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18. 07:30ㆍ친구
일시-2018년 1월17일 수요일 낮
장소- 수 담
벌써 새해들어 첫 달도 보름이 넘어갔다
연말과 새해를 미친년 널뛰듯이 보내고 났더니
첩첩이 눈 쌓인 산줄기를 넘나들기는 두번뿐이었고
떼어 버릴수 없는 이런저런 일들로 오롯이 내가 되는 사색의 시간이
부족했다
미세먼지 자욱한 채로 새날이 밝았다
남편은 커피콩을 들들 갈고 나는 빵을 잘라 토스트기에 넣었다
빵 하나는 치즈를 또 하나는 딸기잼을 발라 빵 두쪽과 사과 두쪽씩 사이좋게 나누어
남편은 커피 나는 우유로 아침을 먹는다
날마다 모양새가 다른 빵은 내가 만든빵이다
먼저 강력분과 미수가루를 섞은 일킬로의 분말을 채에 걸러서
우유나 물 700씨시에 버터 45그램과 약간의 설탕 그리고 생이스트 30그램을 넣어
반죽기로 믹싱한다
반죽이 애기살처럼 보들거리면 40도 오븐에서 50분 동안 일차발효를 시킨다
오븐에서 꺼낸 반죽을 동글려 실온에서 10분간 중간발효를 거치면
밀대로 밀고 돌돌 말아서 성형하여 틀에 넣는다
다시 오븐에서 40분 이차발효를 마친다
틀속에서 이쁘게 부풀어 오른 빵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인것을
180도에서 40분만 구워내면 일주일치 식빵 세개가 나온다
각종 견과류를 첨가해도 좋지만 이것저것 몸에 좋다고 넣으면 발효는 조금 부족하다
어찌 되었든간에 시중에서 판매하는 빵에 들어가는 마가린이나 쇼트닝과 소금은 생략하는
나만의 건강빵을 고집한다
정성과 세시간이나 드는 시간을 돈으로 따질수는 없지만 재료비에 수고를 더하면
빵가게에서 파는 빵이 싼 셈이다
밥 때는 왜 자꾸 돌아오는지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이고 점심먹고 볼일 보고 나면
또 저녁밥때다
나갈일 없이 집에 있을때는 백수 둘이 앉아서 세끼 밥만 먹다 하루를 보내는거 같아
한끼는 식탁에서 마주 앉아 밥먹는 대신 빵 들고 테레비젼 앞에서 나란히 앉아
먹은지도 오래 되었다
어제부터 컴퓨터가 말썽이다
내 노트북마저 연결 되었다가 끊어졌다 하는통에 사진 작업이며 글 작성을
할수 없다
임원회의에서 서기 역활이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한 보도일텐데
늦어지게 생겼다
많은 동료와 선배 후배님들이 있건만 서기랍시고 나섰으니
참 어이 없는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확한 기록 정리를 어떻게 하는줄로 모르는 내가 쓰는 글은 순전히 느낌뿐이고
또 미사여구 많은 좋은 글은 쓸줄도 모른다
정확하고 똑부러지는 다른 임원들의 글을 읽어보고 싶다
자식들이 같이 살면 컴퓨터 같은것은 대충 고치면서 살텐데 둘만 살다보니
안돌아가는 전자 기계나 전기제품만 생겨도 더럭 겁이 난다
웬만한 전기제품이나 하다못해 양변기가 고장나고 수도관의 배수구가 막혀도
척척 갈아끼고 고치던 남편도 이제는 복잡한 선들을 만지며 눈이 침침하고
머리가 아프단다
그래도 벽에 굵은 못을 박을줄 알고 형광등을 갈아 끼울수 있는 남자가 좋은데
늙어서 그마저 못하면 많이 슬퍼질거 같다
허기사 자고나면 최첨단 기기들이 튀어나와 우리들은 점점 골 아픈 세상이 되고 있다
연회비도 안냈는데 재경 동창회보 책자를 배달 받았다
예전에는 사실 연회비가 얼마인지 동창회보가 있는줄도 모르고 살았으니
당연히 회비 내는 방법도 모르고 이름 써서 돈 보내는 방법은 더더욱 몰라
숫자에 훤히 밝고 계산 빠른 남편이 그럴때는 알아서 챙겨주니 한시름 놓는다
전화로 돈이 왔다갔다 하는 폰뱅킹을 처음 배울때도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만원 입금하고 통장에 돈 찍였나 확인하고 다시 만원 출금해보며 공부했었다
이제는 인터넷 뱅킹이 대세라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돈이 이리 저리로 옮겨
다닐수 있다니 인터넷으로 도둑놈은 안들어오나 걱정이 앞선다
지폐나 동전같은 실물 없이 가상 공간에서만 사용하는 가상화폐라는것도 있다는데
아무리 뉴 밀레니엄 키워드가 풍요와 혼돈이라지만 영화같은 세상이다
그나저나 강철비와 1987을 볼 여유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은 돈은 숫자에 불과하다
작든 크든 모임에는 바로 그 숫자가 필요하니 그 힘의 위력 또한 대단하다
몸뚱이만 어덜트지 하는짓은 베이비니 왜케 배울것이 많은지
나돌아 다닐수록 힘이 부쳐 가지랑이 찢어지게 생겼다
컴퓨터의 대부분은 몰라서 못 써먹는것이 태반이지만
글과 사진 올리는 그것도 안되어 전문가를 콜하고
등짝과 허리를 뜨거운 팩으로 지지며 아침나절를 푹 쉬었다
역시 전문가는 한방에 고친다
임원모임 하기전에 쓰잘데기 없는 사설이 길었다
재경 12대 동창회가 결성되고 2018년 1월17일 제1차 임원회의를 열었다
안그래도 전날 겨울 대간길로 하늘재에서 포함산을 거쳐 부리기재까지 십오킬로를
여섯시간 넘게 걸었다
겨울 산행은 발에 아이젠이라는 쇠붙이를 차고 걸어야 하는지라
평소보다 두배의 체력이 요구된다
온 몸에 성질난 근육들이 아프다고 난리를 쳐대 안 아픈곳을 찾는것이
쉬울정도다
극심한 피로감에 쌓인 채로 임원회의에 참석하고자 집을 나섰다
아차, 이놈의 미세먼지
마스크 대신 모자로 귀를 가리고 눈은 안경으로 입은 목도리로 가린채
콧구멍만 열고 버스에 올랐다
넓은 도로에 차가 많이 다녀도 어두침침하다
파란색과 초록색 버스,주황색 택시마저 없다면 아마도 우울한 도로가 될것이다
지하철로 환승하여 선정릉에 내렸다
얼마나 깊게 땅을 파고 내려가서 철로를 만들었는지 무려 다섯번인가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서야 비로소 지하를 벗어났다
지하철은 분명 깊은 지하철이다
안그래도 밤이 더 화려한 도심은 미세먼지로 가득차 빌딩들이 구름을 덮어쓴거 같다
선정릉은 조선의 9대 임금인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무덤인 선릉과
조선 11대 임금인 중종 무덤인 정릉 세개의 능이 있어 삼정릉이라고도 불린다
강남 한복판에 있어도 아직 탐방을 하지 못했으니 서울살이 사십년에도
안가본곳이 태반이다
선정릉 가까이 라마다 호텔이 있고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약속장소는 있었다
수담 음식점에 들어서니 여고생처럼 약속시간도 딱딱 맞춘 임원들이 모여 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함께 임원들은 무슨 시험공부라도 하는양
모두 열심히 자료검색중이다
앉은 자리 탁자위에 놓인 자료를 들쳐보니 임원회의 순서와 연락 담당원 주소
분과위원 전화번호 그리고 결산보고와 예산안 보고들이 적힌 유인물이다
내 눈에 들어오는건 아는 이름만 보일뿐 빼곡한 숫자가 한가득이다
뒤에서 부터 일십백천만십만백만만만 세어도 이상하게 읽어지는 숫자는
그냥 일이삼사로만 보였다
몇분이 지나고 정확한 단어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수석 부회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회의는 진행 되었다
매끄러운 말솜씨로 진행은 순조로웠고 이어 회장 인사말과 임원소개가 있었다
요즘은 부모 잘 만나서 어릴때부터 갈고 닦고 찢고 까불고 지랄방정을 떨은 덕에
이쁘고 공부도 잘해 출세길이 뻥 뚫렸다는 애들을 두고 하는 말이 소위 금수저라고들 하지만
예전엔 태생부터 이쁘고 온순한것 같으면서 카리스마가 넘쳐 매력적인 사람이 있었다
가까이에서 많은 대화를 하지는 않했지만 회장은 지성과 감성을 지닌 매력의 소유자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또 차례차례 임원들 소개다
수건 돌리기도 아니고 만날때마다 마이크 돌리는 일은 괴로운 순간이다
이어 수석재무의 지난11대 결산보고가 있었다
늦은 밤까지 보고서를 작성했단다
치밀한 그녀의 성격대로 뒤로 넘어갈수록 숫자는 작아진다
눈도 밝다
숫자를 읽어 주는대로 눈도 따라가지 못한채 이리저리 눈만 굴리다가 시간만 지나고
빨강 글씨가 필요한 후원금이란걸 알았다
다음에 2018년 활동 계획안 발표를 각팀별로 하였다
먼저 총무님의 올 한해 계획과 날짜가 공개되었다
신구 임원교례회를 비롯하여 이사회 세번에다 임원회 여섯번과
모교방문 가을 여행 정기총회와 송년모임까지 거의 한달에 한번꼴로 만남이 이어진다
여고동창회가 끈끈하게 이어지는 이유는 끊임없이 만나기 때문인가보다
수석재무는 수입 지출 예산 계획안
수석 서기는 기록 협조 요청
운영 위원장은 총무팀과 협력계획
재정 위원장은 회비와 후원금 조달
봉사 위원장은 선배 챙기기와 풍남학사와 우먼스콰이어 후원
홍보 위원장은 회보발간 협력과 광고유치와 밴드관리
문화 위원장은 숲길체험과 작품 전시계획
주니어 위원장은 신입동문 환영과 선후배 만남을 강조했다
하나같이 포부가 대단하다
위원장이란 직책은 노동당 위원장이 어울릴거 같은 강한 느낌이지만
앞에 선 위원장들은 하나같이 부드럽고 고운 여성들이다
집안의 우환에도 불구하고 홍보 위원장으로 나선 착하기 짝이없는 그녀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하란다고 덜컥 위원장 되었으면 큰일날뻔했다
회의 할때마다 마이크 잡아야 하는 위원장은 안 맞길 천만다행이다
매주 화요일이면 백두대간과 백대명산 한다는 핑계로 산으로 올라 가느라
회의때마다 참석도 불가능하여 아무래도 엉뚱한 줄에서 헤매고 있는거 같다
재경과 재전 친구 둘이서 우리동기끼리 잘해보자는 간곡한 희망을 받아 들인것이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해 친구들과 어울려야만 살아남게 생겼다
까탈스런 성질머리도 바뀔수 있을까 두렵지만 그냥 견뎌볼 참이다
흉금을 털어놓고 얘기 하는 자리도 아니고 가만히 앉아서 조용히 밥먹으며
회의하는 점잖은 자리가 왠지 좌불안석이라 차라리 갇힌 공간이 아닌
숲으로 떠난다는 문화위원에 줄을 설걸 그랬나
이것도 찔끔 저것도 찔끔,옛날부터 팔방미인이 밥 굶기 딱 제격이라 하지 않던가
내가 딱,그꼴이다
점심때가 넘어 배가 출출하던차에 코스로 한식요리가 나온다
진한 초록색 죽과 물김치로 시작한 코스는 퓨전 한정식이다
다음 메뉴는 석류가 들어간 샐러드였는데 블루베리로 감청색 색깔을 낸 드레싱이 인상깊었다
탕평채와 해파리 냉채 가제미회무침 이어 삼색전과 명이나물을 곁들인 돼지 수육보쌈과
궁중 잡채와 대구살 탕수육이 순서대로 나왔다
그리고 한참만에 밑반찬과 된장찌게 누룽지가 나오고 메실차로 식사는 마무리 되었다
오랜만에 엄마가 전에 자주 해주시던 들깨가루로 묻힌 토란대를 먹었다
양도 적당하고 깔끔한 점심이었다
저녁 식사비는 많이 비싼편이지만 우리가 먹은 평일 점심 특선은 이만삼천원의 가격으로
품위있게 퓨전 한정식을 맛 볼수 있고 조용한 단독룸이 많아 주로 모임이 많은 곳이란다
남자들은 설렁탕집으로 갔나 여자들만 득실댔다
그러게 낮 모임은 여자들이 많고 밤 모임은 남자들이 많겠지
기타 안건과 공지사항을 끝으로 임원회의를 마쳤다
애교쟁이 후배는 풍년제과 센베과자를 내놓는다
이차로 자리를 옮겨 수담 로비의 찻집에서 먹는다고 내가 센베과자를 챙겼는데
찻집에 엉덩이를 붙인지 몇분도 안되어 바쁘다고 모두 서둘러 가는통에
집으로 센베과자를 들고 왔다
풍년제과와 같은 동네에서 살았다는 남편은 어릴때 풍년제과에서 마셨던
사이다와 단팥빵을 잊지 못한다
주말이면 억지로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가서 아프도록 때를 밀어도 목욕 마치고
풍년제과에 들러 목구멍으로 쏴 넘어가는 사이다 마시고 싶은 생각에 꾹 참았다며
반이나 남은 센베과자를 금세 먹어치워 봉지가 텅 비었다
하루종일 뿌연 먼지속에 1636년 그해 겨울 치욕 아픔 갈등을 견디고도 건재한
남한산성 실루엣이 가려진채 어둠이 내려앉고 아파트는 정적이 감돈다
나만 홀로 우울하지 않도록 밝은 음악이라도 틀어야 겠다
따라 부르기에는 박자를 놓치지만 듣기만 해도 묘하게 즐거운
요즘 김연자가 부르는 '아모르 파티'에 꽂혔다
Amor fati 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의 주장이다
이진우의'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라는 책이 있다
니체의 사랑을 여행한 작가는 니체의 화두를 붙잡기 위해
니체가 머물렀던 유럽의 도시들을 눈으로 보고 발로 거닐며
차라투스트라를 찾아가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형식의 기행문이다
한 철학자가 또 다른 철학자를 많이 사랑하고 있음이 보여지는 작품이다
인간의 허무를 극복하고 삶을 구원하려면 고통을 긍정하고 현실의 의미를
사랑해야 한다는 아모르 파티~아모르 파티~
아,운명을 사랑하라
한반도가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평화무드가 되길 희망하며
언제쯤 미세먼지가 날라 가려나
먼지를 확 쓸어버리는 비라도 한바탕 쏟아져서
깊은숲에 새들이 깃들고 맑은 물에 물고기가 놀수 있는 나라가 되었음
좋겠다
매일 나의 시를 지으며 살다 보면 어느날 문득
제1차 임원회의 했던 날이 아름다운날로 기억될것이다
끝으로
재경 임원들과 선후배 동료들 모두 올 한해 건승하시고
사랑하고 사랑 받는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2018년 1월 18일 씀
글,사진 -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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