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7. 19:22ㆍ백두대간
2020년 2월5일 수요일
올겨울 들어 제대로된 눈구경은 달아났다
어제 대간길인 구부시령에는 눈이 많이 쌓였다는데
구정 지나고 시름시름 앓다 병원약 신세를 지는 바람에
또 놓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제 갔더라면
이런일은 당하지 않했을텐데 한동안 나도 모르고 나를 꾸짖었다
모든게 뒤바뀌곳에 적응하기가 점점 어려워져 안방에 누워 자도 잔거 같지가 않다
약 기운이 떨어질때즈음 배가 살살 아픈거 같아 잠에서 깼다
스마트폰을 켜보니 새벽 3시가 조금 넘었다
카톡문자나 확인하려 문자를 읽다보니 대간팀 총무가 쓴 소식이다
대장님은 수원연화장으로 모시고 갑니다
평소의 행동거지를 봐도 반듯한 총무가 설마 밤중에 장난칠일은 없고
묘한 기분이다
잠은 달아난지 한참이고 잘 시간인줄 알면서도 확인전화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몇번의 통화 연결음이 들리고 뚝 떨어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비참했다
그리곤 산돌대장님이 대간길에서 쓰려져 그대로 운명하셨고
헬기로 원주기독병원에 이송했다가 수원 장례식장으로 옮겼다는 비보를 전한다
차가운 스마트폰을 거실탁자에 떨어뜨렸다
그리곤 안방의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을 뜬거 보다 선명하게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오늘의 대간길로 걸어들어가고
내 앞에는 대장과 남편이 걸어가고 나도 그들의 발자국이 들어간곳만 넣었다 뺐다
수천 수만번을 해도 그자리다
서너시간이 지났나 보다
대장님은 건의령을 지나 푯대봉을 찍고 구부시령을 앞에 두고 앞으로 콕 넘어지셨다
눈길이나 빗길은 물론 평지길에서도 서너번씩 넘어지는것이 보통인데 하물며 쌓인 눈을 파고 걸어가는 판국에
넘어지는것은 당연하다
나도 뒤로 앞으로 옆으로 수십번은 넘어지면서 걸어가면서 하니까 당연한줄로만 알았다
산행 대장은 그렇게 눈길에서 눈사람이 되어 일어나지 못한채 죽엄과 맞닿았고 말았다
얼마나 눈을 감고 있었는지 눈을 떠보니 아직 여명이 트기전이다
어둠이 너무 길다
몽롱했던 머리가 조금 맑아지고 깔끌거렸던 목이 조금 수월해지자 통증은 등으로 배로 옮겨다닌다
중국 우한에서 발병된 폐렴이 전세계에 공포심을 유발되어
우리나라에도 비상이 걸린 마당이라 나도 덩달아 몸살감기가 혹시나 위험한건지
걱정이 된다
다행이 이빈후과에서 처방해준 약이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항생제에 독한 약은 내 뱃속을 훑고 지나갔나보다
아님 배로 이동한 바이러스균이 춤을 추고 있나
뜨거운 핫팩을 배에 붙이니 아프던 장은 스르르 잠이 든다
누룽지로 아침을 먹고 다시금 총무 문자를 봐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다
삼십여년전부터 산행을 계속 하고 산악회 대장직을 맡은지도 십년이 넘었다는 분이
갑작스레 산에서 죽을수가 있다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한강과 낙동강 오십천의 분수령인 삼수령에서 삼척의 육백산 기슭으로 유배온 고려의 마지막 공양왕을
배알하며 충신들이 복건과 관복을 벗어놓은 고개라는 건의령을 거쳐 구부시령까지 이어가는 구간이었다
육년전 내가 처음 대간길에 발길을 내딛을때부터 동행했던 분이 아니던가
물론 남편의 케어가 있었지만은 대장의 배려가 없다면 아마도 난 백두대간이라는것을 알지도 못했을것이다
우연히 첫번째 참가한 대간팀 산행도 눈산행 이었다
십오킬로의 눈산길을 오가는데 몇번은 뒤로 앞으로 넘어지면서 나중에는 거의 죽다시피 탈진되어
하산하고 계속 토하면서 귀가했었다
다음 또 다음 한번씩 따라가면서 뒤에서 쳐지고 힘겨워 할때마다 할수 있다는 믿음과 격려를 해주신 분이다
무사히 오십오구간을 마치고 다시 한번 재도전에 성공하고 이번에는 세번째 도전이건만
고지가 얼마 안되는데 강원도 겨울 눈산행이 정말이지 무섭다
남은 십칠팔구간을 마쳐야 할지 아님 중도 포기해야할지 걱정도 된다
수원연화장까지는 대중교통으로 두시간
아직 부실한 몸을 이끌고 가기에는 너무 먼 걸리다
그래도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을수가 없는 상황이다
자가용 없이 사는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많이 날라다닌다는 지하철을 타고 가는수밖에 없다
내복으로 단단히 몸을 감싸고 배와 등짝에 핫팩을 붙이고 목에는 목도리로 입과 코는 마스크로
단단히 무장한채 집을 나섰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자 아는 산행동지들이 하나둘 모이고
우리는 모두 대장님 영정앞에 섰다
대장님은 산에서 사진 찍는것도 좋아하지만 당신이 피사체가 되어 찍히는것은 더 좋아했다
그런데 영정사진이 이게 뭐람 입 다문 중명사진이라니
허허롭게 아니 활짝 웃으면 마치 소년같은 순수한 모습인데
배낭매고 산을 걷던 대장님이 아니었다
얼마나 경황이 없었으면 그랬을지 남은 부인이 애처로웠다
우리 아내는 화가라고 서양화가여서 사진 찍은걸 보고도 그림을 그린다고 자랑하신던게 생각났다
하루사이에 대장이 사라진 대간팀은 어찌될지
2020년 2월6일 목요일
친구 모친상 소식이 또 전해지고 죽음이란 단어가 요새는 너무 가까이에 와있다
사는것과 죽는것이 종이한장 차이라고 한다지만
지난 일년과 올초에 겪는 탄생과 죽음은 최고조의 기쁨과 슬픔으로
날 흔들어 여러가지 통증으로 날 괴롭힌다
강원도 삼척과 태백을 가르는 대간길에서 쓰러져간 대장님
대장님은 눈이 내린 산으로 영영 떠나가고
나는 다시 삭막한 땅에서 하루를 맞이했다
어찌 이리도 허망하게 가실줄이야
목숨이 끊어질듯 이어질듯 하다가도 다시 살아 아웅다웅 부딪치며
서로 미워하고 서로 사랑하기를 반복하며 사는게
우리들의 일상이거늘 행여 일행들이 처지지나 않는지 다치지는 않는지
챙기다가 정작 당신이 먼저 가고 말았다
사계절 변화무쌍한 산들을 마치 사랑하는 애인처럼 늘 감탄하더니
진짜 산이 되어 버렸다
백두대간길에서도 무시무시한 쇠밧줄이 나오는 구간이거나
암릉바위길이거나 절벽이거나 하면 모를까
대간길중에서도 상중하로 따지자면 하에 속하는 부드러운 삼수령에서 구부시령 고개를 넘다가
그리 되었다는게 사흘이 지났어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지역명의 유래와 자세한 지리 역사공부까지 박식하고 친근했던 대장님은 이제 우리곁에 없다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대장님을 떠나 보내며
산을 사랑했던 대장님은
백두대간길에서 영영 하산하지 않았습니다
사계절 변화무쌍한 산들을 너무나 사랑하더니
진짜 산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산 어는곳을 가더라도 감탄사를 연발했던
순수청년 대장님
정녕 다시 볼수는 없는건가요?
봄이면 연두빛 능선 너머 진달래 철쭉피는 산으로
여름이면 녹음 짙은 능선아래 시원한 계곡산으로
가을이면 오색창연 단풍드는 산으로
겨울이면 눈꽃 피는 산을 찾아 떠났던 대장님
명산보다 백두대간이 훨씬 재미지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이리 생생한데
왜 가던길을 멈추시고 말았대요?
17기 23기 32기 세번의 백두대간을 이어나가며
그리 공들이고 기도했던
천지신명님,산신령님,부처님,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우리에게서 대장을 왜 뺏어갔답니까?
지리산을 시작으로 덕유 속리 희양 대미 소백 태백을 넘는동안
대간길에 그리 많은 무시무시한 절벽구간을 뚫는것도 아니고
수십개의 밧줄구간을 타는것도 아닌
부드러운 삼수령에서 건의령너머 구부시령으로 오다가
일어나지 못했으니 지금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두타 청옥을 지나고 대관령 고개만 넘으면 설악의 진부고지가 기다리건만
정녕,걷기 싫어 그만두신건 아니겠지요?
낙동정맥과 백두대간길이 갈라지는 삼수령은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분수령이고
건의령은 삼척의 육백산 기슭에 유배온 고려의 마지막왕인 공양왕을 배알하던 충신들이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걸어놓아 이름지어졌다는 설명까지 역사와 지리에 박식했던 대장님이
없는 자리가 커서 우리가슴에 이리 구멍이 뻥 뚫렸습니다
얼마나 황망하고 다급했으면 사진 찍고 사진 찍히기를 좋아했던 대장님영정으로
입술을 꼭 다문 증명사진이라니,
멀쩡하게 백두대간 다녀오마고 집 나선 가장이 싸늘한 죽엄으로 돌아왔으니
가족들의 슬픔을 어찌 헤아릴수 있을까요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셨던 대장님
오르막엔 다리를 후둘거리리다가도 내리막은 바람처럼 하산하곤 했지요
백두대간 원정때마다 죽을똥살똥 걸어도 꼴찌를 못 면하는 나는 내 한몸 건사하기도 버거워
요즘들어 대장님 기력이 점점 쇠약해진걸 알면서도 챙기지 못했습니다
들머리에서부터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수십번 날머리에 다달을때까지
후미를 챙기더니 왜 정작 당신은 챙기지 않았답니까?
눈치없는 까마귀도 대장님이 죽겠다고 까악까악 소리를 질러댔을텐데
우리만 몰랐으니 그 후회와 자책을 감당하기 버겁습니다
금방이라도 "이정님,동행님, 같이 가자,쉬었다 가자,조금만 힘내자."라는 말이
들리는것만 갔습니다.
이제 곧 봄을 품었던 겨울이 가고나면
눈을 뚫고 복수초가 피어나고 각종 바람꽃들과 풀꽃들이
대간길 가는길마다 반겨줄텐데 조금만 조금만 늦게 가시지,
저승길이 좋다한들 그리 쉽게 이승 인연 끊어내다니
남은이들의 큰 슬픔은 어이하라고 얄미운 대장
봄 여름 가을 겨울 대장님과 산길에서 쌓았던 추억만
바람처럼 구름처럼 서늘하게 밀려옵니다
대장님이 멈춰 날아가버린 눈 쌓였던 대간길에 이렇게
우리 다시 섰는데
대장님~
지금 듣고 보고 계시지요?
그곳에도 산이 있습디까?
남설악과 왕초는 만났대요?
죽어 몸은 없어져도 넋은 남는다지만 눈으로 뵐수없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장님과 함께 했던 한번의 남진과 두번의 북진 지난세월들을 기쁨과 슬픔으로 간직하고
이제 우리의 백두대간 32기 여정을 이어가려고 하는데
할수 있을까요?
대장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자신이 없습니다
부디,대원동지 모두를 지켜주시고 무탈하게 완주할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평안하게 영면하세요
Rest in peace
2020년 2월 18일 이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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