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감독-민규동
출연-배종옥,김갑수,김지영,유준상등
노희경 작가의 원작이름은 the last blossom으로
1996년 MBC 단막극과 연극에 이어 스크린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양평 강가에서 치매노모를 업고 서성이는 늙은 아들을 따스한 미소로 쳐다보는
인희(1958-2011)가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된 인희는 죽었다.
엄마를 대신한 딸은
동생의 아침으로 바나나,마를 갈아 영양 주스를 만들고
아빠를 위해 된장찌개를 끓이고
늙은 아들은 치매노모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엄마 없이는 하루도 못살것 같았던 남은 가족의 일상은 분주하다.
앤딩후 스크린에 오르는 장면은 죽은사람만 불쌍하지
산사람을 어떻게든 살게된다는 옛날말이 틀리지가 않았다.
제목만 들어도 쉽게 짐작이 가는 이별은 죽음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내나이와 동갑내기 김인희(배종옥)
부모를 일찍 여의어서 애미 애비 근본도 모르고
혼수도 제대로 못해온 며느리라고 구박만 받고 살다
15년전부터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며느리이고,,
의료과실로 자신의 병원을 거덜낸채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대학병원 월급쟁이
의사의 아내이고,
대학선배이자 직장 동료인 유부남과 부적절한 사랑을 하는
딸의 엄마이고,
대학 입학도 하기전에 여자친구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여친만 생각하는 철딱서니 삼수생
아들의 엄마이고,
포장마차로 간신히 살아가는 아내 주머니를 털어 도박중독에 폭력과 계집질로 허송세월만 보내는
남동생의 누나이다.
밖에서 보기에는 남부러울것 없는 의사 사모님 집안도
뚜껑 열고 들여다보니 별반 다를게 없다
전쟁같은 아침 출근을 시켜놓고 나면 설거지에 청소 빨래가 끝나기도 전에
밥 타령하는 치매 시어머니 밥 먹이랴,씻기랴,정작 자신은
화장실에 앉아 오줌 싸는 시간도 줄여야 한다.
어쩌다 친구를 만날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택시비를 아끼느라 버스를 타고
집에 두고온 시어머니 생각에 종종 걸음이 일수이다.
오죽하면 여자이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는 여자의 일생을 노래한
우리 보다 윗세대인 나이의 여자들의 삶을 보는것 같지만
눈만 돌리면 노인전문요양소가 득실거리는 요즘에도
인희처럼 혼자 짐을 지고 사는 여자도 많다.
맛있는 홍시를 사온 성의가 무섭게 던지질 않나,
며느리 머리 끄댕이를 잡아 흔들지 않나,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급기야는 구두주걱인지
나무막대로 어깨를 내리쳐 며느리를 쓸어뜨린다.
"피곤해"란 말을 달고 사는 남편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께요"라며 꿀린곳은 있어 짜증만 내는 딸년과
"나중에 나중에 가르쳐줄께"컴퓨터 좀 배우려다 애타게 하는 아들녀석
누구 하나 집안일은 신경쓰지 않아 온전히 엄마 몫인 그런 집구석에서는
건강한 여자라도 암 아닌 암이상의 병도 생길만하다.
그런 와중에도
지금 집에서는 시어머니가 겨울을 나기에 외풍으로 힘들것 같다며
오랜 꿈 이었던 양평의 전원주택을 완성해 이사하는게 목표이다.
온전히 인희의 삶을 희생하는 그녀가
잠깐의 시간을 쪼개어 집에서 할수있는 유일한 취미이자
꿈같이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것은
꽃잎을 따서 말리고 누르고 꽃누름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오줌소태가 그렇게 큰병이 될줄이야,
수술도 할수없는 말기암 진단에 남의 병만 고쳐주다
정작 자신의 마누라 병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니
제일 괴로워 하는건 의사인 남편일게다.
꼬이고 꼬였던 가족의 화해는 죽음을 맞이하며 한가족이 되는 듯하다.
배를 갈라 직접 눈으로 확인한 남편은 아내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끝날것 같지 않은 위태로운 사랑은
그남자의 아내가 써붙힌 잔소리와 가지런한 양복 셔츠를 보고
엄마 인희를 떠올리며 딸은 제자리로 돌아오고
대학도 들어가기전에 임신이네 어쩌네 하는 아들은
대학 진로를 정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 근덕(유준상)을 위해 생명보험을 들은
누나의 깊은 뜻을 헤아린 근덕이 단정한 머리를 하고
택시운전을 하며 사람이된다.
신파로 불릴만한 뻔한 스토리는
젊은이나 늙은이 극장을 찾는이들을 눈물 콧물 빼게 만든다.
특히 남동생으로 나온 유준상의 연기는 과히 볼만하다.
집기들을 부수는 장면에서는 저런 놈을 봤나,욕이 저절로 튀어나오다가
누나가 좋아한다는 호두과자를 사주며 목에 얹힌다고 내미는
사이다 한캔은 그동안 쌓였던 남매간에 말이 필요 없는 죽음앞에 화해로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무엇보다 영화의 제목처럼 아름다운 이별은 부부의 이별이다.
남남으로 만나 살을 섞고 자식을 낳고 하늘도 맘대로 갈라놓지 말라는 부부를
성격이 달라,돈을 못벌어,자식이 없어,지식이 모자라,가지가지 이유를 들어 헤어지는 현실에
김인희(배종옥)와 정철(김갑수)은 잘 견뎠고
강물이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양평에 전원주택은 완성 되었건만
둘은 죽음을 가운데 두고 이승과 저승으로 나뉘게 되었다.
마지막을 앞둔 그들의 애뜻한 사랑은
이글을 쓰고 있는 내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신혼때 말고 언제적에나 같이 목욕을 했을까,
인희를 씻기는 철이는 가슴이 메어진다.
때를 밀어 달라 등을 내밀기전에 빼꼼히 쳐다보는 남편을 둔 나는
아직 행복하단 생각이 든다.
둘째 아이를 어렵게 임신하고 누워 지냈던 열달 내내
새벽에 대모산 정기를 담은 약수를 길어다 김밥을 싸고
퇴근과 함께 장보기와 밥,청소, 설거지 목욕까지 시켰던 남편을 보고
남들 다 갖는 애를 유별나게 들어선다고 그때부터 시머어니에게 미운털이 밖혔다.
어쩌다 싸워 도망가려 하다가도 89년 그해의 수고를 생각해 조용히 꼬리를 내리게 된다.
마누라 한테 잘못 한것도 없는데 이렇게 눈물이 질질 나는 영화는 처음이라며
앤딩 음악이 흐르기전에 남편은 벌떡 일어나 나가 버린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별을 예고도 없이 닥쳐 상실감에 허덕이는것에 비한다면
어떠한 경우라도 한날 한시에 부부가 죽을수는 없는일이고
인희와 철이의 이별은 짧은 기간이나마 준비된 이별이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의 인생이 적어도 세계 평화라든지 아님 지구의 온난화 대책이라든지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의 진보대 보수의 화합이나
부동산 거품 만큼이나 심각한 비정상이 정의로 행세하는
사회의 이기적인 사고 예방을 걱정하는게 삶의 목표쯤은 되어야지,
언제적부터 마누라 죽을때까지 지켜주는것이
인생의 목표가 된 남편은 초라해 보인다.
"당신이 죽으면 바로 따라 죽을테니
당신도 내가 죽으면 이박삼일 발인전에 죽도록 혀."
길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봐도 그렇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네살이나 적게 먹었으니 사년은 더 살아야 맞는말이지
누군가 날 죽여주면 모를까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직 유효하다.
시모의 둘째 며느리이고 친모의 막내딸인 내가 무심이 지나쳐
인희와 시모사이의 고부간을 애기하는것 자체가 불경죄에 해당 되리라 여겨진다.
고부간에도 한남자를 사이에 두고 집착과 사랑때문에 생기는 것처럼
영화의 인희 역시 수많은 고통을 겪는다.
잠든 시어머니를 이불을 뒤집어 씌우며 오열하는 인희 때문에 정말 많이 울었다.
"아범과 내자식들 고생시키지 말고 나랑 같이 죽자,어머니,"
잠깐씩 제정신이 들때면 아픈 인희를 걱정하고
미워 하면서도 며느리인 인희만 찾는시어머니는
인희가 죽던날,화원에 앉은 인희의 어깨 상처에 입김을 불어
꽃잎을 하늘로 날린다.
환타지 풍경은 아름다운 이별의 최고점이다.
기타를 치며 백만송이 장미를 불렀던
마지막 날의 노래가 뇌리와 입에서 맴돈다.
자신의 모든것을 팔아 그녀가 머물고 있는 호텔앞을 백만송이 장미로 장식했다는
어느 여배우를 향한 무명 화가의 슬픈 사랑의 노래인
백만송이 장미
먼 옛날 어느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때만 피는꽃 백만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이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수 있다네.
비오는 날과 개인 날이 반복되는 꽃들의 계절 오월에는
아름다운 이별 이라도 이별은 하지 않고 싶다.
글 :李 貞
사진:다음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