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매화마을에서 최참판댁으로

2012. 3. 22. 17:34여행

 

 

春分이 지났는데 春來不似春이다.

장독댁 깨진다는 이월 바람이 부는 음력 이월도 다가고

그야말로 꽃피는 춘삼월 되었어도 아침저녁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그래도 낮에는 살랑 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속에 꽃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는 봄은 어느사이 베란다 너머 거실창가로 들어섰다.

겨울내내 내팽겨둔 화분에서 겨우 살아남은 노즈마리와 장미 허브 빼고는

이름 모르는 시퍼런 식물하나 뿐이라 봄꽃 구경하고파

멀리 광양으로 따라 나섰다.

 

여행하고 구경하는것도 이력이 나게 많이 해본 사람은

훌쩍 훌쩍 잘도 떠나더만 나는 어디한번 갈라치면

전날 잠은 자다 깨다 잔건지 꿈을 꾼건지, 햇갈리고

오줌소태 걸린 여자모양 막상 화장실에 가서 앉으면 나오지도 않으면서 

오줌은 왜이리 마려운지,

암튼,이른 봄날 이른 아침에 미리 예약된 버스를 타기 위해

신사역으로 가려는데 김밥을 사고 있는 동안 내 돈 주고 기사 눈치 봐야 하고

행여 달리다 앞뒤로 박을까 무섭다고 대중교통 이용하자고 할까봐

내짝꿍은 벌써 택시를 잡고 섰다.

세번 갈아타는 수고를 덜어야 저질 체력인 내가 하루종일 걸리는 여행에

경제적 효과란다.

추운 겨울날 싸매고 강변길을 걸으며 보았던 한강다리들을 지나치는

한강물결이 유난히 파랗다.

화창한 봄날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꽃바람 따라 네시간 넘게 달려온 남쪽,

지리산 자락이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병풍처럼 널려있고

섬진강 물결이 굽이굽이 모래사장 옆으로 때론 바윗돌 사이로 흐르는게

수많은 시나부랭이께나 읖어대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며

주저앉혀던 이유를 알것같다.

 

봄눈 녹을때,

매화, 너한테 가리.

 

 

 

 

 

 

 

 

 

 

 

 

 

 

 

 

 

 

 

매화축제장에 들어서니 흘러간 유행가가 먼저 관광객을 맞이한다.

주말이 아니여서 차량통행이 빨라 좋다는 안내의 말마따나 한가했으나

기대가 너무 컸나,하얀 꽃동산은 아니 보이고 어설피 한두그루 꽃을 피웠다.

꽃잎이 눈처럼 분분히 흩어지는 나무그늘 아래서 돗자리 깔고 앉아 점심을 먹고

누워 절개와 지조가 있어 더욱더 맑은 향기를 품어낸다는

매향을 맡으려는 욕심은 사라져 버렸다.

보드러워진 흙을 뚫고 올라오는 어린 쑥과 쑥부쟁이가 눈에 띈다.

사과 깍던 잭나이프를 들고 지리산의 공기와 섬진강의 물을 먹고 자란

쑥캐기 작업에 들어갔다.

 

삼십여만평에 백만여그루 심어진 섬진강에 인접한 백운산 능선의

매화 동산 한바뀌 도는것도 얼추 두세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흥겨운 축제장에 음주가무가 빠지면 우리 민족이 아닌듯,

스피커에서 흥겨운 노래가락이 흘러나오고 곳곳에서 벌린 좌판에서는

메실주와 동동주로 관광객을 유혹한다.

술이란게 적당하면 그보다 좋은게 없는데 고걸 못 참아내

눈쌀 찌푸리는일이 많다.

화장실이 없다면 별수 없지만,눈앞에 보이는 화장실을 나두고

지나는 사람들 옆에서 소변을 보는 행태,정말이지,더럽다.

덜핀 매화 촉진제로 한우가 싸댄 똥을 준다하니

매화나무 영양제로 메실주 먹은 오줌은 괜찮을지도 모른다.

 

고결하면서 은은한 여인의 지분 향기로 눈도 녹이고 님도 녹여서

사랑받는 매화밭에서 나는 시 한구절도 못 뽑아내고

눈에 담은 그림을 머리에 집어넣고 가슴에 품고 돌아서고 말았다.

 

퇴계 이황은 매화를 너무나 사랑해 이질에 걸려 고생하면서도

자신의 피폐함을 매화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매화 분재를

다른방으로 옮겼다 한다.

운명하는 순간에 그가 남긴 최후의 말은 "매화에 물을 주라."고 했단다.

수많은 선비들이 향내나는 매화를 몽롱한 정신을 만드는 여인의 향기로 알고

사랑시를 남겼다.

 

퇴계는

"막고산 신선님이 눈 내린 마을에 와

 형체를 단련하여 매화 넋이 되었구려.

 

이규보는

"옥결같은 살결엔 맑은 향기 아직도 어린

 仙藥을 훔친 달 속 항아의 몸"

 

정도전은

"천지간에 음기가 꽉 차 있어

 어느곳에서 봄빛을 찾는담

 기특하기도 해라,저토록 수척한 것이

 얼음 서리 물리쳐 내네"

 

미당은

매화에 봄사랑이 알큰하게 펴난다

알큰한 그 숨결로 남은 눈을 녹이며

더 더는 못견디어 하늘에 빰을 부빈다

시악씨야 하늘도 님도 네가 그립단다.

 

또다른 문사 진화는

"봄의 신이 뭇 꽃을 물들일때

 맨 먼저 매화에게 옅은 화장을 시켰지

 옥결 같은 뺨엔 옅은 봄을 머금고

 흰 치마는 달빛에 서늘해라."

 

여기서, 막고산은, 살결이 빙설 같고 몸이 가볍고 보드라운 처자같고

항아란, 상궁이 되기전 어린 궁녀를 일컫는말로 매화의 자태에서

여인의 살결과 살냄새를 연상시킨다.

 

굵은 왕 대나무가 청매실 농원을 감싸고 있는 숲은

영화 임권택감독의 '취화선' 촬영장소로 쓰였던 곳이다.

그렇게 굵은 대나무는 난생처음 보았고,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가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다고

노래로 불러대는 초록나무에 매달린 빨간 동백꽃을 보았다.

봄보다도 먼저 온다는 동백꽃은 정말 피처럼 붉었다.

 

테레비에도 자주 등장해 유명한 홍쌍리 메실 농장에는

이천여개의 항아리들이 섬진강을 굽어보며 양지바른곳에 앉아있다.

결실을 맺은 매실을 수확한뒤에 다양한 방법으로 저장하는 항아리들 이란다.

 

한나절 봄볕에 등이 따뜻해 졸음을 몰고 올쯤에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을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하며 흥얼이다

메실 농원에서 기르는 한우 논동자를 떠올리며

지리산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건너 도착한곳은

박경리 소설속 토지배경이 된 최참판댁이다.

 

 

최서희와 김길상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넓은 악양 뜰을 보듬은 평사리 들판에는 서희松,길상松이라는

부부송 두그루가 사랑을 뽐내듯 서있다.

구름도 쉬어가는 슬로시티 하동이란 이름으로 여행객을 맞이하는

산좋고 물좋은 곳중 하나이다.

 

경남,전북,전남의 삼도에 걸쳐있는 크고 작은 산봉우리가 신비한 산세를 보유하고 있어

천왕봉(1915m),노고단(1507m),반야봉(1732m)의 삼대주봉중에

하나의 봉이라도 갔다왔으면 일출은 동쪽의 천왕봉에서

낙조는 서쪽의 반야봉에서 봐야 한다는 산꾼들의 대화에 낄까,

지리산 종주를 한사람과 안 한사람으로 분류한다는

산꾼들의 찬사가 이어지는 지리산은 빨치산의 아지트로

유명했던곳이기도 하다. 

특히 피아골의 가을 선홍색 단풍은 피아골 골짜기에서

죽어나간 영혼이 피어난것 이라고들 말한다.

빨치산은 멧돼지로, 군인은 노란개로, 경찰은 검은개로 불리워졌던때

가장 힘든것은 새중간에 낀 민간인들이었다.

밤중에는 빨치산에게 곡식 털리고 낮에는 순사들에게 당하고

이눈치 저눈치 보느라 눈치만 백단이 넘는 사람들은

그중에도 살아남았다.

 

참판댁 들어서기전 몇몇 전통식품과 우리옷가게가 있고

용이네와 칠성이 영팔이네등 평사리 사람들이 살았던 초가는

새로 단장한듯 깔끔한 초가동네이다.

김개주에게 겁탈 당해 김환을 낳고도 장성한 김환을 하인으로 곁에 두면서

자신의 며느리인 별당아씨와의 불륜을 용인 해주었던 윤씨부인이 거처했던 안채는

참판댁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감히 남정네 발걸음을 허용 안했던 그곳에 우리부부는 앉아 보았다.

 

최서희 그녀는 가족을 모두 잃고 조준구,그러니까 아버지 최치수의 재종형인

그에게 재산을 빼앗기자 참판댁 심부름꾼이었던 길상과 함께 용정으로 이주하여

길상이 도운 사업으로 성공하고 길상과 결혼하여 두아들을 낳고 귀향하여

평사리 땅을 되찾는다.

후에 항일운동을 도우며 평사리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로 살아가지만,

양반의 하인에서 결혼으로 신분상승한 길상은 마음 한켠에는 다가갈수 없는

서희의 위력에 미묘한 감정을 소설에서는 잘 나타낸다.

그 역시 항일운동하고 후에 도솔암에서 관음탱자를 그려 감동을 준다.

소설속 이야기이다.

 

 

 

 

 

 

 

 

 

 

 

 

 

 

 

 

참판댁 사랑채 대청마루에 서면 멀리 지리산 밑에 섬진강이 흐르고

악양면 평사리의  소나무 두그루와 아직 농사전이 들판이 한눈에 보인다.

 

최참판댁에는 활작 핀 매화와 산수유까지 황홀하여

꽃구경 나왔다가 쑥만캐고 왔다는 말은 접는다.

 

실용적인 생활 한복가게에서 발길을 멈추고 구경하던차에

어디선가 낫설지 않은 목소리는 자세히 보니 정희였다.

세상이란 넓은것 같으면서도 좁아서 또 이런 낯선 관광지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하는가보다.

백수 부부처럼 바쁜 부부도 안식 여행? 그럼,세월을 비켜가는 친구가 부럽다고 해야지.

아님,홀로 여행? 그럼,한적한 고독이 진솔한 나를 찾는데는 최고라고 위로 해야지,

아님,주말도 아닌 평일날 바쁜 남편대신 애인을 달고? 그럼 꽃나비는 못 봤다고 해야지,

아닐거야, 짧은 순간에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죽은 외할매 살아 돌아온것 맹키로 반갑다고 펄펄 뛰는데

뒤에 또 서있는 복례와 인순이가 있었다.

오랜만에 바람쐬러 나온 여행길에 그것도 셋씩이나 만나는 초등 동창이라니

우연속에 인연이라고 예사 인연은 아닌듯 싶다.

반가움에 봄햇살도 우리의 웃음소리로 반짝인다..하하..

십여분간의 만남을 뒤로하고 그녀들 일행과 헤어져서

월선이가 입었을만한 바지 저고리 한벌을 사들고 관광버스에 올랐다.

설렘과 피곤한  긴 하루를 보내고 지는 저녁 노을을 바라본다.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쯤,

매화밭에서는 알큼달큼한 매향이 지천을 흔들어 봄춤 추는이 많을텐데,

서울 창밖엔 봄비가 그치고 삼월 눈발이 날린다.

 2012년 3월 24일 씀.

 

참고-조용호의 꽃에게 길을 묻다

글,사진- 李 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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