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원 2

2009. 7. 30. 16:30여행

비닐하우스에서 키워지는 화초들

이것들도 커지면 야외로 분양이 된다.

 

 

 

이맘때면 빨간고추를 돌로 박박갈아

 열무김치 담는 학독에, 물을 받아 수련을 키운다.

무겁고 거추장스럽다고 내다 팔아없앤 물건들이

다시금 정겨운것은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게다,

아, 옛날이여,

이건 진품이 아니고 시멘트로 만들어진 가짜

 

 

 

 

 

 

 

애연문.

이곳에 들어서는 자는 누구나 연꽃을 사랑하는자 이니라.

비록 사랑하는 마음이 안 생기더라도

미워하거나 원망은 하지 말지어라.

이상은, 내가 날 위로 하는 위로문이기도 하다.

 

 

야간 조명등이 켜지면 고요한 세미원은

여름 풀벌레소리와 물소리만으로

침묵의강을 넘어 연옥으로 향해가고 있음을 암시할게다.

 

 

 

 

가까이 담은 연화빛은

함박웃음을 띤 아가 볼살같지 않은지요.

 

 아래에서도, 위에서도  

일용할양식,물을 줘야 튼실하게 큰다.

손으로 직접 만져보니

잎파리가 아주 질기고 두꺼웠다.

색상도 내가 좋아하는 진초록으로 눈알이 다 시원하다.

 

 

 거의 다 지어가는 연꽃밭

이제, 이파리와 뿌리를 내놓아 우릴 먹이고 내년을 기약한다.

 

 

하늘 높은줄 아는지,모르는지,

쭉쭉 뻗어 올라가는 능소화를

고개들어 바라본다.

 

지몸 혼자 가누지 못하고

 담쟁이에 엉겨붙은 미안함에

붉게 타는 노을꽃을 선사한다.

 

 

검은 잉어가 과연 있을까,

보지못한 잉어를 나무조각으로 만난다.

 

 

 

 연꽃은 연분홍만 있는게 아니다.

순백의 연꽃은 세미원 이름과 가장 어울리는 연꽃이다.

 

 

 

 

 

태백산에나 있을 천년묵은 주목인가,

정원 가운데 우뚝서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수없는 나무는

죽어도 산자를 감시하는것같아

뭐 내가 잘못하고 있는게 없나 무섭다.

 

 

 철로를 뺀 기찻길을 걸었다.

나무침목은 진짜 철길에서 빼온것같다.

기찻길가 아이들은 여기가 놀이터였다.

머시매들은 철로위에 못을 놓아 기차가 지난후 납작해진 못으로 장남감을 만들고,

가시내들은 귀퉁이가 둥그렇고 윤기나는 돌멩이를 주어 공기 놀이를했다.

그리고,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남자 여자 같이 하는 놀이였다.

참으로 위험천만한 장난이 그때는 제일 재미있는 일이었다.

기찻길은 위험하기도 하지만,때론 낭만도 있었다.

 

기차 통학을 하면서 학교를 다녀본 기억이 있는 사람은

 눈을 감고 그때를 떠올리면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새벽에 같은 시간에 같은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길에도 같은 시간에 같은 기차를 타는일이 지겹지만은 않은것은

풋풋한 학창시절의 꿈과 맘에 드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그곳에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만 타면 멀미를 하는 나는 기차를 타면 아무렇지 않았다.

 

측백나무가 별사탕을 물고 양쪽에 호위하고 있는데 사진이 잘안찍혔다.

대신 두툼한 남편의 손이 나왔네,

 

 

 

 

멀리 장독대 분수를 찍었다.

소나무 세그루가 사이좋게 뻗어 오른다.

내자식들도 셋이서 형제애를 돈독히 하는 자식들이 되었음한다.

행여,편애 하는 일이 없도록 골고루 사랑을 분배하려고 하는데

지들이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있을게다.

위에서 내려치고 밑에서 드리받고 자란

 둘째의 설움을 잘아는 남편을 둔 내가 신경을 쓰는일이다.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아닌가?

그러고 보니,뿌리가 희고 꽃이 보라색 도라지인가 보다.

바위틈에 숨어 살포시 피어있다.

 

 

 

복부인마냥 위풍당당 목에 힘을 주고

 뽐내는 저꽃은 나리꽃이지?

투기 할줄도 모르고 세상물정 모르는 나는

 남편 없이는 딱 굶어 죽게 생겼다.

너무 화려해 친해지기 어려운 꽃.

 

 

 

무궁화

무궁화가 피어있는 삼천리 강산은 금수강산이라는데

무궁화가 천대시 받고 있다.

 끈끈한 우리 민족을 닮은 무궁화는 연꽃과도 닮았다.

화려하고 향이 진한 꽃에 밀려있는 꽃,무궁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김진명씨가 '천년의 금서'를 가지고 왔는데

 우리 민족의 '한'을 파헤치는 소설이다.

전작이나 마찬가지로 그의 한민족의 자존심은 매우크다.

재미로 읽는 소설이 아니라 스케일이 남자답다는 인상을 남긴다.

 

 

 

 

바위위에 앉은 이끼와

 살고자 안간힘을 쏟는 풀

참, 사는것이 힘들다.

산다는게 고추보다 맵다는 노래가 있듯이,

세그루의 고추모종을 심은게 하나씩 달린 고추가 아주 신기해 죽겠다.

햇빛을 직접 쐬지못해 거세당한 초롱이 꼬치모냥 크지 못하고 오글오글하다.


 

 

 

세미원을 나서면서 아쉬워 남긴 마지막 한장면

연한 아이보리가 그동안의 번뇌와 고통을 알았으니

잘가라고 한다.

 

그리고,법구경을 알려준다.

"여기 영원한 내소유는 없지만

그러나,생의 이 기쁨을 만끽하라.

생의 이 기쁨 속에서

 빛 그자체가 되어 살아가라."

 

 

 

팔당호를 휘어감은 검단산을 배경으로 한장 박았다.

멀리 도미 나루가 보이도록,

도미는 백제가 영토를 확장할때 월지국의 우두머리 신지의 후예나 농사짓는 평민으로 살았다.

백제 제 4대 개루왕은 도미의부인 아랑을 보고 시침을 요구하자

 그녀는 종을 들여보냈다가 발각이 된다.

그러자 그녀의 남편인 도미의 눈을 빼 버린다.

그리고 도미를 검단산아래 도미 나루에 강물에 띄워버렸다.

다시 왕이 시침을 요구하자 아랑은 월경을 이유로 거절하고

도미와 아랑은 고구려로 도망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유혹과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고 정절을 지킨 백제 여인이다.

 

요즘같이 성을 사고 파는 세상에는 실닯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같이 어수룩하고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도 있다.

양처도,악처도 못되고,

어정쩡한처가 되어서 도망도 못가니,당신이 고생이 많다.

 

 

 

 이강을 건너면 이제 간다.

 

꽃배를 띄울수 없다면

 풍덩 빠져서라도 간다.

 

그리워

그리워,불러도

들리지 않을때까지

 

몸과

 마음이 갈라져서

보이지 않을때가지 간다.

 

 

뿌리 내려 피는꽃이

되도록 기운을 주고

간다. 

 

돌아오는길에 소나기 마을 진입간판이 크게 보인다.

"여보, 소나기 마을이 십이킬로만 가면 있데"

운전사 맘이니께,한번에 한가지 이상 집중이 안되는 날 알고,

들은채 만채 다리위로 쌩하니 오르는 차는 집으로 향한다.

 

 목줄을 반납하고 받아온 양평 유기농 감자  네봉다리로

볶아 먹고,지져 먹고,쪄 먹고 이틀내 감자는 실컨 먹었다.

 

다음날 찍은 뇌 사진은 극히 정상이었다.

타원형의 머리통에 이리저리 얽혀있는 핏줄이며

 꼬불거리는 뇌창자는 마실도 안가고,

그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다.

그럼 여태,아픈 통증은,

꾀병이 아니라 진짜 통증인데,마음이 정신이 문제이다.

"여보,통증이 밑으로 내려왔나, 편도선이 따끔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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