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 17:02ㆍ백대명산
일시-2021년 6월30일 수요일 흐리다 비오다 맑음
코스-입석 입구-청량사-뒷실고개-하늘다리-정상 갈림길-장인봉 정상(870m)-정상 갈림길-청량폭포
-청량산 박물관 대형주차장
트랙지도를 잘 만들어놓고 이번에는 두시간이나 늦게 껐다
지난주 응봉산 산행 후유증은 오래갔다
청량산 가기전날 토종닭 한마리 잡아먹고 다시 원기회복하여 기 충전도 마쳤다
백두대간 다니면서 가기전날 주로 먹던 토종닭 백숙요리로 다른 사람은 어쩔지 모르지만
껍질 벗기고 찹쌀과 대추 마늘만 넣어도 나는 소화가 잘되어 세번의 대간을 마치기까지
백여마리도 더 잡아 먹은거 같다
동물에 대한 조의는 표해야겠지만 순전히 살기 위해 먹는거라 양육강식은 생태계의 기본원리다
그린곤 엿새째 되는날이다
알람소리에 새벽잠을 억지로 깼다
여명이 트이기전 집을 나서자 반팔을 입어도 살갗에 닿는 초여름 새벽공기는
밤새 습기를 머금어 오히려 축축하게 느껴진다
이른 아침임에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시민들 틈에 끼어 지하철을 타고 내리고
산꾼들이 집결하는 양재역으로 갔다
일단 산악버스만 타면 졸든 자든 알아서 산행지 들머리까지 데려다 주니
편하기로는 이만한것도 없다
초여름 들판과 산의 푸르름이 쌩쌩 달리는 버스 창가로 달려들고
낙동강 지류가 흐르는 도로 따라 버스는 달렸다
청량산 삼거리에 도착한 버스는 청량지문을 통과하여 에이코스 일행을 하차시키고
비코스 일행을 위해 아스팔트 도로따라 입석 출발점으로 이동하여 고맙게도
산행전 하기 싫은 시멘트 워밍업은 하지 않게 되었다
도립공원답게 출발점에는 도립공원 안내도와 주차장과 쉼터 정자와 깨끗한 화장실이 있고
솟대 설치물이 아기자기 했다
숲길 입구에 있는 권성구 시비에는
"금강산 좋다는 말 듣기는 해도
여태껏 살면서도 가지 못했네
청량산은 금강산에 버금가니
자그마한 금강이라 이를 만하지"라고 새겨져 있다
힘들었던 지난주를 잊고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청량산으로 들어간다
더위를 이길수만 있다면 나도 축융봉으로 해서 청량산성 밀성대 응진전 청량사에서
뒷실고개 능선으로 올라설텐데 많이 생략하고 산허리를 돌아 곧 바로 청량사로 올라설 예정이다
출발점 고도가 사백미터즈음이니 정상까지는 오백여미터만 올리면 된다
밤새 간간히 비가 내렸나 아침 이슬비가 내렸나 숲길이 촉촉했다
응진전 갈림길이다
육백미터만 가파르게 오르면 삼존불과 나한전 노국공주신을 모신 응진전이 나올테고
신라 명필 김생이 글씨 공부하던 김생굴도 1.1km 거리에 있다
응진전은 청량사의 부속 암자로 노국대장공주신을 모신곳이다
축융봉 아래 공민왕당이 마주 보이는 곳이란다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순애보는 유별나다
노국대장공주는 비록 원나라의 공주였지만 남편의 개혁정치와 반원정책을 지지했던 정치적 동반자였다
노국공주가 십년만에 가진 아이를 출산하며 난산으로 죽게되자 비극은 시작된다
그의 병적인 집착은 폭음과 폭력 동성애 탐닉등 비정상으로 향하고
가까이에 있는 신돈이란 승려가 들인 반야에 의해 아들 모니노를 낳았지만
알지 못하는것도 불행이다
마지막 죽음도 자제위 소년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다
고려가 멸망한지 삼백년이 지났어도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드라마나 책으로 엮기도 하니
두 무덤 사이의 영혼통로로 만나는 이들의 사랑이 지금은 신화가 되었다
삼천포로 빠졌던 이야기는 다시 산행으로 돌아와
응진전 갈림길 주변에는 시대의 상처를 안고 자라는 소나무들이
군데군데 서 있다
이는 일제 강점기말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하여 에너지원인 연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송진을 채취한 자국으로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상처에 의해 생장이 어려워진 소나무는 꿋꿋하게 자라기도 하지만 솔잎 혹파리등의 병충해에
약하여 쉽게 죽기도 한단다
한반도를 집어삼키고도 모자라 우리 민족의 얼과 정기를 끊겠다고 전국 산야 곳곳에
쇠말뚝을 박아 놓은 일제의 만행은 무지막지 했다
발 닿는곳마다 산이 많은 우리는 산에 기대사는 민족이다
산들은 태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도둑보다 더한 일본도 옮겨가지 못했으니
지금은 그 명산들을 우리가 찾아다니고 있다
산행시작한지 이제 겨우 이십분 예정된 코스는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네시간이면 충분하여
부지런을 떨 필요도 없다
응진전으로 올라서는 대장과 헤어지고 청량산 허리를 끼고 걸었다
삼사십명이 일행이 되어도 가다보면 항상 남는건 둘 뿐인데
오늘은 이십팔인승 버스로 왔으니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청량산속이 나무와 나무로 가려진 그늘막 숲길이라 해가 떠도 햇볕 차단될텐데
날씨마저 흐려 어두침침하다
해발 오백미터즈음이다
솟대와 시인이란 산꾼의 집과 퇴계이황이 성리학을 공부하고 후학을 양성했던 청량정사를 지나
청량사로 향한다
숲속 길가 죽어 나자빠진 나무 옆에는
"서 있느라 수고했네
이제 편히 누우시게나
본시
우리는 하늘도 땅도 아니라네
그래서
서기도 눕기도 했던걸세
편히 가시게
'숨'잊지 말고 가지고 가시게
그리하여
내세에 바람으로 오시게나
하늘에도 닿고 땅에도 닿는
바람으로 오시게나
바람으로 오시게나"
김성기 시인의 '휴'가 나부꼈다
시멘트 임도가 나오고 자동차가 놓여 있는걸 보니 청량사는 차타고 와도 되는절이다
시멘트 도로따라 오르면 청량사 암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오층 사리탑과 소나무 한그루가
한폭의 그림을 이룬다
신라 문무왕때 원효가 세운 청량사는 크고 작은 서른개의 암자중 이곳 내청량사의 유리보전과
외청량사인 응진전이 보존되어 있는 사찰이다
경내로 들어가는 길목 오른쪽에 안심당이라는 이쁜 찻집과 통나무 수로위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오르막 더위를 식히는듯 시원하다
청량사는 육육봉인 열두봉우리가 연꽃 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고
그 연꽃의 수술자리에 위치한곳이란다
경내에는 유달리 채송화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낮고 작은 꽃들과 항아리위에 동자승이며 조각품들이 예사스런 조경이 아니다
뿔 셋 달린 소가 묻혔다는 연대사 소나무 전설처럼 안개속으로 멀어지는 키 큰 소나무를
뒤돌아보고 청량사를 벗어났다
그동안 산행중 많이 본 크고 우람했던 절에 비하면 너무나 소박하지만
깔끔하고 차분하여 경내를 둘러보는것으로도 수행의 첫발을 딛은거 같이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마음을 씻고 나서 그런지 발걸음이 가볍다
자소봉 갈림길을 지나고 이십분만에 이백미터 고도를 올려 뒷실 고개 능선에 다달았다
구름낀 하늘에서 하나 둘 빗방울이 떨어지고 머리는 시원해졌다
남쪽 축융봉과 김생굴에서 올라오는 일행들과도 만나는 지점인데
나는 너무 쉽게 올라섰다 생각했더니 자란봉우리까지 가파른 계단이 기다린다
이어 하늘다리가 나온다
하늘다리는 이곳 자란봉에서 선학봉을 연결하는 길이 구십미터와 바닥높이 칠십미터로
국내 산악지대 교량중 가장 길고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현수교란다
먹구름이 몰고온 빗방울은 빗줄기로 변하고 점점 거세게 내린다
비옷을 입을까 말까 머리를 굴리다 배낭카버만 둘러씌우고 나는 비를 온몸으로 맞았다
비 맞고 서 있으면 추울테지만 정신없이 걸으면 추운지도 모르고
오히려 더위를 식혀주니 미끌거리지만 않다면 여름 우중산행은 더위산행보다
훨씬 나은편이다
검은 하늘속으로 선경은 사라지고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에서 하늘다리를 건너
선학봉을 지나 정상 갈림길이다
정상까지 남은거리 삼백미터 가파른 철계단이 기다린다
쏟아지는 비에 철계단은 미끌거리고 난간도 높아 숨이 차올랐다
드디어 청량산의 정상 해발고도 870m의 장인봉이다
청량산에서 가장 크고 긴 봉우리로 옛날 명칭은 대봉이다
1544년 중중 당시 풍기 군수였던 주세붕이 청량산을 유람한후 열두 봉우리의 이름을
지금의 이름으로 지으며 육육봉이라고도 불린다
장인봉은 중국 태산의 장악을 모방하여 명명하였다
나무이파리가 싱싱한 잡목숲 사이에 화강암 정상석에 표기된 글자는
김생의 글씨체를 집자한것으로 부드럽고 시원스럽다
사진기는 비닐에 싸매 집어넣고 스마트폰으로 찍기에도 비가 너무 온다
청량산은
태백산맥의 줄기인 중앙산맥의 명산으로 경북 봉화에 위치한다
최고봉인 장인봉은 비롯하여 열두개의 고봉이 치솟아 산세가 수려한 산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청량산은 태백산맥이 들로 내려왔다 예안강 위에서 고개를 이루었다
밖에서 바라보면 다만 흙묏부리 두어송이 뿐이나 강을 건너 골안에 들어가면
사면이 석벽에 둘러있고 모두 만길이나 높아서 험하고 기이한것이 형용할수 없다"라고
했다
수려한 경관과 유서깊은 문화유적으로 이산은 1982년 도립공원의 지정되었다
비에 젖은 생쥐꼴로 내려오다 비옷을 꺼내입고 걸으니 이미 젖은 몸에 땀까지 배어
끈적거리는것은 더 견딜수 없는 고역이라
다시 벗어버리고 정상 갈림길로 내려섰다
금강대 금강굴로 하산하려던 계획은 접고 두들마을 기점으로 하산하는데
길은 좁고 숲은 우거지고 초반은 가파르게 내린다
가파른 내리막을 어느정도 벗어나자 그사이 비가 멎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정글숲을 뚫고 내려오는데 우거진 숲길에는 산딸기와 오디가 주렁주렁 열려있고
푸른 개복숭아 열매도 많았다
높은곳에 볼수 없었던 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칡 넝쿨과 이름도 모르는 나무들로 꽉찬 수풀사이에 노란 기린초꽃은
밝은 불을 밝혀놓은듯 환하기만 하다
손길에 닿는대로 산딸기를 주섬주섬 따먹고 내려오다 보니 사람사는곳인가 집 한채가 나오고
이어 시멘트 임도가 나온다
시멘트 도로를 급하게 하산하여 두실마을 농산물장터 판매대를 지나
청량산길 도로에 닿았다
도로를 건너면 청량폭포다
높은곳에 비해 폭포 수량은 찔끔찔끔 별볼일없게 떨어졌다
짧은 코스로 산을 타서 남은 시간이 무려 세시간 길을 걷는 속도도 느려진다
청량산을 빠져나오며 줄기에는 작은 가시를 달고 빨갛게 열매 맺은 산딸기를
한주먹이나 또 따 먹고 단풍나무와 벚나무가 가로수인 호젓한 청량산길은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청량지문을 빠져나오는 몇 미터 거리에서 몇십분을 노닥거리다니
백대 명산 다니러 와서 이렇게 여유가 있어본적은 처음이다
청량산을 뒤로 하고 낙동강물위 청량교를 지나 청량산 박물관 민박과 식당 캠핑장이 있는
주차장으로 걸어 세시간 사십분만에 오늘 일정을 마쳤다
화장실에서 씻고 옷 갈아입고 간식 먹고도 두시간이나 남은 시간은
널널하다 못해 지루하여 정자 그늘에서 누워 오수를 즐기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비구름 걷어간 파란 하늘아래 눈부신 햇빛이 내려오고 바람따라 초록 단풍잎들은 지들끼리
장단맞춰 시원하게 춤을 추니 오히려 마루바닥에 누운 몸에 한기가 드는 초여름이다
그동안 발 빠른 산꾼들이 느꼈을 기다리는 지루함을 처음 느껴본다
비를 맞아서 그런지,에너지 드링크를 마셔서 그런지,산행 시간이 적어서 그런지
머리가 맑은채로 귀가하고 산행 후유증 없이 정상인것도 실로 오랜만이다
예나 지금이나 청량산을 사랑하는 이는 많다
그중 퇴계 이황은 청량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청량산을 오가산이라며 사랑했다
"청량산 육육봉 아는이 나와 백구로다
백구야 어찌 하겠냐만 못 믿을게 도화로구나
도화야 물따라 가지마라 뱃사공 알까 하노라"
청량산에 가면 도산선원을 근거로 후학을 가르치며 공부하다 수시로
청량산에 들어가 수도했던 퇴계 이황의 발자취를 만날수 있다
태백의 매봉산 천의봉 너덜샘에서 발원하여 황지 연못으로 용출된후
구미와 창녕을 지나 부산으로 흐르는 긴 강이 낙동강이다
퇴적암으로 형성된 청량산 안에는 물이 별로 없어도 산 아래는 이 낙동강이 휘감아 돌아
기암 절벽의 산아래 시원한 물줄기가 유장하게 흘러 산도 물도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다
새순 트이는 봄과 초록이 무성한 여름도 좋지만 가을 단풍 들때와 겨울 눈꽃 필때
매력이 뿜어져 나올듯하여 언젠가 다시 찾을것이다
초여름 청량산이 청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