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1. 16:40ㆍ백두대간
도시에서 상상도 못할 시각에 산중에서는 한밤중이다
여자들 숙소은 이층으로 작년과는 대조적으로 바뀌어서 조금이라도 아껴야할 무릎을
더 쓰게 만들었다
새신을 신고 지리산 올라왔다 헌신을 신고 내려갔다는 소문이 거짓은 아니었나 보다
신발장은 열쇠로 잠금장치가 있고 탈의실도 갖추어져 목욕탕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돼지 생목살을 얼음물에 함께 넣었다 내놓으니 목살은 스테이크 보다 맛있었다
저녁밥을 먹고 일찍감치 잠자리에 들어야지 밤 아홉시만 되면 대피소는 소등을 하여
칠흙같은 밤이 된다
재래식 화장실 냄새와 땀냄새가 온 대피소에 배여 내몸에서도 자연스런 그 냄새가 배인거 같다
대피소 여자숙소에도 코고는 합창이 들려
코골이 소리는 남자들만의 소리가 아니였다
아쉬운데로 물수건을 만들어 대충 닦고 마른옷으로 갈아입고 누워도
쉽사리 잠은 오지 않는다
내일 천왕봉에 오르려면 잠을 자야 그나마 저질체력이 무리가 없으텐데 자꾸 머리속은
지나온 지리능선이 아른거리고 다리는 욱씬거린다
서울 대전 의정부 부다페스트 떨어져 지내다보니 늘상 머리속을 떠나지 않던 가족들과
세상일들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하루종일 살기위해 아니 죽기 위해 걸어서 그런지
나의 고통과 나의 숨소리만 들릴뿐 가끔씩 앞과 뒤를 번가라 걸었던
남편은 보았다
잠을 청하려다 머리가 지끈거려 할수없이 진통제 한알을 삼키고
얼마후 곤하게 잠들었었나보다
눈을 뜨니 세시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진동소리에 다시 눈을 뜨니 네시다
빨리 아침먹고 출발하자는 남편의 전화다
담요를 밀쳐내고 살짝 빠져나와 식당으로 내려가니 빨리 나오라는 남편은 없고
어젯밤 저녁먹고 몰아 놓은 짐과 배낭만 있고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전화기도 놓고 나오는 바람에 다시 이층 숙소로 들어가 담요를 반납하고
짐을 몽땅 들고 하룻밤 신세를 진 숙소를 빠져 나왔다
아직 딱딱한 마루바닥 침대에서 산우들은 꿀잠중이다
햇반을 물에 말아 끓여서 어제 남은 김치하고 아침을 먹으니
개운했다
새벽 네시반 아침은 입맛으로 먹는게 아니라 먹은만큼 걸어가니
억지로 먹어야 한다
아니 먹어야 산다가 맞다
먹지 않고 탈진과 탈수되어 정신 잃으면 목숨을 잃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석 대피소를 떠나려니 푸르스름한 여명이 벌써 꿈틀거려 해드렌턴이 필요없다
지리산의 모든 생물이 부지런하게도 움직인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풀잎들이 바르르 떨며 한뼘 키가 자라는지 흔들거린다
적막한 산장을 에워싼 새소리는 아침을 깨우고 있고 세석 평전의 철쭉이
온 사면에서 뭉게뭉게 꽃을 피워 냈다
멀리 보면 꽃 무덤 같기도 꽃 구름 같기도 하여
구름 타고 천당과 극락세계로 여행하는 기분이다
완만한 세석 평전으로 올라서 촛대봉 봉우리에 올랐다
벌써 일출을 기다리는 몇몇이 높은 봉우리를 점령했다
아무래도 희끔무레한 하늘에서 뜨거운 일출장관은 없을거 같았다
장터목 대피소 까지는 큰바위와 작은 바위를 지나고
대간주 능선길에 그정도는 감지덕지 쉬운 편이다
시원한 아침 시각이라 발걸음도 가벼웠다
드디어 장터목 대피소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이 서로 만나 물물교환을 했다던 대피소 자리는
넓고 높은 공터로 장터 자리로는 최고 인거 같다
그나저나 시장 한번 다녀 나오기가 높은 산을 넘고 넘어야 하니
그 옛날 장사꾼들은 산꾼들이나 가능했고 아니면 장에 오고가다 죽어 산이 되었겠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는 1.7km 고지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죽어서도 아름다운 고사목이 유명한 제석봉 봉우리를 지나고
통천문을 향해 올라가는 도중 남편의 고등 동창 두명과 재회했다
그 많은 산꾼들이 지나 다녀도 아는 사람 없는것도 신기하지만
산속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것도 신기하다
우리는 오르막을 오르는중이고 친구들은 내리막을 내려가느중이라
짧은 만남으로 아쉽게 헤어졌다
통천문 철계단을 올라서 드디어 커다란 너럭바위를 올라서 천왕봉 정상석을
다시 만났다
세번째 만남이다
평일날 오전이라 정상석 주변은 한가했다
정상석 인증샷을 했다
천왕봉 글자 나오는 정면으로 사진 찍기가 어려운 곳에 정상석은 서 있다
찍사가 발 한번 잘 못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생긴 곳이라
정상석이 너른 화강암 덩어리 중간쯤으로 이동시켜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올때마다 드는 순간이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에서 발원되다" 뒷면이 오히려 사진은 멋있다
감개무량한 순간을 보내고 돌아서려는데 녹음으로 짙어지는 산능선이
몸으로 휘감는거 같고 발은 붕 떠서 오르는 기분이 들어 자꾸 발목을 잡는다
발 아래 구름과 산 너울의 바다속을 허우적거리는 꿈을 깨고
정상을 벗어나 산 아래로 내려섰다
가파른 철계단이 이어진다
바위틈새에서 흐르는 석간수는 고여 있다
높고 깊은 지리산 석간수에 수건을 적셔 머리에 두르고 내려왔다
뒤덜미를 잡아끄는 파랗고 푸른 마법에서 한참을 벗어나니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높은곳에 위치한다는 법계사 절이다
절앞에는 약수물이 철철 흘러 넘쳤다
요즘 온 세상 생물들이 목 말라 죽겠다고 아우성 거리고
여기저기 불이 나는 가뭄이건만 지리산 곳곳에는 물이 쎄고쎄서
지리산에서는 빈통만 들고 다니면 목말라 죽을리는 없다
배고프면 산딸기와 오디 따먹으면 되고 배골고 피로한 자를 품어주는
산이 지리산이다
로타리 대피소에서 순두류 계곡으로 걸었다
계곡길이 칼바위 나오는길보다는 순하고 한가했다
자연학습장을 지나면 시멘트 도로길로 연결된다
어제 오늘 너무 걸어 발바닥의 앞부분이 디딜때마다 통증이 몰려온다
올라가라면 아니 가고픈 길인 시멘트 도로를 한시간 이상 걸어 내려왔더니
해는 머리 꼭지위로 앉아 뜨겁고 어질어질 눈도 침침하고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드디어 이틀간 길고긴 지리산 종주를 끝내고 중산리 버스주차장까지 내려왔다
선두 몇명만이 내려와 식당에서 약주를 마시고 있고 버스는 아직 도착도 않했다
화장실에서 씻고 옷 갈아입고 식당에 들어가 앉아 졸아도 버스도 산우들도
안 보인다
너무 서둘러 이른 시각에 도착했나 무려 세시간이나 기다리다 놀다 지칠때즈음
버스를 타고 긴장이 풀려 한참동안 깊게 자면서 귀경했다
지리산 주능선 구경은 실컨하고 천왕봉 정상에서 세번의 감동과 환희를
맛본 지리산이 오래 기억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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