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10. 11:23ㆍ백대명산
일시-2017년 1월9일 화요일 맑다 흐리다 눈
장소-오서산
코스-성연주차장-시루봉-오서산(보령쪽)-삼거리-오서정(전망대)-전망암-삼거리-상담 주차장
9.5km를 4시간 걸림
무술년 새해 첫 산행을 다녀왔다
가을이 타는 억새길도 겨울이 얼은 눈꽃길도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보름동안 고단했던 몸과 생각이 넘쳐 터질거 같은 머리를 식혀볼 요량으로
떠났던 산행이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의 첫 문장처럼
회색빛 서울도심을 벗어나 경기도 충청도로 달려오자 거짓말처럼 눈발이 차창가로 휘날리고
야산에는 며칠째 내린 눈이 쌓여 하얀눈의 고장이 나타났다
에치코의 유자와 온천이 아니래도 눈 둑이 쌓여 눈 터널을 통과하는 눈 고장으로
들어가고 싶은 한겨울이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은 누가 만들어 낸말인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은 또 누가 만들어낸 말이지
어떻게든 딸도 낳고 아들도 낳아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었던 젊은날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이제는 어느 정도 지 앞가림을 할 나이임에도 눈으로 보이거나 안보여도 걱정이다
자식들 입장에서 볼때는 늙은 부모말은 잔소리이고 한숨소리는 속 태우는 불쏘시개일텐데
자식 걱정 하지 말고 내 인생을 살기로 굳게 맘 먹어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걸 보면
부족해도 많이 부족한 인생공부가 필요하다
그래도 살았거나 죽었거나 어버이는 첫스승이자 마지막 스승이고 고향이자 종교라
여겨진다
여름에 시집간 딸은 도톰해진 배를 내밀고 나타나 먹고 싶은 음식 열일곱가지를 적어왔다
딸을 품고 열달내내 누워 지냈던 비실비실 젊었을때 나를 생각하면
비행기는 고사하고 버스나 택시를 타는것도 어림없는 일이지만
하루종일 이코노미석 작은공간에서도 먹고 자고 끄떡없는 딸이 건강하여 감사하고
가까이에 살아도 밥 한끼 함께 먹기 힘든 요즘 세상에 아들과 딸 둘 사위들까지
온가족이 연말과 새해를 함께 지내며 밥 먹을 기회가 많았다
서너배로 많아진 음식준비와 설거지로 손이 까슬까슬 거칠어지고
허리와 어깨 근육이 뭉쳐 뻐근했지만 감사했던 날들을 보냈다
올해 제주 4.3유적 70주년이 되는 제주 여행을 끝으로 삼킬로가 불어서 딸은 떠났다
일년에 한두번 벌써 칠년째 이별이고 만남인데 이별할때마다 힘들다
홀몸이 아니여서 다른때보다 저도 나도 울컥했다
저는 나에게 나는 저에게 눈물을 안보이려 한동안 바라보지 못한채 뒤돌아 섰다가
간신히 '잘 가'라는 한마디로 슬프지 않은척 쌀쌀맞게 헤어졌다
그리고,집안은 다시 절간처럼 적막강산이다
영하의 날씨로 사방에서 진한 겨울이 몰려온다
서해바다가 가까운 충청남도 보령시에 도착했다
성연 저수지 옆을 지나 산행 들머리인 성연 주차장에서 하차했다
작은 마을에 낮은 집들은 흰눈을 덮어쓰고 오밀조밀 한폭의 수채화였다
추운날씨에는 심장의 부담을 덜기 위해 워밍업이 필요하므로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 마시고 넓은 도로 따라 천천히 완만하게 오른다
산길로 접어 들면서 아이젠은 신발에 차고 겉옷은 벗고 본격적인 산행시작이다
550m의 갈림길을 지나 해발 고도 791m 오서산 정상까지 계속 오르막이다
한시간이나 지났을까 하나둘 나무들은 모두 흰옷을 입고 눈꽃이 장관을 이룬다
무성했던 푸른산과 붉은 단풍산이 있기는 있었는가
흰눈 가득찬 산속에서 부귀영화 권력을 부러워했던 부질없는 탐욕과
세상살이 근심은 한줌의 눈처럼 부서지고 만다
눈내리는 하늘까지 온통 하얀설국에서 젊어졌다는것은 거짓말이고
철없는 감성으로 돌아가 사십여분을 놀면서 오르다 보니 벌써 정상이다
오서산은 금북정맥의 능선으로 충남지방 서해안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가을에는 산등성 허리를 휘감는 억새능선이 장관을 이루는 정상이
온통 흰 백설기와 설탕가루를 쏟아부은듯 사방팔방이 하얀색이다
맑은날에는 천수만과 안면도가 보이고 서해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서해의 낙조 경관으로 끝내주는 조망터이건만
희뿌연 하늘과 걸어온 흰 눈 능선만 보일뿐 잔잔하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친다
손가락이 시럽고 얼굴이 얼얼해 오래 서있을수가 없다
보령시 정상석에서 조금 떨어진곳에 광천군 정상석이 따로 있다
커다란 대리석 정상석이 두개씩 있는 산이 더러 있다
지자체에서 서로 자기네 땅이라고 선전이라도 하는거 같아 꼴불견이다
정상을 벗어나면 계속 내리막이다
백두대간처럼 오르락 내리락 없이 정상까지 쭉 올라갔다 쭉 내려오는 산행이라
전망대인 오서정을 지나고 정암사를 거쳐 날머리는 광천 새우젓갈로 유명한
광천군 상담주차장까지 눈꽃에 정신 팔려 배고픈줄도 모른체 점심도 건너뛰고 내려와
네시간의 산행을 마쳤다
차례차례 눈 위에 또 눈이 내려 쌓인 나뭇가지에서 겨울새가 눈발을 날려 보낸다
고즈넉한 산사에서 울리는 풍경소리와 겨울 산새만이 소리를 지어 만드는
오서산 산행길에 잠시 어지러웠던 번뇌를 위로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심심의 고통이 무덤덤하게 세월이 흘러도 사람은 때론 혹독한 겨울이 필요하다
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눈에 눈이 멀어 밥도 굶었던 오서산이 생각날것이다
눈 오는날
흰 눈발 온세상 덮는날
꿈을 꾸시게나,
낮과 밤
아이와 어른
풀과 나무
새와 꽃
별과 달
천사와 악마
바람이 한숨짓고 새가 탄식하는 겨울날
고향에도 흰 눈발 날려
어머니 잠든 봉분 덮네
형체도 없이 사라질 눈발이
이리저리 춤을 추다
제 나무 무게만큼 쌓여가네
흰 눈이 하얗게 빛나고
내 눈이 뿌옇게 시리면
눈 감고 산너머 어머니 그리네
흰 눈발 온세상 덮는날
열심히 꿈을 꾸시게나,
눈 덮인 산에서는 겨울새가 되고
언 강에서는 물고기가 될지라도
나도 너도 모두 사랑하여
이별이 영이별은 아닌 꿈을
꾸시게나
2018년 1월
글,사진- 이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