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15. 21:28ㆍ백두대간
일시-2015년10월27일 화요일 비오다 그침
장소-백두대간 마구령구간 북진
코스-좌석마을-고치령-마구령(820m)-갈곶산(966m)-봉황산-부석사로 하산
백두대간길 12.8km+접속구간 8.9km중 트럭-4.7km=17km를 6시간30분 걸림
시월도 벌써 막바지 국화 향내가 풍기는 만추의 계절이다
어젯밤 부터 부실부실 오던비는 새벽을 지나 아침나절이 되어도 그칠줄을 모른다
차라리 지독한 가뭄이라도 해갈 되도록 주룩주룩 한바탕 쏟아지면 좋으련만
말라버린 잎사귀만 적시며 힘없이 내리고 있다
백두대간 시작한지 일년이 되면서부터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한 산우들로
36인승 버스에서 28인승 버스로 교체된지 두번째 산행이다
버스는 빨강색에서 까만색으로 좌석은 푹신푹신 의자 사이즈도 크게 변했지만
베낭놓고 발 올려놓던 간이의자가 없으니 불편했다
습관이 무섭지만 그것도 곧 익숙해질 것이다
비오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바뀐 차량의 운전 기사가 금호고속에서 고속버스를 운행했던 경력이 있다더니
과연 세시간 삼십여분을 가는 빗줄기를 뚫고 미끌어지듯 달려
경상북도 영주시 영춘면 좌석리까지 데려다 준다.
좌석리에서 4.7km 아스팔트 거리인 고치령까지는 일인당 삼천원의 요금을 내고
1톤 트럭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매번 선두로 시작하지만 하산길은 후미로 내려오는 발걸음이 느린 나는 먼저
트럭위에 올라탔다
우의로 몸을 가리고 짐칸에 쪼그려 앉은 웃긴 폼새로 바람과 함께 뒤따라오는 가을 풍경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오금이 저려오고 다리가 아파온다
과속으로 달려도 십오분여를 올라야하는 오르막은 상당히 가파랐다
다음구간에도 고치령에서 시작하는 남진이라 한번 더 트럭신세를 져야 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가파른 오르막 도로를 걸어 올라와서도 날머리에서 선두로 내려온
산우도 있었다
고치령(760m)은 현지 주민들은 고치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대동여지도에는 곶적령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고치령을 소리에 따라 옮겨 표기한 것이라 한다
고치령은 태백산이 끝나고 소백산이 시작되는 주능선 고개이다
옛날부터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는 양백지간이라 하여 특별히 여겼다
양백지간은 큰 난리를 피할수 있는 십승지의 대명사로 여겨져 왔으며 또한 인재를 많이
배출하는 곳이다
영남지방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역활을 했던 죽령과 달리 고치령은 장돌뱅이나 인근 주민들이
넘나들던 소박한 고개로 영월과 순흥을 잇는 길이다
고치령은 순흥에서 영월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에 수양대군에 저항하여
순흥에 유배된 금성대군이 영월 청령포에 갇힌 단종과 소식을 주고 받을때
밀사가 이 고개를 넘나들어 연락을 주고 받으며 복위운동을 준비하던 중에
금성의 몸종과 순흥부사의 부하가 밀고함으로 거사가 박각되어
금성대군은 안동 순흥부사 이보흠은 함경도 박천과 단종은 영월에서
모두 죽임을 당했다
그것을 아파하던 백성들은 고치령에 산령각을 세우고 단종을 태백산 산신으로
금성대군을 소백산 산신으로 모시고 있다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소백산 편에는 단산 대장군과 포도 대장군이 소백지장을 호위하고
건너편 태백산 줄기가 시작되는 곳에는 태백천장이 양백대장과 함께
산령각을 지키고 있다
소백산과 태백산을 가르는 기준인 고치령에서 소백은 땅이 되고 태백은 하늘이 된다
한칸짜리 산령각은 마을 주민들사이에서 영험하기로 이름난곳으로
오랜 세월동안 몸과 마음을 병을 치유하기 위한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곳이란다
산령각안에는 호랑이를 탄 산신과 말을 탄 단종 그리고 말 고피를 쥔 금성대군이
나란히 제상을 받는 그림이 있다
태백산과 소백산이 몸을 섞는 고치령 고갯길에도 안개비는 내리고 있었다
고치령 너머 북쪽 마락리 마을은 순흥과 영월을 지나다니던 보부상들의 말들이
자주 떨어져 죽었다 해서 불리는 지명이다.
고치령에서 가파르게 이백여미터를 올라 950m봉을 지나면 미내치까지는 부드럽다
고치령에서 미내치 거리는 3.2km이다
연막을 친듯 뿌연 산길에는 비에 젖은 낙엽들이 산길을 덮고 있었다
낙엽밑에 나무뿌리가 있는지 돌멩이가 있는지 분간하기 쉽지 않아
걷는게 조심스러웠다
미내치(820m)는 단산면 마락리 새목마을에서 부석면을 오고가는 고개로
경북 영주의 삼대 장터의 하나인 부석 장날이나 부석사의 무량수전 아미타불을
만나러 가는 백성들이 넘나들던 고개이다
미내치에서 고도를 높여 한시간여를 올라서면 오늘의 최고봉인 1096봉 헬기장이 나오고
다시 마구령고개까지는 점심때가 지난 오후 1시가 넘어 도착했다
미내치부터 4.7km 고치령부터는 7.8km 지나왔다
마구령(820m)는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임곡리를 남북으로 이어주는 고개로
장사꾼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길이라고 하여 마구령이라 불렀다 한다
마구령 북쪽 남대리는 조선 예언서인 '정감록'에서 이르는 십승지 가운데 한곳이자
격암 남사고가 양백지간에 있다던 숨겨진 명당에 자리한 마을이다
첩첩산줄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펑퍼짐한 너른 터가 있어 순흥으로 유배왔던 금성대군이
이곳에서 단종 복위를 위하여 병사를 양성했다고 한다.
대간도중 부슬거리는 비를 맞으며 점심먹기는 또 처음이다
행여 쉴까봐 어름물과 같이 가지고 다니던 주먹밥은 이제는 보온통에 넣어 가지고 다녀야
할 판이다
대간길에서 한달만에 여름과 가을 겨울 맛보고 계절은 속절없이 빠르게도 지나간다
주먹밥을 급하게 먹은탓에 연신 딸꾹질을 하면서 벌써 뜨거운 라면 국물이 그리워지는
차디찬 비바람의 점심을 끝내고 뜨거운 물로 입가심하고 곧 바로 마구령을 떠났다
오후에 들어서자 비는 그치고 멀리 산마루에서부터 밝은 기운이 들어섰다가
다시 구름에 가려진 산마루를 회색빛으로 물들여 구름속을 걸었다
이랬다 저랬다 날씨는 비오다 말다 미친년 널뛰듯 나도 춥다 더웠다 한다
가을 넘어 겨울을 알리는 비 구름은 남아있던 이파리 하나 둘 마저 떨어지게하여
바닥은 온통 낙엽 융단을 깔아놓은듯 푹신푹신하다
호된 겨울을 견디기 위해 몸안의 물기를 스스로 빼어내 단풍을 들이고 떨어지는
그들의 노고가 생존을 위한거라니 가을 숲속에서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의 경이가
참으로 위대하다
마구령 분수령에서 5.0km인 갈곶산까지는 1057봉을 오른다음 부터는
천미터 고지 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높지도 낮지도 않아 부드러운데
다만젖은 낙엽위를 걷는게 미끌어지지 않으려고 발가락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지난번 백두대간과 이어지는 봉화와 영주의 경계인 갈곶산(966m)에 도착했다
미수가루물과 먹기 좋게 깍아온 배를 몇조각 먹고 다시 일어났다
갈곶산에서 북으로 몸을 돌리면 지난구간에 걸어온 선달산 방향이고
우리는 하산길을 부석사를 품고있는 봉황산(818.9m)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왔다
4.2km의 가파른 내리막의 연속이라 행여 발목이라도 삐끗하면 큰일이다.
드디어 오솔길로 접어들어 돌계단을 내려와 도착한 부석사 경내에는
서산 넘어 희미한 석양과 구름낀 하늘이 번가라 반긴다
'논제명찰'에는 "몇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리는 지루한 장마끝에 홀연히
먹구름이 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듯한 절이 부석사이다"라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쓰여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절집답게 멀어져가는 태백산과
다가오는 소백산 자락에 위치하여 자연의 경관과 어우러져
갈라진 나무결이 그대로인 배흘림 기둥과 단아한 무량수전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었다
지난번 시간에 쫓겨 지나쳤던 흙으로 빚은 소조불에 도금을 한 아미타여래불을
구경하였다
무량수전 아미타여래 아래에는 용의 머리부터 구불구불 법당앞 석등까지 뻗친
석룡이 묻혀있다는 선묘화룡의 전설이 맞을거 같다는 느낌이 들어
용의 가슴께를 딛고 서서 다음 구간에 걸을 넘실거리는 소백산 능선을
바라 보았다
의상과 원효가 유학길을 가던중 원효는 깨달음을 얻어 뒤돌아오고
의상은 중국 당주의 종남산에서 화엄공부를 한것으로 보아
나이와 국경 그리고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사랑을 한 선묘는 중국여인으로
여겨진다
북한산에도 의상과 원효가 머물며 도를 닦았다는 의상봉과 원효봉이 있다
마구령 너머의 와석골의 감삿갓이 하늘아래 온 세상을 떠돌다 부석사 안양루에 서서
"평생에 여가없어 이름난곳 못 왔더니
백발이 다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어 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오듯
우주간에 내 한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인간 백세 몇번이나 이런 경관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라고 읖었다 한다
방랑시인 김삿갓인 난고 김병연(1807~1863)은
조부 익선이 1811년 홍경래난때 홍경래에게 황복한 죄로 폐족이 되었다가
겨우 사면받고 영월골에 숨어 살았다
스무살이 되어 과거 시험에서 익선의 불충을 비난하는 글을 썼다가
조부임을 알고 깊은 상처를 받아 삼천리 방방곡곡을 떠돌다 전라도 화순에서 숨을 거두었다
소문을 들은 아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영월 마대산 산기슭에 안장하였다
무량수전 현판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 침입때 안동으로 피난온적이 있는데
몇달뒤 귀경길에 들러 무량수전이라 휘호한것을 현판으로 새긴것이다
안양루앞의 부석사라는 현판은 1956년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할때
쓴것이다.
부석사 매표소에서 천왕문까지 일킬로가 넘는 거리에는 은행나무 가로수와
길 건너편에는 사과나무 밭이 있다
작은키에 빨강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걸 보니 신기하기 짝이 없다
사과 나무는 뿌리가 깊고 가지가 모두 위로 솟구쳐 있어 많은 열매의 하중을
견딘다 한다
절 뒤쪽으로 들어오는통에 일반요금 천이백인 입장료없이 부석사를 두번이나
탐방하고 말았다.
가을 꽃이라고는 봉황산에 핀 구절초 한송이만 구경 했을뿐
가을이 남긴 낙엽만 하루종일 밟다 내려온 오늘의 대간길에 만난
비 바람과 안개와 밝은 햇살 한조각은 사는동안 늘 곁에있어
때론 고통과 슬픔을 주다가도 깜짝 기쁨도 선사하는게 사람살이 같다
시월이 가기전에 부석사의 만추까지 구경하는 호사를 누린
즐거운 하루였다
부석사의 가을
안개비에 젖은 낙엽들이 우수수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걸어 가면
일주문을 넘어 당간지주 버팀돌과 마주치고
천왕문을 통과한다
사천왕과 대면하고 미륵정토 도솔천을 향해간다
아홉단의 석축 돌계단을 밟고 요사체와 범종루 안양루
무량수전 위에 올라 극락세계에 도달해보니
남쪽으로 흘러가는 소백의 연봉들은
짧은 햇살사이로 황홀한 물감 풀어 헤치고
양백지간 화엄의 고요 아래
사바의 백팔번뇌 구름 되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네가 너를 바라보는 그 시각
서산으로 해는 기울고 배흘림 기둥은 부풀어 오른다.
노랗고 붉은 가을이 부석사에 쏟아진다.
참고-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