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15. 15:18ㆍ일반산행
어둠속에 산중의 고요는 아직인데 대피소는 코고는 소리와
부시럭거리는 소리로 깊은 잠을 잘수없다.
몸을 뒤척이는데 닭죽을 끓였으니 아침 먹자 깨우는 남편
도대체 몇시부터 설쳤는지 밤새 뜬눈으로 새웠는지 알수가 없다.
다섯시도 안된 새벽녘에 아침 먹기는 난생 처음이다.
꽁꽁 얼려 가지고 온 닭국물이 한두방울 떨어져 새벽 네시부터
죽을 끓였다는 남편은 집에서 안하던 죽 끓이는것부터
물휴지로 설거지까지 하려니 죽을맛 이겠지만
마누라와 아들 데리고 산행 훈련시키는 재미 때문인지
기운이 펄펄나는것 같다.
새벽 안개와 이슬맺힌 촉촉한 설악산의 정기를 심호흡으로 들여 마시고
눈 뜨고 귀 열어 하늘 높이 갈라진 설악의 봉우리를 가슴속에 담아
새벽부터 중청 대피소를 빠져나와 소청(1550m)로 향하는
하산길로 향했다.
어젯밤에 그토록 떼로 뭉쳐 사람을 못살게 쫓아 다니며
따끔따끔 물어대던 작은 벌레들은 하루살이인줄 알았더만
아침에도 무더기로 몰려와 정신을 홀라당 빼놓는다.
자질구레한 미물주제에 어디 사람을 하고 무시했다간
호되게 당하고 마는 설악산 중청 대피소 벌레들에 쫓겨
빠른 걸음으로 대피소를 벗어나자 이미 내 뒷목과 이마 팔 다리는
그것들에게 피 빨린 흔적이 남아 있다.
유독 나만 공격하는걸 보니 여자를 좋아하든지 내 피가
뜨겁고 맛있나 보다.
요새 헌혈도 안하고 흘릴피도 없었으니 그것들에게 조금 나눠줘도
좋을것 같은데 가렵지만 않음 좋겠다.
해발 1550m의 소청에서 희운각 대피소까지는 1,3km로
약 두시간이 걸린단다.
오른다고 숨찰일 없으니 이제는 빠른 걸음으로 어서어서 내려가
집에 가고 싶다.
스물스물 피어 오르며 모여졌다 흩어지는 구름 사이로
풍덩 빠진 설악의 봉우리를 바라보며 오묘한 자연의 신비를
감탄하며 내려오는데 무릎이 시끈시끈하여 나는 마음만 바쁘지
몸은 뒤쳐진다.
무릎보호대를 차고 걸으면 무릎은 덜 아픈데 덥고 땀나고
가지가지로 신경 쓰인다.
건너편에 황철봉 저항령을 내려온 백두대간이 마등령에 이르러 신선대까지
길이 약 5km의 공룡 한마리를 풀어 놓은것같은 공룡능선의 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를듯이 숨을 멎게 한다.
공룡능선은 외설악과 내설악의 분기점으로 구름이 자주 끼고 오르락 내리락
매우 힘든코스로 설악산 산꾼이라 자랑질 하려면 설악의 쥐라기공원의 공룡을
탔다고 해야 한다나 어쩐다나,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높은 정상을 밟은뒤 집으로 가는길도 고행길은 마찬가지여
"산을 넘으니 다시 산을 만나고 물을 건너니 또 물을 만나느니."라는
수은의 시 구절처럼 세상에 쉬운길은 하나도 없는것 같다.
중청대피소에서 희운각 대피소까지 2,7km를 2시간40여분만에 도착하여
초코렛과 생수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다람쥐 한마리
내 초코렛맛을 보고 있다.
등산객이 쉬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다람쥐들이 나타나 간식을 노린다.
산중에 지들 먹거리가 훨씬 좋을텐데 나같이 동물이 이쁘다고
사람 먹는 음식 먹여 단맛과 짠맛에 중독되게 하면 안된다.
그러고 보니 집에 두고온 늙은 초롱이가 보고 싶다.
신문지로 대충 지 영역을 깔아 놓고 먹을 밥과 물을 충분히 담아놓고
나왔어도 하루밤이 지났으니 오줌 똥 여기저기 싸놓고
얼마나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을지 걱정된다.
그렇게 초롱초롱하여 이름도 초롱이라 지었건만 나이들고 치매걸리니
오줌 똥을 못가린다.
십칠년이나 가족으로 지냈는데 치매 걸렸다고 굶겨 죽일수도 없도
내다 버릴수도 없어 요즘 내가 하는일이 개 빨래 삶아대는 일이다.
앞으로 비선대까지는 5,5km 남았다.
꼬박 4시간은 걸어야 이십년전 넓은 바위에 앉아 발 담그고 놀던
비선대가 나온다.
뿌연 운무속에 앞길을 헤쳐가는데 어제 올랐던 대청봉 꼭대기는
온데 간데 보이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없는 낯선 길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켜주는 두남자가 있어서 다행이지
혼자여서 조난 당할수도 있겠다 싶어 무섭고 두려운 길이다.
천당 폭포 오련폭포 크고 작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내지르는 새소리에 힘든줄 모르고 구름속을 헤쳐나와
천불동 계곡으로 온다더니 어디냐고 묻자,
전생에 산지기나 산신령이었던게 분명해 구석구석 모르는 산이 없는 남편이
여태것 내려온길이 천불동 계곡이라 한다.
회색빛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절벽이 금방이라도 쪼개져 떨어질것 같은
천불동 계곡의 바위들은 어마어마 하게 크고 높았다.
그 바위위에 위풍 당당하게 찌를듯이 푸르게 서있는 나무들은
편하고 푹신한 땅을 나두고 하필 그런 바위속에서 자라나 힘들게 서있나
천불동 계곡의 바위골 푸른 숲이 세속의탈을 벗은 신선처럼 보인다.
아름답다 감탄사를 연발하는 나를 보던 남편은 그동안 앞만보고
누가누가 빨리 걷나 내기하듯 지나가던 계곡길을 오늘 감상 한다나,
하여간에 승부욕을 던져 버려야 인생길도 쉬엄쉬엄 강물처럼 살수 있다.
설악산의 진경은 천불동 계곡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