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3. 14:32ㆍ백대명산
일시-2021년 7월22일 목요일 맑음
코스-유동마을-연천마을-상어바위까지 알바후 되돌아옴-작은 김각골-삼거리-망월대-황석산성 표지판
-정상(1192m)-거북바위-장자벌 갈림길-청량사-도로-일주문 주차장
중복 지나고 스물네개의 절기중 더위가 극에 도달한다는 대서다
큰 더위라는 이름값을 하느라 한낮 기온이 삼십칠도가 육박하여
폭염이 최고조로 올랐다
수도권에는 폭염경보가 발생했다
폭염뿐이 아니라 코로나 사단계 거리두기중인데 가지말걸 그랬나
외출도 자제하라는 명령을 어긴죄는 안해도 되는 알바로 죄값을 치루며
맘과 몸이 동시에 쌩고생 했던 날,애먼 황석산만 탓했다
지난주는 민주지산이 있는 충북 영동으로 이번주는 황석산이 있는 경남 함양으로
산꾼들을 태운 산악버스가 이리저리 뻥뻥 뚫린 고속도로 덕분에 잘도 간다
젊어서는 살던곳에서 반경 몇십킬로 밖을 벗어나 본적 없던 내가
늙을말년에 산행 다닌다고 전국 각도로 나돌아다니느라 사서 쌩고생하는것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헷갈릴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버스는 함양의 작은 연촌마을 입구 도로에서 일행을 풀어 놓았다
도로 건너 유동마을 시멘트 임도를 따라 걸어 오르며 산행은 시작되는데
출발점에 서 있던 표지목 친절은 딱 거기까지고 산길로 들어서면 표지목은 보일듯 말듯
불친절하기가 그지없다
그나마 삼거리에 표지목이 있었다면 사십분이라는 시간은 허비하지 않했을걸
앞선 일행만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철 울타리가 처진 산사면을 거칠게 올라서고 있었다
누군가 걸어가면 길이 된다는 명언은 출입금 지산행이면 모를까
백대명산 산행에는 쓸모없는 말 일뿐이다
가파르게 경사진 사면으로 어렵게 미끌어지며 능선에 다달으자 바위암릉이 떡 버티고 있고
갈길이 막막하다
트랙지도을 보니 고도 육백여미터의 상어바위까지 올라왔다
백두대간을 타면서도 안하던 알바를 백대명산 왔다가 하다니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알바 일행은 여섯명이 되었고 우린
올라온만큼 다시 내려갔다
천백여미터의 정상까지 가려면 까마득하게 올려야 하는데 왔다갔다 하느라
아까운 시간과 체력만 소진되어 버렸고 얇은 반팔과 반바지로 헐벗다시피 했어도
땀은 비오듯 흘러 내린다
숲풀더미속에서 가려진 정상적인 등산로를 찾았다
계곡길로 이어진 길이 갈수록 뚜렷하게 나 있고 길은 편했다
완만하게 오름길 마지막에 안부가 나오고 산행 시작 한시간 삼십여분만에 긴장했던 맘을
진정하며 목을 축였다
김작골 계곡길 오르막은 가파르다 완만하다를 반복한다
유동마을에서 2.0km 떨어진 삼거리를 지나고 정상까지는 딱 절반이다
찔끔찔끔 흐르던 계곡물도 말라가고 습기찬 잡풀과 낙엽송이 무성한 산길을 오른다
나무숲에 가려진 그늘로 땡볕을 피하고 걷지만 이미 데워질대로 데워진 몸에서는
열불이 나 얼음수건을 가슴과 등짝에 밀어넣고 걸어도 숨이 차다
다른 사람들은 긴팔 긴바지에 모자까지 뒤집어 써도 덥지도 않은지 쌩쌩한데 나만 더운가
이러다 열사병이라도 나면 큰일이라 식염 포도당과 이온음료를 먹고 마시며 나는
유난스런 산행중이고 우리 일행말고는 드문드문 몇사람뿐이다
쉴만한 바위를 찾아 점심 먹으려고 잠깐 앉아 있는 사이에 날라드는 날벌레에게
쏘여 종아리과 팔이 따끔따금 가렵다
모기 퇴치제를 뿌려가며 걸어다녀도 산에 사는 날것들 작은미물들은 영리하기가 그지없어
나처럼 물렁한 사람들만 알고 물어댄다
한번 물린 상처는 일주일 이상 가렵고 독한것들은 몇달씩 가렵고 흉터를 남긴다
여름산행 다니며 그을린 팔다리는 곳곳이 물린 상처로 매끈하고 여성스런 아름다움은 사라진지 오래다
깊은골 샘터 갈림길을 지나가고 능선길로 올라서면 천미터 고도를 넘나든다
정상까지 남은거리는 이제 구백미터 비로소 시야가 트인다
초록 능선 너머 파란 하늘이 싱그럽기만 하고 햇볕은 강렬하다
암릉 바위를 지나고 이내 보수한듯 깔끔한 황석산성이 나온다
황석산성은
영호남의 관문으로 전북 장수와 진안으로 통하는 위치하고 있으며
황석산 정상에서 뻗는 능선따라 계곡을 감싸며 육십령으로 통하는 요새에 쌓은
삼국시대 성이다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계곡 일대를 돌아가며 벽을 쌓는 형식인 포곡식산성으로
가야를 멸망시킨 신라가 백제와 대결하기 위해 쌓은것으로 추정된다
성은 돌로 쌓은 부분과 흙으로 쌓은 부분으로 되어 있고
길이 2750m 높이 3m 성에는 작지만 동 서 남 북 문루를 갖추고 있고
성안 동쪽 계곡주변에는 크고 작은 건물터가 확인되고 있다
동국여지 승람에 의하면 당시엔 성의 둘레가 약8.9km나 되며 성안에는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수축한바 있고 임진왜란 당시1597년 선조때 왜군이 침입하자
체찰사 이원익은 이 산성이 호남과 영남을 잇는 요새이므로 왜군이 반드시 노릴것으로 판단하여
인근 주민들을 동원 시키도록 했다
그러나 김해 부사 백사림이 성을 넘어 도망가고 왜군이 난입하자 싸우던 함양군수 조종도와
안음현감 곽준 그리고 마지막까지 항거하던 주민들은 죽임을 당하고
부녀자들은 천길절벽에서 목숨을 날렸다
황석산 북쪽에는 지금도 당시 모습을 연상케하는 피바위가 남아 있다
황석산성의 자세한 설명이 새겨진 안내 표지판을 지나 백미터 떨어지 정상으로 직진이다
산성 남문기점 갈림길을 지나 천길 낭떠러지 암벽위에 정상 바위석으로 가는길은
계단으로 조성되어 있다
계단이 없던 예전에는 정상석이 바위 아래 있었다고 한다
날머리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 처음으로 정비된 계단을 만난다
이후로도 황선산 등산로는 지멋대로 자유자재 그야말로 자연그대로다
산꾼들을 위한 정비는 미비하여 다른 명산에 비해 자연훼손은 없겠지만
등산객을 불러 모으기는 힘들게 생겼다
마지막 계단을 올라서고 줄 잡고 한번 올라치면 바위와 바위가 포개진 아찔한 바위벽에
액자처럼 달라붙은 정상석은 네모지고 검은 대리석으로 마치 추모비석처럼 보인다
하늘향한 정상석도 땡볕을 피할길이 없어 따끈따끈 뜨겁다
정상에 서니 암릉위에 산성이 더 선명하다
천미터 고지에 산성을 쌓다니 놀랍기만하다
황석산은
경남 함양군 서하면과 경남 함양군 안의면에 걸쳐 있는산으로
남덕유산 남녘에 솟아 범상치 않은 바위산은 백두대간 줄기에서 뻗어내린 네개의 산인
기백산 금원산 거망산 황석산 가운데 가장 끝자락에 흡사 비수처럼 숫구친 봉우리다
무더기로 있는 바위가 황색을 띈다하여 황석산이라는데 햇볕 아래 바위는 오히려
거뭇거뭇 회색빛이 강하다
덕유산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이산의 가을철에는 거망산에서 황석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광활한 억새밭이 장관이란다
산 아래 유명한 용추계곡이 흘러내리고 골짜기 곳곳에 물줄기의 물이 마를날이 없는 지라
울울창창 빼곡한 산속에서 숨어 살기에는 좋은 산이다
그러기에 이 능선자락에는 빨치산 정순덕의 일화가 있다
1963년 체포될때까지 마지막 지리산 빨치산으로 알려진 그녀는
산으로 피신한 남편의 겨울 옷가지를 들고 산에 들어왔다 전투에서 남편이 죽고 그후
빨치산이 되었다
거망과 월봉산 전투에서 국군 한소대를 생포한후 무장해제 시킨 일화가 전해진다
빨치산은 총맞아 죽고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세번 죽는다는 말이 있다
군경을 괴롭힌 조선인민 유격대 여성대원인 그녀도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산에서는 살고 병들어 땅에서 죽었으니 죽을 자리는 아무도 모른다
며칠전 히말라야 십사좌 등정후 하산길에 실종된 김홍빈 대장도 산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열 손가락 없는 장애인은 코로나로 우울한때 희망을 주더니
산꾼의 죽을 자리는 결국 산인가 많은 산악대장처럼 산이 되어 버렸다
예상보다 한시간 늦게 세시간만에 정상이다
빠르게 정상 인증을 마치고 거망산으로 방향을 틀어 하산한다
거북바위를 지나 북장대 추정지를 지난다
북장대란 성의 내부를 전체적으로 볼수 있고 외부를 관측하고 장수가 올라 지휘하던 건물이다
근처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들로 추정하고 있다
하산길은 오르락내리락 암릉 능선길이다 한시간이나 암릉을 오르내리다 보니
정상을 향해 오를때보다 더 힘이 든다
줄 하나에 의지한채 내리막 사선 바위와 울퉁불퉁 나무뿌리와 작은 돌길들
네시간의 산행이 지속되고 정상에서 2.45km 걸어 드디어 능선에서 벗어나는 거망산 갈림길이다
능선따라 가까이에 해발고도 1184m의 거망산이 나오고 장자벌 입구까지는 3.14km 남았다
오히려 거망산에서 하산하는길이 조금 편하다는 산꾼도 있는데
조금이라도 빠르게 하산하고픈 나는 장자벌 입구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날머리까지 남은시간 한시간 삼십분만에 도달하려면 발을 빠르게 놀려야 하고 쉴틈이 없다
어느만큼 고도를 내렸나 가파르게 내린던 고도가 조금씩 완만해지고 계곡물이 조금씩 흘러내린다
등에 둘러쓴 수건을 물에 적셔 다시 둘러썼다
그나마 오늘 더위를 피하는 나름 방법이었다
산죽길과 싱싱한 잡목길을 지나 청량사라는 절이 나와도 구경할 마음은 일도 없고
마을을 통과하는 시멘트 임도를 경보수준으로 걸어나오는데 공사차량 두대가
멀쩡한 도로에 구멍을 내느라 둥둥둥둥 귀청 떨어지겠다
안그래도 멍멍하던 귀를 싸매고 빠르게 마을을 빠져나와 장자벌교를 건넌 나는
이제 아스팔드 도로를 달리다시피 걸어야만 한다
알바 같이 했던 일행들은 자가용을 얻어타고 쌩 달리는데 뙤얕볕 아래 푹푹 찌는 도로를 걸으려니
죽을맛이다
마침내 용추사 일주문 휴계소 주차장에 달하고 명산이라기보다 악산으로 기억될
황석산 산행을 마쳤다
에너지젤을 두개나 먹었어도 혼이 빠져 나간듯 머리는 텅 비어 몽롱하고
이온음료를 마셨어도 허기진 배는 헛배만 차오르지 입맛이 사라졌다
겨우 남은 십여분의 시간에 옷갈아 입고 버스에 오르니
버스 속이 천국이다
바깥 기온에 더웠다 에어컨 바람에 추웠다 귀성하여 전철에서 집으로 오는 동안
다시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했다
체온조절이 쉽지 않았던 하루를 마감하고 나니
육산과 바위산의 묘미를 맛보려는 산꾼이나 갈까
황석산 아니라도 갈곳이 수두룩한데 굳이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산으로
기억에 남긴다
그리곤 한반도의 열돔현상 지속으로 한동안 무더위 산행은 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