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만인보,에서

초록별에 부는 바람 2010. 5. 27. 16:30

 

고은

 

어머니

 

하루내내 뼈도 없고 뉘도 없는 만경강 갯벌에 가서

그 아득한 따라지 갯벌 나문재 찾아 발목 빠지다가 오니

북두칠성 푹 가라앉은 신새벽이구나 단내 나는구나

곤한 몸 누일 데 없이 보리쌀 아시 방아 찧어야지

도굿대 솟아 캄캄한 허공 치고 내려 찧어 땅 뚫는구나.

비오는 땀방울 보리살에 뚝뚝 떨어져 간 맞추니

에라 만수 그 밥맛에 어린것 쑥 자라나겠구나

여기말고 어디메 복받치는 목숨 따로 부지 하겠는가

이 땅의 한 아낙의 목숨이 어찌 만 목숨 살리지 않겠는가

 

충청도 장항에서 흐린 물 느린물 건너

삐그덕 가마타고 시집 온 이래 그 고생길 이래

된장 간장 한 단지 갖추지 못한 시집살이에 몸 담아

첫 아들 낳은 뒤 이틀만에 그 놈의 보리방아 찧어

두벌 김매는 논에 광주리 밥 해서 이고 나가니

산후 피 펑펑 쏟아 말 못할 속곳 다섯벌 빨아야 했다.

그러나 바지랑대 걸음걸이 한번 씨원씨원해서

보라 동부새바람 다위 일으켜 벌서 저만큼 가고 있구나

갖가지 일에 노래 하나 부르지 못하고 보리고개 봄 다 가고

여름 밭 그대로 두면 범의 새끼 열 마리 기르는 폭 아닌가

우거진 풀 가운데서 가난 가운데서 그놈의 일가운데서

나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 어찌 나의 어머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