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길상사를 나와
배고픈걸 못참는 남편이 찾아낸 돈까스집은 성곽길입구에 있는 돈까스집이었다.
서울사전에도 나오는 금왕돈까스집은 돈까스에 반찬이 한식이라는데
간판도 제대로 안본 이집은
얼굴만한 돈까스가 연하고 소스맛은 게피향이 있어 그런대로 맛이 좋았다.
수연산방.
한국의 모파상이라 일컬어지는 소설가 상허 이태준 선생이
1933년 지은 별장형 가옥이다.
1964년 임화와 같이 월북할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1999년 상허의 후손이 당호인 수연산방을 내걸고 전통찻집으로 운영중이다.
고택이 주는 편안함과 그윽한차향기 잘어울릴것같은데
한옥에 만들어진 전통찻집 1호인 수연산방을 우리는 구경만 하고 나왔다.
다녀와 생각하니 쫓기듯 발길을 재촉한 나나 남편이나 둘다 똑같다.
수연산방에서 나와 큰길로 들어서니 우리가 찾던 금왕돈까스 간판이 보인다.
성북동 명물답게 음식점앞에 기다리는 손님들로 긴줄을 이루고 있었다.
맛집기행에 나선것도 아니면서 먹을때 제일 행복하다는 남편은
길건너 돼지불백도 유명하고 칼국수 기사식당도 유명하고, 음식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나보다.
심우장.
숲속을 헤매다 내마음속 참나인 소를 발견하고
집으로돌아와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심우,
언덕으로 오르는 골목길 오른쪽에 낡은 집들사이에 심우장이 있다.
독립의뜻을 항상 가슴에 품고 뜨거운 민족의식으로 일관했던
만해 한용운선생이 말년을 서울에서 머물렀던 곳이다.
한칸의 기와집 대문에는 오래된 소나무 한그루가 인상적이고
사진속 선생과 가구는 초라할정도로 단정했다.
내려오는 골목길은
여기가 부촌인 성북동이 맞는가 의심이 갈정도로
길하나를 사이에 두고 헷갈린다.
전봇대에 얽힌 전기줄이 어지러워 머지않아 이길도 없어질게다.
덕수교회안에있는 이재준가옥.
서울시민민속자료 10호라 한다.
대문앞에는 옛날의 우물이 그대로 있고
고택은 교회수련장으로 잘단장되어 사용하고 있었다.
성북동은 절에 교회에 성당에 그리고 수도원까지
이곳의 사람들은 영혼이 다른곳보다는 맑을것같다.
뽕나무밭인 선잠단지를 건너 최순우집을 찾았으나
4월이 되어야 공개를 한다고 굳게 닫혀 있어 대문만 보고 왔다.
오늘 성북동 비둘기는 할일없는 할아버지가 모여있는 탑골공원으로 날아갔나 한마리도 못봤다.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직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러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