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오월 인사동에서

초록별에 부는 바람 2025. 5. 7. 10:32

오월 산천초목도 난리 부르스를 춘다.봄 바람은 사람의 특권이 아니란듯,

봄꽃들이 피고지며 아까시아 찔레꽃 향기가 온몸에 전율이 올 정도다

신경을 안정시킨다는 두 꽃의 향내는 아카시아는 진하고 찔레꽃은 연하다

산책길 아카시아 나무가 다닥다닥 꽃을 피워 목을 못 가누고 고개를 숙이더니

다음날 가보니 그만 가지가 부러졌다

내 모가지가 부러진 마냥 목뼈가 아팠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데 지난 겨울 습설에 부러진 가지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던

소나무도 그렇고 진즉 가지치기를 해주었다면 그런일을 없었을텐데 아쉽다

인생도 가지치기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목이 될수록 등껍질을 벗겨내는 느티나무나 지 몸의 구멍으로 숨통을 만드는 대나무처럼 말이다

이제 그 많던 아카시아꽃들이 땅으로 내려 왔으니 다음차례는 정액 냄새와 흡사하다는 밤나무 꽃향기로

다가올 차례인가보다

숲의 한 계절이 바뀌는 중이다

숲 속의 나무들 처럼 진솔하게 생을 살아야겠다

진실이 햇빛을 받으면 역사가 된다는 말이 있다

역사는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고 열정과 이성 평화와 전쟁으로 부딛치다 분열하며 이루어진다

겨울내내 색색의 응원봉을 거리에서 봤다

한개의 빛이 수십수만개 혁명의 빛으로 둔갑한다는 사실도 깨닫았다

누가 앞장서고 뒤를 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능한 대통령과 부패한 정부도 제거할수 있는 막강한 힘이

가장 힘이 없다는 민초들로부터 나온다는 것도 알았으니

지난 겨울도 지나갔고 봄이 왔다 또 다시 봄이 가고 있는 지금

한줄기 바람에도 만족하자 다짐하며

나는 그냥 세월을 살면 되겠다

어쩐지 그냥,이란 단어가 좋다

빨강 장미와 보라 라벤다 색색의 카랑코까지 몇개의 화분을 사 들이고 

이 봄을 살고 있다

하루 스물네시간이 짧을 때가 있다

햇살이 머물다 지나간 숲길을 걸을때

모자란 생각끝에 기억이 살아날때

오래된 그리운 친구를 떠올릴때

낯 익은 소도시를 걸을때

미술관 가는날도 시간은 바삐 갔다

 

그날은 오월 어느날,세상 사는 동안 정치와 무관한 삶이 없다더니 그러고 보니 오일팔이다

팔십년 광주의 역사가 이천이십오년 국민들을 살게 하여 다시 대선의 시가가 닥쳐왔다

지금의 삶은 역사의 증인이고 정치는 오늘의 역사인 셈이다

하늘은 맑아 햇살이 아롱아롱하고 공기는 배꽃 마냥 향기롭고 거리는 환했다

인사동 거리 입구에선 거리 악사가 버스킹을 하려는지 마이크 점검소리로 시끄럽고

여기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우리말보다 중국말과 일본말이 더 잘 들려온다

우리 젊을때 연애거리는 명동이나 인사동 거리였으나

이젠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거리가 되었다

요즘 젊은애들은 가로수길이나 홍대도 물 건너가고 창고형 수제 공장이 있었던 성수동이 핫한 거리란다

휴일 인사동 거리에서 인파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서도 마냥 행복했던 옛날 기억이 되 살아났다

지금은 귀금속 거리로 변해버린 서울극장이나 단성사와 피카디리에서 영화 한편 보고 인사동을 걷다

내친김에 삼천동 공원까지 걸었갔다 맘 내킬땐 정독 도서관까지

다시 인사동으로 돌아와 저녁먹고 귀가했었다

그땐 무슨 객기로 단성사에서 나와 피카디리에서 또 한편을 때렸는지,영화보는걸 때린다고들 했다

다음날엔 몸살을 앓으면서도 젊을땐 그냥 좋았던 거리였는데

요즘 인사동 거리는 몇몇 장인의 작품을 빼곤 화련한 조명안 쇼인도우로 비치는 장식품과

심지어 미술용품중에도 메이드인 차이나가 판쳐 변해도 너무 변했다

없는거 빼곤 다 있는 쿠팡에서 온라인 쇼핑을 하면 되는 세상이라 쇼핑도 필요 없어

눈 요기만 하고 지나쳤다

 

오후 인파가 점점 몰려드는 인사동 거리를 걸어 경인 미술관으로 향했다

친구가 데려온 어린 손녀 손을 꼭 붙잡고,

딱딱해진 혈관을 타고 녹슨 심장에 수혈 받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팔닥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여덟살의 한강이 썼단다

훗날 "과거가 현재를 도울수 있는가?죽은자가 산자를 구 할수 있는가?"의

오랜 의문이 노벨 문학상의 작가로 거듭나게 했으니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자긍심이다

오월 싱그런 바람을 타고 사랑은 흐르고 있었다

방금 먹었다는 달고나 때문인지 달큼한 냄새가 투명한 손가락 사이로 배여 나왔다

연두빛에서 초록으로 물 오르는 나무처럼 걸음걸이에 탄력이 붙어 금세 미술관에 도착했다

한곳으로 몰려드는 이 도시민들이 정처없이 표류하는 거대한 크루즈안에 여행객 같기고

어쩔땐 큰 어항에 갇힌 물고기 같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다

집 밖으로 나오면 많은게 내것으로 달려 올텐데 늘상 뒤늦은 후회를 한다

소박한 나들이의 소소한 행복은 나중에 있는게 아니다

햇볕 한줌이 미술관 안마당으로 내려앉고 바람 솔솔 불어 나뭇잎 들이 살랑 거렸다

재경회장이 안내석에서 반갑게 맞이했다

그녀와의 인연은 잊어도 될 만한 육칠년전인데 명석한 그녀는 머리를 싹뚝 잘라 변신했어도

단박에 알아본다

그때 12기 서기팀에 합류하고 그녀도 나도 동일한 팀장 밑에 말단 서기였었다

회장은 아무나 하나 진즉에 알아봤으니,지금 그녀는 회장을 역임중이고 나는 일개 회원으로

없는듯 지내고 있다

예술인들의 숨길이라는 인사동에서 특히 미술가들이 애호한다는 경인미술관이

여고 동창들 전시 작품으로 빛이 났다

삼십년 역사의 한옥 미술관은 마당이 넓고 초록빛 나무 사이사이로 있는 전시관이다

3전시관은 왕의 사위였던 부마도위 박영효의 고택이었으니 그의 자취를 느낄수 있고

우리 선후배와 동창들 전시는 미술관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조를 가진 복층 구조의 2전시관이였다

창작의 고통 너머로 희망을 끌어 올리느라 애썼을 작품들인데

정원을 가로지르는 발품만 팔아 쉽게 만났다

이름난 명작이 아니래도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는 긴 기다림이 있을터

희망이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 버리는 일들이 허다한데

그녀들의 수고를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수그러진다

조선 회화의 삼원인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정도는 알고 있지만

담아 낼수 있는 나의 그룻이 작아 하나하나 작품평은 하지 못한다

우리는 근현대 미술의 대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백여년을 담은 명작이 풍성한 나라다

한국의 추상미술 선구자인 김환기는

"미술정신은 영혼의 속삭임과 영롱한 달빛과 따사로운 햇살이 미풍에 전해온 빛의 움직임이며

자연에 드리는 칭송이다

인간에 대한 향수이자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다.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본질에 이르는 철학이 바탕이 된다"라고 했다

미술가는 자연과 정신적 합일을 이뤄야 진정한 작품이 뿜어져 나온단 이야기다

입체주의자의 선구자이며 평생 사만장이 넘는 그림을 그리며

미술사의 큰 획을 그린 지금은 신화가 된 파블로 피카소는

"예술은 영혼에 붙어있는 일상 생활속 먼지들은 깨끗이 씻어내는 작업이다"라고 했으며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했다

누구나 처음에 걷지 못하듯 모방하고 배우면서 정상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앤디워홀은

"통조림이 식탁에 있으면 평범한 통조림이고 액자속에 있으면 예술이다"라고 했다

바람도 멈추면 엉키고 말듯 시시각각 변화에 적응해야 예술적 감성도 산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미술뿐 아니라 모든 예술은 각자 영혼에서 고귀함을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먼훗날이 멀리만 있는줄 알았는데 벌써 도달하여

아날로그인 나같은 부류의 사람은 인터넷 시대도 벅찬데

검색도 필요없다는 에이아이 제로 클릭의 시대가 닥쳤으니

몸도 마음도 엉키게 생겼다

가끔 미술관 방문은 인생에서 띄어쓰기 하듯 숨 고르며 엉킨매듭 풀기에  좋은 취미가 되겠다

신간이 편치 않고 건강이 삐끗하면 그 꿈도 꽝이다

하이네는 오월을 기적처럼 아름다운 계절이라 표현했다

고백할 그대가 있었기에 사랑이 피어난것이다

기적같은 오월이 가는 지금

바람도 레몬 향처럼 상큼발랄 한가로운 오후다

미술관 정원에서 국화차 한잔을 오래도록 마셨다

여러 작품들중 특별하게 관심을 바란다면 오히려 반감이 들터지만

바라지 않는 아름다움에 잠시 매료되다 미술관을 돌아 나오는길 이른 저녁을 먹고

파란 잉크물 들은 목단꽃 한송이를 가슴에 차고

인사동 거리를 헤치며 빠져 나왔다

"모란이 피기 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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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찬란한 슬픔의 봄을"김영랑

 

바람 보다 빠른 희망이 전시관 현관문 아래 무지개로 피어

나는 가슴에 무늬 하나 그리고 추억 하나를 고이 접었다.

기획 준비 전시까지 주최한 회장단에게 감사를 보낸다

회장에게 방문기 제안을 받고 똥차가 끼어들면 사고가 날터인데

이 글이 김영미 수석 서기의 기록무대인 밴드 작업에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녀 역시 지난 12기 서기팀에서 함께 했었다

중간에 조금 지루했지만 모처럼 눈물 콧물 흘렸던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드라마의 제목을 빌려

폭삭 속았수다(=매우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