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

불암산 1

초록별에 부는 바람 2014. 3. 19. 21:39

재경 141회 웰빙걷기 후기(불암산 둘레길)

 

일시-2014년3월19일 수요일

장소-불암산 둘레길

일정-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 3번출구(11:10)-공릉산 백세문-104마을 갈림길-삼육대 갈림길-헬기장

      -삼육대 갈림길-삼육대 정문-삼육초등학교로 하산(17:00)-길건너 담터고개 추어탕집서 추어탕 먹고 귀가

참가자-김미희,손진,이윤정,제성숙,한인숙(가나다순 이상5명)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크림반도에서 열강들의

땅따먹기 운동이 한창이든 말든 내가 살고 이곳에서는

언 땅이 녹아 풀들이 봄봄 하며 파르르 떨리고

가지는 새 순을 틔우고 있다.

이번주 운동 모임은 서울의 노원구와 남양주의 별내면에 위치한

불암산(508m)산의 둘레길로 정했다.

 

불암산은,

서쪽으로는 북한산이 마주 보이고

북서쪽과 북쪽으로는 도봉산,수락산이 각각 솟아 있다.

큰바위로 된 봉우리가 중의 모자를 쓴 부처형상이라하여

불암산이라 이름 붙였으며 필암산,천보산이라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 금강산에 있던 산이라고 한다.

어느날 불암산은 조선 왕조가 도읍을 정하는데

한양에 남산이 없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그래서 자기가 남산이 되고 싶어 금강산을 떠나

한양으로 출발 했단다

그러나 지금의 불암산의 자리에 도착하여 보니

한양에는 이미 남산이 들어서서 자리잡고 있었다

불암산은 한양의 남산이 될수 없었기에 금강산으로

되돌아갈 작정으로 돌아 서서 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한번 떠난 금강산에는 다시는 돌아갈수 없다는 생각에

돌아선채로 그자리에 머물고 말았다.

이때문에 불암산은 현재 보는것과 같이 서울을

등지고 있는 형세이다.

산에 날개가 달린것도 아니고 다리가 달린것도 아니것을

금강산에서 한양까지 와서 붙었다니 이리 오너라 한방이면

끝나는 기막힌 전설이다.

 

기반암은 화강암이고 돌아가신 임금을 지키는 산이라 하여

주위에 태릉.강릉등 많은 왕릉이 주변에 위치한다.

 

태릉은

조선11대 중종의 두번째 계비인 문정왕후의 무덤이다.

중종의 정비인 단경왕후 신씨가 폐위되고 인종을 낳은 장경왕후가

산후병으로 엿새만에죽자 두번째 계비를 맞이했는데

그녀가 문정 왕후이다.

그녀는 인종의 외척인 윤임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을사사화를 일으켜

조정의 정적을 제거하여 한때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인종이 즉위 8개월만에 세상을 뜨자 12살인 그녀의 아들이

명종 왕이되어 8년간 수렴청정을 하며 동생인 윤원형에게

정권을 쥐게 하였다.

원래 문정왕후는 중종이 있는 정릉에 묻히길 원했으나

장마철 침수로 인해 태릉에 묻혔다.

 

강릉은 조선의 13대 명종과 왕비인 인순왕후의 무덤이다. 

어머니와 아들이 가까운곳에 잠들어 있다.

 

어찌됐던 죽어서까지 드러눕고 싶은 명당의 기운이 폴폴나는

동네인 화랑대역에서 머리는 모자로 눈은 썬그라스로

얼굴은 마스크로 완전무장한 그녀들을 만났다.

안그래도 어디 한번 나가려면 빠트리고 나서는게 한두개가 아니거늘

시도 때도 없이 미세먼지니 황사니 오염지수가

올랐다 내렸다 하는통에 이제는 마스크까지 상시 휴대품으로

챙겨야 할 판이다.

그것들 경제대국 투까정 올랐다고 서울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국을 떼로 몰려다니며 쓰는돈

반만이라도 아껴서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를 바람에 넘어가지 않도록

꼭꼭 심어서 먼지좀 여기까지 안 날라오게 할수는 없는지 의문이다.

마시면 폐암걸리고 뇌졸증 걸린다길래 아직은 죽기 싫어

황사 마스크 한개를 얻어쓰고 아파트 사이사이로 지나가니

봄을 통째로 화분에 담은 꽃들이 반긴다.

오늘 일정인 둘레길의 들머리인 공릉산 백세문이라

멋지게 휘갈려 쓴 대문을 통과하여 폭신폭신한 흙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이리봐도 소나무 저리봐도 소나무 불암산 자락에는

사방 팔방으로 소나무가 많았다

온 몸을 열어 은은한 소나무의 향내를 맡고 싶은데

황사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채 숨을 쉴려니

갑갑하고 소나무 냄새도 없는듯하다.

 

오늘 가이드를 자청한 그녀가 서있는 철사 담벼락문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이 떼로 줄지어 뜀박질하는

극기훈련장소이기도 하다며 안그래도 키큰 그녀가

날씬한 다리포즈를 하고 한컷 했다.

그녀의 체구만큼이나 걸죽한 입담으로 장장 몇시간의

산행이 이어졌다.

불암산 삼육대 생태 경관 보전 지역에는

중부지방의 극상수종인 자작나무과 서어나무와

신갈나무,물푸레 나무,대사초,비비추등 112종과

딱따구리,뻐꾸기,곤졸박이,박새등 12종의 새들이

분포 한단다.

아직 황량한 생태경관 보전지역에도 머지않아

서어나무 이파리가 파릇파릇 시원한 바람이

불어 줄것이다.

 

 

 

 

 

 

 

 

 

 

 

 

 

 

 

불암산 정상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쉬고

이길을 걷다가 꼭 한번쯤 쉬어가야 하는데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차를 마셔줘야 한다"는

그녀의 말대로 차마시기 좋은 장소에서

또 쉬고 마시고 찍었다.

우중충한 날씨에는 빨강색 잠바와 흰모자가 제격이고

어디서나 정보통인 그녀는 돌멩이에 앉아서도 열공중이고

나보다 이삼센티 크다고 다리 벌린 그녀 포즈 쥑이준다.

 

가다 쉬다 먹다 시간 가는줄 모르게 쉬엄쉬엄 가다보니

어느덧 헬기장까지 도착했다.

시간은 점심을 훌쩍 넘어 오후로 넘어가는데

하늘은 성질난듯 찌뿌등하고 하나 둘 떨어지는 빗방울에 놀라

정상을 코앞에 두고 오던길로 돌아서 내려와 삼육대 갈림길에서

한나절 반나절하는 나절기를 걸어 내려왔다.

불암산 둘레길에는 이름도 이쁜 나절기,맨발길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소나무 사이로 오르지 못한 불암산 정상을 바라보고

비에 젖을세라 정신없이 내려와보니 비는 커녕

폴폴 날리는 먼지만 바지가랑이에 옴팍 뒤집어쓴채

삼육대 캠퍼스를 통과하여 삼육초교로 하산했다.

 

 

 

 

 

오전 열한시 조금 넘어 시작한 산행이 마무리 되고

삼육초교 길 건너편에 위치한 오십년 전통의

담터고개 추어탕집에 도착하니 오후 다섯시가 넘었다.

얼추 8km 거리를 여섯시간 걸리다니,

퍼질러 앉아 수다 떤 시간 빼고 다섯시간은 걸린거 같다.

날 잡아 숲속에서 노는것은 눈 깜짝하면 반나절이고 한나절이다.

능력있는 그녀들의 재태크와 세태크 강의를 아무리 귀를 열고 들어도

못 알아들어 오히려 속 편히 사는 나는 벙어리 신세지만

세상 사는 인간의 관심사가 어찌 돌아가는지 많이 배운 하루였다.

학교에서 배운것은 바싹 마른 소나무 나무껍질에 불과할것이고

사회에서 배운것은 솔향기 가득한 소나무 진액과

살아 푸름 주고 죽어 기둥 주어 아끼없이 한몸 내주는 나무처럼

무궁무진하게 많을것이다.

암튼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으니 배워서 나도 좋고 남도 주려면

죽을때까지 정신줄을 꼭잡고 배워야겠다.

불암산 자락에는 소나무가 많아서 기분이 좋았다.

빠져나간 기력을 장어는 아니래도 미꾸라지 단백질로

배터지게 보충하였다.

이미 폐업하여 공장 문닫은 나는 상관없다만

기력 넘쳐 밤새 보채면 어찌 할라고 그녀들은

기보강 시켜줄 남편들 몫까지 챙기고 나니

집들이 멀어 한참을 가야하고 이럴땐 서울이 넓은게 싫다. 

 

생전가도 지랄같이 예민한 성격탓에

차속에서 꾸벅꾸벅 조는일이 없던 내가

전철 속에서 안내양 말이 꿈길 안내 방송길로 알아듣고

아침부터 서둘러 집 나서서 꺼멓게 어둠이 드리워져서야

디엠시역에 도착했다.

화랑대 역에서 보아 놓고 사지 못했던 호박 고구마가

트럭 옆구리에서 제발 사가라고 부르는것 같았다.

말 자지만한 미끔한 고구마가 호박 고구마인지 물어보니

맞다는 말만 믿고 한봉지에 삼천원인것을

오천원에 두봉지로 횡재하여 사들고

떼르릉,전화벨이 울리고 마중나온 그에게

검정 봉다리를 안겼다.

길고도 짧은 삼월 어느 하루가 이렇게 지나가고

추억의 한페이지를 남겼다.

 

 

 

이틀뒤,

 

뜨거운 물을 보온통에 담고 잘 생긴 호박 고구마인줄 알고 샀던

구운 밤고구마 두개를 넣은 베낭을 메고

다시 찾은 공릉산 백세문은 그자리에

있었다.

공릉동 뒤쪽에 있는 산을 주민들이 공릉산이라 부르며

공릉산이 되었다는 낮으막한 동네산은 불암산의 자락으로

연결되는 산인듯 하였다.

 

 

 

 

오늘은 제대로된 봄이 온듯 강한 햇살이 눈이 부시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 몇조각이 참 아름다웠다.

오후 두시를 넘어 엊그제 나는 맹물만 가져가 이것저것 얻어

그녀들과 계란 까먹고 고구마 먹던 자리에 서 보았다.

사과 먹고 떡 먹었던 정자마루에도 앉아 보고

내일보다는 오늘이 가장 이쁘다는 개띠 폼으로

엊그제 그녀가 앉아서 더 미끌대는 바위돌에서 소나무와 여인,

자연의 일부였다.

아마도 바위밑은 숨도 쉬고 물도 있겠지만

바위돌을 뚫고 나온 나무가 경이롭고 위대했다.

 

헬기장에 발을 딛고 940m남은 정상을 향했다.

이길은 초롱이를 데리고도 여러번 왔던길이고

다롱이의 무덤가는길 이라는데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들은 뒷다리 하나가 절단된채 버려진 하얀 토이푸들

한마리를 안고 왔다.

푸들중에서도 토이푸들은 이킬로그램이

채 나가지 않는 작고 귀여운 종이다.

어디서 어떻게 다리가 절단된지는 모르지만

주인에게 버림받고 잘려나간 다리때문에 또 상처받아

얼굴은 이쁜데 성격은 엄청 까칠 했었다.

아픈아이를 다롱이라 이름짓고 그땐 초롱이를

식구로 들인지 얼마되지 않아 철이 없어

한꺼번에 뛰거나 밥 달라고 짓을때는 개판이었다.

질질 끌고 다니는 뒷다리 관절위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처음부터 셋달린 강아지마냥 폴짝폴짝 잘 걸어 다녔다.

사람도 노숙인은 건강이 많이 상해 있듯이

버려진 강아지도 건강이 안좋기는 마찬가지라

우리집에 온지 일년이 못되어 온집안 구석구석 다니며

열흘간 똥질을 한뒤 죽었다.

왕이 죽어서도 오고 싶었던 불암산 자락 양지 바른 명당에

세명의 아이들이 적은 편지와 함께 묻어준 산이 불암산이다.

벌써 십칠년이 넘은 이야기이다.

내손으로 세마리를 묻었는데 멀리 원주에 있는놈은 빼고라도

지금은 그녀석들 하나는 봉산에 하나는 불암산 자락을 넘나들며

씽씽 날라서 만날것만 같다.

 

상계동에서 올라오는 깔딱 고개를 지나자 왕바위들이 많은

드디어 불암산의 영험한 바위가 지 모습을 들어내고 있었다.

거북이상을 한 바위와 두꺼비상을 한 바위

이리보면 동물같고 저리보면 사람같이 보이는

보는사람 맘대로 이름지어낸 바위들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태극기 꽂아놓은 꼭대기는 무섭고 위험해서

오르기는 포기했다.

 

방송인으로 유명한 최불암이 불암산의 이름을 빌려 쓰고

염치없어 용서를 구한다는 시 한구절이 눈에 띄었다.

최불암의 본명은 최영한이다.

 

 

 

 

 

 

하산길도 엊그제 내려온대로 삼육대 갈림길에서

삼육대 부지를 마련하고 삼육신학원 원장을 역임한

이제명 목사의 이름을 딴 제명호를 지나쳐

삼육대 캠퍼스에서 산행내내 참았던

볼일을 봤다.

서울에서도 돈자랑 깨나 하는 자제들이 다닌다는

사립 삼육초교를 거쳐 담터고개 추어탕집에 도착했다.

연거푸 불암산 등산으로 초췌한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추어탕 사인분을 두개로 나눠 포장을 부탁하니

일회용 그릇이 넘치도록 빵빵하게 많은 양을 준다.

군대 제대하면 부대 있는쪽으로는 오줌도 안 누고

내무반에서 같이 뒹굴었던 선후임들도 길가다 만나면

눈도 안 마주친다는데 어쩐일인지 아들녀석은

두달 후임 두명이 집에와서 하루밤 묵고 간단다.

오늘도 집으로 들어가는길에 검정 봉다리가 들려 있다.

밤 늦게 온 손님이 어찌 생긴지도 모르게 자고

두번 산행으로 피곤한 몰골을 하여 다음날 아침

후임녀석들을 보니 등치는 산만하고 키는 또

아들 머리통 두개나 더 얹힌것 모양

키크고 잘생긴 녀석들이었다.

아침부터 추어탕 한사발씩 몸보신 시켜 보내고 나서

불암산 사진을 들쳐보니 감회가 새롭다.

 

오지 안했더라면 기억에서 사라졌을 추억을 되새겨준

소나무산인 불암산 둘레길 산행의 안내를 자청한 그녀와

항시 걷기에 동반해서 건강도 챙겨주는 그녀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소나무

 

뒤틀린 삶이 모질더라도

너는 울울창창 하늘을 찌른다

 

짓밟고간 자리에도 붉은 줄기 닳아

끈질긴 무한한 생명이 흐른다

 

하늘 향해솟은 나무 그늘아래

그대 그리움 솔향기 같구나.

 

2014년3월23일 씀

글-이 정

사진-김미희,손진,이윤정

참고-태강릉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