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2. 15:11ㆍ백두대간
일정-2015년9월8일 화요일 맑음
장소-백두대간 태백산 구간 남진
코스-화방재-태백산(1567m)-부쇠봉-깃대배기봉-차돌배기-석문동계곡-애당리
백두대간길 12.4km+접속구간 4km=16.4km 7시간 걸림
약속된 이주전 산행이 엄청난 폭우로 연기되는 바람에
한달만에 다시 새벽밥 차려먹고 집 나서려니 모든것이
낫설기만 하다
선선한 새벽바람과 함께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집결장소인 양재역에 도착해 보니 사방팔방 가을을 맞이하러
떠나는 여행객과 등산객이 이른 아침인데도 북적댄다.
부지런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노는일에도 변하는 계절만큼
빠르고 바쁘다.
약속된 시간보다 일이십분은 기본으로 지각하는 빨강버스를 타려고
매번 먼저와 기다려야 꽁닥거리는 가슴을 진정되는지라
오늘도 이십오분여나 먼저와 기다렸다.
가을을 마중 나가는 길을 무려 네시간이나 달려 오늘의 들머리인
31번 국도가 지나는 화방재에 도착했다
설악산과 오대산 덕항산의 솟구친 등뼈를 지나 내륙으로 향해
시작점인 함백산 지나 태백산으로 들어서는 구간이다
화방재는 진달래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는 고개라 이름도 화방재란다
봄 여름을 이별하고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해발 950m의 화방재에는
짙 푸름의 녹음과 파란 하늘이 먼저 반겼다.
산길로 접어드는 입구에는 사길령이라는 백두대간 표지석과
사길령 매표소가 우뚝 서 있다.
도립공원에는 이천원의 입장료를 받았었는데 요즘은 없어져
매표소는 닫혀 있었다
사길령은 해발 980m로 경상도 봉화군 춘양에서 강원도 태백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고갯길로 옛날 길손의 왕래가 많았단다
신라때는 태백산을 오르는 고개라 하여 천령이라 하였으나
고려때에 새로이 길을 내면서 새길령에서 사길령이 되었고 전해진다
높고 험한 고개라 산적과 맹수들의 출몰이 잦다보니
이 고개를 넘나들던 보부상들이 오래전부터 고개에 당집인 산령각을 짓고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매년 올렸다 한다
화방재에서 삼십여분 걸어 산신각을 지나고 나면 태백산을 향해
완만한 경사를 서서히 오른다
오지 산간의 숲길 속에서 웃자란 풀숲을 헤치고 걷다보면
초록풀 사이로 보라 보다는 파란 잉크색에 가까운 강렬한 꽃이 눈에 띈다
투구를 둘러쓴 모양을 한 투구꽃이다
아름다운 투구꽃은 독성이 강해 먹을수 없는 꽃이다
또 크림색과 연보라 색깔의 오리주둥이과 궁둥이 모양을 한 야생꽃이
어찌나 앙증맞게 생겼는지 그 이름은 흰진범 이란다
또 햇빛을 잔뜩 받아 더 붉은 마가목 빨강열매들이 구슬처럼
꽃나무를 이루고 설렁하게 부는 바람에도 툭툭 떨어지는 돌배들이 나뒹굴었다
마가목 열매는 부종에 돌배는 기침에 효험이 있단다
긴 산길을 걷는 등산객에게 작은꽃과 향기로 눈과 코를 맑게 해주고
질병을 다스리는 약제까지 선사하니 자연은 진정 부자이다
"자연의 은혜를 모른채 파괴만 일삼는다면 인간은
그 어디에도 뿌리를 내릴수 없는 우주의 망나니가 되고 말것이다."라는
법정스님 가르침대로 생색내지 않고 말없이 나누어주는
자연을 배워야 한다
바람결에 부딪치는 산죽 이파리 소리가 적막을 깨고 흔들려
백두대간길중에서도 오지길 임음을 실감한다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겨울 태백산에 푸르름이 꽉찬
구월초 태백산은 오히려 심심할 정도로 오르고 내려오는 산꾼들이
적었다
살아천년 죽어천년 주목 군락지에는 우뚝우뚝 솟아있는
커다란 등줄기의 주목들이 눈에 띄어 파란 하늘아래
죽어서도 꼿꼿히 서 있는 회색빛 주목이 무섭기까지 하였다
그리많지 않은 살아있는 커다란 주목은 시멘트같이 보이는 땜질로
병충해에 예방과 치료를 해놓았다
가파르지 않는 산길을 꾸준히 걸어 화방재에서 4.5km를 지나
드디어 우리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에 도착했다
태백산은
하늘님의 아들이 내려온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산을 일컫는 산으로
'밝은산'크게 밝은산 이라 하여'한밝뫼'또는'한배달'로 불리기도 한다
경상북도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 태백시 경계에 있는 산으로
설악산 오대산 함백산과 함께 영산으로 불리는 산이다
최고봉은 장군봉(1567m)으로 산세가 완만하지만 남성다운 웅장하고
장중한 맛이 있다
산정상에는 태고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이 있어
환인천제 환웅천왕 단군왕검의 삼신일체인 한배검을 향해 제사를 올린다
이천년의 역사를 지닌 제단에서 매년 개천절에 천제를 지낸다
천제단은 천지인을 뜻하는 원방각 형태의 석단으로 되어 있다
하늘 땅 사람이 하나되어 만나는곳으로
땅을 의미하는 방은 석축으로 둘러쳐져 제단을 둘렀고
하늘을 뜻하는 원은 제단 아래 원판으로 앉아 하늘의 기를 땅에 펼친다
사람을 뜻하는 각은 이 제단에 읍하고 비로소 천지인 하나가 되는것이다
천제단은 장군봉 정상과 태백산 표지석이 놓인 영봉에 두개가 있고
정상을 비켜 부쇠봉 방향으로 한개가 더 있었다
빨강글씨로 한배검이라 쓰여진 천제단에서는 무속인인지 일반인인지
음식을 차려놓고 정성껏 기도중이었다
한배검은 단군의 높임말이란다
암벽이 적고 완만해 누구나 오르기 쉬운 산인 태백산에
이천년 밀레니엄 해맞이 한다고 온가족이 왔었다
피난가듯 두툼한 옷에 무거운 배낭을 하나씩 매고 청량리에서 기차로 한번 다녀오고
또 한번은 느닷없는 태백산 폭설 뉴스로 자는 아이들을 나눈채 밤 기차를 타고 다녀왔던
두번의 기억이다
눈속에 파묻힌 태백산에서 눈구경은 눈이 시도록 원없이 하고
거세게 부는 바람 때문에 몸을 가누기 힘들어 비틀거리다
천제단 구경은 하지 못한채 곧 바로 정상을 떠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계유정난으로 왕위 찬탈에 비분강개하여 세조 밑에서 한평생 벼슬하지 않고
단종을 위해 절의를 지킨 김시습은 삼각산에 머물다 읽던책을 모두 불사르고
조선팔도를 방랑하다 태백산을 보고
"멀리 아득한 태백산을 서쪽에서 바라보니
푸르고 뾰족한 봉우리가 구름속에 솟아있네
사람들은 산마루 신령님의 영험이라 말하는데
분명히 하늘과 땅의 빗장으로 얻은 조화로세"라 지었다
바람 많은 태백산 정상을 빗겨 부쇠봉 가다말고 작은 제단옆
양지 바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태 오르느라 흘렸던 땀방울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아직 가을 초입이건만 손가락이 살짝 시러질 정도로 바람은 거셌다
등짝으로 제법 따갑게 내리꼿힌 햇볕이 가까이에 있는 하늘을 실감한다
하얀 구름이 날아가듯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 사라지고
하늘 향해 두팔 벌려 나도 날아갈듯 가벼운 몸으로 천제단 아래에 서서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가을 하늘이다
넓디 넓은 태백산 정상 구릉에서 한바뀌 돌아 내려 가는길에
무덤 몇개가 보인다
천미터가 넘는 높은 태백산 꼭대기까지 관을 어찌 들고 올라 왔을지
조상들의 수고로움은 묘지위에 나풀거리는 잡풀만이 무성하다
너른 태백산 정상에는 가을의 전령사인 구절초가 바닥의 바위틈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바람 많은 땅에서 살아나려는 필사의 구절초들은 바닥에 덕지덕지 붙어
낮은 키로 꽃을 피워 겨울의 눈꽃을 대신하였다
겨울의 눈보라와 봄바람을 견뎌온 눈물겨운 경쟁에서 꽃피운
자연의 경이로움이다
천제단 아래에는 용정이라는 해발 1470m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곳에서 솟는 샘물이 있는 만경사가 있고
무당이 단종의 현몽을 받아 세웠다는 단종비각이 있다
영월지역 사람들은 그의 억울한 영혼을 부활하여 신령으로 승화시켰다
죽었던 단종이 태백산신이 되어 태백산으로 갔다는 전설은
"인간이 단종을 보살피지 않으면 도깨비가 보살핀다."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신적 존재로 인식하였다
영월 마을에서는 단종을 주신으로 모시고 태백산 일대에서는 태백산신으로 여긴다
들머리의 화방재의 휴계소에는 임금이 쉬었다 간곳이라해서 어평휴계소라 하는걸보니
이 지역과 인연이 많긴 많나보다
단종비각은 백두대간길을 살짝 비껴서 있어 백마를 탄 단종과 머루바구니를 들고 있는
추충신의 그림을 못보고 지나쳤다
태백산을 벗어나 부쇠봉으로 가는길은 문수봉쪽으로 조금 가다가
부쇠봉 봉우리를 찍고 우측의 백두대간길로 들어서면 된다
여기서 까딱하면 알바를 한다니 먼저가는 일행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부쇠봉은 강원 태백시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에
접한 봉우리로 구룡산까지 도계로 이어진다
안그래도 희미한 산길을 걷기도 바빠 죽겠는데 느닷없이 전투기가 나타나
머리위로 쌩쌩 지나가는 굉음 소리에 깜짝깜짝 놀래느라 질겁하였다
처음에는 무슨일인가 걱정했더니만 이지역이 군 사격 연습장가 있단다
부쇠봉에서 평탄하고 부드러운 길로 4km를 더가면 깃대배기봉이 나온다
봉화군 석포의 청옥산을 솟구치는 산줄기가 분기하는 깃대배기봉은 표지석이
윗봉과 아랫봉에 두개가 서 있다
1368m봉과 1370m봉 두개의 깃대배기봉을 차례로 지났다
이봉을 지나면 동쪽은 석포에서 춘양으로 바뀌고
서편은 길고 험한 춘시리골이 천편으로 흘러내린다
남쪽의 신선봉과 구룡산을 바라본 1174봉을 넘어 각화산 분깃점을 지나면
차돌배기(1141m) 삼거리 쉼터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오늘의 날머리인 애당리까지는 접속구간으로
4km 내리막의 연속이다.
누가 일부러 이런 험한길을 택해서 태백산을 오를지 아무도 없을거 같은
길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계곡의 음침한 숲을 헤치며 내려오는길은
미끌거리고 험했다.
엄습해 오는 산그림자에 칼날처럼 한줄기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비춰
눈을 찔러 피로를 부추겼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가락에 너무 힘을 주었나 발 앞구리가 아파온다
이온음료와 미수가루물을 들이키고 남은 기력을 소진할때쯤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들리고 종착지가 가까이 다가옴을 실감하며
뜨거워진 발바닥을 식힐 겨를도 없이 발길을 재촉하였다
마을어귀에 들어서니 어쩜 그리 크지 않은 사과나무에
주먹만한 사과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버스를 타고 동네를 빠져 나오는동안 경상북도 사과 고장답게
길가에 주인을 기다리는 사과 상자들이 즐비하게 놓여있어
한상자 사고 싶지만 공짜로 줘도 들고 갈수없으니
언감생신 눈으로만 배불리 먹고 돌아와야 했다
긴 백두대간보다 오히려 짧은 접속구간이 힘들었던 하루를 보내고
다음에도 같은길로 내려와야하는 번거로움이 기다린다
그러길래 일곱여덟시간 지나면 곡 소리 나오는 나는 무리겠지만
체력이 자신있는 사람은 웬만하면 무박으로 한번에 쭉 이어나가는
백두대간 걷는길을 더 선호 한단다
보름에 한번씩 잊을만하면 쉬엄쉬엄 한반도 등줄기를 걸으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자연과 함께 하는것도
괜찮은거 같다
벌써 가을 백두대간길이 기다려진다
태백산의 여름과 가을사이
여름 도시를 벗어나 가을 태백에 오르는길
내려갔다 올라갔다 수십번을 하고나니
푸른 물결 넘실대는 태백의 준령에 서 있다.
꽃 피고 꽃 지는 태백의 들판에서
부여잡은 여름 끝자락은 그림자로 남아
바람결에 허이허이 휘젓다 휘저어도
흰 구름만 떠가고,
높디 높은 하늘 아래 익어버린 숲 그늘속에
기절한채 꼿꼿이 굳은 주목 위를
잠자리 날개 파르르 떨며 맴돌다 사라지자
깊은 적막만 흐르고,
계절 저편으로 사라지는 뜨거운 그리움은
산마루 구름따라 출렁출렁 흘러가
동해 바다로 풍덩 빠진다
2015년 9월중순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