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화속으로

초록별에 부는 바람 2010. 6. 25. 06:29

 

감독-이재한

출연-최승현(오장범)

       차승원(박무량)

       권상우(구갑조)

       김승우(강석대)

 

어머니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은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십여명은 될것입니다.

나는 4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폭발물을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푹음은 나의 고막을 찢어버렸습니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귓속에는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작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합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마음이 가라앉을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듯

적이 덤벼들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았습니다.

물냄새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 주시던 백옥같은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내복을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 입으며 왜 수의를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죽은 사람들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것 같지가 않습니다.

죽음이 무서운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 지는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살아서 다시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안녕!..아,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살아서 갈테니까요.

 

 1950.8.11 포항여중 앞 벌판에서 숨을 거둔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학도의용군 이우근의 편지는

그해 팔월의 포화를 60년뒤 유월 스크린에 재현시킨다.

 

전쟁을 겪지 않은 71년생 유학파 젊은 감독은

 미국 스탠포드 시사회때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지도로 인해  매국노로 여겨질뻔했던 순간이 있었으나

전쟁실화를 다뤄 6.25기념작이 되기를 희망했다.

 

낙동강은 후퇴할수도 밀릴수도 없는 마지막 방어선, 낙독강이 뚫리면 끝이다.

남한은 낙동강 사수를 위해 8.1일 낙동강 교두보의 구축명령을 내리고

 8.3일 부터 의성,마산,영산,안강,왜관등 경북일대 낙동강 지지선을 사수키 위한 전투가 곳곳에서 시작된다.

50.8월 피바다로 불린 그곳에서 싸웠던 전투중에 포항여중 전투가 이영화이다.

 

영덕전투에서 학도병 장범은 탄약이 모자란 군인에게 탄약을 나르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시체를 밟고 지나 임무수행을 하지만 군인이 인민군 총에 맞아 죽어가는데도

 귀에서 피가 나와도 모른체 총알만 만지작 거리며 벌벌 떤다.

이 전투에서 수세에 몰린 국군은 포항으로 일시적 후퇴를 하고

학도병 오장범도 강석대와 함께 포항으로 오게 된다.

포항여중에 거점을 마련한 3사단 강석대 부대에게

낙동강 전선에 투입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포항을 버리자는 겁니까?

포항이 뚫리면 낙동강 전선은 앞뒤로 포위됩니다.

그러면 포항은 어느 부대가 맡습니까?"

포항여중엔 학도병으로 지원한 65명과 영덕전투에서 살아남은 장범을 포함한 3명과

살인죄로 소년원에서 나온 갑조를 포함한 3명과 합류해 총71명이 남게된다.

낙동강 전선으로 가기전 무전으로 연락할수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반장은 커녕 동네 골목대장 한번 안해본 오장범을 중대장을 임명하여 2소대로 나눈다.

겁쟁이에서 군인으로 뭉쳐가는 중에는 식량창고가 폭발하고 갑조와 중대장과의 사소한 다툼도 있다.

 

한편,영덕을 초토화 시킨 북한군 유격대장 박무량이 이끄는 5사단 766유격대는

낙동강으로 향하라는 당의 지시를 무시하고 장갑차를 앞세워

영덕에서 포항을 거쳐 최종 목적인 부산을 8.15일전에 침략시키겠다는 전략으로 포항으로 방향을 튼다.

당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부하를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세치혀 때문에 죽는다."며 쏴버리는 차승원의 눈빛이 섬뜩하다.

 

실제 당시에 열다섯 나이가 어려 열여덟이라 속이고 참전한 학도병 김만규씨 증언에 따르면

친구들이 싸우다 죽었는데 비겁하게 나만 집에 있을수 없다며

 군번도 소속도 없이 포항에 도착한 71명 소년들은

오천 비행장에서 MI소총 한자루와 실탄 250발씩받고 잠든건 새벽1시쯤이었고,

새벽 3시에 총소리가 나고 학교 울타리에 1소대 2소대로 배치되었다 한다.

적들은 후퇴 하는척 하다 다시 진격하면서 학교를 포위하여

위에서는 박격포로 앞에서는 기관총과 따발총 그리고 수류탄을 던져

경험없는 학도병들은 수류탄에 맞아죽던지

 그 수류탄을 도로 북한군에게 던지든지 둘중 하나였다고 한다.

 

학도병 소년들은 연필과 공책 대신 실탄과 총을 받고서도

전쟁체험에 참가한 학생들처럼 순진무구하다.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학도병들은 큰 교전앞에 작은 교전을 치룬다.

괴물이라 생각했던 인민군도 우리와 똑같이 죽을때는 오마이를 불렀다.

낙동강 전투에 참가해 빨갱이와 장렬히 싸우다 죽겠다며 떠나던 갑조는

북한군 무기 차량을 훔쳐 돌아온다.

 

인민 766 유격대장은 학도병이 포항여중에서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

 찾아가서 2시간을 줄테니 백기를 게양하고 항복하라고 돌아간다.

"학도병은 군인인가?

학도병은 군인이다.

우리는 군인이다."

필사의 전투를 앞세우고 학도병들은 화염병을 만들고, 박격포를 장전하는등

 "가자 포화속으로"피로 쓴 머리띠를 두르고 겁쟁이 소년에서 전우들로 거듭난다.

"저쪽에서 총소리가 나기전에는 총을 쏘지마라"고

명령을 내리는 자는 TOP가수 출신인 최승현이다.

겁에 질려 소리없는 눈물연기에서

학도병을 이끄는 카리스마 눈빛 연기까지 훌륭하다.

폭탄에 불을 붙여 뛰어들고,수류탄에 자신의 몸을 묶어 적의 탱크로 돌진하여

포화속으로 들어간다.

석양빛에 물든 들판에서도,학교 운동장에서도,학교 교실에서도

쫓고 쫓기는 총소리는 나고

갑조와 장범,인민군 유격대장 무량도 옥상에서 최후를 맞는다.

뒤늦게 도착한 강석대 대위는

"미안하다.미안하다..."절규로 영화는 끝이난다.

어른들의 전략적 이익을 위한 전쟁은 그야말로 골육상쟁 이었고,

아비규환에서 가장 힘든건 너희들 어린아이들이었다.

추억으로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37개월간 전쟁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포항여중,현 포항여고는 "학도 의용군 6.25 전적비"만

유일하게 그날 참상을 기억하고 있다.

북한군 60명 사망 학도병 48명을 잃었다.

11시간 동안 4차례 교전을 벌인 학도병들은 20만명 넘는 피난민을 남으로 대피시켰고,

 낙동강 사수는 물론 이어진 국군과 연합군 반격에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