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경복궁 야간 개장에 맞추어 나선길은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시간이라 한 정류장전인 안국역에 내려
인사동으로 들어갔다.
어린이날 사진전에 왔다 만지작 거리기만 하다가 사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마 스카프를 만원에 사서 목에 두르고 골동품과 민예품을 구경했다.
한국을 알리는 인사동거리에는 외국인이 더 많고 이곳의 물건들은
전통 우리것 보다는 중국산이 더 많단다.
내목에 감긴것도 아마 메이드인 차이나,
구름 사이로 비켜가는 노을이 보일락 말락
지붕위에 앉은 원숭이들도 일렬종대로 서서
궁궐 불을 기다린다.
경복궁은 조선시대 궁궐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궁으로
태조4년(1395)한양으로 수도를 옮긴후 세워졌다.
궁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배부르니 군자 만년 그대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입장료 삼천원을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와
경복궁(景福宮)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 뒤꽁무늬를 바라보니
리모델링한 벽면이 오히려 고궁답지 않다.
흥례문(興禮門)은 경복궁의 궁성 안쪽에 위치하는
첫번째 문이다.
문앞을 지키는 수문장들이 파랑 빨강 노랑옷을 입고
지키고 있다.
흥례문을 통과해 다리를 건너면
근정전(勤政殿)이 나온다.
개천위에 돌로 빚은 다리 이름은 영제교(永濟橋)란다.
다리 난간에는 상서로운 기운을 물리치는 천록,산예라고 불리는
돌짐승이 냇물을 바라보고 있다.
근정전은 국보 223호로 국가 의식을 치르고
신하들의 하례와 사신을 맞이하는곳
오늘의 사신들은 불구경 나온자들 이요.
하늘을 향해 부드럽게 솟아오른
근정전의 위풍당당한 지붕은 촐삭방정맞은 일본의 오사카성과는 다른
아름다운 선이 있다.
두손을 맘대로 쓸수있는 베낭은
남자 여자 상관없이 등짝이 허전한 사람이
메면 좋다.
해태상은 광화문앞의 해태상과 마찬기지로
불의 기운이 강한 관악산의 기운을 북악산이 막아내기 어렵다하여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로 여기는 해태로
관악산의 화기를 제어하고자 했던것이란다.
지금도 그렇지만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조선이 얼마나 많은
침탈과 자연재앙으로 한이 많은 나라였음을 알수있다.
흥례문안 근정전 앞마당에는
왕의 동쪽에는 문관이 서쪽에는 무관이 서는 자리를
대소신료들처럼 품석가 줄지어 있다.
흥례문에서 근정전의 집무실을 바라보며
걸어오는 나는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왕의 모습을 떠올린다.
통간으로 높은 천장 중앙에는
일곱개의 발톱을 갖고 있는 용 두마리가 매달려있고
일월오봉병(日月五烽屛)이 그려진 병풍앞
어좌위에서 왕은 신하와 정사를 논해
때론 덕치로 때론 수치로 스물일곱명의 각각 다른
공 과를 세웠다.
국가의 환란을 극복하여 변혁시기에 공을 세운 임금은 '조'자로 일곱이고
그런 상황없이 덕치만을 한 보통의 임금은'종'자로 열여덟이고
나머지는 임금축에도 목낀 '군'이 두명이란다.
백모를 강간하고 서모를 창살했던 연산군과
영창대군을 지져죽이고 인목대비를 폐모시켰던 광해군,
후대에 역사는 광해군의 실용주의 외교를 따랐다면
병자호란이라는 치욕은 없었다는 아쉬움이 크다.
고궁 구경도 좋고 불구경도 좋으나
다리도 아프고 기력도 딸려 댓돌위에 주저 앉았다.
왜그렇게 기운이 없나 생각하니
점심으로 국수를 잔뜩먹어 배부르다고 저녁을 안먹고
비스켓 한봉지와 두유 한병으로 대신한 때문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경복궁 안에는 먹을만한 식사거리는 없다.
버드나무 아래 돗자리 깔고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사람이 부러워
애꿎은 물만 들이킨다.
다시 기운을 차려 경회루에 도착하니
오늘밤 경회루장관을 담으려는 전문사진사와 내노라하는 찍사들의
카메라 전시로 발디딜틈이 없다.
국보 224호란 경회루는 외국 사신의 접대나 연회장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아름다운 연못속에 비친 경회루 누각과 물위에 뜬 정원은
경복궁에 들르면 반드시 들렀던 곳이기도 하다.
처녀 총각때 찍었던 그자리에서 다시 품을 잡고 앉아보니
버들잎 늘어진 경회루는 똑같은데
사람만 늙어서 다시 온것같다.
사람들을 헤집고 앉은 쇠고랑뒤에는 물이고 앞은 인파로
쑥스러운 표정이다.
흐르는 강물이 아닌 이연못의 물은 어떻게 관리를 하는지
푸른 아피리가 내비쳐 물빛도 푸른색이다.
혼자서 산으로 들로 다닐때는 피곤한줄 모르다가
날 데리고 다니는 서울 시내거리가 더 피곤하다면서도
등에는 이직 내 베낭이 달려있다.
야간개장으로 행여 침입사건이 일어날까 미리 염려하여
빨간줄을 그어 못들어가게 막은곳이 한둘이 아니다.
가까이에 청와대가 보이고 멀리는 북악산이 보인다.
배산임수 자리에 딱 들어앉은 청와대 자리는 워낙 기가 세서
사람이 앉기에는 분에 넘치는 자리로 보인다.
하여간 경치로 말할것 같으면 따봉이다.
사정전 계단에서 휴식을 취하며 야간조명을 기다리니
사정전에 불이 들어왔다.
사정전(思政殿)은 왕과 신하들이 정치를 논하는 편전이란다.
넋놓고 앉아서 지나다니는 사람 구경도 볼만하다.
우 하고 사람들이 움직여 벌떡 일어나 경회루에 가보니
경회루 처마밑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 광경을 보러 왔다는듯이 여기저기서
카메라 후레시가 터진다.
낮에는 푸른 연못이었던게 어느새 파란색 물빛으로 변해있고
그속에 황금색 건물이라니,
야경사진을 찍을줄 모르는 내실력으로는
경관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침전인 강녕전 교태전과
동궁인 자선당 비현각과,
고종이 건청궁을 만들때 지은 정자인 향원정도
막아서는 바람에 볼수없어서 아쉬었지만
밤 바람에 춥고 배도 고파 빠르게 궁궐을 나왔다.
"맑은 거울을 보는것은 모양을 살피기 위해서요
지나간 일을 돌이켜 보는것은 지금을 알기 위해서다."라는
공자의 말을 되새기며,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낮에는 어진이를 찾아내고,
저녁에는 법령을 닦고 밤에는 몸을 편안하게 하는
임금의 부지런함이 있어야 한다는 근정전의 가르침대로
왕은 백성의 맘이 편안한지 살펴야 하고
나는 너의 맘이
너는 나의 맘이 편안한지 살펴야 한다.
달빛 없는 오월밤 고궁에는
도깨비같은 불빛들이 쏟아져
별들도 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