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10. 21:31ㆍ백두대간
일시-2015년2월10일 화요일 거센 바람붐
장소-백두대간 선자령 구간 북진
코스-대관령(832m) 국사성황당 입구-통신 중계소-갈림길-새봉(1053m)
-선자령(1157m)-임도-낮은목-곤신봉(1121m)-동해 전망대(바람의 언덕)-삼영목장 쉼터
백두대간 10.9km+접속구간4.8km(15.7km 6시간)
바람 맞았다
봄날 새싹 돋는 양지에 살랑거리는 상큼한 바람이 아니고
여름날 땡볕에 흘리는 땀 식혀 내리는 시원한 바람이 아니고
가을날 마지막 잎새를 떨궈내는 차가운 바람도 아닌
날카롭고 거세게 온몸을 세차게 흔들며 때리는 바람을
오롯히 맞은 날이다
바람없던 보름전과는 판이했다.
말로만 듣던 대관령 바람에 자연의 경이로움보다
바람 때문에 죽을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무섭기까지 했던 하루였다
영동과 영서를 잇는 큰고개인 대관령으로 빨강색 몸통의 무거운 버스는
씽씽 오르고 달렸다
대관령은 해발 840m의 고지대로 강릉시와 평창군 사이에 있는 고개다
서울과 영동을 잇는 백두대간의 관문으로 구 영동고속도로이다
예로부터 대관령은 고개가 험해서 오르 내릴때 "데굴데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데굴령"에서 음이 변해 대관령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까지 이용하던 대관령 옛길은 동쪽의 강릉구산에서 반정을 거쳐
대관령 너머 서쪽의 횡계까지를 말한다.
강릉을 중심으로 강원도에서 한양으로 오는 유일한 관문이었다
조선초기만 해도 겨우 한 두사람 다닐정도의 좁은길 이었는데
조선 중종때 고형산이란 사람이 몇달에 걸쳐 길을 넓혔다한다
그러나 병자호란때 오랑캐가 주문진에 상륙하여 대관령을 쉽게 넘었다 하여
고형산의 묘를 파내 시체의 목을 치는 육시의 형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현재까지 비포장도로로 남아있는 대관령 옛길은
대관령 박물관에서부터 신사임당 사친비의 반정까지
5km구간이 온전히 남아있다.
대관령국사 성황사입구에 도착한 빨강버스는 대간길 걷는 일행을
쏟아 냈다.
이리저리 쏠리는 몸을 가누기 힘든 바람에 놀라 잔뜩 긴장을 하고
부지런히 아이젠을 꺼내 찼다
백두대간길 건는사람들은 발만 빠른게 아니라 손도 빨라
숨 한번 크게 쉬고 나면 앞서서 모두 사라져 버리는통에
부지런을 떨어야 그네들을 놓치지 않는다.
둘러봐도 화장실은 안보이는데 시작도 하기전에 오줌도 마려운거 같고
암튼 바람앞에 등불처럼 위태 위태한 백두대간길 한복판에서
눈밭에 발도장을 찍으며 따라갔다
대관령국사 성황사는
통일신라때 국사로 추앙된 범일국사가 사후에 대관령을 지키는 성황신이 되었다는
신화에 의해 음력 4월15일 성황신인 범일국사를 모시고 제를 지내는데
김유신 장군이 산신으로 모셔져 있고 범일국사를 성황신으로 모셔져 있는
무교의 성지로 무속신앙을 대표한다
성황님을 모시는 영신제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된 중요 무형문화재인 강릉 단오제의
큰 행사에 해당된다.
국사 성황사 입구 표지석에서 오른쪽 산길로 오르면 통신 중계소가 나온다
등산객 길안내 표지가 곳곳이 달린 리본을 따라 300여미터 더 걸으면
산길이다.
눈속에 빠진 발을 내딛으며 한시간여 걷다보면 바람이 많아 새조차 쉬어갈수 없다고
이름 붙은 새봉이 나온다.
비행기의 등대역할을 하는 항공 무선표시소가 있다
새봉을 지나 선자령까지는 왼쪽으로 대관령 목장을 끼고
완만한 오르막이다
보름전에 눈발 날리는 넓은 대관령 벌판을 풀린 다리를 끌고 오르락 내리락 걸으며
다시는 오지 않겠다던 푸념이 보름만에 지켜지지 않은셈이다.
서울에서는 제대로된 눈구경을 못하고 올겨울 대관령을 두번씩이나 방문해
실컨 구경하고 있다
영서지방의 편서풍과 영동지방의 습기많은 바닷바람이 부딪쳐 많은 눈이 내리는
대관령에 우리나라 최초의 스키장이 만들어진 까닭도 여기에 있다.
비료푸대를 엉덩이에 깔고 신나게 한번 타보고 싶지만 꾸물거리다가 눈깜짝 할사이에
발빠른 일행을 놓칠세라 엉뚱한 생각은 버려야 백두대간길 가는길에
그나마 뒤쫓아 갈수가 있다.
선자령(1157)은
대관령 북쪽에 있는 백두대간의 주능선에 솟아있다.
강릉시와 평창군을 넘는 고개로 옛날 영동지역으로 가기 위해
나그네들은 선자령으로 넘나들었다 한다.
선자령을 산이나 봉이 아닌 령으로 부르게 된 유래는 알수없고 옛날 기록에 의하면
'태고사법'에는"만월산"으로 적혀있다
선자령은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들이 자식들을 데리고 와 목욕을 하고 놀다가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선자령이라고 불린다는 전설이 있다
정상에서 남쪽으로는 발왕산 서쪽으로 계방산 서북쪽으로 오대산
북쪽으로는 황봉산이 있다
이곳에 봄 여름 가을에는 야생화 천국이고
겨울이면 선자령 눈구경에 눈호사 하러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는
막바지 겨울 선자령에는 내리치는 매서운 바람속에 오고가는 등산객이 가끔 보일뿐
온통 날리는 눈발에 뿌리깊은 나무들만 외롭게 서있다.
바람 많은 대관령에 풍력 발전기가 서있는 이유를 알았다.
거대한 팔랑개비가 바람을 몰고 쑥쑥 돌아가는 장관이 펼쳐졌다
처음 맞는 바람소리에 놀라고 세기에 놀라 온몸으로 전해오는
바람찬 백두의 길속에 놓인 내가 한발 내딪기 힘든
히말라야 시베리아 바람이 이런 바람일까 무섭기까지 했다.
선자령에서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로 내려가는 고개인 낮은목을 지나
사십여분 바람과 사투를 벌이며 걸으니
곤신봉(1131)언덕에 작은 표지석 뒤로 바람에 기울어진 나무
몇개가 쓰러질듯 위태롭게 서있다.
곤신봉은 강릉에서 볼때 거의 서쪽에 있는데 전통적 방위 용어로
곤신이 위치의 방위가 곤신방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곤신봉에서 동쪽으로 내려온 줄기에 대궁산성 명주군왕릉이 있고
이 줄기에 명당이 많다 하여 묘자리로 많이 쓰였는데
이곳 바람이 워낙 세차서 묘를 쓸때는 곤신봉을 향해 쓰지 않는다고 한다
동해 전망대(1138)로 바람맞아 걷기를 계속하여 이동하니
맑은 날이면 강릉시내와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이 보인다는데
시원한 동해바다는 보이지 않고 산인지 바다인지 분간이 안되었다.
앉아서도 서서도 잠시잠깐 쉴수 없을정도의 바람으로
점심도 거른채 시간은 어느새 오후 두시가 넘어서고
바람의 언덕과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촬영지를 지나
날머리인 삼양목장으로 내려와 휴계소에서 산우가 준비해놓은 컵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해 떨어지기전에 대관령 높은곳을 벗어난 빨강 버스는
빨강색으로 물들어가는 석양빛을 창문에 매단채 서울로 향했다.
바람의 나라에서 정신 빠진 하루를 떨면서 지내다
하루내내 얼굴과 목을 감싸 바람을 막아준 고마운 빨강 목도리를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두고 내렸다.
서울의 밤은 잔잔했으나 대관령 칼바람이 어질어질 불어오는것 같아
늦은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람앞에 물 한모금 마시는거조차 힘들어 탈수 되었던지 밤새 물을 들이키고
다음날 하루종일 오줌색깔이 진했다.
부족한 체력 단련을 계속해야 백두대간길에 낙오되지 않을거 같다
두로봉에서 동대산 소황병산의 오대산 구간을 벗어나는 백두대간길을
지나 다음구간 고루포기산으로 이어진다.
바람의 언덕
백두대간 겨울길을 걷고 걷다
바람 불어 흰 눈발 휘날리는 대관령 앞에 서니
하늘과 땅이 바람앞에 춤을 춘다.
무방비로 칼 바람에 스러지고 스러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 있는 겨울 나무
안개와 구름에 갇혀 죽으나 살으나 외롭고 춥다.
강원도 심심 산골 손 시린 겨울 찬바람 불어
잔설 가지 쌓인 눈발 분분히 눈앞에 날려
순백의 백두 능선이 서서히 몸을 풀어낸다.
겨울 바람의 길 언덕에 서서 나는
봄 바람을 기다린다.
2015년 2월중순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