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9. 06:41ㆍ백두대간
다음날
잠에서 덜깬 산중에서 부지런을 떨며 일어나는것은 갈길이 바쁜 사람뿐이다
밤새 너무 더워 입고 있던 옷도 벗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고온건조했다
나무 침대 이층난간에 펼쳐진채 할일을 잃은 침낭을 다시 배낭에 집어 넣고
부랴부랴 배낭을 챙겨 밖으로 나오니 찬기온이 오싹 몸을 움추리게 만든다
온탕과 냉탕을 체험한듯 코에서 콧물이 주르르 머리도 어질어질
어제 일정이 무리였고 오늘 일정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일테고
또 다시 각오가 필요하다
폐부 깊숙히 찬기온을 들이마시고 까슬거리는 입안으로 억지로라도
먹는거라면 무엇이든 넣어줘야 한다
근육이 단련된 사람은 굶고라도 갈수 있다지만 나처럼 체력 근력 딸리는 사람은
먹어서 기운 보충해줘야 가기때문이다
새벽부터 식당에서 풍기는 라면 냄새로 산장 근처 동물들은 좋아할지 싫어할지
라면에 밥말아 두 공기나 먹었다
전날 술도 안마셨는데 평소에는 역겹던 라면 국물이 생각보다 칼칼하고 시원했다
산을 잘 타는 산꾼들은 대부분 술도 잘마시는 술꾼들이 많다보니
전날저녁에도 일행들은 상당한 술을 마셔댔다
요즘 국립공원은 대피소나 어디서든 술을 금지하고 있어서 술병이 발견된다든지 하면
벌금을 물어야하는 관계로 술병대신 일반 물병에 술을 채워가지고 와서
마신다고 한단다
뛰는놈위에 나는놈들이 있다고 용케도 잘도 피해간다
애써 하루종일 들고 다닌 박카스 한병을 마셔주고 차비를 마치고 대피소를 나섰다
어째 하루치 분량의 먹을 양식이 빠져나갔음에도 코펠 바너와 후라이팬 때문인가
남편배낭은 그대로이고 등짝과 어깨는 더 눌리는 기분이다
나도 열어보면 별것도 없는데 돌덩이를 맨것 같다
희부연 안개속에 산장을 벗어나니 써늘한 기온이 오히려 상쾌했다
해드랜턴이 필요치 않게 점점 날이 샜다
초반부터 가파른 돌계단이다
전번 기수에는 삿갓봉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맞이했는데
이번에는 많이 늦어 돌계단을 오르면서 맞는다
갑자기 나타난 일출로 눈이 부시다
높고 깊은 산중은 겨울이 일찍오고 겨울이 늦게 가는 바람에
천사백여미터의 고지에는 아직 겨울나무뿐이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발아래에서 깨어난 덕유능선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벌써 산새들은 째짹 바쁘다
덩달아 발길이 빨라진다
해발고도 1410m의 삿갓봉을 우회하고 더가서 전망바위로 올랐다
이어 월성재로 향했다
동쪽에서 몰아치는 거세한 바람으로 오른쪽 귀가 떨어져 나가려고 한다
바람막이를 겹쳐 입고 귀도 막았다
겨울도 아닌 날에도 얼굴 동상에 걸릴수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산죽길을 지나고 계단길도 지나 월성재다
1240m의 월성재에는 표지목만 덩그러니 있다
이곳에서 좌측은 삿갓골로 내려서 황점으로 우측은 원통골로 내려서 죽천리로 하산길이 나있어
두시간이면 마을로 진입할수가 있다
대간길은 남덕유산으로 직진이다
남덕유산까지 거리는 1.4km 삼십분이면 다달을수가 있다
발길을 재촉했다
남덕유산 바로 아래 삼거리에 도착해 배낭을 벗어놓은채 정상을 밟았다
비스듬히 올라선 해는 이미 떠서 해발고도 1507m 남덕유산 정상석이 반짝거렸다
바위덩어리의 집합체인 정상에는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겨울나무의 산너울과 푸른 산줄기를 타고 미끄러지듯
산아래 아주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겨울산과 봄산 두개의 산 풍경이 선명했다
바위자락에 매달린채 피어 있는 진달래
진달래는 꼭 그런 위태로운 바위곁에 많이 피어 있다
정상석에서 몸이 휘청 바람이 거세게 불어 오래 서있을수가 없다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버려진 배낭을 다시 들쳐매고 걷는다
서봉가는길은 만만치 않다
가파른 철계단을 몇번씩 넘고 넘어서 드디어 남덕유산의 주봉인 서봉이다
해발고도 1510m의 서봉은 남덕유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로 옛부터 봉황산이라하여
매우 신성시했다
그러길래 오르기도 죽을힘을 다해야 오를수 있다
철계단이 너무 급경사여서 뒤를 돌아볼수가 없고 딱 한계단 앞만 보고 올라가야 한다
네발로 기어올라갔다
팔 다리에 너무 힘이 들어가 정상에 올라서서는 몇분간 숨을 몰아내쉬어야 했다
할미봉도 아직 안갔는네 이러다 오늘 집에는 갈수 있을지 걱정된다
서봉의 정상석은 딱히 없고 표지석과 안내판이 대신한다
급하게 올라섰던거에 비하면 정상은 너른 광장과도 비슷하여
금세 마음이 편안하게 변한다
서봉에서 보는 풍광은 과히 할말을 잊는다
죽을힘을 들여 올라온 보람대로 사방팔방 어딜봐도 새로이 그린 풍경화가 맞다
뒤에서 쫓아오는 두고가기 아쉬운 풍광을 버리고 또 할미봉이 남았다
두번의 덕유산종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봉우리가 뭐냐고 묻는다면
정상석에 새겨진 빨간글씨의 할미봉이다
오르면서 떨고 하산할때도 무지 떨었던 기억 때문이다
역시 밧줄과 썩음썩음 금방이라도 무너질듯 묶여있는 나무사다리가 있었다
나무계단도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고 위태로운 소리도 나서
꼭 풍선돌리기 시합하듯 조만간 고치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질수도 있겠다
할미봉 정상에 올라서니 심술맞은 할미가 오래오래 살고 싶은지
빨간색 할미봉은 건재했다
할미봉은 해발고도가 1026m이다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을 뺀 덕유산 대간길은 어제에 이어 오늘
남덕유산인 무룡산 남덕유 장수 덕유 할미봉을 거쳐
이제는 날머리인 육십령까지 내려갈일만 남았다
할미봉 정상에서 육십령까지는 2.3km거리로 삼백여미터의 고도만 내리면 된다
정상에서 처음 하산길은 여러개의 밧줄을 잡고 급하게 내려선다
긴 밧줄구간을 몇번 내려서고 드디어 부드러운 흙길이 나오며
할미봉에서 내혀온지 한시간이나 지나 덕유산의 남쪽 고개인
육십령 고개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틀간에 육십개의 고개를 넘고 넘어선듯 어제 오늘이 꼭 꿈을 꾸고 난것같다
머리 꼭대기로 내리쬐는 햇볕이 눈이 부신 한낮인데
긴장이 풀어지려나 먹는것은 뒷전이고 육십령 고갯길 매점에 차려진 밥상앞에서
자꾸만 졸립다
함양과 장수를 잇는 26번 국도 위에는 동물이동통로가 보이고
이제 다시 또 육십령을 밟을지 어쩔지 몰라 백두대간 육십령 표지석이 유난히 크고
하얗게 빛이 났다
진즉에 걸었어야할 구간을 마치고 다음주부터는 속리산으로 이어나갈것이다
다음날 나의 근육세포들은 제자리를 찾은듯 건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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