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10. 08:06ㆍ여행
오스트리아로 떠나는날
어젯밤 끓여놓은 닭죽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삶은 감자 서너개와 만들어 놓은 샌드위치와 생수를 챙겼다
동뜨기전 새벽 공기를 마시며 집을 나섰다.
61번 트램으로 모리츠 오거리에서 4번 지하철로 갈아타 켈리티역에
도착하니 5시40분을 조금 넘었다.
keleti역에서
부다페스트발 스위스 취리히행 Rail jet열차에 탑승했다.
Rail jet열차는 오스트리아 국영철도가 운영하는 철도로
현대적이다
초고속 열차로 시속 200에서 230km까지 달릴수 있단다.
우리의 KTX열차와 비슷한 레일제트는 유럽의 외국으로 오고가면서
주요 몇 정류장만을 경유하면서 빨리 가는 열차이다.
평일날 새벽이서인지 열차의 객실은 텅텅 비고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자석지정을 하지 않고 열차표를 미리 예매한것을 두고
전전날부터 행여 앉아가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
한순간에 해결되었다.
내가 끊은 열차표는 오늘부터 삼일내로 언제든지 다녀올수있는
왕복 티켓으로 요금은 일인당 9135포린트로 45600원이다
긴 객실에 열명도 채 되지 않는 사람들은 인터넷을 하거나 나처럼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이다.
반대편 앞좌석에는 책에서나 보았던 머리수건을 두른 뚱뚱한 할머니 한분이
동양사람이 신기한듯 쳐다봐 고개짓으로 인사를 하자
날보고 자꾸 오라 손짓을 한다.
할머니가 잔뜩 싣고 가는 물건은 왕골 수공예품으로 가방과 모자꾸러미를
팔러가는 모양이다.
직광으로 내리쬐는 유럽 좌외선으로 열흘만에 꺼무튀튀한 얼굴에다
땋아 느러뜨린 머리를 한 나를 보고 마자르족이냐 묻는거 같아 코레아라 말하니
당신은 루마니아사람 이라고 하고는 도통 알아들을수 없는
말과 눈빛과 몸짓 손짓으로 이빨 빠진 할머니는
뭐라뭐라 씨우렁거리는데 대충 눈치를 보니 자기 고생담을 얘기하는 거 같다.
손으로 직접 만든거냐며 내가 손을 잡자 할머니는 금새 두눈에는 그렁그렁
고인 눈물을 훔친다.
나는 가방을 뒤져 눈깔 사탕 한알을 할머니 입안에 넣어 드리고는
내좌석으로 왔는데 나이들면 나는 냄새에다 언제적 씻어는지 쪄들은 냄새가
한동안 코끝에 맴돌아 정신이 들때쯤 다음 정거장에서 할머니는 내렸다.
기차는 6시5분 정각에 출발하여 3시간이 지난 9시5분에 빈 Westbahnhof역에
도착했다.
동유럽으로 가출하기라는 책자대로 일층에 안내소를 찾았으나 안 보이자
당황한 남편은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아무래도 inpot라 쓰여있는게 안내데스크인거 같아 그곳에서가
please can i get a tube map?이라 하자
대답도 건내지 않고 던져주듯 안내도를 건낸다.
첫번째 만나는 오스트리아사람은 불친절했다.
영어로impormation이 오스트리아에서는 인포트라하는 모양이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어를 쓴다 한다.
매트로 U6번을 타고 한정거장인 Langenfeldgdg역에서 U4로 환승하여
두정거장인 Schonbrunn역에서 하차했다.
독일어나 헝가리어나 꼬부랑 영어 철자위에 가끔씩 꼭꼭 찍어대는 점은
엑센트를 강하게 발음하는것인지 글자 한번 정신 사납다.
우리나라 우리글인 한글이 얼마나 위대하고 쓰기 편하고 말하기도 편한데
유럽 어디를 가도 한글 구경하기란 쉽지 않다.
지들은 또 지들말이 최고라 여기면서 살아가야 할테니까
어쩌다 세계에서도 어렵기가 최고라는 헝가리말을 지원이는
배워 씨우렁씨우렁 말을 잘해 여기까지 와서 사는지
내딸이지만 신기하다.
배꼽위에 점때문인지, 미신같지만 지원이는 태어날때부터 헝가리 지도처럼 생긴
옅은 점이 있다.
U6 환승입구를 찾으려고 한참을 헤맸는데 일층 지하철 플랫폼을 빠져 나와
도로를 건너야 있다.
쉔부른 궁전이 유명하다더니 쉔부른역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백여미를 가다
왼쪽으로 꺽어 이백여미터를 더 가면 궁전의 입구가 나온다.
어디를 가나 관광지에는 길거리 상가가 있듯이 쉔부른 궁전앞에도
오스트리아 특유 먹거리와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있다.
프랑스에 베르사유궁전이 있다면 오스트리아에는 쉔부른 궁전이 있다.
이곳을 찾기 위해 빈을 찾는다고들 한다.
오스트리아 역사는
962년 오토1세기 신성 로마제국 황제로 즉위한뒤
아들 오토2세가 오스트 마르크 국경지대를 맡으면서 996년 오스타리히라는
이름이 문서에 등장했다.
1135년 바벤베르크가에서 빈을 수도로 삼고 1273년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1세가
신성 로마제국 황제를 겸하면서 오스트리아를 속국으로 삼았다.
15세기 막스밀리언 1세부터 정략결혼을 통해 영토를 넓혀갔고
카를 5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스페인 왕이 되어 유럽 최강 군주가 되었다
1740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그의 아들 요제프가 개혁을 추진하고
18세기말 나폴레옹이 패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은 해체되었다
1867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제국으로 축소되고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여
국토의 대부분을 잃고 1919년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38년 나치 독일에 점령당했으나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자
1945년 독일에서 해방되었다.
1955년 영세 중립국을 선언하고 유엔에 가입한후 1995년 EU일원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서쪽은 독일과 스위스 동부는 헝가리 슬로바키아와
북부는 체코와 남부는 슬로베니아 지중해와 가깝다
수도는 빈,비엔나이고 인구는 약830만명이다.
비엔나는
구시가지 링안쪽의 도시와 링 밖의 도시로 구분되어진다
반지처럼 둥근 원을 그리는 도로 링Ring strasse로 되어있다.
Schloss Schonbrunn 쇤브룬 궁전은
'아름다운 샘'을 뜻하는 궁전으로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어있다
1612년 마티아즈 황제가 사냥하던중 우연히 아름다운 샘을 발견하여
사냥터에 세운 성이 1683년 오스만 투르크에 파괴되자
1696년 레오폴트 1세가 아들 요제프1세를 위해 여름 별장을 짓기 시작했다
합스부르크왕가의 여름 궁전으로 사용되었으며 외관은 바로크식 양식이다.
당시 건축가인 페셔 폰 에를라흐가 베르샤유 궁전을 능가하는 바로크양식으로
건축했다 재정난으로 축소했다
그후 마리아 테레지아가 외관을 노란색으로 칠하고 로코코식으로 내부를 다듬었다.
1805에서1809년 나폴레옹이 빈을 정복한후 사령부로 이용하기도 하였단다.
궁전 내부가 1440개의 방이 있고 그중에 일반에게 공개하는 방은 45개정도란다.
1762년 10월13일 오후 미리아 테레지아와 가족앞에서 6살인 모차르트가
최초 연주를 했던곳이다.
연주가 훌륭해 마리아 테레지아가 모차르트를 안아줬다는 일화가 있다.
궁 내부 관람은 포기했다
중국인들 관광객으로 입구는 아수라장이고 소지품을 반납했다 찾는
절차가 필요하고 또 가이드 동행아래 입장이 가능한데
중국어 가이드는 있는 반면 관광 안내책에는 있다는
한국어 가이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서어서 우리의 국력이 커져 어디서든 내나라 말로만도
다 통하면 좋겠다.
하루의 빠듯한 일정으로 인해 내부 구경은 생략하고 궁전의 본관을 나와
정면의 언덕에 세워진 그리스식 신전양식의 건축물인 글로리에테를 구경했다.
18세기에 프로이센을 격파한 기념으로 세워진 것이란다.
세기의 커플로 유명한 엘리자벳의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가 1830년
쇤브론 궁전에서 태어났다.
18살에 그는 오스트리아겸 헝가리 국왕이 되어 68년을 통치한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왕가의 몰락과 운명을 함께한 비운의 황제였다.
유일한 왕자 계승자인 아들 루돌프가 자살하자 조카인 페르디난트 대공이
계승자가 되었으나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던 사건인1914년 사라예보에서
암살 당한다
그는 1916년 86세 나이로 손자 카를에게 왕위를 계승시키고
쇤브론 궁전에서 생을 마감했다
궁전 외부 건물보다 궁전의 위쪽에 있는 정원을 둘러보면
잘 가꿔진 정원에 탐복하는 순간이다.
어린아이 상고머리 자르듯 일정하게 잘라낸 나무들이 인상깊었다.
관광지에서 사진을 부탁하여 찍다가 사진기를 날치기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터에 큰 맘먹고 장만한 카메라를 아무에게 사진 찍어달라 부탁하기도 힘들고
누구 도움 받는것은 죽느거 만큼 힘들어 하는 남편땜에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을 거의 없는데 마침 한국사람인듯 하여 반갑게 사진을
서로 주고 받고 찍어주었다.
그러게 사진기 받치는 산발이를 들고오자고 했더만 이것저것 무거운 짐때문에
결국은 빼트리고 왔더니 주로 내 담당은 모델이고 남편 담당은 찍사가 되어
티격태격 싸우면서 여행하고 있다.
쉔부른 역에 내릴때 부터
하늘은 파랗고 흰 구름이 두둥실 떠다녀 걸어다닐만 하였는데
오스트리아 바람을 거세게 맞았다.
어제 내린비로 인해 바람불고 추운 날씨는 실제 기온은 십도가 넘었으나
체감온도는 영상 5도 정도란다.
다행히 바람막이 옷을 두겹을 껴입고 와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어디를 가나 변덕스런 유럽날씨는 보온방풍 여벌옷을 챙겨야 한다.
햇볕이 쨍나다 먹구름이 몰려올때쯤 쉔부른역에서 U4로 6정거장을 이동하여
Karlsplatz에 내려 Oper출구로 나오니 오페라하우스 건물이 나왔다.
서울의 명동 거리 헝가리의 바치거리와 비슷한 Karntner거리에는 600m미터
보행자거리이다.
Karntner 케른트너 거리는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성슈테판 사원까지 직선 거리이다.
1974년 오스트리아주의 이름을 따서 명명 되었으며
유럽에서 아름다운 쇼핑거리로 손꼽는다
도로 양옆으로 백화점 기념품가게 레스토랑 호텔과 노천 카페들이 즐비하다.
시계하나가 천만원이 넘고 진주목걸이 한개가 몇천만원이 훌쩍 넘는
유명 고가 소위 명품제품부터 중저가인 자라나 에이치엠 같은
숙녀복 센터도 있었다.
내맘에 쏙 드는 모자는 서울보다 비싸서 구경만 하고 돌아섰다.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나는 거리에는 사람도 동물 특히 사람덩치보다
큰개들도 잘도 걸어 다닌다.
대부분 개들은 주인옆에 붙어 얌전히 걸어가나 오줌은 그냥 아무대나 싸서
보기 흉했다
우리처럼 집이나 보라고 모가지 묶어놓고 먹을만치 컸다고 잡아먹는 사람도 있는데
지하철 트램이나 버스도 함께 타고 여행하는 개들의 천국이 유럽인가 싶다.
고풍스런 상가거리를 지나쳐 성 슈테판성당에 도착했다.
st,stephansdom 성슈테판 성당은
8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성당으로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인
슈테판에서 유래한다
12세기 중엽 로마 네스크 양식으로 작은 교회를 건설했으나
1395년 합스부르크가 루돌프4세에 의해 고딕 양식으로 증축했다
성당 지붕은 23만장의 벽돌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제로 내부가 손실되었으며 국민의 성금을 모아
1948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제단 아래 창문을 열고 반신을 내밀고 있는조각과
오르간 아래 컴퍼스와 저울을 손에 든 조각상은 조각가 자신이 모델이란다.
북탑아래의 치통의 그리스도 조각상은 세사람이 치통으로 고생하는 예수를 놀리자
그들 이 치통을 겪는다는 말이 전해진다
사원의 북측 종루탑은 67m이고 에레베이터로 올라가고
Steffl 슈테플 이라는 애칭을 가진 남탑은 137m 높이로
빙글빙글 도는 계단이 343개단으로 만들어졌다
일인당 4유로를 내고 올라가 춥고 떨리던 몸이 오랜만에 몸이 후끈해져
좋았다.
여기서는 돈내고 계단운동해야 된다.
북측으로가면 1711년 오스만투르크인이 남기고간
180여개 대포를 녹여 만든 종이 있는데 종루탑의 pummerin
지금의 모습은 1957년에 제작한 종으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종으로 알려졌다.
헝가리의 이슈튜반 성당에서도 내가 올라갈때 땡땡 종소리가 나더니
오늘도 슈테반성당 종소리가 땡그렁땡그렁 쩌렁쩌렁 울려댄다.
아무래도 신의 가호를 듬뿍 받고 즐거운 여행길이 되라는 것만 같다.
지하에는 합스부르카의 역대 후손 56명 내장을 안치한 카타콤베 라는
납골당이 있다
합스부르카의 관습은 장례가 끝나면 심장은 아우구스티너교회에
내장은 슈테판 성당에 그리고 유골은 카푸치노 교회에 안치했다고 한다.
여러갈래로 찢어지는 그들의 사후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1782년 8월4일 모차르트와 콘스탄츠의 결혼식이 거행되었으며
1791년 12월6일에는 모차르트의 장례식이 치뤄졌다.
오스트리아는 음악과 미술의 도시이고 특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빈은 나의 재능을 살리는데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불운한 삶과는 다르게 그의 음악은 기쁨과 사랑을 담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모차르트의 25번 교향곡을 좋아한다.
매년 12월31일 빈 시민들은 슈테판광장에 모여 와인을 마신다음
와인잔을 바닥에 던져 깨뜨리고 자정이 되면 옆사람과 키스를 하면서
새해를 맞이한단다.
슈테판 남측 꼭대기에 올라가니 한눈에 들어오는 빈 시내 전경이
고풍스럽다.
한낮인 점심때가 되어도 날씨는 을씨년스럽고 바람불어 추웠다.
오스트리아식 돈까스인 비너슈니첼과 송아지수육인 타펠슈피츠를 맛보기 위해
음식점을 찾아 헤매다 오랜만에 비빔밥이라 한글이 적혀있는 작은 식당에 들러
비프와 베지터블 두가지중에 베지터블 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얇게 썰은 당근과 표고버섯을 볶아 넣은 비빔밥은 초밥용밥인지
밥알이 크면서 입안에서 겉돌았다.
그래도 참기름 냄새가 구수하게 나고 우리 된장국은 아니지만
미소 된장국과 곁들이니 먹을만 하였다.
메뉴판에는 비빔밥을 영어식 발음 나는대로 적혀있었는데
일인분에 9,9유로였다.
역시 한국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밥을 먹고나니 배도 부르고
추운것도 가셨다.
식당에서 밥먹고 화장실까지 해결하고 기분좋게 다시 투어를 시작하는데
햇볕이 났다 구름이 졌다 오락가락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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