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31차 희양산 구간

2018. 2. 14. 13:53백두대간

 


 

일시-2018년 2월13일 화요일 맑음

장소-백두대간 희양산 구간 남진

코스-분지리 암말(343m)-사다리재(830m)-곰틀봉-이만봉(990m)-배너미평전-888봉-907봉

      -희양산(999m)-급경사 암릉길-지름티재-구왕봉(879m)-호리골재-은티마을 주차장

     백두대간 9.18km+접속구간 5.8km=14.98km를 7시간30분걸림

 

긴 시간을 잔거 같은데 무의식중에도 오늘 대간을 걱정했나

눈이 떠진 시각은 깜깜한 새벽 세시다

알람은 다섯시 아직 두시간이나 여유가 있다

오렌지 주스와 박카스 한병을 챙기고 비상시에 먹을 초코릿과 사탕도 챙겼다

배낭과 입고갈 옷을 옆에 끼고 침대에 다시 누워봐도 말똥말똥 이미 뇌는 불 밝히고

작동중이다

전날 먹었던 무우 소고기국에 밥을 말아 억지로 먹고 우유도 한컵 마셨다

너무 이른 시각에 일어 났다고 했더니 꾸물 거리다가 오히려

버스가 기다리는 양재역에는 다른날보다 십분 늦게 도착했다

오전 일곱시 어둠이 점점 사라지고 푸르스름한 빛이 돈다

찬겨울이 가고 기온이 오를수록 이른 아침도 점점 밝아질것이다

 

버스는 서울을 빠져 나갔다

경기도를 지나 충청도에 이르자 눈발이 날린다

바람에 보슬거리는 눈발은 차창가에서 부서지고 허공에서 돌다

이내 나무에 내려앉고 눈꽃을 피운다

지난 연말에 이어 새해 들어와 산에만 오면 눈 구경은 원없이 했다

내 눈에서 눈녹는 물이 흘러 나올것만같다

눈발은 그쳤다

눈으로 뒤덮힌 앞산과 뒷산을 사이에 두고 버스는 분지리 마을 깊숙히 들어와

산행 들머리인 암말에 닿았다

암말에서 사다리재까지는 1.9km 접속거리다

등산차비를 마치고 마을 골짜기로 오르는데 아무도 밟지 않는 깨끗한 눈이다

선두로 나섰다가 러셀을 다 해보고 금세 산행선수들에게 길을 양보했다

러셀은 체력이 강하고 길 눈이 밝은 선두 대장이 앞장 서는것이 맞다

러셀이란 눈 쌓인길을 처음 걸으며 발자국을 남겨 뒤따르는 일행들이 

걷기 편하게 만드는것을 일컫는다

대간길 연결점까지 버스가 올라올수가 있다면 좋으련만

접속길 오르는길이 나오면 초반부터 힘이 딸린다

들머리에서 2.6km 떨어진 이만봉까지는 600여미터의 고도를 올려야 하므로

계속 오르막이다

오늘도 산사면의 급한 경사가 숨을 턱까지 몰아쉬게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대간길 연결점인 해발고도 830m의 사다리재에 다달았다

문경시 원북리 사람들과 충북 괴산군 분지리 사람들이 오가던 곳이라는데

옛사람들은 이 높은 재를 넘어 다녔단다

 

겨울 차비가 무색하게 날씨가 온화하다

기모 내의까지 입고온 나는 등짝에 땀이 배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고도를 올릴수록 조망이 밝아오고 고사목 하나가 고스란히 쨍한 햇볕을 받고 서 있다

곰틀봉이다

곰을 잡으려고 곰틀을 놓았다는 유래가 있는 곰틀봉에는

해밀 산악회에서 만든 표지판을 고사목에 단단히 동여 매놨다

죽어서도 대간꾼들의 이정목을 하고 있는 나무가 근육질의 겨울산 앞에 멋진 모델이다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능선을 오르다 보니 가느다란 바람 한점 지나가도

어느새 머리속까지 열기가 가득차 겨울인지도 잊어 버렸다

이어 해발고도 990m의 이만봉이다

백화산과 희양산을 잇는 중간지점의 봉우리인 이만봉에는

정상석이라기보다 묘비에 가까운 까맣고 작은 대리석 정상석이 있다

이만봉을 벗어나 본격적인 눈밭 걷기 체험이다

종아리까지 덮는 눈을 헤치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몸은 무겁고 발은 미끌어진다

마당바위와 용바위를 지나고 눈속에 파묻힌 배너미 평전을 지나

시루봉 삼거리다

이곳에서 은티마을로 하산할수도 있다

괴산의 명산이며 소백산맥 능선인 시루봉은 대간길에서 비껴 있어

나는 희양산으로 진행이다

신라의 옛 산성인 희양산성터에도 눈이 쌓였다 

희양산 삼거리에 다달았다

대간길에서 남쪽으로 0.5km 비껴 있는 희양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먹밥을 먹었다한들 눈길에서는 체력이 빨리 소진된다

벌써 기진맥진이여도 큰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오늘의 풍광 하이라이트에서 다시 기운이 솟구친다

파노라마로 펼쳐진  히끗거리는 선너울에 발길이 멈추지 않는자는 차가운 피가 흐르거나

영혼이 마실 나간 사람일게다

사진 찍다가 떨어지면 위험한 상황이 올수있다

사진 욕심도 너무 크면 탈이 난다

해발 999m의 희양산 정상이다

대간 능선이 살아 뒤쫓아 오고 발 아래는 지증대사가 창건한 고찰 봉암사가 있다

동쪽과 서쪽 남쪽의 삼면이 화강암 암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암봉산인 희양산은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의 경계에 있다

희양산 정상에서 왔던길을 되돌아 내려오면 지름티재가 나온다

기름을 칠하것 처럼 미끄럽다는 고개이다

지름티재부터는 각오가 필요한 구간이다

산행시작 여섯시간이 되어 체력적인 부담과 얼어붙은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백미터의 밧줄구간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가파른 내리막에 눈 까지 있어 밧줄은 살짝 얼어있고

아이젠 찬 등산화도 미끌거렸다

두번째 밟는 경험인데도 두 팔에 주어진 힘이 너무 커서 조금 지나면 팔의 힘은 저절로 풀린다

유언장을 써놓고 오길 천만다행이다

밧줄이 없다면 낭떠러지에서 손과 팔로 버티다가 떨어져 죽는 경우가 될것이다

팔보다는 다리심을 써야 안정되게 내려온다고 아무리 옆에서 떠들어도

그건 이론이지 실천은 안되니까 내가 나도 답답하다

몇 발자국 내려올때마다 숨고르기를 한후 다시 내려와야한다

죽죽 미끌어져 한참만에 땅이다

그냥 땅이면 다행이게 눈 덮힌 길 이제는 징글맞다

희양산 자락에 앉은 봉암사에서 등산객과 관람객을 통제시키는 목책을 좌측에 두고

대간길은 이어진다

봉암사 기도터를 지나고 다시 구왕봉으로 오르막이다

봉암사터에 살던 용이 올라갔다는 구왕봉은 사람이 오르기에는 너무나 힘든 난코스였다

그러기에 산에서는 산새가 가장 부럽다

암벽 사이를 빠져 나오면 암릉 위로 걸어야 하고 내려온 만큼 오르고 다시 내리고

길지 않은 거리가 천리길 마냥 멀고 멀다

일행들은 모두 앞서가고 남자 두명과 나뿐이다

여자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오르기 힘든곳에서는 한방의 남자힘이 보약이다

한 남자가 앞에서 손으로 잡아끌고 또 한 남자는 뒤에서 엉덩이를 밀어 올리면서

두 팔과 두 다리 온 몸으로 기어 오르니

드디어 해발고도 879m의 구왕봉이 나온다

백두대간 구간중 어느 하나 쉬운구간이 없지만 희양산에서 구왕봉 가는길은

몇 손가락안에 드는 위험한 구간이다

특히 오늘처럼 눈 덮히고 얼음 언 겨울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걸어내야만

하는길이다

이미 소진된 기력을 남은 오렌지 주스로 보충하고 이제 내려갈일만 남았다

죽죽 미끌어지는 내리막길도 쉽다고 여겼다간 넘어지고 부러진다

겨울나기에는 따뜻한 집안에서 등 따습고 배 부르면 최고이거늘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돈 내가며 추운곳에 와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지

이번만 하고 끝내야 한다

산고를 잊고 둘째 셋째를 낳았으니 지금 말이 훗날에 거짓말이 될까 무섭다

다시 또 도전하면 내가 이씨 성을 갈아야지 생각하며

오늘 대간길의 끝인 호리골재로 내려오니 눈에 허연막을 친듯 침침하고 피로하다

호리골재에서 은티마을까지는 접속거리로 3.8km 남았다

일킬로도 안되는 거리에서 저승길 문턱까지 다녀왔던길에 비하면

그냥저냥 움직이면 저절로 하산하는길이다

선두로 시작했다가 꼴찌로 하산한 산행은 무려 일곱시간 삼십분이나 되어서

은티마을에서 끝이났다

음지가 강해 여자들이 득실거리고 남자들은 씨가 마른다는 마을에서

나는 비실거리는 여자되어 마을을 벗어났다

 

다음날 아고고 곡소리를 하며 일어나니

아침마당에서 가수 박재란이 "꼴찌면 어때서"라는 노래를 부른다

꼭 나를 두고 부르는 위로의 노래 같다

어제 일이 다시 생각나 쓴물이 올라온다

두 어깨죽지와 팔뚝 등짝이 쑤셔 견딜수가 없다

진통제를 아침 저녁 먹으며 뜨거운 핫팩으로 하루종일 병치레를 겪고

설 명절 가쁜하게 며느리로 변신해 녹두전을 빚었다

가지 말고 오지 말란다고 말을 듣지 않는게 시간이라

진짜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복 짓고 복 받는 한해를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

 

겨울산

 

희양산 자락에

발자국 없는 눈길

검은 죄를 덮고

흰 눈꽃 피우네

 

눈덮힌 산마루에

흰 고독 검은 고독 내려와

딱딱하게 마른 얼굴

눈물꽃 피우네

 

발자국에 눈이 녹고

어느날

삶의 그늘이 살아나고

죽음의 서곡 노래하네 

 

내가 걸은 하얀길

길위에 검은 긴 그림자

머리위에는 하얀 하늘

희고 검은 삶이여

 

2018년 2월18일 씀

글 사진- 이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