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11. 10:39ㆍ친구
일시-2019년 9월 24일 화요일~25일 수요일
코스-압구정 버스터미널~강원도 강릉 월정사~안목해변~델피노 리조트(연회후 일박)~선교장~허난설원 생가~귀경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이 지나가고 미세먼지를 모두 쓸어갔나
하늘은 맑고 청명하여 마지막 바람나기 딱 좋은 한때
어느새 백일홍 시들어가고 코스모스 피어나는 계절이다
길가에 청푸른 달개비꽃과 연노랑 달맞이꽃이 찬 이슬에 젖은 지금
가을이 오는 소리 들려온다
어제까지는 여름이었는데 오늘은 가을이다
가을이라 그런지,인생이 흘러가는 소리도 들리는거 같다
허나,단풍길에 진달래가 피고 눈길에 개나리가 필때도 있어
요즘 꽃들은 계절을 잊고 산다
엊그제 영광의 불갑사 사찰에 갔더니 꽃무릇이 붉은 양탄자를 깔아
가을을 맞이하고 막차를 놓친 매미가 발악대며 짝을 찾는데
벌써 귀뚜라미가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매미는 원래 동이 트는 아침부터 해가 떨어질때까지 운다던데
밤에도 울고 있으니 가로등과 문명의 빛들로 밤을 잊어나보다
또,산책길에서 자주 보는 이름도 복실거리는 강아지풀과 토끼풀도
외래종이 많아져 어느것이 우리것인지 헷갈릴때가 많다
사람도 마찬가지라 섞어찌개 끓이듯 합쳐지는 마당이고
자연환경이 교란되어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안되는 세상이다
우주에서 바라보면 생물체는 점으로도 보이지 않을텐데
사람들은 경제와 이념논리를 따져 이분법 사고만 발달하고 있으니
안타까운일이다
살아생전 맑은 공기 나눠 마시듯 이웃끼리도 사이좋게 지내면 좋을텐데
우리끼리 두갈래로 나눠 패싸움만 하고 있다
하지만 이웃나라를 떠올리면 피가 거꾸로 치솟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도 창밖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수채화같은 가을이 오는소리 들리는거보니
진짜 유화같은 끈끈한 여름이 가긴 가는 갑다
작년구월에 이어 올 구월에도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투명한 수채화같은 날이라서 그런지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은
쓰레기통에 넣어 버려야 할것 갔다
식모살이 면할길은 가을여행밖에 없다며 산후조리 하다말고 집 나왔더니
신경쓰지 않아도 밥 주고 재워준게 얼마나 편안한지
서울을 떠나 이미 자유부인이 되어 밥 걱정은 잊어 버렸다
파란 하늘이 높이 올라가고 흰구름도 비껴서는 뙤얕볕이 내리어
곡식이 여물어가고 과일도 익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도 있노라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여덟대의 대형버스가 강원도로 이동하고 우중충하던 하늘은 어느새
파란 물감으로 색칠을 하여 맑아졌다
점점 해발고도가 높아지고 오대산 능선이 보인다
무성할대로 무성해진 녹음에도 번지고 얼룩지며 하나둘 단풍 들려는
산자락을 보느라니 오월처럼 푸르고 싱싱했던 젊은날들이 떠오른다
드디어 첫번째 일정으로 월정사 입구에 도착하였다
맘속에는 풋풋한 그 날의 그 길을 걷는거 같은데 서로를 바라보니
늙은 여자들뿐이다
그래도 생생한 병아리처럼 나래비로 줄을 서서 전나무숲길을 걸었다
동해 만월산의 정기가 모인 고요하게 들어앉은 월정사는
사철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산사이다
신라 선덕여왕 당시 자장율사가 창건했단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산으로
산전체가 불교성지가 되는것은 남한에서 오대산이 유일하다
산사에서 산책은 걷기 수행으로는 최고이다
등산만큼 고되게 몸을 혹사시키지도 않고 그렇다고 누워 숨만 쉬는 운동도 아니여서
걸으면서 사색하면 몸과 맘이 절로 건강해진다
특히 산소와 피톤치트를 품어내는 나무숲 그늘 사이로 적당한 햇빛은
비타민도 준다
일킬로 거리의 전나무숲 체험길은 그야말로 늙은이 젊은이 모두에게 힐링길이다
열두가지 산채나물정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배도 부르고 햇볕도 따뜻하여 졸음이 몰려올때즈음 안목해변으로 이동했다
오대산능선을 지나서 이지역은 대관령과 노인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넘어서는 곳이다
동해에 오면 산과 바다를 동시에 볼수 있어 도랑치고 가재잡고,임도 보고 뽕도 따고,
마당 쓸고 동전 줍고 일거양득이다
강릉시에 있는 안목해변은 남대천 하구 반대편에 위치한 남항진에서 송정으로 가는
마을앞에 있는 길목이라는 뜻에서 이름 지어졌다
북쪽으로 송정 해수욕장이 있고 남쪽으로 남광진 해변이 이어져 가족피서지로 딱이고
근처에 커피거리와 순두부가 유명하여 순두부 먹고 커피 마시는곳으로 유명하다
과거에는 커피 자판기가 즐비하여 커피 한잔 빼들고 바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쓰고 떫고 시고 고소하기까지한 악마의 검은 눈물에 중독된 사람들은 필수코스다
모래위에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와 늙은여자들이 갑자기 소녀처럼 악악 소리를 질러대며
나 잡아라 하는 광경이 볼만했다
모래가 부드러워 누워 빙빙 돌고 싶지만 발바닥에 촉감으로 만족해야지
사진 찍다 말고 드러누웠다간 미친년 소리 듣기 싶상이다
삼백명의 여자들이 한꺼번에 모이면 시기 질투가 곳곳에서 세어나와
더운밥에 찬물 말아 오이지 씹어 먹고 싶어질터인데
아침 햇빛에 이슬같은 평화가 있는것은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파란 하늘이 너울거리고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흰 모래밭에
푸른 바람이 불어오니 나도 어느새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해변에서 자유시간이 아쉽게 지나갔다
바람도 쉬어갈 무렵 황금빛으로 물드는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나도 노을빛에 빠져 죽고 싶었다
울산바위에 앉았던 산그림자가 점점 숙소 아래 풀밭으로 내려오고
해가 잠들자 엷은 가슴은 미어지고 하루가 저물어 간다
하룻밤 묵어갈 숙소에서의 만찬과 연회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순간 우리가 함께 차를 타고 와서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노래 부르며 춤을 추고 함께 잠을 자는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누구는 오늘 죽어도 될만치의 행복을 느꼈을것이다
별도 달도 잠들어 어두운 밤!
밤에는 각방에서 모짜르트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가 연주되듯
비스무리한 환경과 기억을 소환시켜 서로 닮은듯 다른 여자들의 수다가 이어졌다
어둠이 술렁거리도록~
다음날 날이 밝았다
나란히 손을잡고 서서 동해바다 푸른물을 바라 보았던 어제가
넘치는 햇살에 바다물결이 반짝일때마다 가슴 한편에 접어두었던 편지 날리며
푸른 바다 갈매기 따라 나도 날랐던 어제가
훗날,잊지 않으려고 사진도 박았던 어제가
벌써 추억의 페이지로 넘어가다니 하루가 정말 빠르게 사라졌다
다시 버스로 선교장까지 왔다
걸어서 이동 안하고 버스타고 다니니 얼마나 편한지
비록 버스타고 내릴때 무릎에서 우두둑 소리가 날지라도 집 밖으로 나오는게 득이다
집구석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만 하다간은 봄인지 가을인지 계절도 모른채
세월 지나 나이만 먹어가니 말이다
선교장은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11대손인 가선대부 무경 이내번이 지어
무려 십대에 이르도록 증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말로만 듣던 구십구칸의 전형적인 사대부의 상류층댁으로
지금은 국가지정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되어 관광객을 맞이하는 곳이다
예전에는 집 앞이 경포호수였으므로 다리를 만들어 호수를 건너 다녔다하여
선교장이란 이름이 지어졌단다
대궐밖 조선제일 큰집으로 손님접대에 후하여 오는 객들을 아낌없이 배풀었다는데
지금은 고택 체험으로 하룻밤 숙박비가 이삼십만원씩이나 하고
집구경만 하려 해도 입장료가 필요하다
떨어져버린 백일홍과 연꽃이 아쉬웠지만 붉은 꽃무릇과 울긋불긋 봉숭아꽃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들도 아마 뒤로 나자빠지게 놀랐을걸,이렇게 많은 여자들을 함께 보기가 어디 쉬운가
흔히들 꽃과 잎이 영원히 만날수 없다는 이유로 칠팔월에 원추리모양으로 피는 상사화와
구시월에 불꽃 왕관처럼 피어나는 꽃무릇을 통틀어 상사화라 부른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상사화는 연분홍이나 미색의 꽃에 줄기는 갈색이고
꽃잎이 백합과 비슷하다
그리고 일본이 원산지인 꽃무릇은 붉은색꽃에 줄기는 맑은 연두색이면서 화려한 꽃술에
꽃잎은 뒤집혀 말리면서 피어난다
어느절의 주지스님은 아버지를 잃고 백일동안 탑돌이하는 처자에게 연모의정을 느꼈으나
그녀가 떠나자 그리움에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뒤 스님의 무덤위에서 피어난꽃이라 하여 상사화란 이름이 붙었다는 꽃무릇도
전설때문인지 몰라도 절 담벼락에서 많이 피어난다
삼대 꽃무릇 군락지로 유명한 절은 고창의 선운사와 영광의 불갑사 함평의 용천사이다
하늘이 족제비떼를 통하여 점지했다던 명당 선교장 전경을 내려다보며
걷는 좌 청룡길과 우 백호길 둘레길이 아름다웠다
구경도 식후경이라 순두부전골로 점심을 먹었다
미리 미리 준비해둔 전골이 짜디짰지만 허여멀건한 순두부만 먹다가
홍합넣은 빨간 순두부전골 색다른 맛이다
다시 버스로 이동하는데 나이는 못 속이는지 가끔씩 코고는 소리도 들린다
다른 차들은 흥겨운 노래잔치가 벌어지고 있다는데 옆에서 졸고 있으니
나도 슬슬 졸립다
조선중기의 여인 허난설헌 생가에 들렀다 푸른 바닷물처럼 푸르게 전해오는게
그녀의 향기인가,푸른 향기가 난다
지금시대라면 내딸들은 시집도 안갔을 나이건만 스물일곱해를 살고 요절했단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세는 채색 난새에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위에서 차갑기만 하여라"
예언이나 하듯 무능한 남편과 두 자식을 잃고 한숨에 젖은 꽃은 떨어져 버렸다
아휴~아까워라
그녀는 채련곡에 나오는 문구처럼 해 맑은 가을 호수 옥처럼 새파란 나이에 가다니
천재는 단명하는가보다
단명하는 천재보다 좀 모자란듯 가는똥 질게 싸며 살고 싶지만 어찌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오늘을 살면 될것이다
"나하고 생각이 같으면 군자이고 나하고 생각이 다르면 소인이다."는
그 당시 사회 모순을 비판한 문장가인 그녀의 동생 허균의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통하는 명언은 우릴 놀라게 한다
선교장과 허난설헌 생가에는 유난히 솔향기가 진했다
귀경길 버스속에서 잠시 광란의 시간을 보냈더니 어느새 차도 사람도 많은 서울이다
걷기여행에서는 눈썹도 떼어놓고 갈만치 가벼운 차림이 필수지만
우정을 나눠야하는 우리의 일박이일 여행은 좀 무거워도 되는지라
선배와 동기 후배의 선물인 사랑까지 보태서 배낭은 더 무거워졌다
꿈같은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틀간의 여행을 마치고 아쉬운 마음 안고 헤어졌다
모두가 나를 잊고 나도 그들을 잊을때가 닥쳐와도
어쩌다 만나면 할 이야기가 있다는게 얼마나 고마운일인지 모른다
가을 서리맞은 단풍이 모두 떨어져 찬바람 부는 겨울이 오고
가랑잎처럼 뼈들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 들린다 하여도
2019년 9월 24일과 25일 가을여행
그때를 떠올리면 유난히 파랬던 하늘과 넓은 바다 푸른 물
아련한 기억만은 물결처럼 일렁일것이다
아~ 꿈 같은 일박이일 여행이 막을 내렸다
더불어,2016년도 구월을 보내며 썼던 시를 첨부하며 후기를 마친다
구월이 가네요
여름과 가을이 바통터치 하여
구월이 그리움으로 물러 가네요
천지가 푸르고 눈부신 햇살
높은 하늘로 빨려 들어가고
억새 머리채 흔들리는 바람
쏟아졌던 폭염 들녘에 뿌리네요
길가에 피워낸 들국화와 쑥부쟁이
가을을 안고 피워내고
떠나는 여름 아쉬운 고추잠자리
원 그리며 날아 가네요
구월에 지다 남은 꽃들이 울어
시월이 보고픔으로 오고 있네요
2019년 9월 하순
글,사진-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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