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4월20일 일요일 오전

2014. 4. 23. 21:47여행

 

로마하면

유럽여행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유럽인들 정신적인 주춧돌이 된 바티칸 시국이 있는 도시이고

3000년이상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도시이다

       

이탈리아 역사는

삼두정치로 공화정이 쇠퇴하고 옥타비아누스가 권력투쟁에서 승리하여

아우구스쿠스라는 칭호를 받고 로마 제국 최초 황제가 된다

팍스 로마나를 구가하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때 동서로 분열된후

AD 476년 게르만에 의해 서로마제국은 멸망한다

이후 베네치아 피렌체등 도시국가로 르네상스 중심이 되면서

동로마제국 멸망으로 터키가 지중해에 진출하여 군주 국가들이 등장하며

도시국가는 속국이 된다

 

4세기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막센티우스 왕을 폐위하고 그리스도교를 공인한다.

중세에 걸쳐 산피에트로 대성당을 갖는 로마 카톨릭의 중심지 구실을 하게된다

962년 신성 로마제국성립으로 로마는 서유럽의 그리스도교 중심지가 되고

역대 황제는 대관 때문에 로마로 오게 되니 교황권과 황제권으로 충돌하게 된다

아비뇽에 교황이 옮겨가 있던 14세기는 로마가 가장 침체한 시기로

1348년 페스트가 유행했었다.

15-16세기에는 식스토 4세 알렉산 데르6세 율리오2세와 레오10세등 르네상스교황이

등장하여 교황의 권한이 커지고 로마는 르네상스문화 중심이 되었다

1527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5세의 군대에 의해 일어났던 로마의 약탈로 인해

일시적 중단은 있었으나 카톨릭을 중심으로 로마는 발전하여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궁전과 광장이 건설되었다.

18세기말 나폴레옹의 참략으로 프랑스혁명 사상이 전파되어

통일 운동으로 1870년 빅토리아 에마누엘2세가 이탈리아를 통일한다

1차 세계대전때는 연합군에 가담하여 건승국이 되지만

이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히틀러와 연합전선을 구축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데 패하고 만다.

이후 파시스트 세력이 붕괴해 내각제를 체택하고

보수 기민당이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채 연정을 구성하여

40년간 집권하고 있다.

아펜니노 산맥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반도 국가인 이탈리아는

삼면이 지중해로 둘러싸여있다

남한의 세배에 달하는 면적에 인구는 오천여만명정도이다

지중해 기후로 여름에는 고온건조하고 겨울에는 온난습윤하다.

 

로마는

전설에 따르면 BC 753년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의해 이루어진다. 

테베레강 하구에서 우안의 홍적층 대지와 좌안의 알바노 화산군의 용암에 의해

좁아지고 있는 지점까지 배가 올라갈수 있고 상류에는 아펜니노의 구릉에 이른

교통로였던 아니에네강이 합류하였다.

이곳이 에트루리아, 라틴, 사비누스의 3종족이 접하는곳이며 교통의 요소에

시장도시로 기원한 것이 바로 로마이다

한때 에트루리아인의 지배를 받으며 시벽을 갖춘 도시로 발달했다

에트루리아계왕을 추방하고 귀족공화당을 실시함으로 로마는

라틴 도시의 맹주가 되어 고대로마 국가의 중심이 될 기초를 닦았다

현재 테르미니역부근에 세르비우스 왕의 시벽 일부가 남아있다.

제정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가 축조한 시벽도 대부분 남아있다

 

통일국가 수도가 된후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발전했으며

교황의 로마도시는 교황국가의 수도로 존재하다 19세기이래

공화주의 운동과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대해 강력히 저항했다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성립되고 1871년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가 되었으나

이에 화가난 교황은 바티칸 궁전에 들어앉아 스스로'바티칸의 죄수'라 칭하며

이탈리아 왕국과 대립하였다

이른바 로마문제였는데 이는 1929년 무솔리니와 교황비오11세사이에

'라테란협정'이 체결되고 바티칸 시국이 성립되어

이탈리아에서 특수란 지위가 인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 미국 공군 폭격을 당했으나 연합군이 북상할때는

무방비 도시를 선언하여 귀중한 문화재가 전화로 파괴되는것을

모면할수 있었다

바티칸 시국등 많은 사연과 역사의 신비가 있는 로마에 입성하고 하루밤을

지냈다

 

밤비 내리는 여행지 로마에서 삼일간 270유로의 민박집은

난방도 안되고 추웠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방마다 없고 공동 샤워실에 누군가 토한 음식으로

깔끔하지 않는 불편을 지원이는 견디기 힘들어 하고 호텔로 옮기자고 했지만

어디 남의집이 내집같이 편하고 깨끗하겠느냐며 집나오면 다 개고생이니

남은 이틀밤만 무사히 보내면 된다며 살살 구슬려 간신히 맘은 진정 시켰다.

늦은 저녁으로 어제는 민박집에서 제공하는 된장찌게를 먹었는데

아침으로는 주먹밥을 준다.

베낭에 넣어가지고간 빵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민박에서 건낸 주먹밥은

베낭에 다시 넣고 집을 나서는데 어젯밤에 내린 비는 씻은듯이 개이고

날씨는 화창하여 지중해의 햇살이 그대로 내리쬐는듯

햇볕은 강렬하고 하늘은 파랗다.

A선 지하철로 Termini역에서 B선 지하철로 환승하여 Colosseo역에 내리니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Colosseo에 들어가려는 입장권 구매의 긴줄을 피해 

Poro Romano 부터 보기로 하고 이동하였다.

포로 로마노와 클로세움 팔라티노 언덕 세가지를 볼수있는 표를

일인당 12유로에 구입하여 포로 로마노에 들어가기 앞서

티투스 개선문을 통과하였다.

Arco di Tito 티투스 황제 개선문은

콜로세움에서 포로 로마노로 들어갈때 제일 먼저 만나는 문이다

도미티안 황제가 그의 형인 티투스 황제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예루살렘 전투승전을 기념하여 AD 81년에 세운 가장 오래된

개선문이다.

개선문의 내벽에는 로마군의 전쟁장면과 쌍두마차를 타고 개선하는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Foro Romano 포로 로마노는

콜로세움과 캄피돌라오 광장 사이에 있다.

포로 로마노가 세워진 지역은 처음에는 비가 오면 물이 괴는 습지였는데

하수 시설을 확충한후 도시 생활의 구심점을 이루는 장소가 되었다.

고대 로마 정치 종교 상업의 중심지로

고대 로마 제국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 되어었던 곳이다.

포로란 공공장소를 가리킨다.Forum의 어원이라고도 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듯이

1000년을 이어 온 제정 로마 시대의 역대 황제들은 권력의 상징으로

이곳에다 원로원,재판소,개선문을 세우기 시작하여

로마제국의 심장 역할을 했다.

AD 283년에 화재로 파괴된후 복구되긴 했으나

4세기말 서고트족의 침입으로 포로 로마노는 황폐되었고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는 건물들을 헐어 건축자재로 쓰기도 했단다

그후 1871년에 발굴작업이 본격화 되었다

아직 옛 흔적이 많이 남아있고 지금도 발굴중인듯 부서진 벽돌더미와

파헤쳐진 땅굴속 유적들이 넓게 퍼져있다.

황실의 싸움으로 흐르는 테베레강에 버린 로마 건국의 창시자인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늑대가 젖먹여 키웠는데 훗날 로물루스는 레무스를 죽이고 로마를 세웠다는 전설이 깃든

Monte Palatino팔라티노 언덕에서 바라보는 포로 로마노 전망도 좋다는데

우리는 땡볕에 걷다보니 아침나절부터 지친 허기를 주먹밥으로 먹었다.

참기름을 바른 밥알속에 갈은 소고기를 살짝 볶아 만든 주먹밥은 한끼로 충분했다

포로 로마노안에는 먹는 식수가 있다.

정치 중심인 원로원 건물이나 막센티우스 황제의 신전,티투스 황제의 개선문등

키케로가 연설했다는 로스트리와 기둥만 남은 카이사르 베스트 신전등

2500여년전 로마 제국의 화려했던 역사의 무대는 넓은 유적지로 남아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Arco di Settimio Severo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

아래 사진의 오른쪽 문으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10년 통치를 치하하고

그의 아들 카라칼라와 제타의 파르티아 아라비아 아시리아 등지에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원로원과 시민들이AD 203년에 세운것이다

이곳에 새겨진 신들의 모습은 르네상스 시대에 전유럽에 전해졌다.

 

Culonna di Foca포카 황제 기념 원주

로스트라 연단앞에 우뚝 서 있는 포카 황제 기념 원주는

608년 동로마 황제 포카에게 바쳐진 것으로 로마 공회장에

마지막으로 세워진 기념비이다.

 

 

 

 

 

 

 

 

 

 

 

 

 

Tempio di Castore e Polluce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신전

3개의 기둥만 남아있다

'쌍둥이 형제의 신전'이라도도 불린다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와 폴룩스를 디오스 쿠리라 부른다

레질루스 호수 전투에서 로마인들이 타르쿠인 왕조에 승리했는데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가 결정적인 역활을 했다

그런데 두형제가 백마를 타고 로마에 달려와 이 소식을 전해주었다 한다

BC 489년 카스토르와 폴룩스 신에게 바치기 위해 세웠다.

 

Tempio di Saturmo사투르누스 신전

남쪽 현관입구로 들어가면 BC497년에 세워진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오래된

사투르누스 신전이 나온다

현재는 이오니아식 기둥 8개만 남아있다.

고대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신전중 하나로 농업의 신 사투르누스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Tempio di Giulio Cesare율리우스 카이사르 신전은

BC 44년 카이사르가 화장된곳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된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BC29년에 세워진 신전이다

원로원과 일전을 겨루기 위해 루비콘강을 건너면서

'주사위는 던져졌다'동방 원정중에 원로원에게 승전보를 알리면서

'왔노라 보았노라,이겼노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카이사르이다

신격화된 인간을 위한 신전이다

Curia Senate House원로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으로 들어서기전 붉은 벽돌의 건물로

이 원로원에서 카이사르가 아들처럼 아꼈던 브루투스에게 암살되면서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나서 포로로마노를 구경하면

지루하지 않는 관광이 될것이다.

그외에 로마제국에서 천년동안 성화가 꺼지면 흉조라 여겨 30년간 순결을 지키며

헌신했다는 베스타 신전과

카이사르가 죽고 친구인 안토니우스가 '친구여 로마여 시민이여'라 연설했던

재단인 로스트리와

로마제국의 정치범이 감옥이었더 마메르티노 감옥과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 로물루스 무덤이 있는 라피스 니제르와

로마 공회장에 마지막으로 세워진 포카 황제 기념 원주등

많은 유적을 볼수 있다.

포로로마노 한바뀌만 돌아도 한나절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포로로마노에서 나와 광장이 나오고 광장에는 임시 전광판을 설치하여

프란체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부활절 미사를 생중계하고 있었다

전세계 카톨릭 신자들이 교황의 부활절 미사를 보고자 한다는데

카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나는 로마의 심장부에서 교황의 모습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다

콜로세움방향으로 걸어오다 남편과 나는 젤라또를 지원이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사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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