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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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자작나무 로버트 프로스트 꼿꼿하고 검푸른 나무줄기 사이로 자작나무가 좌우로 휘어져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어떤 아이가 그걸 흔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흔들어서는 눈보라가 그렇게 하듯 나무들을 아주 휘어져 있게는 못한다. 비가 온 뒤 개인 겨울 날 아침 나뭇가지에 얼음이 잔뜩 끼어 있는 걸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흔들려 딸그락거리고 그 얼음 에나멜에 갈라지고 금이 가면서 오색찬란하게 빛난다. 어느 새 따뜻한 햇빛은 그것들을 녹여 굳어진 눈 위로 수정 비늘처럼 쏟아져 내리게 한다. 그 부서진 유리더미를 쓸어 치운다면 당신은 하늘의 속 천정이 허물어져 내렸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나무들은 얼음 무게에 못 이겨 말라붙은 고사리에 끝이 닿도록 휘어지지만 부러지지는 않을 것 같다. 비록..
2020.11.20 -
비
너무 목이 말라 죽어가던 우리의 산하 부스럼난 논바닥에 부활의 아침처럼 오늘은 하얀 비가 내리네 어떠한 음악보다 아름다운 소리로 산에 들에 가슴에 꽂히는 비 얇디얇은 옷을 입어 부끄러워하는 단비 차갑지만 사랑스런 그 뺨에 입맞추고 싶네 우리도 오늘은 비가 되자 사랑 없어 거..
2014.07.17 -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 백석 - 낭송:김춘경-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
2013.12.11 -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김영랑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2013.06.28 -
봄날은 간다
작사-손로원 작곡-박시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흐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조새 짤랑대는 역마차길에 별이 뜨면 서로..
2011.04.16 -
맷돌
김시습 복사꽃 붉고 버들 푸르니 삼월이 저무는구나, 구슬을 푸른 바늘로 꿰였읜 솔잎의 이슬이로다. 비도 안 오는데 천둥소리는 어디서 울리나, 누른 구름 점점이 사방으로 흩어지네.
2010.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