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28. 14:20ㆍ참고
사단법인 우리땅걷기------------신정일
나도 아프고 그대도 아프고 세상이 다 아프다.
여기 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아파도 너무 아프다.
말할 수 있는 아픔도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아픔들이 더 많다.
아파서, 너무 아파서 그냥 침묵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시대가 어디 지금뿐이었겠는가?
다들 알면서도 막상 닥친 현실에만 치우친 채
모두가 다 아프고 또 아프다.
그렇다면 아픔이나 슬픔이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석가세존이 어느 날 마라가야 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라가야, 세계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영혼과 육체는 같은가, 다른가? 인간은 죽은 다음에도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인생의 괴로움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의 삶속에서 괴로움을 소멸시켜야 한다.
마라가야,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은 대로, 말한 것은 말한 대로 받아들여라.
그러면 내가 말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고 나는 말했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고 나는 말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고 나는 말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고 나는 말했다. 왜 나는 그것을 말했는가? 그것은 열반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남 중부경전南 中部經典> 2
‘나는 괴롭다’ ‘나는 슬프다’에서 시작되는 것이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물음표(?)이다.
작게 의심하면 작게 진보하고 크게 진보하면 크게 진보한다.
살아 있다는 것조차도 기적인 이 세계에서
순간순간 의심하고 저어하는
이것은 괴로움인가? 이것은 슬픔인가?
석가세존의 말은 다시 이어진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이라는 진리다. 출생은 괴로움이다. 늙음은 괴로움이다. 병듦은 괴로움이다. 죽음은 괴로움이다. 근심, 슬픔, 불행은 괴로움이다.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은 괴로움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괴로움이다.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간단히 말하면 오온五蘊에 집착하는 것이 괴로움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이 원인이라는 진리이다.
과보를 일으키고, 기쁨과 탐욕을 수반하며, 모든 것에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그것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이다. 갈애를 남김없이 멸하고, 버리고, 벗어나. 아무 집착도 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진리이다.‘
성스러운 팔지八支의 길이 그것이니,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다.“
<남상응부경전南 相應部經典> 6에 실린 글이다.
살아 있다는 것, 아니 태어났다는 것
그 모든 것이 소멸에 이르는 전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 역시 괴로움인가, 아니면 행복인가?
풀릴 것 같으면서도 풀리지 않는 그것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짊어지고 있는 숙명이 아닐까?
갑오년 사월 스무여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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