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13. 12:23ㆍ여행
일시-2015년12월12일 오후2시부터
장소-수원 화성
코스-창룡문-동일포루-치성-동포루-봉돈-동남각루-수원천-팔달문-남포루-서남암문-서포루
-서암문-서장대-서노대-서북각루-화서문-서북 공심돈-북포루-북서포루-북서적대-장안문
-북동적대-북동포루-화홍문-방화수류정-북암문-동북포루(각건대)-동암문-동장대(연무대)
-동북공심돈-동북노대-창룡문
참가자-김기훈 김진호 김인자 박덕희 신정희 이병돈 이명구 이용희 이윤정 정복례 정명수 정현수 정기병 조용철 진성섭
뒷풀이 합류-이경옥 이정수 정대형. 이상 18명
자고나면 휙휙 변해가는 기이한 세상만큼이나 날씨도 미쳐가고 있나
철 모르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산책길에 종종 눈에 띄더니
넘길 달력이 없는 마지막 십이월이건만 살을 애는 추위는 커녕
오늘도 봄날같이 따뜻하다
잔잔한 추억의 갈피들이 퍼즐게임하듯 튀어 나오는 행복한 유년의 추억을 만나
십팔세기로 떠나는 여행생각으로 들뜬맘이다
집결 장소인 수원화성 연무대에서 약속된 시각은 오후 두시
여러번 갈아 타면서 가야하고 초행길인지라 서둘렀다.
목적지 도달도 하기전에 당 떨어질 염려없이 이른 점심을 배 부르게 먹고
푸른 하늘에 뜬 힘없는 겨울 햇살을 받으며 정오에 집을 나섰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을 지난 전철은 합정역에서 신도림으로 갈아타고
신도림에서 다시 수원역으로 바로바로 이어지는 전철 갈아타며
모였다 흩어지는 인간군상들 감상하는것도 흥미로운 전철여행이었다.
디엠시에서는 육다시이 신도림에서는 칠다시삼에서 타면 갈아타는것도 쉽다고 하더니
걸으면 얼마나 걷는다고 발길 머무는 곳에서 그냥 탈거라며 투덜댔었는데
신기하게 연결이 바로 바로되어 시간이 절약되었다.
수원역사안은 지방으로 오고가는 사람들과 서울로 연결되는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가지각색 안내판과 식당 그리고 온갖 상점들이 품어내는 조명에 안내방송까지
서울보다 복잡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시각은 한시이십분을 지나고 이제 버스 한번만 타면 목적지가 바로여서
너무 일찍인가 홀로 기다리면 어쩌나 싶어 화장실을 찾았다
방광과 직장 두 장기를 한꺼번에 청소하고 나니 등짝이 서늘한 느낌이 든다
거위털 웃옷을 꺼내입고 손을 씻고 한참을 노닥거렸다
혼자 다니니까 구경할거 하면서 꾸물거려도 내 맘대로 하니 좋은것도 있었다
삼번출구로 빠져 나와 주차장을 지나쳐 오분여를 내려갔다
출구 바로앞에 있다던 버스정류장은 보이지 않고 쌩쌩 고가도로위로 버스가 지나가고
버스 정류장은커녕 택시 정류장도 없이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롯데몰이라고 쓰여진 빌딩만 눈에 띈다
다행이 풀빵 노점상인에게 수원화성 버스를 어디서 타야 되냐고 물었더니
역사안으로 들어갔다 반대로 나가야 버스가 많지 나같은 사람은 수원화성이
뭔지도 모른단다
갑자기 유럽여행하면서 익스큐스미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 길을 찾던 기억이
되살아나 피식 웃고 오던길을 뒤돌아 역사안으로 들어가 반대로 나오니
사번출구가 보인다
급한김에 현회장에게 전화했다. 연무대도 못찾아 가서 발버둥거리고 있는판에
창룡문으로 오라고 한다
수원역까지 와서 수원 화성구경도 못하고 서울로 갈수는 없는일이라
관광안내소를 찾아 안내 책자를 하나 받아들고 갈길을 물었다
사번출구로 다시 들어가 지하공사중인 골목을 빠져나가 반대편에서
버스를 타면 된단다
도로위로 올라와 보니 삼번출구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보니 역사안에서 삼번출구는 수원역 뒤쪽이었고
버스를 타야 할 삼번출구는 수원역 앞쪽인 셈이다.
지상에서도 동서남북 분간이 안되어 하마트면 반대로 갈뻔했는데
지금 다시 찾으라 해도 역사안에서는 헷갈릴 판이다
공지에 적힌 번호대로 버스만 타면 끝인가 싶었는데 육십육번에 올라타
버스행선지를 바라보니 오라는 창룡문은 보이지 않는다
약속된 시각인 두시는 이미 넘어가고 초조한 마음에 다시 전화를 했다
카톡으로 연신 정보교환하던 동창들은 벌써 만났을 텐데 여태까지 아무런 불편없이 지냈던
투지폰이 오늘은 통화버튼 누르는것도 손가락이 달달 떨린다
현 회장 전화 지시대로 행궁에서 내렸다.
행궁이란 방송대로 하차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방금 버스속에서 보았던
언덕위의 성벽은 커녕 돌멩이 하나없는 빌딩아래 도로가이다
집 나오면 개고생 쌩고생이라더니 수원화성 구경좀 하려다 고생문이 열린날인갑다라고
생각하던차에 전 회장이 날 찾아온다는 전화를 받고 어디냐고 물어본다
어딘지 알면 내가 찾아가지 버스타고 지나쳤던 장안문밖에 생각나는것이 없다
장안문에서 만나기로 하고 버스 타고 오던길을 걸어서 다시 장안문 앞으로 갔다
길잃은 양 한마리 구하기가 이렇게 저렇게 어렵게 전회장을 만난김에
반가움과 고마움이 먼저지만 길 찾는다고 속 터졌던 속상함에
자가용도 없이 나다니는 나같은 사람은 배려하지 않는 모임이라고 짜증냈다.
나이 먹어가면 지 각시한테도 듣기 싫은 소리 안들을텐데
속 좁은 사람되고 말았다
전 회장의 크고 멋진 흰색 자가용을 얻어타고 드디어 창룡문앞에 다달았다
예정에도 없던 별일을 겪는라고 약속시간을 무려 삼십분을 초과하고 말았다
일행들은 먼저 성곽길로 떠나없고 기다리던 남동창 세명과 합류했다
서울에서 수원까지 두시간반이라니 전주에서도 올만한 시간을 허비하여
분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탁 트인 잔디 언덕위로 걸어가
드디어 성곽길에 올라섰다
하루 여행길 풀어놓기가 이제 시작인데 휴~
휴식이 필요하다
수원 화성은 1796년에 축성된 읍성의 하나이다
다른 읍성과 달리 정조가 양주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능인 영우원을
수원도호부가 있던 화산으로 옮겨 명칭을 현륭원으로 개명하였다
그뒤 지존의 자리인 장조황제로 추존된후 원에서 융릉으로 격상되었다
지금 장소인 팔달산 아래로 옮기도록 하여 고을 명칭을
화성으로 고쳤다
이때부터 수원은 화성이란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나 1895년 지방 관제 개편으로
수원군으로 다시 수원시로 바뀌었다
정조는 효심과 애민정신으로 당파 근절과 왕도정치 실현을 위한 정치적 포부를
수원화성에 담고자 하였다
정조17년(1793)부터 화성축조가 본격적으로 준비하였다
규장각 문신인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로 만든'성화주략'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채제공의 총괄지휘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1월 착공에 들어가
1796년9월에 완공 하였다
성벽전체 길이는 정약용이 생각했던 4키로보다 늘어난 5.74킬로미터이다
북문인 장안문과 남쪽의 팔달문 동에는 창룡문 서에는 화서문의 4개의 성문과
5개의 암문이 있고 적대 누조 공심돈 포루등 다른 성곽에서는 볼수없는 새로운
시설이 있다
성곽으로 둘러쌓인 중앙에는 행궁이 자리잡고 있다
수원시 팔달구와 장안구에 걸쳐있는 화성이 위치한 지세는 서쪽에는 팔달산이 있고
동쪽에는 나즈막한 구릉이 있으며 동서 경사지 사이를 두고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개천이 흐르고
주위에는 평지가 펼쳐진다
조선후기 정조의 개혁적 정치노선인 실학사상과 자유시장체제가 만들어낸
건축공사였다는 화성축성은 군사방어기능과 함께 자연지형을 이용한 실용적인 구조로
동양성곽의 백미로 평가된다
1963년 사적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팔달문과 화서문은 보물로 관리되고
1997년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음향오행설에서 푸를 창 자가 동쪽을 의미한데서 이름이 유래된 화성의 동쪽문인
창룡문을 바라보고 먼저간 일행들과 조우하고 싶어 발길을 제촉하였으나
겨울날에 봄 나들이 꽃 구경 온 사람모양 친구들 발걸음은 느렸다.
창룡문은
화성의 동문으로 한국전쟁때 장안문과 더불어 문루가 파괴되었으나 복원하였고
파괴되지않은 옹성안 좌측 돌벽면에 당시 공사를 진행했던 담당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동쪽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성벽은 낮은 언덕위로 아기자기했다
창룡문 남쪽에 위치하는 동일포루를 지났다
포루는 진지로 포병용은 벽돌로 짓고 보병용은 치성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다.
이어 동일포루와 동포루 사이의 동일치와 동포루와 봉돈사이의 동이치를 지나게 된다
치는 성곽의 일정한 거리마다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시설이다
성벽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는 꿩을 의미하는데 궝은 자기 몸을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 이름 붙인것이다
다섯개의 굴뚝모양인 봉돈은 깔끔했다
일반적인 봉수대는 주변을 살필수 있는 산 정상에 별도로 만들어진것과는 달리
화성성벽에 맞물려 마치 예술작품처럼 벽돌로 만들어진것이 특징이다
평사시에 남쪽 첫번재 화두에서 밤에는 햇불을 낮에는 연기를 올려
용인 석성산과 흥천대 봉화로 신호를 보낸다
다른 4개의 햇불구멍을 긴급한 일이 없으면 올리지 않는다.
성밖 마을 풍경도 여느 도시답게 복잡다단했다
첨탑이 화려하고 고풍스럽기까지한 성당인지 교회인지 알수없는 건물이
단연 눈에 띄였다
나중에 뒤돌아 보니 수원제일교회라는 커다란 간판을 보인다
성안으로는 경주 다보탑과 비스무리한 탑을 지붕삼은 수원사라는 절이 있었다
성벽 안에서는 절이 성벽 밖에서는 교회가 수원화성의 안녕과 무사기원은
끄떡 없었다
봉돈과 동남각루 사이의 동삼치를 지나서 이어 동남각루에 도착했다
각루는 성곽부분 가운데 높은 구릉을 택하여 누각모양의 건물을 세워 주위를 감시하고
휴식을 즐길수 있는 정자처럼 다 기능성이 있는 건축물이다
화성에는 네개의 각루가 있는데 그중
동남각루는 남수문 바로 옆에 있으며 높은곳에 위치하고 있어
성벽이 꺽인 모퉁이이여서 주위를 관찰하기가 쉽다
동쪽 성벽따라 걸어오던 친구들과 하나둘 헤어지고 수원천까지 동행했던
남은 친구마져 뒤돌아가 헤어지게 되었다
홀로남아 남은 성곽돌기를 해야하는데 수원역에서도 동서남북을 헤매다 기운을 뺐는데
간신히 동쪽 성곽만 돌은 화성 성곽돌기도 동서남북이 또 문제다
수원천에서 나는 미아가 되었다 휴~
휴식이 필요하다
다시 투지폰을 꺼내들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일단 팔달문으로 오면 된다한다
성곽아래로 내려와서 수원천옆 성곽을 통과하니 영동시장이 나왔다
아무나 붙잡고 팔달문을 물으니 팔달문이 바로 저기란다
팔달문 찾기는 껌 씹어먹기보다 쉬었다
복잡한 도로에 섬처럼 서 있는 팔달문이 정말 바로 앞에 있었다.
팔달문은
화성의 사대문중 남쪽문으로 모든것이 통한다는
사통팔달에서 비롯한 이름이며 축성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위풍당당한 팔달문 앞에 서서 누굴 찾아야 할지
다시 휴대폰을 꺼내들고 정신은 반쯤이나 나가 도로위의 차량들처럼 이리저리 어지럽고
등짝에는 땀이 난다
거대한 팔달문 건너편에서 날 찾아온 정 친구도 얼마쯤이나 올라갔다 다시 내려왔는지
나 만큼이나 찾는라고 애쓰다 만났다.
이제는 미아될 걱정없이 남은 성곽돌기를 남서북으로 이어가기만 하면 될것이다
천원의 입장료가 필요한 팔달문 관광안내소를 지나쳐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서 팔달문과 남포루 중간에 위치한
남치를 지나고 오르막으로 남포루에 도착했다
남포루는 화성의 다섯개의 포루중 팔달문과 서남 암문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적이 성벽을 접근하는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수 있도록 만든 시설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팔달문 주위의 성벽과 화양루를 수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이어 서남이치 서남일치가 있는 팔달산의 서남쪽 높은곳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하는 군사지휘소인 서남각루와 서남암문을 지났다
서남치를 지나 효원의 종에 다달했다
효원의 타종은 정조의 효심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1991년 수원시가 만들었다
화성의 중심쪽에는 서울의 보신각에 해당하는 여민각이라는 종각이 있다
정조가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자 했던 마음을 담아 설치한 역사적 상징물로
한국전쟁과 일제 강점기에 소실되었다가 2008년에 복원한뒤
12월31일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제야의 타종행사를 하고 있다
효원의 종 앞에는 관람객들이 줄지어 서서 차례를 기다리다
타종을 할수 있는 체험현장이었으나 앞서간 일행들을 만나기 위해 서둘러 지나쳤다
남쪽에서 서쪽으로 행하는 성곽돌기에는 소나무와 오르락 내리락 길이 아름다웠다
드디어 여러명의 친구들과 약속시간을 무려 두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만났다.
파란 하늘에 흰 뭉게 구름이 꼭 제잘거리는 우리와 비슷하게 오물거렸다.
화성장대인 서장대에 올라서서 돌아온 성곽길과 성안의 행궁을 바라보니
이제사 성곽의 동서남북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수원의 진산은 광교산이고 수원화성이 있는 팔달산은 주산이다
팔달산 동쪽기슭에 자리한 행궁은 우리나라 행궁중 규모가 가장 크고 건축미가 빼어나다
정조대왕이 재임때 13차례 능행시 행궁에 머물렀다
한양의 청계천처럼 수원천을 앞에두고 팔달산을 의지한 배산임수의 원칙을 지킨 행궁은
육백여칸의 정궁형태였으나 일제때 그 모습을 잃고 그후 복원되어 현재에 이른다
한바뀌 성곽돌기에도 급한터라 행궁 정문에 국왕의 새로운 고향 이라는'신풍루'가 적힌
행궁 구경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갈길을 제촉해야 한다
서장대는 화성장대라고도 부르며 화성 최고의 군사지휘소이다
정조대왕이 능행차때는 이곳에서 직접 장용영 군사들을 지휘하며
대규모 군사 훈련을 실시 하였다
서장대뒤에 있는 서노대옆으로 성벽은 이어졌다
노대는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던 방어시설로 팔달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어
사방을 볼수있다
정팔각형 평면이며 기와 벽돌로 쌓았다
수원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 두개가 있다.
서장대에서 부터는 내리막 성곽길이었다
성곽이 튀어나온 서포루를 지났다
서포루와 서북각루 사이의 서일치를 지나고 서북 각루를 벗어나
드디어 화성의 서쪽문이 화서문에 다달았다.
화서문은
화성의 서쪽문으로 돌로 쌓은 무지개문 위에 단층의 문루를 쌓았고
반달모양의 반옹성을 만들었다.
화서문 옆에 설치된 서북 공심돈하고 화서문은 원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서북 공심돈은 전쟁이 일어났을때 적의 동향을 살피고 공격할수 있도록
외부에 구멍을 많이 뚫어 놓았고 내부에는 계단으로 오르내리게 했다.
성벽 바깥 비탈진 등성이에는 구월에 피었다 십일월이면 지는 억새가 아직도
지는해를 바라보며 나풀거린다
뒤주에 갇힌지 팔일만에 스물여덟 짧은 생을 마감한 혼이 날듯
스러져가는 석양으로 마지막 남은 희디흰 보풀을 날리고 있었다.
억새는 조선시대 천주교신자가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고
한국전쟁이후 빨치산이 활동했던 영남알프스 억새와
궁예가 왕건에게 패한뒤 군대를 해산하고 들어왔던 명성산의 억새와
산머리가 민둥민둥 헐벗은 민둥산의 억새와
쓰레기더미 산이 휴식공원으로 둔갑한 하늘공원 억새가 유명하다
반질반질한 반옹성이 아름다워 한참을 바라 보았다 .휴~
휴식이 필요하다
화서문을 뒤로 하고 북쪽의 장안문을 향해서 가는길은 평지길이었다
북포루를 지나치면 북서포루와 북서적대가 나온다
적대는 성을 공격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성문 좌우 옆에 치성위에 세운 시설이다
사대문중 장안문과 팔달문 양쪽에만 설치되었으나 팔달문의 적대는
시가지화 더불어 인멸되어 복원중이다
장안문 서쪽에 위치한 북서적대의 높이는 성벽과 같다
치성밖아래 가까이 다가온 적들의 동태를 살피고 공격할수 있게
길게낸 구멍인 세개의 현안과 쌓은 담장마다 총구멍인 총안이 있다
전시된 홍이포가 실제 크기인양 컸다
드디어 장안문에 도착했다
하늘은 어둑어둑 했다
장안문은
화성의 북문으로 백성들이 평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한국전쟁때 문루가 파괴되었으나 화성성역의궤에 의해 복원하였다
보통의 성의 정문은 남쪽문이나 화성의 정문은 북문인 장안문이다
화강암으로 쌓른 석축에 홍예문을 냈고 다포양식으로 이루어진 중층에 문루가 세워져 있다
장안문의 이름은 중국 옛왕조의 수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에서 따온것으로
당나라때 장안성처럼 화성 도한 융성한 도시가 되라는 정조의 뜻이 담겨있다
장안문은 위풍당당 고풍스러웠다
북동적대를 지나 북동치와 북동포루를 거쳐 화홍문에 다달았다
북수문인 화홍문은 화성을 통과하는 수원천의 흐름을 막지 않고 군사적 기능과
돌다리 역활을 한다
북수문 아래로 수원천을 흐르고 있었다
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에는 북수문과 남수문이 있다
화홍문의 화는 화성을 가르치고 홍은 무지개를 뜻한다
장쾌하게 넘쳐난다는 북수문의 물은 찔끔거리고 수원천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 성곽돌기도 거의 막바지로 다시 오르막을 올라 언덕위 성곽에 오르니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인 방화수류정인 동북각루가
인공연못 용연등 주변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다
동북포루를 지나고 동암문을 거쳐서 동장대인 연무대로 내려오니
동북공심돈과 창룡문과 사이인 동북노대가 멀리 보인다
정조대왕 시대 군사들이 무예를 연마하고 훈련하는 장소인 연무대에서는
우리나라 전통 활쏘기 무술인 국궁 체험을 할수 있다
수원화성 성곽길 투어를 끝낸 열한명의 일행과 인증샷을 남기고
구름덮힌 화성을 빠져나오는가 싶었더니 빙 둘러 차로 이동한 식당 역시
화성의 담벼락이 보이는 금방이다
거중기등 과학적 기계장치를 활용했다하더라도 정교하게 깍아 만든 돌덩이가
무시무시한 성벽으로 만들어지까지 얼만큼이나 많은 인력과 수고로움이 있었을지
가늠도 어려운 잘 다듬어진 성벽에 놀라웠다
팔달산 자락과 지역주변을 포함하여 방어요새로도 훌륭하게 건축된 성곽은
화살과 창검을 물론 총포를 쏘고 방어하는 구조를 함께 갖추고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었다
수원화성 성곽은 하절기에 진행되는 달빛과 불빛동행은 또 다른 즐길거리란다
팔달문을 못 찾고 돌아섰다면 이런 뿌듯함을 모르고 지나쳤을 성곽투어길은
아름다운 길이었다
구경한번 참 잘 했다.휴~
휴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