 짐짓 모순된 듯 대비되는 두 문장은 과연 우리 속의 '인간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슬픔과 고통으로 헝클어진 나날이었다. 상실감과 배신감이 혼란스럽게 뒤엉켜 마음이 자욱했다. 칼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말했다. "헤겔은 모든 중요한 세계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은 두 번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하지만 역사의 교훈을 까맣게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처음의 한 번은 비극이요, 다음은 끔찍한 참극이었다. 1970년 326명의 생명을 앗아간 남영호 침몰, 1993년 292명이 희생당한 서해페리호 침몰에 이어 다시금 발생한 2014년의 세월호 침몰 사건은 시간의 무게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 뛰어난 발전상을 뽐내던 첨단 기술은 어디로 갔는가? 휘황찬란한 선진국 진입의 구호는 다 무엇이었던가? 명백한 인재(人災)로 인해 눈앞에서 벌어진 참사는 세월을 거스른 공포 그 자체였다.

그리고 다시 그곳에서 적나라한 인간이 드러났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자신의 몸을 던져 타인을 구한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었다. 여승무원이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등을 떠밀었다. 선생님이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구하려 몸부림치다 떠내려갔다. 친구들을 돕다가 끝내 빠져나오지 못한 어린 학생도 있었다. 그들의 살신성인은 선한 의지와 책임감과 희생정신야말로 '인간적인 것'이라는 증거가 되었다.

하지만 거짓이거나 오판인 안내 방송으로 승객들의 대피를 막고 저희끼리 빠져나온 선장 이하 선박직 직원들의 행태는 또 다른 '인간적인 것'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한다. 해양 요원을 양성하는 전문 교육기관인 한국해양대학교의 교훈 중 하나는 "우리의 각오는 바다의 매골(埋骨)", 즉 바다에 뼈를 묻는 것이란다. 그들이 배를 지키고 승객을 구하는 것은 양심을 넘어선 직업윤리이자 궁극의 책무인 것이다. 그럼에도 선박 구조를 잘 아는 그들은 평소 익숙한 통로를 이용해 탈출에 성공했다. 배를 버리고, 승객들을 남겨두고, 오로지 자기 목숨을 건지겠다는 이기적인 본능과 집요한 욕망으로.

'인간적인 것'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인간으로서 마주하는 아름다운 얼굴과, 악마로서 마주하는 추악한 얼굴이 고전적인 만화 캐릭터인 '아수라 백작'처럼 공존한다. 생사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 과연 어떤 '인간적인 것'이 우리 속에서 튀어나올지는 그때가 되지 않고서야 쉽게 알 수 없다. 그러하기에 시스템을 구축하고 매뉴얼을 통해 위기를 관리할 필요가 더욱 절실해진다. 그리고 그 바탕은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어야 마땅하다. 우리도 믿을 수 없는 아름다운 우리와, 추악한 우리를 화해시키기 위해. 그렇다. 모든 '인간적인 것'은 나와 무관할 수 없다. 우리가 인간이라도, 설령 악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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