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0. 09:31ㆍ백대명산
일시-2021년 3월9일 화요일 맑음
코스-천관산 공원 주차장-장천재-금강굴-천주봉-환희대-억새 군락지-연대봉 정상(723.1m)
-정원암-양근암-장안사-주차장으로 원점회귀
호남의 오대명산인 전남 장흥에 있는 천관산 가는날
남녘의 대지는 봄의 기운이 넘실댔다
새벽 찬바람에 오솔오솔 떨리던게 불과 몇시간전일이다
지난주 가지산에 이어 천관산도 서울에서 오고가는길이 멀다
산행시간보다 이동시간이 길어 차 타는거보다 산 타는게 쉽다는 말이 나오는 백명산이다
산악버스타고 다닌지 햇수로 칠년째가 되다보니 그동안 산꾼들도 물갈이가 많아졌다
사십명의 일행중 단 한사람도 안면이 없는날은 처음이다
코로나로 실내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갈곳 없어 산으로 모인탓도 있고
직장 잃은 젊은이들이 운동이라도 할겸 오는탓도 있을터
그동안 늙은이들만 타던 버스가 젊은 청년과 처자들로 색깔부터 다르고 향기도 나는듯하다
한나절 내내 달린 버스는 열한시 삼십분이 지나 천관산 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너른 공터의 주차장은 한낮의 아지랑이만 가물거릴뿐 군데군데 설치된 정자쉼터에는
사람을 볼수 없고 주차장이란 말이 무색하게 차들도 없어 텅 빈 운동장같이 썰렁했다
멀리 보이는 뾰족 선 바위군들을 향해 오르는 산행이다
일박이일 테레비 프로에서도 천관산 오르기를 했었다는 표지판이
대나무 사이길인 나무계단 입구에 있었다
이승기와 강호동의 오래된 사진은 빛바래 이젠 없애도 될거만 같은데
그건 내 생각인갑다
동백나무들이 가로수마냥 서 있는 길로 들어서 장천재를 지나 완만하게 오름길을 오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장천재 자리는 본래 장천암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중종때 강릉 참봉인 위보현이 어머니를 위해 묘각을 짓고 장천암의 승려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한것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뭐가 그리 급한지 단체 산꾼 일행들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갈길이 바빠져
사적비는 고사하고 담벼락에 눈길도 주지 못한채 지나치고 말았다
산 아래에는 동백꽃이 산길로 들어서면 산죽길이다
작은 바위들이 촘촘히 박힌 길들이 이어지고 산길은 아기자기 이어졌다
완만하던 산길은 점점 조망이 트이면서 가파르게 오르며
바위군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다
선인봉이다
우뚝선 바위가 대장감이다
이어 금강굴을 지나게 된다
금강굴은 중봉의 동쪽 지변 명적암 아래 위치하고 있다
굴 아래 구멍은 한사람 앉을 자리쯤 되어 보이고 어둡고 컴컴했다
길쭉하고 뾰족한 바위 벽과 벽 너머 햇살이 눈부시고
그벽을 빠져 나와 다시 길을 잇는다
햇볕 좋은날에도 굴속은 검고 무섭듯이
살다보면 좋을때도 있고 나쁠때도 있고 기쁠때도 있고 슬플때도 있다
고통이 찾아오면 영원할거처럼 그 순간은 악몽이여도
어느순간 고통이 사라지고 나면 금세 잊어버리고 산다
천관산 산행은 바위길이 이어져도 무시무시하지 않고 어렵지도 않아
충분히 퐁광을 감상하며 산행할수 있는 산이다
멀리 남해바다와 초록빛 밭고랑 사이 마을들이 한가롭게만 보이고
가까이 산 언덕에 기대있는 천관사 절이 눈에 들어온다
미세먼지가 끼어 있나 시야가 조금만 선명했더라면 훨씬 좋았을걸
천주봉이다
천주를 깍아 기둥으로 만들어 구름속에 꽂아 세운거 같다는 봉우리다
가다 가다 우뚝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많다
같은 포즈로 서 있다 해도 계절마다 다를 바위군들 이것들을 모두 눈에 넣고
사진 찍고 가다보면 일행들중에 꼴찌는 따놓은 단상이다
한번 왔다 갔다 한들 제대로 안다고 할수도 없을테고
정상에 인증이 목적인 오늘 산행은 여러모양의 바위와 동백이 기억될수밖에 없다
환희대에 올랐다
선인봉 금강굴 천주봉 천관사 갈릴길을 거쳐 환희대에 오르는동안
사방으로 트인 조망덕에 지루할틈이 없었다
네모난 책바위가 서로 겹쳐 있어 마치 책이 쌓여있는 모습이라는 환희대다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파랗다
이곳 환희대에서 육백미터 떨어진 구룡봉을 다녀와도 되는 여분의 체력이 남았음에도
구룡봉은 눈으로만 감상하고 억새 군락지를 걸었다
이미 꽃 떨어진 억새밭은 뻗뻗한 줄기만 휘둥그레 남아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환희대에서 연대봉 정상까지 일킬로는 억새길이다
연대봉 산상 사킬로 주변은 억새능선으로 늦가을 억새춤이 장관을 이룬단다
이어 헬기장을 지나 인증 장소인 연대봉이다
운동경기를 해도 될듯 넓고 평평한 산 정상은 해발고도 724.1m로
연기를 피우던 봉수대가 남아 있었다
천관산은 1998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전남 장흥근 관산읍과 대덕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오대산이다
가끔 흰연기와 같은 이상한 기운이 서린다 하여 신산이라도도 하는데
옛이름은 천풍산 또는 지제산이다
신라 화랑 김유신을 한때 사랑했으나 김유신에게 버림받은 천관녀가 숨어 살았다는
전설도 있단다
주위에 양암봉 소산봉등이 있고 사자암 상적암 문주 보현암등 삼십개의 기암괴석이 있어
곳곳에 깊은 계곡이 발달된 산이다
천관산 오르는길은 부드러운 능선인듯 하다가도 깍아지른 바위들과 억새의 군무 춤사위까지
산객들에게 지루할틈을 안준다
"천관산 오르는 길에는
위선환
천관산 오르는 길에는
이마가 서늘하리
그 이마 서늘해지며
하늘빛에 물들으리
놀빛 비낀 억새밭 자욱하고
억새잎들 부딪치며 서걱대는 소리
흐느끼리
그밤에 등성이로 별들이 내려와서
별빛 한 망태기 주워 어깨에 둘러메고
남쪽 바다로 내려가는 하룻날은
날빛 든 물 바닥에 하늘 비쳐 있으리
나는 눈물 나리
억새꽃들 폴폴 날아서 자꾸 쌓여서
어느새
내 어깨를 묻고 말리"
위선환 시인은 이고장 장흥 사람이다
나도 짧게 한수 적어보면
"천관산 오르는길에는
동백꽃과 대나무가 길을 열고
억새꽃과 바위군이 산을 여네"
정상에 서니 남해의 바다색이 하늘색만 못하다
맑은 날에는 월출산과 무등산은 기본이고 멀리 한라산까지 조망 된다는데
다도해의 푸른물과 산 너울들이 반투명 커튼을 드리운듯 아님 회색 썬그라스를 낀듯
맑질 않다
땅인듯 물인듯 바다도 먼지낀날은 숨을 죽인다
오후 들어 뜨거운 햇볕은 내 머리로만 내려 앉는지 머리는 따끈따끈하고
배낭맨 등짝은 덥기만 한데 발걸음을 멈추고 한눈팔면 금세 쌀쌀하여
정상석을 뒤로 하고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완만한 억새평원으로 하산하는길 초반은 널널하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듯 켜켜히 쌓아올린 정원암을 지나
봉황봉 양근암 정안사까지 한시간여 하산길을 쉽기만 하다
땅에서는 전염병이 만연하여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는 요즘에도
그나마 산에서는 평일이라 그런지 동네사람보다 멀리서 온 우리뿐이라
지긋지긋한 코로나 걱정도 잠시 잊어 버렸다
그나저나 서울로 돌아갈일이 꿈만 같은데 버스는 너무 오래 달렸나
띠띠 띠띠 요상스런 벨소리가 나다 급기야는 띠띠띠띠띠 경고음을 울린다
안그래도 예민한 귀는 송곳으로 찌르는것만 같아 솜으로 귀를 틀어 막았다
한참만에 졸음방지 갓길로 빠져나와 경고음을 고치고 다시 출발한 버스는
이제 엔진문이 안열려 히터가 작동 안된단다
허기사 칠년전 산악버스는 귀갓길 고속도로 주행중 타이어가 펑크나 중간 휴계소에서
다른 차로 갈아타기도 하고 다른 버스는 고속도로에서 불이 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기억이다
춘삼월에 웬 히터야 하지만 운동후 히터 틀지 않는 버스는 추웠다
오며가며 무려 열시간을 버스에서 승객으로 앉아 있기만도 피로한데
긴 시간 버스를 운전해야 되는 운전기사는 고된 직업이다
도로를 달릴때 거의 반은 죽은듯이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어질어질 울렁울렁
차멀미 증상 없이 머리도 개운하다
스물네시간 하루중 거의 열아홉시간을 소비하고 무사 귀가했다
많은 경험끝에 길고긴 하루가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