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7월22일
드디어 혼인하는 날이다
오전 11시에 시청에서 결혼 서약식이 있어 그리 일찍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데
새벽바람부터 떠진 눈은 좀처럼 감길줄을 모르고 몸과 맘은 괜스레 부산을 떨게 만든다
일기예보에는 오후에는 비 예보가 떴지만 날씨는 화창했다
아침 차려먹고 신부 화장하고 머리하고 드레스 차려입고 서너시간이 훌쩍 지나
째깍째깍 시간은 흘렀다
온전한 좌외선이 내려앉는 맑은 햇빛이 눈을 찌른다
살갗이 빨갛고 살갗 아래 푸른 정맥이 투명하게 비쳐왔다
바람은 없었다
지원이의 앞길에 심한 바람 불지 않고 이 아침처럼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시청으로 이동했다
유럽의 모든 건물이 그렇듯이 시청 건물도 고풍스런 전형적인 유럽 스타일이었다
정각11시 시청의 결혼식장 문이 열렸다
그나마 신랑과 신부 그리고 증인 두명과 신부 아빠만 들어오고 엄마는 기다리란다
무슨일이야, 딸내미 시집보내는데 내딸 내맘대로 따라다니지도 못하게 하는게
여기 방식인가보다
말도 안통하는데 물어볼수도 없고 제지하는 여자의 손이 무겁게 닫히는 문과 사라졌다
다른 하객들과 함께 십여분을 문밖에서 기다렸다
문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문밖에서는 알수없다
그리고 육중한 문이 열리고 단상에는 신랑과 신랑의 증인과 신부의 증인이 서 있고
지원이는 보이지 않았다
조금뒤 지원이는 아빠의 손을 붙잡고 하객들이 앉아있는 뒤쪽에서부터 걸어나왔다
신부 입장이 우리와 같았다
아빠만 쏙 빼 닮은 지원이는 모습도 비슷하지만 급한 성격도 닮았다
짧은 거리의 신부입장 시간이 더 짧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신랑신부 성혼 서약식을 시청 직원이 읽고
시청 직원의 물음에 신랑신부는 대답하고 결혼예물로 서로에게
결혼의 증표인 반지를 끼어주고 와인한잔씩 들고 증인과 신랑신부가
같이 마시며 결혼을 축하하며 마무리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한국어로 통역이 이루어졌다
신랑신부가 예식중에 와인을 마시는것만 빼면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결혼식이다
얼마 안되는 하객은 신랑 신부의 가족들과 아주 각별한 친밀도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시청을 빠져 나오면서 단체 사진 한장으로 특별한 순간을 남긴다
시청 앞에서는 한사람 한사람 헝가리식으로 인사를 건네며 축하하고 감사를 전한다
우리네 처럼 얼굴도장 찍고 봉투 전달하며 급하게 떠나는 예식을 보다가 충격이지만
참여한 사람들의 신랑신부에게 축하하는 진심이 느껴져 오히려 내가 뿌듯했다
즐거운 일에 함께 하면 즐거움이 두배가 된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현장이다
헝가리식 인사는 상대방의 어깨를 살짝 잡고 각자의 뺨을 엇갈리며 대는식이다
왼쪽과 오른쪽 두번의 뺨 마춤으로 서로의 친근한 인사를 나눈다
신부의 부케는 결혼이 임박한 사람들이 주로 받는식인 우리네와 비슷하여
시청앞 광장에서 모든 하객들중 처녀들이 받아내는것이 예의이다
지원이가 뒤로 던진 부케가 땅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한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다
아리따운 여자친구가 받고 모든 하객들은 박수를 쳤다
그것으로 시청에서 이루어진 결혼 서약식은 마치고
피로연이 있는 도나우강변의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하늘이 비구름을 몰고 갑자기 소낙비가 내린다
지나가는 비구름은 사라지고 다시 햇볕에 노출된 대지는 따끈해졌다
하지만 그늘로 몸을 피하면 서늘한 감이 몸을 식혀준다
습기먹고 끈적이는 한국의 더위와는 다른 더위다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레스토랑을 임대하여 축하를 한단다
보통의 경우 오후 7시까지도 한다는데 바쁜 한국인들과 느긋한 헝가리인들을 고려하여
오후 5시로 예약했다
저녁에 결혼 서약식을 할경우에는 밤새도록 피로연 축하를 하느라 날밤을 새운단다
하객이 되기위해서도 웬만한 체력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문화이다
강변에 위치한 레스토랑은 집에서 오분거리이여서 지원이는 웨딩드레스를 한복으로 갈아 입었다
앤드레도 갈아입을걸 모든일정이 끝난후에 앤드레의 한복이 빛을 내지 못한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섯번으로 나뉘어진 코스요리는 하나의 음식이 배달되기까지 이삼십분을 기다려야
다음번 요리를 맛볼수 있다
우리 정통 한식에서는 감히 엄두도 못낼일이다
이삼십여개의 반찬과 메인요리까지 한꺼번에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무겁게 차려져 나오는
전주 한식에 비교하면 음식이라고 말하기도 우습다
하나 먹고 소화될즈음 또 하나 먹고 기다리다 또 먹고
위에는 부담없이 좋겠다
메인 요리는 여러개의 요리중 백명의 하객들이 각자 취향대로
시킨다
아무리 바빠도 우리네처럼 같은걸로 통일하는법은 없다
세시간의 식사시간을 마치고 이제부터는 음악과 춤이 함께 한다
우리가 신부시절에는 감히 신부는 고개들어 눈도 크게 못 뜨던 고리짝적이 있었건만
지원이는 신부가 하객으로 온 친구들과 아이돌 춤을 추지 않나
시부모님과 시댁 어른들과도 거리낌없이 손잡고 춤을 춘다
여러번 하객으로 다녀본 모양이다
며칠전부터 맘속으로 전해주고 싶었던 말을 여러사람 앞에서 읽을려니
진짜 내 딸이 헝가리사람 되는게 실감이 나 나도 울컥했다
이럴려면 애초에 헝가리에 보내지나 말것을
좀 더 넓은 세상과 부딛쳐 맘껏 꿈을 펼쳐보라했지
누가 헝가리 놈이랑 결혼까지 하라고 했었나
난 이제 사양길이고 전 비행길에 올랐는데
지가 좋다는데 엄마가 어찌 말리겠는가
처음부터 반대는 안했다
인종만 독일계 헝가리인이지 커피도 안마시고 유럽에서 흔하디 흔한 술을 즐겨 안하고
담배도 안피운다니 하는짓은 나와 비슷했다
게다가 검소하기가 그지없고 젓가락 사용하는것뿐 아니라 양반다리까지
거림낌 없이 하는걸 보고 내가 함께사는것도 아닌데 흐뭇했다
집에와서 보니 검소하기가 지나쳐 쓰레기라 생각하는 빈박스도 못버리는건
고치면서 살아야겠다
한국인들은 오후 다섯시를 못 채우고 대부분 레스토랑을 빠져 나갔다
빨리빨리 문화가 대여섯시간 견디어 낸것도 보통의 인내보다는 나은편이다
일곱시간째 한복으로 온몸을 감씨고 있자니 나도 숨통이 막혀 오길 시작한다
결국 도나우강으로 배 타러 간다는 코스는 포기했다
여독이 풀리지 않은채 피로를 몰고온 지환이와 내일 스위스 비행기만 타지 않는다면
사돈가족과 배를 탔을텐데 아쉽지만 우리는 빠졌다
배 타고와서 다시 웨딩드레스로 갈아입고 이슈트반 성당 앞으로 사진 찍으러 간 신랑신부는
저녁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결혼식을 한셈이다
일정에서부터 하다못해 레스토랑 매뉴까지 온갖것을 다 신경써서 피로감이 극도였을것이다
한달전에 미리 초대장을 보내 참석여부를 확힌하고 참석인원에 맞추어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해야하는 결혼식을 마침내 마쳤다
우리처럼 웨딩 플레너가 맡아서 하는 결혼식을 했더라면
신랑신부는 아무것도 신경쓸일이 없이 편했을텐데
유럽은 아예 예식장이나 웨딩 플레너가 없단다
시집가기가 이리 힘들어서야 두번은 아니 갈것같다
내가 시집간것도 아닌데 나도 무척 피로하고 눈도 침침했다
딸 시집 보내려와서 결혼식만 치루고 곧바로 스위스로 여행을 떠난다니
내가 생각해도 싸가지 없는 엄마 아빠 행동이다
몇번을 취소시키라는 전달에도 한번 항공권을 사면 취소도 안되고
그돈을 다 날린다는 말에 할수 없이 감행할수밖에 없게 되었다
오십만원이 사라지는 판국인데 쌀쌀맞은 친정부모 되어도
우리는 스위스 여행길에 오르기로 했다
영어도 시원찮은 우리가 어찌 부닥칠지 내일 일은 내일 걱정 해야겠다
"오는일을 어찌알랴 지금일도 모르는데
근심속에 즐거움이고 즐거움 가운데 근심있네"퇴계의 말이다
오늘 딱 나의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