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2012. 2. 16. 17:50영화

 

감독-정지영

출연-안성기,박원상,나영희,문성근,김지호 등

 

실제 석궁 사건일지

1995년 1월 성균관 대학 수학조교수(김명호),대학별 고사 수학 출제문제 오류지적및 시정요구

1995년10월 부교수 승진 불합격판정후 지위 확인 소송제기

1996년 성균관대학 재임용 탈락 확정

1997년 부교수 지위 확인의 소항소 기각및 상고 기각

2005년 3월 교수직위 확인 소송제기

2005년 9월 교수 직위 확인의 소기각

2007년 1월15일 석궁 사건 발생

2007년 10월15일 징역 4년 실형선고

2007년11월-2008년3월 석궁사건 항소심 1차-5차 공판

2008년 6월12일 대법원 석궁 사건 상고 기각

2011년 1월24일 만기 출소

 

프린랜서 작가인 서형은 어느날 공판에 참가했다가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김교수를 보고 공판기록을 책으로 썼다한다.

그책을 본 문성근이 정지영 감독에게 읽어보기를 권했던게

스크린으로까지 발전된것 이란다.

단지 5억원의 영화로 탄생 되기까지는 전배우가

노개런티로 참여한 덕분이다.

 

정지영 감독의

1990년 빨치산을 소개해 전쟁과 이면의 비극을 그린 '남부군'

1992년 베트남전쟁을 다룬 '하얀전쟁'에 이어

2012년 새해 우리사회 비판적 주제의식을 생각하게끔 하게하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라는 영화 '부러진 화살'은 강하다.

 

사건의 요지는

대학 수학시험의 문제 오류를 발견한 김경호(안성기)가

문제자체 오류를 출제위원에서 사실을 고지하고

영점처리든 정답처리하여 진실알리자는 말에

출제 교수의 체면과 학교의 명예가 실추된다는 이유로

김교수는 거대한 사학재단과 동료교수들에게 소위 왕따를 당한다.

정확한 정답을 요구하는 수학문제처럼 진실하고 올곧은 성격의 김교수는

비상식과 불공정이 잘통하는 사립의 재단에서의 싸움은 처음부터 불리했다.

 

 

학교측는 김교수의 자질을 문제 삼아 해고 하고, 교수지위 확인 소송을 하나

패소시켜 김교수를 파멸 시키려 한다.

결국 미국의 이민을 떠난 몇년후에 재임용에 거부당한 교원도

소송이 가능하다고 법이 개정되어 한국으로 돌아와 학교를 상대로

다시 소송을 제기하나 정당한 사유없이 기각되자

이를 겪분한 김교수는 담당 판사를 찾아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위협을 가한다.

격렬한 몸싸움끝에 김교수는 현장에서 체포되고

당담판사의 피묻은 옷과 복부 2cm의 좌상 부러진 화살을 수거했다는 증언으로

사건을 일파만파로 번져 법치주의를 흔드는 사법부에 도전이라는 테러로 간주해

김교수를 엄중 처벌하겠다는 또 한번 괘씸죄에 올가미에 걸렸다.

그러나 피의자 김경호가 실제로 화살을 쏜일이 없다며 결백을 주장하자

재판은 난황을 거듭한다.

 

결정적 증거인 부러진 화살은 행방이 묘연하고

한치의 양보 없는 엇갈린 진술의 법정에 김교수는 독설을 서슴치 않고

직접 법전을 공부하여 조목조목 따지고 맘에 들지 않은 변호사는 해고 시키며

부당함에 맞짱드는 김교수 배포한번 대단하다.

 

김교수의 변론에 낙점된 자칭 양아치 박준(박원상)변호사는

2011년 부평 공장 노동자를 위한 인권 노동 변호사로 활동하다

경찰과 대항했으나 노동자들이 경찰의 폭행에 심한 부상을 당했는데도

변호사라는 이유들어 당하지 않았다.

경창 입장에서는 변호사란 권력을 의식한 셈이다. 

그후 인권 노동자 운동에 참석도 않은채 술로 허송세월을 보내다

김교수 사건을 맡는다.

 

 

속옷에 묻은 피가 겉옷 조끼에는 묻었는데 와이셔츠에는 안묻었다는점과

복부의 2cm의 상처가 석궁에 맞은 상처로 보기 힘들다며

박준 변호사의 혈흔 감정 요청에 판사는

"조끼와 속옷 피는 국과수 검사에서 성인 남성의 피다"

그럼 그피가 박홍우 판사 피인지 아닌지 밝혀내라는 변호사말에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현장에서 피흘린거 봤다는데"

2심의 재판장이었던 이태우 판사 사임후 신재열(문성근) 판사의 

보수연기는 대단하다.실제 그는 진보중에도 왕진보이다.

 

법을 배우고 그법을 다스려 무엇보다 법을 제일 잘아는 판사와 검사를

수학선생이 조목조목 법전 몇항 몇조를 들이대며 항거하여

나중에는 검사는 모르쇠 작전이고 판사는 묵살 작전이다.

 

 

정숙하라는 판사에게

법대로 하지 않는다고 되래 판사를 꾸짖고 자신의 말을 자르지 말라고 엄포를 하는

김교수(안성기)연기가 서민들은 다가갈수없는 권력에 억울함을 위로받는 느낌으로

관객은 흥분하였고 웃음으로 통쾌함을 대신했다.

어느날 재판후 기자들의 질문에"이게 재판입니까,개판이지,"는

영화는 한마디로 남는다.

 

 

실제로의 김명호 교수는 꼰대라는 별명을 지닐만큼 원칙주의자이고

좋은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여서

한동안 대법원 건물에서 일인시위도 했다 한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피해자의 조끼와 속옷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었는데

와이셔츠에 혈흔이 없는것은 수사기관에서 증거를 조작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고

심지어 석궁을 들고간 자신의 행위도 정당 방위였다고 한다.

모든 재판에서 패소받은 김명호교수는 징역 4년을 채우고 지난해 출소하였다.

확정판결이 난 사건은 영화 관객이 많아질수록 여론재판으로 번져

당시 실제 박훈 변호사는 수사당국이 거짓증언과 피해자 박홍우 현 의정부지법원장이

자해행위로 거짓증언을 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이 있듯이

진실이라도 증거가 불충분하면 인정 받을수 없고

그래서는 안되는데  각본대로 조작된 증거를 법의 테두리에 맞추면

인정 받을수 있다고 한다.

오죽하여 억울하면 출세하란 소리도 떠돈다.

아무리 억울해도 김교수가 석궁 연습을 하다 석궁을 들고 찾아가 위협한것은

잘못된 처신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영화는 진실과 정의를 외면하는 속물근성과 타협을 고발하는 주제로

우리사회의 부도덕한 강자는 개과천선 하자는것이다.

 

앤딩장면에

김교수는 안산 교도소로 이감되면서 무례하게 구는 교도관을 보다

교도관의 볼펜을 빼앗아

인권침해는 법규정상 위반이다며 교도관 이름을 적자

교도관들이 굽신거린다.

 

 

박준 변호사의 최후 변론중

100여년전 프랑스 군사재판에서 당국의 권위를 위해 진실을 은폐하여

간첩이 아닌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간 사건인 드레퓌스 사건을 언급하면서

"드레퓌스의 재판부가 결국 프랑스 국민들의 엄청난 저항에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언젠가는 현 사법부의 오만함도 결국 우리 국민의 준염한 심판앞에

서게 될것이다."

 

글-李 貞

사진-다음포토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티스트  (0) 2012.03.26
범죄와의 전쟁  (0) 2012.03.06
마이웨이  (0) 2011.12.31
사운드 오브 노이즈  (0) 2011.12.02
완득이  (0) 2011.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