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2

2012. 5. 27. 18:26일반산행

 

흔들리는 나무 이파리와 오월 바람의 향기는 더하는데,

대피소 마당에서 밤새도록 술잔을 기우리며 떠들던 남정네들은

오밤중에 나무 문짝을 쾅쾅거리며 드나들더니 두세시가 넘자 하나둘 없어지고

내옆자리에 누웠던 아가씨들도 부시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없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들꽃이름의 잠자리에서 옆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밤새 시체처럼 지내야만 했던 마루바닥이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러

올라가 버린 등산객이 빠져나가고 나혼자 덩그러니 남아있으려니

그것도 굉장히 넓어 보였다.

로타리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일출을 보기위한 코스란다.

밤새 코고는 소리가 작막강산으로 조용해진 틈에 잠깐 잠이 들었다.

아침 먹자는 남편말에 시간을 보니 새벽 다섯시로 머리는 개운하고 전날의 피로도 없다.

봉다리 주둥이를 아물지 않아 걱정했던 닭국물로 밤새 쌀을 불려 끓인 죽은

초록의 기운이 생성하는 새벽녘의 해장기와 속풀이로 그만이다.

이제부터 정식으로 지리산 청왕봉을 향한 산행길을 나서야 할때가 되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내려올것을 굳이 땀빼며 올라갈일이 뭐가 있드냐고 물어보면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는 선문선답을 하지만은 젊은이는 도전과 만남의 의미가 클것이고,

중장년은 성공과 위로의 의미가 또 늙은이는 건강과 이별의 의미가 크게 다가올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답은 산이 내개로 오지 않기 때문에 여기까지 와 있다.어찌, 산이 거기 있기 때문과 같은거 같다. 

 

 

 

 

 

 

 

 

 

 

 

 

 

 

 

로타리 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는 2,0km, 시간은 이른 아침 여섯시삼십분이다.

풀잎에 맺은 이슬은 영롱하고 산새 소리 아침 등산객을 반기는데

자고나면 점점 진해지는 나뭇잎색깔이 맑고 투명하여 산뜻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록색을 실컨 바라보면 눈이 시원하고 좋은데 누리끼리한 내얼굴에는

초록옷이 안 어울린다.

초파일에 맞추어 달아놓은 색색의 연등이 지리산 깊은 산속에도 달려있다.

도심에서는 기독교 신자가 자기집 앞에 달려있는 연등이 거추장하다는 이유로

전기선을 짝둑 잘라 조사중이라는 뉴스가 보도 되더만 설마 산중에서는 그런일은 없을것이다.

예전에는 종이 연꽃 모양의 등에 일일히 촛불로 불을 켰는데 이제는 전기로 연등불을 밝힌다.

새 아파트 주민이 입주도 하기전에 교회 첨탑이 올라가고 보혈의 십자가가 밤시간내내 불을 밝혀

어둠이 주는 안식을 빼앗는 일례도 있다,

스님이 룸싸롱에서 술을 마시고 화투놀음을 하고,목사가 여신도를 천당보내준다고 성폭행을 하고

불자와 신자의 극락과 천당가는길을 도와준다는 성직자의 잘못은 한심한 인간 이하다.

몇몇 때문에 살신성인하는 많은 성직자가 욕을 먹는다.

부처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이 결국은 하나인걸 모르는 어리숙한 일이다.

 

파도타기는 바다에만 있는게 아니라 산자락이 출렁 출렁 이어졌다 끊겼다 하는

지리산에 가면 파도를 만날수 있을것이다.

바윗덩어리를 만나면 무조건 지 머리로 한번씩 받아본다는 곰의 서식지인 이곳에서

행여 곰이 나타날까 두렵기도 했지만 탁탁 거리는 스틱소리와 발자국 소리 때문에

걱정 안해도 된단다.

베낭에 방울을 달아 딸랑딸랑 소리내며 지나가는 등산객도 있더만,정신사나워 별로였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지금쯤 재미나게 살아갈 반달곰의 덩치가 얼마나 클지

여기저기 동굴 입구가 있었다.

 

일출을 보러 자다말고 떠났던 서울서 내려온 내옆자리 아가씨 두명이 원점회귀하는지

내려오고 있었다.

하룻밤 이라 해도  몇시간 같이 옆에 있었다고 반가웠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이 끝내주게 정관을 이루었다는데

거실에서는 일출을 부엌에서는 노을을 신물나게 바라보고 사는 나는,자느라고 놓쳤다.

이래저래 잠이 웬수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인사도 건네고 참 친절했다.

그런 친절이 평상시에도 계속 이어진다면 좋을텐데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 하는것은

우리는 미친사람이나 하는짓으로 여긴다.

오지랍 넓게 지나친 친절로 불편을 사는 일도 있다.

오늘 만난 배나온 경상도 아저씨는 스틱잡는 방법부터 신발끈 매는거 그리고 바위에 앉아서 쉬는 방법

먹기 싫다는 얼음물까지 권해 부담스러웠다.

경상도 남자가 무뚝뚝하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중산리에서 오르는길에는 천지가 경상도 남자이고 아주 친절하다.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세 도를 걸쳐있는 지리산에서

친절한 경상도 사나이를 만나고 싶으면 중산리 방향을 택하면 좋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오르막은 가파랗다.

산 구경하려고 이렇게 오르는것도 숨차고 힘들어 죽겠는데

그 높은 곳에서 등산객의 발걸음을 쉽게 하기위해

일당을 받고 돌계단을 만드는 임부가 힘겨워 보였다.

죽을둥 살둥하고 올라왔는데도 겨우 이백미터밖에 안 왔다고 푸념하는 날보고

두남자가 웃는 이유는 틀림없이 그자리에 오면 그말을 할거라고 예견한게 딱 맞았다고 한다.

귀신같이 내속을 들어갔다 나온모양 깨뚫고 있는 우리집 남자들 대단하다.

산에서는 젬뱅인 나는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먹으라면 먹어야 살아서 내려갈수있으니

말을 잘듣는 수밖에 없다.

별별 희한한 바위덩어리도 많고 버스타고 내려올때 보았던 두무뭉실한 산자락속에

웬 산줄기가 길고도 많은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산은 크고, 가도가도 끝이 안보인다.

한여름 피서철 계곡에서 조난당해 줄잡고 내려오는 지리산 등산객을 뉴스에서도 종종 보았는데

그럴만도 하게 계곡의 크기와 바위들이 말해준다.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삐질삐질 땀과 숨소리 거칠은 남자들 사이로 나는

약간의 땀만 날뿐 숨은 고르나 머리속이 후끈후끈 물수건은 금세 말라버린다.

몸을 낮춰야 보이는 온갖 야생화와 땅보다 하늘이 가까울것 같은곳에서는

산철쭉과 진달래가 꽃을 피우고 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밧줄하나에 온몸을 의지한채 올랐다던 막바지 오르막에도

정리된 돌계단은 놓여 있었다.

새벽 찬바람 맞으며 떠난 천왕봉 정상에는 오전 아홉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다.

1915m의 천왕봉 넓고 높은 봉우리에 서자 어디서 그많은 사람들이 올라왔는지 사람들로 가득찼다.

석가 탄신일의 연휴에 청명한 날씨로 등산객이 몰려 사진찍느라고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하늘은 파랗고 산능선을 너울거리며 춤을 추고 정상을 밟았다는 뿌듯함에 기분은 짱이다.

언제 또 올지도 모르는 높은곳,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써있는

바위돌을 껴안고 앞으로 찍고 뒤로 찍고,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라고,

참으로 막혔던 기도 뻥 뚫리게 생겨 한번 왔다간 사람은 언젠가는

다시 찾고야 마는 산이라는게 실감이 났다.

 

 

 

 

 

 

 

 

 

 

 

 

 

 

 

 

 

 

 

합창을 부르는듯한 입술 모양을 한 하늘색꽃은 왜현호색이라는 야생화이다.

깊은 산자락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라고 집에 걸린 달력에서 본 꽃을

지리산에서 발견하여 무척 신기했다.

어느덧 해는 중천에 떠올라 내리쬐는 햇빛은 날카로우나 바람은 솔솔 불어

지루한 산행길이 시원하다.

올라갈때는 하늘로 내려갈때는 땅으로 통한다는 통천문을 통과해서

점심과 휴식을 취할 장터목 대피소로 내려가려면 배고 고파오고 다리도 아파오고 슬슬 지쳐가는데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그 옛날에는 삼끈으로 묶은 고무신에 나무 작대기를 의지한채 올라왔다는데

바위돌에 쫙쫙 달라붙는 릿지화를 신고 가볍기가 그지없는 최신 스틱인 지팽이을 짓고

투정부리는 것은 호강에 겨워 오강에 똥싼다고 의지가 박약해서 그렇다.

 

 

 

 

 

 

 

 

 

 

 

 

 

 

 

 

 

 

장터목에서 천왕봉 사이 제석봉 허허벌판에는 자유당 시절 권력을 잡은자들이 구상나무를 벌목하여 

팔아 먹으려다 붙잡히게 생겼으니 모두 불질러 버렸다 하나 사실은 빨치산 토벌작전 하나로 불지른 현장이란다.

아직껏,죽어서도 눕지 못한채 서있는 고사목은 살아서 푸른 잎을 뽐내는 나무사이에서 더 외로워 보이는데

초연히 쓸고간 깊은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세월로 서있는 비목이라는 노래는 왜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1948년 10월 19일 당시 여수에 주둔한 14연대 소속 좌파 군인들의 무장봉기는

대한민국 정통성에 반기를 든 반란으로 교과서는 말한다.

대한민국 군대와의 싸움인 여순 반란사건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낸채 

지리산으로 숨어들어 게릴라 작전을 하는 그들과,6,25전쟁을 거치면서

남쪽으로 내려왔다 미처 후퇴하지 못한 북한군 정규병력이 지리산일대

빨치산 대열에 합류하면서 팔공산(1151)을거처 백두대간의 백운산(1277),덕유산(1492)과

백아산과 조계산,그리고 지리산에 들어가는데

지리산에서도 남원쪽의 뱀사골과 반야봉을 비트로 많이 삼고 수시로 옮겨 다녔다.

가시같은 소나무잎보다는 넓은 잎나무들이 많은 지리산이 투쟁의 마지막길이 되는 셈이다.

 

빨치산 하면 이현상 이다.

보성전문 다니던 일제때부터 공산주의 활동을 했던 이현상은

남로당 박헌영과 월북한뒤 다시 내려와 빨치산 생활을 한다.

남조선 인민 유격대를 즉 남부군을 이끄는 이현상은 1951년 덕유산 송치골에서

빨치산 총사령관이 된다.

1951년 백선엽 제1군단장은  빨치산 토벌 사령부를 두어 지리산을 주 타깃으로하는  토벌 작전으로

총사령관인 이현상은 지리산 빗점골에서,경남 유격대를 이끈 이영희는 교전중에,

전북도당 방준표는 비트 발견으로 자폭

전남도당 박영발은 지리산 반야봉 동굴에서 같은 빨치산이 쏜 총에 사망하고,

같은 전남도당의 김선우는 백운산에서 군경과 교전중에 사망한다.

사람 잡는다고 애꿎은 영호남의 산들만 죽어나갔다.

 

빨치산 돌격대와 토벌대는 밀리고 밀려 결국에는 병력과 화력이 우세한 토벌대가 유리했을것이고

그와중에 산에 사는 동물과 식물만 죽어나는 수난을 겪었던 지리산은 역사의 현장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라는 대하소설로 엮은 빨치산의 이야기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순천과 벌교를 배경으로 빨치산의 투쟁과 좌우 충돌을 실감나게 사실적으로 그려진 소설이다.

인민 해방의 꽃으로 역사위에 찬란히 피어 날것을 굳게 믿고 최후의 순간까지 싸우다

빨치산 답게 용감하게 죽는 현장은 소름이 끼쳤다.

장남은 빨치산의 대장 염상진으로 차남은 빨치산을 잡으러 다니는 청년단의 대장 염상구로 두아들을 둔

호산댁 어미의 기막힌 사연은 소설이지만 가슴이 아렸다.

큰아들 편을 들자니 작은 아들이 눈치 보이고,작은 아들 편을 들자니 큰 아들 눈치 보이는

애미 심정이 오죽했을지 짐작이 간다.

실제로 주민들은 밤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시달리고,낮에는 군경들에게 시달려

피말리는 생활을 하였다.

지금도 빨갱이가 하나라도 있는 집안은 신원조회를 통해서 공무원이나 사회생활 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하다.

그도 한때 빨갱이 작가로 곤역을 치루고 군대간 아들은 목디스크가 되도록

매일 맞았다는 작가의 증언이다.

 

재대로된 역사를 알려 인간다움 삶에 보탬이 되어 주려는 사람을 격려는 못 할 망정,

잡아가는 시절이 있었으니 지금 세상은 가슴속 표현을 맘대로 할수있는 자유로운 세상이 되어

얼마나 좋은 세상인지 모른다.

허기야 지금도 지맘에 안들면 명예훼손한다고 고발하고 법대로 하라지만

돈없고 빽없는 나약한 사람은 죽어지내는것이 최고다.

 

대장 염상진의 무덤을 찾은 하대치,먼저간 대원들의 혁명의 별을 바라보여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소설은

인간의 숭고한 정신을 찾기 위한 몸부림과도 같은것이다.

 

그나저나 누구는 여자의 젖무덤과 같고 누구는 여자의 궁둥이와 같다는 반야봉 봉우리가

바로 저기란다.

반야봉은 천왕봉 다음으로 높으면서 천왕봉,노고단과 지리산의 삼대봉이다.

천왕봉과 백리가 넘는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참,끝간데 없이 펼쳐지는 산인거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천왕봉에서 장터목까지는 1,7km이고 보통의 경우라면 삼사십분이면 내려온다는데

한시간이 훌쩍 넘게 걸려 내려오니 시간은 오전 11시가 되었다.

 

 

장터목 대피소는 장터처럼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여기저기 음식냄새가 진동하였다.

약수물로 끓여낸 햇반 라면이 꿀맛 이었다.

부자지간의 요리솜씨가 제법이어서 나는 세번의 식사시간에 숟가락과 젓가락만 들고 있다

먹어주기만 하는 호사를 누렸다.

아들놈 여자친구를 이 코스대로 데리고 온다고 벌써부터 야단이다.

서른살만 넘었어도 섭섭하지 안을텐데 스물두살밖에 안된 녀석이

엄마 말고 다른 여자에게 잘해준다니 야속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는거는

질투도 아니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대학 들어가면 옆집 남자려니 군대가면 동내 남자려니 장가가면 해외동포려니 하란말이

괜한 말이 아니래도 웬지 슬프다.

늙을 말년 할머니는 할아버지밖에 없다는게 진짜인가 보다.

장터목 대피소 지나서 3,2km에 있는 참샘 약수터 지나고 다시 2,6km지나면

마지막 목적지인 백무동이다.

무릎 보호대를 동여매고 내려가도 내려가도 길게 끝이 없는 그길에는 다람쥐도 있고

온갖 산새들이 짹짹거려 심심치는 않다.

 

 

 

 

 

 

 

대나무 밭이 나오면 오늘 여정은 끝이라더니 침침한 눈으로 대나무밭이 보인다.

대밭에서 싸울때는 무조건 엎드리는게 상책이란다.

재수없으면 지가 쏜 총알이 동그란 대나무에 돌아서 자기가 맞아 죽을수가 있단다.

사각거리는 대나무 소리가 들릴만도 하건만,아무런 소리도 안들린다.

 

지칠대로 지친 내몸은 제일 먼저 눈이 침침하고 웃음은 고사하고 말하는것도 힘들다.

드디어,12시에 장터목에서 출발하여 5,8km를 오후 네시 삽십분에 도달해

오늘 산행일정은 마무리가 되었다.

일박이일 총 12,9km를 12시간에 걸쳐 산행한 셈이다.

남들보다 두배로 걸린 산행이지만 언감생신 내가 천구백미터가 넘는

천왕봉을 올라설거라는 꿈도 안꾼 일을 해낸것이다.

남편은 왕초보 아내가 무사고 산행에 기쁜지 백무동에 내려와서는 내 베낭을 낚아채 간다.

아들과 아빠 서로 엄마 베낭을 들고 가겠다는 성화에 내 각시는 내가 챙긴다는

일침으로 아빠는 아들을 이긴다.

두 남자가 앞에서 뒤에서 호휘했던 지리산 산행은 꿈같은 추억이 되어 버렸다.

 

 

천왕봉 일출은 생명의 환희를 일깨우고

반야봉 낙조는 처연히 생을 마감하는

지리산,

아흔 아홉 어머니 치마폭 주름진 골짜기에

꽃향기 바람불어 싱그런 봄이 왔습니다.

 

쫓고 쫓기는 허기진 인생사 품어 주고

매마른 가슴속 촉촉히 적셔주는

지리산,

푸른산 돌고 돌아 흰구름 둥근 무덤에

뻐국새 배골아 죽은 자식 그리워 슬피 웁니다.

 

한국인의 기상이  여기 발원되어

하늘과 땅으로 자유로운 영혼되는

지리산,

그대가 있어 행복합니다.

 

 

2012년 5월31일 씀

글,사진-李 貞

참고- 조정래의 그의 문학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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