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잊어도 좋겠다
저자-나태주
외갓집,외할머니의 그리움이 오늘의 시인을 만들었을
나태주의 인생 이야기중 유년의 자서전이다
산문을 쓰지 말라는 선배 시인의 조언을 무시한채로 가끔 쓰는 산문도
시처럼 잔잔하게 읽혀지는데
이제는 잊어도 좋겠다,는 망각에 바칠정도로 끈적거리는 기억들을 소환했다
스스로 지극히 집요하고 에고가 강한 인간이었다고 고백한 시인이
풀꽃같은 기억들을 쓰므로 이제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단다
해방둥이에서 육이오 산업화 민주화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았어도
감정 끌어 올리는 시를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것은
어쩜 외할머니와 살았던 유년기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꼬작집 대문도 담장도 없는 작고 헐음한 초가지붕 오두막집
초등 졸업과 동시에 그집을 떠나오며 그리움의 소산은 영원한 고향이 되었다
언제나 그리운 외할머니
먼 곳
어려서 외할머니와 둘이 오막살이집에서 살때
자주 외할머니와 뒷동산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곤 했다
가을날 같은 때 군청색 굼실굼실
물결쳐간 산봉우리들 너머
외할머니도 먼 곳을 바라보고
나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바라본 먼 곳이 어떤 곳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마음 속으로 아라비아사막이거나
스위스 같은 곳을 먼 곳이라고 꿈꾸곤 했다
그뒤로 나는 먼 곳을 많이 다녀 보았다
여러 날 먼 곳을 서성이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또 그 먼 곳에서 살고 있다
생각해보니 외할머니와 살던 오막살이집이 먼 곳이고
외할머니와 함께 올라 먼 곳을 바라보던
뒷동산이 먼 곳이었다
외할머니랑 소쩍새랑
초록물감 질펀하게 어푸러진 밤
이파리 하나하나 지느러미를 달고 날개를 달고
하늘바다를 파들거리는 나무 나무 수풀사이
소쩍새 울음소리 깊은
우물을 파고 들어앉고
조이 창문이 두개 달린집
두개 가운데 하나만 불이 켜져서
밤마다 나는 황금의 불빛 아래
숨쉬는 조근만 알이 되고
아침마다 나는 솜털이 부시시한 어린 새 새끼되어
알껍질을 열고 나오고
외할머니 늘 조심스런 눈초리로 지켜보고 계셨다
불켜진 조이 창문이 쓰고 있는
썩어가는 볏집 모자 속에
굼실굼실 뒹굴며 자라는 굼벵이들
짹째글 참새들 찍찍 쥐새끼들
더러는 굼벵이나 참새 쥐새끼를 집어먹으며
몸통이 굵어가는 구렁이들
나는 참 이승에서 외할머니한테
진 빚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