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2. 17:37ㆍ영화
감독-김용균
출연-조승우 수애 천호진 등
무협 소설가 야설록의 '불꽃처럼 나비처럼'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재탄생된 영화는 역사속 인물에 상상력을 가미해 만들어졌다.
조선후기,안동김씨 60년 세도정치로 사회혼란과 불안
일본과 서구 열강이 조선을 압박해올 무렵,
임오군란때 왕후를 업어 충주목사 민응식 집에 피신시키고,
을미사변때 왕후를 지키려다 죽어간 "홍계훈"장군을 모델로
왕후와의 안타까운 사랑을 다룬다.
30년 세월을 두시간으로 엮으니 뚝뚝 끊어지는 줄거리는 관객의 몫이다.
왕의남자,실미도,미인도,쌍화점,태극기 휘날리며 등
픽션영화는 때론 진실을 왜곡해 아쉬움이 있으나
영화는 영화일뿐이다.
1866년 대원군 이하응은 고종을 왕으로 옹립하고
외척을 배제하려고 부대부인 민씨의 친척이며 8세에 부모를 잃은 고아를 배필로 삼는다.
허나,영화는 친정어머니가 홀로 키운 자영으로 나온다.
본관 여흥,아명 자영은
왕비의 간택을 받고 고종과 가례를 치르기전
왕후가 된다는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어릴때 아버지와 자주같던
바다를 보러간다.
동행길에 낮에는 뱃사공이면서 밤에는 살인청부업자일을 하는 무명과 함께한다.
천주교 신자들 학살현장에서 두려움에 떨다가 죽어가는 어머니를 보고
이름도 빛도 없이 사는 요셉이 무명 이다.
우포늪과 신두리 해안사구의 가을 전경은 단풍구경 못간이들을 갈대밭으로 안내한다.
바람이 사알랑 불어야 더욱 아름다운 자태로 춤추는 군무를 볼수있다.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올리고 물장구 치는 자영은 왕후가 되면 해볼수 없는 추억이 된다.
자영은 세도가들의 암살표적이 되고 대원군은 자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호위무사 뇌전을 보내지만 무명에 의해 자영의 목숨을 구한다.
한편 ,무명의 나룻배로 대원군의 호위무사 뇌전 역시 나룻배를 타고와 그녀곁을 맴돌지 말라며
나룻배 결투신을 버리는데 cg효과가 대단하다.
날치도 아닌 물고기가 허공을 날라다니고 360도 돌고돌며 두남자의 죽창과 진검대결이 벌어진다.
고종과 자영의 가례가 치뤄지고
그녀를 가질수없다면 죽을때까지 지켜주겠다는 다짐으로 대원군을 찾아가
아직 실험하지 않은 방탄조끼를 입고 살아남을시
입궁할수있는 시험을 치르고 무명은 입궁한다.
구중궁궐에서 자영 또한 남편과 시부모의 사랑을 원하는 여자이기도 하다.
첫날밤 무거운 가채를 풀기도 전에 궁녀의 처소를 찾는 고종과
자영은 고부갈등이 아닌 시부갈등을 겪으며 지낸다.
실제로 고종은 민씨왕후 외에 6명의 후비를 두었던 왕이었으나
영화는 무책임한 왕으로 전락시킨다.
그녀 주의를 맴돌았던 무명은 왕후가 절에 다녀오는 가마속으로
노랑나비,흰나비 두마리가 날아들어왔다 날라가
무명의 어깨위에 앉으며 그녀 눈에 무명이 보인다.
신분을 뛰어넘어 나비처럼 훨훨 날고픈 희망과 욕망이 있을터,
국모임을 망각해 변태스럽게 변한 쌍화점에 비하면
왕후는 시종 절재된 국모다운 위엄이 있다.
궁궐의 외로움과 시아버지의 핍박을 받으며 지내는 왕후에게
"저의 칼이 어찌살지를 정했기 때문입니다"라며
호위무사를 자처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정체모를 폭탄선물로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슬픔을 안고 전기 점등식에 왕후는 참석한다.
왕후의 슬픔에 무명은 뇌전을 향한 분노의 결투가 벌어지고...
무명의 투박한 단검과 뇌전의 장검대결은 경회루 지붕을 넘나들다
점등식 축제 현장 가운데로 들어온다.
허무맹랑하고 스펙터클한 액션이 관객을 긴장 시킨다.
역사적 사실은,
대원군과 왕후 사이가 벌어진 직접적 원인은
궁녀 이씨에게 태어난 왕자를 편애하여 세자로 삼으려 했기때문이다.
대원군의 정적 안동김씨 세력과 최익현등이 탄핵상소를 이끌어내어 대원군을 실각하게 된다.
왕후의 개화정책에 불만을 품은 위정척사파와 대원군세력이 봉량미 문제로
임오군란을 일으켜 그녀를 죽이려 했으나
왕후는 궁을 탈출해 피신하여 비밀리에 고종과 접촉하고
청나라에 군사요청을 한다.
청국군은 대원군을 납치하여 청나라로 끌고감으로 위기를 넘기고
그후 그녀는 친청정책을 실시한다.
영화에서는 시종 대원군의 핍박을 받는걸로 나오나
실제 민씨왕후는 대원군을 몰아내고 오랜기간 실권을 장악했었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맛서 외교능력을 발휘하는데
외국대사 부인들과 만찬을 하고
목구멍에 넘어가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초코렛을 맛보고
도너츠 연기를 내뿜는 담배를 피어보고
직접 코르셋을 입어보는등
"무엇이든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호기심을 보인다.
외국과 교역하는 왕후의 암살이 실패되자
군을 이끌고 대원군이 직접 궁을 접수하러 오는데
대군앞에 정육점 칼같은 투박한 단검으로 홀로 막아낸다.
굴하지 않는 무명의 어처구니없는 싸움은 영화이기에 가능하다.
무명의 목숨바친 충절을 질투하는 고종은
방문밖에 호위무사를 세워놓고 합방을 하는데
최초의 베드신이라는 수애는 겁먹은 얼굴과 고통스런모습뿐
적나라한 뒷모습은 대역임이 금방 알아본다.
조선에 적극적 공세를 펼치던 일본은 갑오경장에 간여하면서
흥선대원군을 내세워 그녀 세력을 제거하려 했으나
왕후는 일본의 야심을 간파하고 일본에 대항한다.
궁에서 한차례 쫓겨나기도 했던 무명능 건청궁에서 마지막 결투를 한다.
1895.10.8.새벽
경복궁 북쪽끝 건청궁 옥호루에서
일본공사 미우라는 민씨왕후를 포함 친러세력을 제거키위해
왕후를 쓰러뜨리고 녹산언덕에서 불에 태웠다.
일본인들이 늙은여우라고 불렀던 왕후는 44세였다.
이토히로부미총리대신에게 보낸 미우라 보고서에는
"우리세력을 유지하고 당초의 목적인 조선보호국화를 달성키 위해 이렇게 할수밖에 없었다"
천인공로할 만행을 저질렀다.
"며늘아이를 지켜라"는 대원군의 명령에
뇌전은 일본무리에 참석했다가
무명과 함께 소총으로 무장된 일본낭인들과 싸우다 죽는다.
"내가 여기 있는한 더이상 한발짝도 못 움직인다"며
자신의 발등에 긴칼을 꼿고 선채로 죽는 무명
"나는 너희들이 두렵지 않다.두렵지 않다.
오늘을 잊지말라.
나를 잊지 말라.
나는 조선의 국모 민자영이니라."며
그의 가슴팍에 등을 기댄채 왕후는 최후를 맞는다.
1883년 서양여성 최초로 왕후를 알현한 주한미국공사 부인인 로즈푸트는
"그녀는 뛰어난 침착성과 언제나 무엇을 탐색해 내려는 눈빛을 지닌 총명한 여인이었다"라는것은
진실이고......
프랑스의 선교사 이사벨이 간직한 연서는
"오늘도 전하지 못하는 편지를 씁니다.
이렇게 썼다가 태우고 또태우고 하고픈 말이 많았나 봅니다.
바다, 지금 제일 그리운것이 당신과 함께 했던 그바다 입니다.
언젠가 좋은 세상이 오면 함께 다시 한번 그바닷가를 찾아가고 싶습니다.
장군 돌이켜 보면 귀공의 바램을 한번도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지금 그것이 후회가 됩니다.
귀공의 그마음을 평생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장군은 나의 바다입니다."는
허구이다......
이긴자들이 남기는것이 역사의 기록일지라도
천년도 아닌 백여년밖에 지나지 않은 역사의 진실은 잊지말자.
국모의 시해는 일제의 국가 범죄였다.
그후 1897년 그녀는 명성황후로 추책 되었다.
1919년에 고종이 죽고 남양주에 이장된다.
그녀 소생으론 순종이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