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2. 18:10ㆍ영화
감독-박진표
출연-김명민,하지원,남능미,임하룡,신신애 등
선선한 가을 밤하늘엔 추석달이 차오르고,
자고나면 하늘은 저만치 올라가 있다.
개봉날짜를 기다리다 본 영화는 풍요로운 이 가을날,
우울한 일주일을 보내고서야 감상문을 쓴다.
메소드 연기를 한 김명민이 20kg을 감량하면서까지 열연했다고
워낙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영화이기도 하다.
메소드 연기란
캐릭터를 철저히 연구한후에 자신을 완전히 지우고 맡은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되는 연기를 말한다.
박감독의
내사랑 내운명,그놈 목소리에 이어,내사랑 내곁에도
에이즈,유괴,루게릭병을 통해 가족의 고통과 사랑을 보여주는 휴먼 드라마다.
사랑뿐 아니라 삶과 죽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견이다.
영화의 시작은
장례지도사인 지수는 전날밤 술을 잔뜩 마셔 가글을 하고,
검은 정장으로 갈아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수의를 고르는 종우와 만난다.
맨발의 종우를 보고 양말을 건네자 신겨달라고 하는 조금은 뻔스런 종우가 사진에있다.
전도 유망한 법학도인 종우는
루게릭병에 걸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체로 지수의 도움을 받아 장례를 치룬다.
종우는 그녀가 어릴때 같은 동네에 살았던 이웃 동생이란걸 알고
우연이 인연이라 생각한다.
장례식장 국화 한송이를 그녀에게 내미는 당당한 종우는 자신의 병에도 매우 긍정적이다.
"나,몸이 굳어가다,결국은 꼼짝없이 죽을 병이래.
그래도 내곁에 있어줄래"
건강한 남자였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루게릭병이란
근위축성측삭 경화증으로 운동신경 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되며
지능,의식,감각은 정상인채 온몸의 근육이 점차 마비 되어가는 희귀병이다.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그치료법도 없어 발병후 3-4년안에
호흡근마비로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일년에 10만명당 1-2명 발생하고 50대 후반부터 발병이 증가
남성이 여성에 비해 1.4-2.5배 발병률이 높다.
불치병인 남자와 두번 돌아온 여자는 앞날이 훤히 보이는 위태로운 사랑에 빠진다.
도시락 싸들고 말릴 사랑이 시작된것이다.
단지 영화라서 그렇다면 오해다.
얼마전 위암으로 죽어간 여배우를 극진히 간호한 남편의 순애보도 있는걸보면,
사랑은 쉽게도 어렵게도 오는가 보다.
종우는 몸이 나아지면 정식으로 사귀자며 중국을 다녀온다.
조금 나아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난 종우와 첫번째 데이트를 병원에서 한다며
애교어린 투정을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교회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한다.
신혼생활은 투병생활과 함께 병원에서 시작한다.
루게릭 환자의 성이 가능할까라는 반문도 하지만
영화는 12세 관람가가 무색하게 모텔에서도,병원에서도 이루어진다.
좁은 병상에서의 진한 키스신과 대사가 거슬린다.
"그놈 똑똑한데,"
갑작스런 혈압체크에
"터질것 같네요."라는 간호사의 대꾸가 짓굿다.
보통의 신혼부부라면 당연한 일도 불치병 환자와의 관계라서 더욱 애틋하고 안타까운일이다.
루게릭이 유전병도 아니면서 아이를 거부하는 종우도 안쓰럽다.
병원에 입원치료를 한다고 나을병이면 희망이라도 있지,
받아놓은 죽음의 시간을 연장하는 병원생활은 우울하다.
하지만 지수는 매우 담대하고 밝다.
"우리는 하루를 일년처럼 아니 십년처럼 살아야 하는사람들이야"
병원비만 까먹는 불치병에 의사도 퇴원을 권유하고
점점 쇠약해지는 남편을 보살피는 지수는
무면허 침술사에 뭉친근육을 풀어준다는 침을 맡게한다.
부작용으로 호흡곤란이 오고,다시 병원 신세를 진다.
신경계 중환자 6인실 병실
식물인간인 남편이 깨어나기만을 9년째 기다리는 남능미.
혼수 상태에 빠진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임하룡.
사고로 불구가된 피겨선수였던 딸앞에서 눈물을 감추는 신신애.
형의 안락사를 요구하는 동생의 절절한 항의가 묵살되는게 현실이다.
자신의 삶은 희생하고 환자곁을 지키는 가족의 사랑과 고통이 눈물겹다.
비슷한 처지의 아픔을 지닌 병실사람들은 극한상황에서도 살아간다.
희망적으로 회복되는 사람도 있고,
종우가 보는 앞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도 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있듯이,
종우의 질병은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동안 긍정적이고 밝았던 종우 모습은 사라지면서 자신을 자책한다.
자신의 곁을 지키는 지수에게 맘에도 없는 말을 하고 퉁명스럽게 화를 낸다.
"그만, 나를 갖고 시체놀이는 그만해."
"가,이제 지긋지긋해"
시체닦는 더러운 손이라며 싫어했던 전남편들과는 다르게
가장 예쁜 손이라고 불러주었던 종우가 그런 말을 하다니,
지수는 콧물,눈물 쏟아내며 병실밖으로 뛰쳐나오는데
종우 맘엔
"가지마,지수야 가지마"
라며 떠나는 그녀를보고 울부짖는다.
고통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종우를 보고 울지않는 사람은 없을게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뻔한 멜로가 여기도 있다.
락스와 세제를 섞어 이태리 타올로 시체 만진 자신의 손을 빡빡 밀어보지만
지수의 손은 아무나 할수없는 일을 하는 위대한 손이다.
가상죽음체험으로 관을 홍보하면서도 어르신들에게 재수없는년 이라며 폭행을 당한다.
장례 지도사 일상으로 돌아오고도 한시도 종우를 잊지 못하는 지수는
전남편의 구애현장에서 손과 발을 묶고 하룻밤을 지내면서
종우의 현실이 얼마나 처참하고,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나 깨닫는다.
지수를 떠나 보낸후 종우는 혀를 깨물어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에 그치고 병세는 점점 악화된다.
말을 할수없게 되고 눈동자만 살아있어
얼굴에 앉은 모기하나 잡을수 없어 눈물만 흐른다.
영화는,모기를 때려잡고 가볍게 일어나 병실을 무대로 춤을 추는 신을 보이는데,
진짜 배우가 사지 멀쩡하다는걸 보여주는지,아님 희망 인지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소중한 시간들을 알고 지수는 헌신적이다.
"원래 사람들은 다 죽어
순서가 따로 없어서 그렇지
그러니까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면 되는거야"
해운대에서는 진한사투리로 열연했던 배우는 해운대와 인연이많다
비틀거리는 종우를 안고 서로의 귀에다 대고 불러주는 신이 인상깊다.
노을이 바다로 빠지면 사랑도 더욱 깊어지리라.
웃고 있어도 눈만 껌벅이면 금새 눈물이 떨어질것 같은 슬픈눈으로
'영원한 사랑'을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에
일글어진 웃음을 띤 종우도 답례로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준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대고 듣는다.
이삼십년쯤 살아야 눈빛으로 대화를 하는데
신혼인 두사람은 보통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노래를 듣는다.
"누군가 옆에 있어서 행복한건 행복한게 아니고
혼자서도 행복해야 행복한거야"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뇌사판정을 받고 누워있는 남편에게 혼인증명서를 가지고 와 지장을 찍게 하는순간 숨이 멎는다.
시체 닦는 손으로 남편을 정성스레 염하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이별의 장소에서 만남을 가졌고,그곳에서 또다시 이별을 하는 두사람이다.
조금만 힘들어도 죽겠다는 말이 얼마나 사치스런 말장난 이었나,
우두둑 거리는 무릎도 아직은 나의것이고, 큰병으로 수술한적 없고,
이순간 숨을 쉴수있고 살아있어 정말 다행이고 감사할 따름이다.
진부한 스토리를 "김명민은 없고 거기에는 백종우만 있다" 라며 열연한 배우에게 박수를 보낸다.
포스터만 봐도 뻔한 신파멜로는
안락사,뇌사자의 존엄,장례문화,경제적 어려움등 사회적인 문제를 생각케 한다.
아울러,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환우나 가족들은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기를.....
스티븐 호킹 박사가 희망을 주고 있듯이...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 하는데
철이 없는 욕심에 그 많은 미련에
당신이 있는건 아닌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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