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산행

설악의 쥐라기

초록별에 부는 바람 2015. 6. 17. 11:42

 

 

 

일시-2015년 6월8일~6월9일

장소-백두대간 북진 설악산 구간

코스-한계령 휴계소(1004m)-서북릉 갈림길-끝청-끝청 갈림길-중청 대피소-대청봉(1708m)-소청 갈림길-희운각

      -무너미 고개-신선봉-1275봉-나한봉-마등령-마등령정상-1327봉-삼각점-1250봉-너덜지대

      -저항령-황철봉-1318.8봉(황철북봉)-너덜지대-1319봉-너덜지대-미시령 휴계소(826m)

 

백두대간길 23.73km+접속구간0km=23.73km

산행시간 총 21시간(8일 10.3km를 8시간+9일 13.7km를 13시간)

 

 

 

보리 이삭이 패고 진초록 녹음이 무성해지는

유월이다.

 

백두대간 설악구간이 있던날 새벽바람은

추위도 더위도 없이 상큼했다

여덟번이 당일구간과 한번의 무박 구간을 합쳐 백두대간길을 따라나선지

열번째 되는날은 일박이일 구간이다

가뭄으로 설악 계곡이 물이 말랐다는 사전 정보로 챙겨야할 생수와 얼음물이

내가 일리터 남편이 오리터로 무려 육리터에 이틀간 먹을 다섯끼 식사와

갈아입은 옷까지 챙기다 보니 두배로 빵빵해진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하나둘 모여드는 일행들은 버스에 올라 이제 제법 안면이 트인 산우들과

반갑게 재회를 하고 버스 의자에 앉았다.

 

백두대간 구간중 가장 빼어난 경치와 동시에 밧줄타기와 오르락 내리락

힘든구간이라는 소리를 익히 들어 오늘과 내일 산행의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눈을 감고 있어도 머리는 깨어 온갖 잡생각이 든다.

일상탈출하는 일박이일이 일행들도 설레기는 마찬가지인가

여기저기 수런수런 이야기가 끝이 없다.

 

보통의 사람들이 산 이야기가 나오면 설악산은 빠지지 않는다

그중에 마등령에서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암봉능선인 공룡은

산행 좀 하는 사람은 꼭 가봐야 할곳이라고 자랑질하던 남자와

공룡능선 다녀오면 무릎 다 나간다고 갈곳이 못된다는 여자와

쌩쌩 앞질러 못말리는 아줌마 득살에 오히려 뒤쳐졌다는 아들과

예전보다 많이 정비되어 걷기 쉬운길이 되었다는 남편 말중에

나에게는 어떤말이 해당될지 기대가 된다.

 

깔짝깔짝 외설악에서 맴돌던 젊은날의 기억은

설악의 언저리에 들어서는 순간 피부에 와닿는 서늘한 기온과

멀리 보이는 하늘을 지르는 침봉들의 나래비에 또 한번 놀랐던게

설악의 추억이다

그리고 이년전 휴가나온 아들과 남편 셋이서 오색에서 끝없이 오르고 올라

드디어 대청봉에 올랐던 순간 숨 막히게 좋았지만

정상석을 붙잡고 인증샷을 남기는 북새통 사람들팀에 끼어

구도와 인물 배경의 핀트가 어울리지 않은 사진이 아쉽게 남았었다.

최남선은 '설악 기행'에서

"금강산은 너무 드러나 마치 길가에서 술파는 색시같이

아무나 손을 잡게된 한탄스러움이 있음에 설악산은

절세미인이 골짜기속에 있으되 고운 모습으로

물속의 고기를 놀라게 하는듯이 있어서 참으로

산수 풍경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이라면 금강산이 아니라

설악산에서 그 구하는 바를 비로소 만족 할것이다"

"금강산은 수려하기는 하되 웅장한 맛이 없고

지리산은 웅장하기는하되 수려하지 못한데

설악산은 수려하면서 웅장하다."라고 설악의 절경을 말했다

금수강산인 한반도에 일찍이 금강산의 그늘에 가려진 설악산의 경관이

금강산만큼이나 아름답다는 표현으로 들린다.

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산과 바다 사이에 기이하고 훌륭한 경치가 많다."라고 했다.

빼어난 절경으로 다녀온 사람마다 칭찬해마지 않는

설악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남한에서는 한라산 지리산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

일년중에 다섯달은 눈이 쌓여 있을정도로 눈이 많이 온다하여 붙은 이름이고

'설뫼'설산''설봉산'이라고도 불렀다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그면적은 373제곱킬로미터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전에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1981년 유네스코에서 설악산의 경관과 생태보호를 위해 생물보존지역으로

지정했다.

그뒤 남설악 남쪽의 점봉산 일부가 설악산 국립공원으로 포함되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속초시와 고성군 인제군에 걸쳐 있다

주로 외설악과 내설악 남설악으로 나뉘는데

외설악은 동해에 근접한 설악동과 천불동 계곡 권금성 비룡폭포 비선대를 품고

내설악은 십이선녀탕과 백담계곡 가야동 구곡담이 있는 서북쪽을 말하고

남설악은 대청봉 오르는 오색과 주전골을 말한다.

그리고 북설악은 금강산 건봉사와 통일전망대까지 끼고 있는

금강산 영역이다.

 

그중 내설악은 백담사를 기준으로 백운동계곡 수렴동 계곡 가야동 계곡으로 이어진다

가야동 계곡에서 출발해 외설악의 설악동에서 넘어오는 마등령을 넘어 오르면

다섯살배기 어린 동자승의 전설이 깃든 오세암이 나온다

용아장성능선을 넘으면 봉바위 아래에 우리나라 암자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봉정암에 닿는다.

송강 정철은

"설악이 아니라 벼락이요 구경이 아니라 고경이요

봉정이 아니라 난정이라."고 했다

봉정암을 찾아 오르다가 소나기와 뇌성벽력으로 큰 고생을 하고

설악산소감을 비유한 말이다.

 

내 기억에 설악산 하면 떠오르는 외설악은

입구인 설악동에서 신흥사를 거쳐 계조암에 이르면 흔들바위가 있다

한명이든 열명이든 흔들면 일정한 간격만큼 흔들린다는 흔들바위와

808개 고통의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사방이 절벽으로된 높이 950m의

울산바위가 있고

바위에 부딪칠까 두려워하면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던 권금성과

용 한마리가 승천하는 모양새로 쭉 뻗어 내리는 비룡폭포와

설악의 백미로 여겨지는 천불동 계곡의 깍아지른 절벽위에 위태위태한 소나무가

아닌가 싶다.

신흥사 일주문을 지나 왼쪽으로 가면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나온다

천불동 계곡의 시원한 담과 소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데

천불동 계곡 입구에 있는 너럭바위인 와선대는

옛날 마고선이란 선인이 다른 선인들과 바둑과 거문고를 타면서

산수의 경치를 누워서 감상하던 곳이고 와선대에서 놀던 마고선이

하늘로 올라간곳이라는 전설를 가지고 있는 비선대는

금강산의 만폭동에 견줄만한 경치로  설악산의 대표적인 명승지로

꼽는다.

 

대간길을 걸으면서 매번 새로운 우리땅을 걷지만

한계령에서 끝청 중청을 거쳐 공룡능선을 지나 마등령을 넘고

저항령 황철봉지나 미시령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남한에서 가장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설악의 품이고

백두대간길중 가장 어려운 길이라고들 말한다.

 

 

설악의 주봉인 대청봉에서 황철봉까지 하늘의 장막으로 들어서기 위해

드디어 빨강버스는 천미터 고지에서 일행을 풀어 놓았다

설악의 남쪽에서 외설악과 내설악의 경계가 되는 지점이고

인제와 양양의 경계이기도 한  한계령 마루터기에 있는

휴계소가 오늘의 들머리이다.

오전 열시가 조금넘어 경비초소를 지나쳐 설악루에 오르니

당신의 심장은 안전한지 체크하라는데 숨가프고 눈 침침하고 머리아프고

긴 산행시 모두 해당사항이라 걱정되지만 벼르고 벼르던 설악구간이라

구급약 준비하고 출발이다.

 

천미터 고지에서 천삼백오십여까지 2.23km를 치고 오르면

대승령에서 귀때기청봉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을 지나 주먹밥으로 점심을 때우고는 끝청을 향해 걸었다.

해발 1604m의 끝청까지는 4.05km이다.

인가목이라 하는 산 해당화가 산길에서 수줍게 웃고 있고

중청 기슭에 몇 안 남은 철쭉꽃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검은색의 요강나물꽃과 노랑색 제비꽃등 무수한 야생화가 지루한 등산길에

만나는 행운이라지만 아직 걷기도 바쁜 몸이라 솜다리꽃이나 기생꽃등이

눈에 들어와도 꽃도 이름을 불러줘야 좋아한다더만

금방 그 이름을 잊어버린다.

무수한 봉우리도 그렇고 꽃도 그렇고 누가 다 그 많은 이름을 지었는지

참말로 조화가 넘치는 세상이다.

 

 

점점 하늘을 향해 고도를 높여 오후 네시넘어 중청 대피소에 다달았다.

여태 걸어왔던 가파른 오르막에 비하면 평지길이나 다름없는 눈앞에 보이는

정상능선은 부드러웠다.

대청봉 능선길에는 설악산에서만 볼수있다는 작은키의 바람꽃이

있다.

 

여자의 질투로 만들어진 꽃답게 꽃말도 속절없는 사랑이다

산장에 무거운 베낭을 벗어두고 스틱만 들고 등으로 쏟아지는 햇살과

얼굴로 와닿는 설악의 바람을 맞으며 대청봉 정상능선 육백미터를 올라

대청봉(1708m) 정상석을 밟았다.

 

오후 내내 달구워진 정상석 바위가 따끈했다.

월요일 이라 정상석 부근에 등산객은 일행빼곤 거의 없어

붉은글씨 대청봉이 나오도록 서서 찍고 앉아 찍고

발아래 설악을 둔채 두눈에 담기에는 너무 많은 설악의 경관을

바라봤다.

 

 

서북능선 용아장성 공룡능선 화채능선 멀리 울산바위까지

이리저리 설명은 들어도 걸어온길은 짧고 앞으로 걸어갈길이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진다

울퉁 불퉁 삐져나온 바위들의 행렬이 내일 걸을 공룡능선임을

확인하고 오늘밤 잠자리를 예약한 희운각 대피소를 향했다.

대청봉에서 희운각 내려가는 하산길은 가파랐다.

 

 

드디어 오전 열시넘어 시작된 산행은 오후 여섯시가 조금지나

한계령에서 희운각까지 여덟시간 산행끝에 도착했다.

산그림자가 어둡게 내려앉은 희운각에는 이미 도착한 등산객과

일행으로 고요한 산중에서 모처럼 고기굽는 냄새와

사람들 목소리가 반갑게 들렸다.

라면 끓이고 스팸 구워 조용히 저녁을 먹다 일행들 성화에

고기굽는 자리까지 합류하여 즐거운 저녁 한때를 보냈다

밤이 되어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설악에는 정적만이 감돈다

별들이 소근대는 소리에도 심장이 두근두근 잠은 안오는데

그날밤 희운각에 코골이 합창으로 설악의 별이 졸때쯤

선잠을 깨웠다.

 

   

 

설악의 깊은 숲속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타의로 고립된다해도 고독의 가치를 깨달았을

높고 깊은 산중의 밤은 긴 잠이 필요없이 정신이 맑았다

네시도 안된 새벽에 캄캄한 대피소 식당에 들어섰다.

진공포장된 육계장에 어젯밤에 지어놓은 밥을 말아 새벽밥을 먹고

어젯밤 싸놓은 주먹밥을 베낭에 집어넣고 일행보다 삼십여분 빨리

대피소를 나섰다.

 

 

'곧은 나무가 먼저 갈리고 감미로운 샘물이 먼저 마른다.'더니

경치 만큼이나 물많고 물좋기로 소문난 설악산에서 어제 오늘

물 한방울도 구경 못했다

허기사 전국이 지독한 가뭄으로 몸살이라 강원도 설악에도 산길은 먼지를 내뿜고

대피소 아래 계곡이 바닥을 드러냈다.

희운각 수도 꼭지는 잠겨진채 물이 말라 어제밤 대피소 매점이 문을 다기전

미리 사둔 생수를 다시 베낭에 채우고 먹은 쓰레기까지 채우니

하루가 지났어도 베낭이 무겁긴 마찬가지이다.

매점은 밤 아홉시에 문을 닫고 다음날 여섯시에 문을 연다.

등짝이 휘청거리도록 빵빵해진 베낭을 짊어지고 앞서 가는데

하루만에 뱃가죽이 등짝에 달라붙은거 같다.

백두대간 이어가기 위해 식사량을 조절하면서도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은 사람처럼 배 고파죽겠다는 말을 달고 사는 남편도

저녁한끼 기분좋게 먹고나면 기본으로 일이킬로 느는것은 일도 아니다.

 

 

희운각을 출발하여 이백미터 지나 무너미 고개에 이르르자

설악의 새벽공기와 서늘한 바람이 어슴하게 새벽을 깨운다.

유월 초여름 싱그런 나무 이파리가 새벽 바람 마시고 쑥쑥 자라는거 같다.

숲속에 가려질땐 몰랐다가 초록잎 사이로 희뿌연 암봉들이 얼굴을 내밀땐

설악의 품에 안긴걸 실감난다.

 

 

멀리 보이는 어마어마한 바위들을 통과해야 공룡능선을 지난다니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벼르고 별러서 난생처음 등반하는 공룡능선을 타기위해 나선길이라

마음을 다 잡고보니 처음부터 암벽등반이다.

 

 

이미 공룡능선에 들어선셈이다.

공룡능선은 내설악의 용아장성능선과 함께 설악을 대표하는 암봉능선으로

마등령에서 대청봉까지 이어진다

 

.오히려 스틱이 거추장스럽고 팔 다리 온몸으로 올라선 봉우리가

신성봉이란다

신선봉을 지나 기암절벽을 바로 옆에 두고 걷다 보니

어디서 부터 이런 바위덩어리가 생겼는지 자연의 위력에 놀랄뿐이다.

 

 

동해로부터 피어오르는 아침해가 반짝거리는것도 모른채

바위 돌속에서 시름하다 어느새 오른 1275m봉이다.

1275봉은 공룡의 최고봉이다

오른쪽으로 외설악 범봉과 천화대 일대가 눈에 들어온다

희운각 대피소에서 3.1km지난 지점이다.

걸어온 설악의 마루금과 서쪽으로 용의 이빨을 드러낸 용아장성능과

동쪽으로는 화채능선등 설악의 장막들이 넘실댄다.

 

이제 티라노 사우루스의 허리선쯤 다았을지 기이한 바위의 모습들에

시간가고 힘든줄 모르게 눈이 바빴다.

 

 

멀리서는 곰의 등같은 능선이 가까이에 들어서니

두꺼운 책을 쌓아올린 형상바위,이리보면 곰 저리보면 호랑이를 닮은바위

귀신보다 무섭다는 사람얼굴을 닮은바위,부처와 예수를 닮은 바위

심지어 설악이 기운센 남성미를 자랑하듯 발기된 성기를 형상한 바위까지

공룡능선길에 가지각색 기이한 바위들이 나래비로  서 있었다.

 

 

하늘을 찌를듯한 바위옆길로 등산객이 걷기 편한 정비된길을 걸어

나한봉에 이른다.

나한봉은 내설악쪽에서 보면 오세암을 수호하는 봉우리이다.

공룡의 등에 탄 이후 신선봉,1275봉,나한봉 세개이 꼭지점을 지나고

또 거기서 2.1km를 더가서 마등령에 도착했다

일행중 어제 오후에 무시무시한 공룡을 타고 오세암에서 하루밤 묵은 일행과

만나기로 약속된 삼거리에 도착했다.

 

 

삼거리에는 매혹적인 꽃향기가 진동했다

분명 라일락 향기인데 미스킴 라일락이라고 하며

우리말로는 정향나무라고 한단다

작은꽃들이 모여 꽃송이를 이룬 연보라색꽃 향기에 취하고

설악의 경치에 취해 이리저리 셔터를 누르는 남편은 등산할랴 사진찍을랴

두 배로 바쁘다.

산능선 곳곳에 핀 하얀 산목련은 청초했다.

책에는 삼목련을 함박꽃나무라고 적혀있었다.

 

 

오세암은

내설악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백담계곡의 한가운데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다.

백두대간 분수령에서 흘러내리는가야동계곡,구곡담 계곡,백운동 계곡

서북능에서 발원하는 작은 귀때기골,큰 귀때기골,대승골 물줄기가 모두 모여

백담계곡이 된다.

거기에 있는 백담사는

신라 진덕여왕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한계사라 하였다

오랜 역사를 통해 절 이름도 여러번 바뀌고 이사도 많이한 절로 손꼽힌다

내설악으로 가는길의 첫 문턱으로 외설악의 신흥사와 대조적이다.

충남 홍성 사람인 만해 한용운 1984년 동학혁명에 가담했다 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1896년 설악산으로 들어온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25세때 백담사로 돌아와 출가하여 백담사에서 사미계를 받았다.

만해는 백담사와 오세암을 오가면서 민족 수난의 통분을 달랬다

3.1운동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른후 백담사에서 현대 문학사에 빛나는

'님의 침묵'을 탈고 했다.

 

"님은 갔습니다. 아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는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는 옛 맹세는 차디찬 티글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 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때에 미리 떠날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뿐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때에 떠날것을 염려하는것과 같이

떠날때에 다시 만날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로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오백년 조선역사가 막을 내리고 나라잃은 설움의 침묵 시대에

이별과 만남으로 희망을 거는 기대의 시로 해석된다.

백담사는 전라도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정권을 잡은 전직 대통령이

25개월 칩거한 절이기도 하다

 

내설악 백담계곡을 따라 오르면 영시암이 있다

조선시대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라는 시를 남겼던

김상헌의 증손자이자 숙종때 을사환국으로 사약을 받은 김수항의 아들인

감창흡이 창건한 암자이다

당파 싸움을 피해 세상과 만나지 않겠다는 "영원히 맹세함"이란 뜻에서

영시암이라 지었다

한국전쟁때 소실된후 복구하였다.

 

영시암에서 한시간쯤 오르면 오세암이다.

신라 선덕여왕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관음암이라 불렀다.

그뒤 조선 인조때 설정선사가 중건하여 오세암이라 하였고

한국전쟁때 소실되어 재건하였다

생육신 매월 김시습이 세조가 단종을 축출한후 세상과 결별하고

칩거했던 곳이다

그의 별명인 '오세신동'을 따서 지었다고 전해지는 설이 있고

다섯살 동자를 먹여살린 파랑새가 되어 날아간 관세음보살님의 전설이 깃들어

득도한 다섯살동자를 따서 이름지어졌다는 설이 있다.

 

노산 이은상은

"창파를 잡아당겨 발밑에 깔고

내노라 빼어오른 설악산 청봉

매월이 놀던데가 어디메던고

뎅그렁 오세암의 풍경이 운다."라고 지어

매월과 노산의 인연으로 전해지고

 

노산의 '설악행각'에서

"깊은 산 가을밤에 빗소리 구슬프다

저 스님 무슨 생각에 눈을 감고 앉았는고.

나도 따라 눈 감고 앉아 빗소리를 들어본다.

빗소리 눈감고 듣지 말게 가슴 젖어 드느니."라고 지었다.

 

휴식도 잠시 희운각에서 뒤늦게 출발한 일행과 재회하고

먼저 떠난 오세암팀을 쫓아 뒤따라가 마등령 정상을 찍고

1327봉에 올랐다.

마등령은

말의 등처럼 생겼다고 하여 말등이 마등이 되었다고 한다.

 

뒤돌아 보니 어제 오늘 걸어온 설악의 산 마루가 푸르게 출렁거려

현기증이 날지경이다.

 

서쪽으로는 내설악 일대가 동쪽으로 멀리 동해와 저항령계곡을 넘어

설악산의 얼굴이라는 울산바위가 크게 보인다

울산바위는

아주 오래전 금강산에 애착을 가진 산신령은 일만이천봉으로 하고

가지각색으로 형체를 꾸미려 전국 산에다 큰바위를 금강산에 보내라는

엄명을 내렸단다

경상도 울산에 있던 이 바위도 금강산 여정을 위해 길을 떠났단다

허나 덩치가 워낙 큰지라 이 바위가 설악산에 이르렀을때

대회는 이미 끝나 다른 바위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허탈하고 힘빠진 이 바위는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접고

그냥 설악산에 눌러앉았다는 전설이 있는 울산바위는

사방이 절벽으로 날아가는 새도 앉기 어렵다는

여섯개의 봉우리의 거대한 돌산이다.

초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암봉위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공룡구간을 무사히 통과하고 저항령을 향해 세시간은

계속 줄달음쳐야 한다.

저항령 가는 도중에  나무그늘을 찾아 평평한 산길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제 길바닥에 앉아 점심 먹는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꿀 같이 달콤한 휴식시간이다.

산행고수들은 잠시잠깐 앉아 점심과 휴식 중간에도

무거운 등산화를 벗어던지고 양발까지 벗어 발가락이 숨 좀 트이게끔 하더만

망건쓰다 장 파한다는 말이 실감나게 벗었다 신었다 산행중 행동도 굼뜬 나는

그럴 시간적 여유를 부릴수 없고 땅바닥에 엉덩이 붙이는것만으로 감지덕이다.

아직 갈길이 구만리라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산행중이다.

1250m봉을 지나 말로만 듣던 너덜지대가 나온다.

 

하늘에서 흩뿌려놓은 지랄같은 돌덩이의 행렬은 기막혔다.

천사와 악마가 있다면 악마의 짓일게 분명하다.

넓적한 바위돌은 뛰든 걷든 발바닥만 닿으면 넘어지지 않고 잘가겠는데

뾰족하게 생긴 바위돌은 어디를 밟을지 한참을 고민해게 만든다

너덜지대의 감을 조금 익힌후 저항령을 무사히 지났다.

 

저항령은

북설악 주능선에 있는 고개 동쪽으로 외설악의 정고평에 이르고

서쪽으로 길골을 거쳐 백담사에 이른다

저항령의 옛말 다른말로는 '늘목'노루목으로 늘어져 늘목령이라 하엿다

마등령처럼 늘목령도 많은 사람들이 넘나 들었다

 

이제는 황철봉을 향해 걸었다.

황철봉

정상은 너덜지대를 다 오르고 난 끝부분이다

너덜지대 상부가 정상이지만 몇걸음만 지나면 평퍼짐한 숲으로

덮여 있기도 하다

정상을 벗어나자 미시령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서면 또 다시 광할한

너덜지대가 나온다.

 

 

이 구간은 남한 땅에서 가장 높고 넓은 너덜지대이다

이제는 안나오겠지 끝이다 하면 또 다시 너덜지대가 나오는통에

힘든 암릉지대가 징글맞다

국립공원관리 공단에서는 사고를 대비하여 암릉지대 중간중간에

형광 막대기를 세워놓고 사이사이 밧줄로 이정표를 대신해 놓았다.

이 부근을 지날땐 나침반만 믿었다간 길을 잃기 쉬운코스로

이는 황철봉이 철광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여서 그렇단다

백두대간길이나 사실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후들거리는 다리와 무릎 통증으로

벌려도 닿지 않는 바위간격틈과 뾰족한 바위에서는

저절로 주저앉게 된다.

 

 

엉덩이로 엉금엉금 앉았다 일어났다 하다보니

일행들은 모두 앞서가고 깡총깡총 뛰어오라고 앞서가는 남편과

낙타처럼 등에 베낭을 매고 어떻게 토끼나 캥거루처럼 깡총거릴수가 있는지

너덜지대에 서 있는건 남편과 나 뿐이다.

새가 되어 날아가고 싶은 마음 꿀뚝 같고만 한발한발 내딛지 않으면

오늘 미시령가기는 틀려 너덜지대 위에서 나 말고 믿을사람

아무도 없었다

기어가든 뛰어가든 이놈의 너덜바위들만 지나가면 될것인데

남편은 잘 오고 있나 뒤돌아보며 감시한다고 두번이나 미끌어지고

말았다.

 

 

국공들이 퇴근하는 시간을 지나서야 미시령으로 내려갈수 있다고

미시령고갯길 위쪽에서 기다리는 일행들과 합류했다.

오후 여섯시전에 내려갔다 걸리면 벌금이 십만원 이상이란다.

울산바위가 손에 잡힐듯 가깝게 있는 미시령 고갯길로 내려와

나라법을 어기면서 일박이일 설악구간을 마쳤다.

 

 

이틀만에 수려한 자연경관만큼이나 전설많은 별유천지 비인간의

쥐라기와 암릉이 있는 하늘과 가까운 산중에서

구름과 신선처럼 떠 다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도

붕붕 떠서 달리는 기분으로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니

낙타 타지 말자는 코미디 괴담에 마스크 쓰고 바삐 움직이는

어수선한 세상이 실감난다.

 

 

잊지 못할 설악의 추억을 뒤로 하고

"지혜로운 자는 과거를 아쉬워 하지 않으니 아름답고

현재를 붙잡으려 하지 않으니 자유롭고

미래를 두려워 하지 않으니 새롭다."라는 말처럼

아름답고 자유롭고 새로운 삶을 원한다.

 

 

공룡능선에서

 

새벽 달이 끄먹거릴때 우뚝 솟은 공룡바위

내설악과 외설악의 경계에 서서

산인듯 물인듯 에워싸인 못 잊을 기억을

더듬어 걸었다

더운열 품어 다가서면 물러나서 기다리고

골바람 불어 물러나면 어서오라 손짓한다.

 

시퍼런 벼락과 천둥 때리는 날에는

철갑 등근육 흔들어 불같이 일어나고

햇살이 고요히 내리 쬐는날에는

차가운 심장 깨워 쉬일줄을 모른다.

 

연두와 초록으로 갈아입은 기골 장대한 등허리

손 뻗어 그의 손등쯤 만져 보았을까,

절벽으로 미끌어진 까마귀 한마리 울다 말고

화살같이 날아간다.

가슴속 공룡 발자국같은 그런 사람이 기다리는

설악에는 옹골차고 기새등등한 공룡 한마리

살고 있다.

 

 

2015년 6월 씀

글-이 정

사진-대정지기

참고-손경석의 설악산

        민병준의 백두대간 가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