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10. 15:17ㆍ여행
오후 일정으로 호프부르크왕궁을 찾아가는데 지도를 보고 찾아나선 길은
서울서 김서방 찾기보다는 쉽겠지만 말도 안통하는 빈에서
초행길 길찾기가 쉽지 않았다.
직진길을 돌아 죽 걷다보니 그건물이 그건물이고
하나같이 똑같이 보이는 건물들 투성이다.
아는길도 물어가라고 입은 밥 먹을때만 사용하는것이 아니라
이런때 요긴하게 씨우렁거리면 얼마나 좋냐고 나는 궁시렁 거리면서
따라 다니니 안보이는 궁궐이 어디쯤 붙었는지 아주 먼 곳에 있는거 같다.
남편을 믿지 않고 누굴 믿냐고 구박하는 남편말을 무시하고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쭉 빠진 청년에게
익스큐스미,하고는I want go to 호프부르크하고 이게 호프부르크하고 물어보니
노노 이것은 빈 대학이고 쭉 오분 가다보면 공원나오고 거기서 왼쪽으로
턴 하란다.
대충 알아듣고는 생큐를 연발하고 다시 걸었다.
전날 미리 지도 공부를 하고 나온 남편은 자신의 의도대로 왕궁이 안보이자
조금 더 돌아다니면 나온다고 하지만 안물어보고 헤매느니 안되는 영어래도
물어가며 걷다보니 막막하던 길이 대충 풀리는 거 같아 안심이 되었다.
빈대학을 지나쳐 시청사 건물이 보였다
Neues Rathaus 시청사는
시청사 광장앞에 위치한 신 시청사는 구 시청사를 대신하여
브뤼셀의 시청사를 모델삼아 완공했다는 시청사는
네오고딕 양식으로 첨탑이 어마어마 하다
네오 고딕 양식의 명수인 프리드리히 폰 슈미트가
1872부터 시작해 1883년 완성한 걸작이다
첨탑의 높이는 98m이고 꼭대기 철갑옷을 입은 기사상의 높이까지는
104m이다.
빈에서 야경이 가장 멋진 곳이란다.
광장에는 여름에는 음악회와 필름 페스티벌이 열리고
겨울에는 크리스마스마켓과 스케이트 장으로 이용된다.
시청사 광장옆에는 그리스 신전풍의 국회의사당 건물이 있다
Parliament 국회의사당은
아테네의 오랜 여행을 통해 영향을 받은 덴마크 출신의 테오필 폰 한젠이
1883년 그리스 신전을 모방해 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설하였다
8개의 둥근 코린트식 기둥이 세워진 입구 위에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학자와 정치가 지붕위에는 그리스 전차가 조각되어있다.
의사당 앞에는 카를 군트만이 제작한 황금빛 동상 지혜의 여신인
아테네 분수가 있다
국회의사당을 지나 시민공원으로 들어와
시민공원에서 삼일전에 도착했다는 한국인 여행객을 만났다.
유럽 어디서든 한국인 여행객을 쉽게 볼수있다.
하나둘 여행하는 사람들과 아님 패키지로 뭉쳐다니는 여행객등
한국인들을 많이 볼수 있다.
그녀들과 헤어진후 호프부르크 왕궁쪽으로 걸어갔다.
Hofburg호프부르크왕궁은
1220년경에 세워져 650년동안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으로 사용해 왔으나
군주들이 차례로 증축해 건물이 여러곳으로 흩어졌다
19세기에는 성벽이 철거되고 광장과 정원이 조성되었다
1914년 네오바로크 양식의 신 왕궁이 건설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현재는 대통령 직무실과 회의실 박물관으로 사용중이다.
Alte Burg 구왕궁은
13세기 건축되었으나 16세기 페르디난트 1세가 르레상스 양식으로
완성했다
18세기 카를 6세까지 역대 황제가 거주했던 곳이다.
왕실보물관에는 루돌프 2세의 왕관을 비롯해 귀중한 보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Neue Burg 신왕궁은
1881년부터 1916년까지 카를 폰 하제나우어와 고트프리트 젬퍼가 설계한
네오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합스부르크의 권위를 상징하듯 머리가 2개인 독수리가 정면 위쪽에
날개를 펼치고 있다
호프부르크왕궁에서 가장 큰 건물이지만 합스부르크 왕가가 망한후에 완공되어
한번도 왕궁으로 사용된적이 없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중이다
2차 세계대전때는 히틀러가 신궁전 테라스에서 독일과 합병을 선언했는데
몰려온 군중이 열렬히 환영했다 한다.
공사중인듯 군데군데 천막이 쳐져 있었다.
오락가락 하는 비에 빈의 도심을 걸어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에 도착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스트리아 최고의 여걸로 빈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녀를 쉽게
만날수 있다
1717년 호프 부르크 왕궁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카를 6세는 그녀에게 통치대신 여성의 덕목만을 가르쳤다
카를 6세가 갑자기 사망하고 아들이 없어 장녀인 그녀가 후계자가 되어
합스부르크의 모든 영토를 상속받았다
그녀의 상속에 이의를 제기한 전쟁이 일어나 프로이센과 슐레지엔을 잃었지만
헝가리의 지지를 얻고 프랑스와 적대인 영국과 연합하여 전세를 역전시켰다
그녀의 외교술은 놀라워 1748년 아헨조약으로 프라그마티셰 장크치온에
각국의 승인을 받아내고 슐레지엔을 회복하기 위한 프로이센과 7년전쟁을 일으켰다
아쉽게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녀는 오스트리아를 유럽의 강자로 만든 당대
최고 여걸이었다
16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영토를 확장시키려 자식들을 정략결혼시켰는데
막내딸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프랑스 루이16세와 결혼시켰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여 남편 사망후 16년간을 검은 상복을 입고 지냈으며
계몽주의자인 아들 요제프2세를 경계하며
15년간 통치하다 1780년 11월29일 사망했다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양옆으로는
자연사 박물관과 미술사 박물관이 똑같이 마주보고 서있다.
광장 한가운데 1888년 세워진 마리아 테레지아 거대한 동상이 있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4개의 기마상은 그녀의 신복들과 귀족들이란다.
길건너 왕궁정원에 서있는 모차르트 동상을 섰다.
오스트리아를 빛낸 음악가
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생전에 무려 1,500여곡을 작곡한 위대한 음악가이다
오스트리아 찰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5세부터 작곡을 시작한 모차르트는 대주교의 지원하에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대주교와 갈등이 심화되면서 25세 그는 찰츠부르크를 탈출해
빈에서 활동했다
음악의 모든 장르를 집대성하고 고전파 시대의 양식을 정립해
'피가로의 결혼''돈조바니'같은 불멸의 걸작을 남긴다
1791년 프라하로 떠나 '마적'을 완성했으나 몸이 쇠약해져
죽은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곡인 '레퀴엠'을 미완성으로 남겨둔채
3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Ludwing van Beethoven(1770-1827)루드비히 베토벤은
하이든 모차르트와 함게 고전파를 작곡가인 그는
1770년 독일에서 태어나 1792년 빈으로 유학와서 하이든과 살리에르에게
사사를 받았다
빈에서 생활을 궁핍하여 난청으로 시달렸다
'피아노3중주''제1교향곡''3교향곡''영웅 교향곡''바이올린 협주곡'등
주옥같은 명곡을 남겼다
귀머거리 된후에도'장엄미사곡''9교향곡'같은 대작을 남기고
1827년 세상을 떠났다.
Johann Strauss(1825-1899)요한 스트라우스2세는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스트라우스1세 아들로 빈토박이이다
아버지로 부터 왈츠를 사사받고 19세에 지휘자로 명성을 떨쳤다
38세 오스트리아 궁정 지휘자가 되었다
1867년 작곡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명곡중 하나이다
Franz Schubert(1797-1825)프란츠 슈베르트는
아름다운 선율과 로맨틱하고 풍부한 정서를 지닌 낭만파 작곡가이다
31세 짧은 생애에 600여곡을 작곡한 '가곡의 왕'이다
빈 교외의 리히텐탈에서 태어난 11세에 빈 궁정예배당 소년 합창단원이
되엇다
16세에 교향곡을 작곡한 이래 '마왕''들장이'등을 작곡했다
음악의 도시 빈의 왕궁정원에서 생각보다 어린 모차르트를 만나고
그의 힘있고 빠른 템포의 교향곡25번 선율이 들려오는듯 하다.
빈에서는 오페라 한두편을 봐줘야 여행의 진미가 될것이다.
시내 어디를 가나 부활절 달걀 장사가 많았다.
남편은 진짜 계란이라고 우기고 나는 가짜 계란이라 우기다
만져보니 프라스틱과 나무로 만들어진 계란들 이었다.
다시 karlsplatez지하철에서 내렸던 오페라 극장에 도착하여
재래시장에 들렀으나 오스트리아 골동품을 판매하는 풍물시장이 아니라
관광객을 위한 음식점과 각종 치즈와 향신료,과일 야채들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즐비하고 딱 한군데 아시아 상가에는 한인마트에서 본 신라면과 국수 미역등
심지어 국간장까지 반가운 한국 음식재료들이 눈에 띈다
오던길을 뒤돌아 karlsplatez역 화장실에서 남편은 0,5유로를 내고
볼일을 봤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으로 Belvedere궁전을 보러 karlsplatez역에서U1을 타고
두 정거장 지나 sudtrioler platz하차한후 트램18번으로 갈아탔다.
한정거장인 sudbahnnhof역에서 내려 벨베데레 궁에 도착했다.
Schloss Belvede 벨베데레 궁전은
투르크족을 중부 유럽에서 완전히 격퇴시킨 오이젠 공의 공덕을기리기 위해
세운 별장이었다.
1714년에서 1723년에 이르기까지 사보이 왕가의 프린스 오이겐 여름 별궁으로 지은
벨베데레 궁는 1716년 여름 별궁으로 하궁을 먼저 세우고 1723년 연회장으로
상궁을 세웠다.
벨베데레가 아름다운 전망을 의미하듯 아름다운 정원으로 중심으로
상궁과 하궁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이젠공이 죽은후 합스부르크가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궁을 매입하여
미술 수집품을 보관했다
1955년 미국 구 소련 영국 프랑스 4개국 외무장관이 2차 세계대전후
10년간의 신탁통치를 마치는 조약을 맺은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바로크 양식의 궁전은 상궁에 구스타프 크림트,에곤실레등 19-20세기의
회화 작품을 전시한다.
유켄트스틸을 대표하는 작가 구스타프 크림트의 유명한 키스작품이
상궁에 있다
먹구름이 몰아치는 벨베데레 궁이 무섭게 다가왔다
나는 베베데레 상궁을 보고 하궁에 도착할 무렵 아름다운 정원에서
사진을 찍다
허전한 눈을 만져보니 먹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오락가락 하는통에 어두워서
썬글라스를 벗어 건방지게 가슴골에 끼고 다니다
어디서 어느새 빠져 버린지도 모른채 잃어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깨지거나 망가져서 못쓰게 되었다면 덜 서운할텐데
비싼 명품은 아니지만 즐겨쓰던 썬글라스인데
남의 눈에 가서 씌여있다 생각하니 속이 상했다.
지하철 역사안에서 벗은 기억을 더듬어 오던길을 다시 가보았으나
나의 썬글라스는 안보이고 내 눈은 피로를 몰고온다.
다시 역으로 트램 18번을 타고 sudtrioer platz역에서 U1으로 환승하여
stephans platz역에서 U3로 환승했다.
아침 도착지인 westbahnhof에 도착하니 오후 4시30분도 안되었다.
계획은 오후 6시48분행 부다페스트 고속열차를 타려 맘먹었다가
너무 일찍 일정이 끝나는 바람에 오후 5시 48분을 타기로 하고
저녁으로 역사에서 오스트리아 돈까스인 비너 슈니첼 하나와 사과주스 한병을
시켜 도시락으로 싸온 남은 샌드위치와 같이 먹었다.
Wienerschnitzet 비너슈니첼은
돈가스 일종으로 주로 송아지 고기를 이용하지만 요즘은 돼지고기를 이용하는
돈까스이다
돈까스는 성북동 금왕돈까스나 남산 왕돈까스 처럼 크기는 비슷하나
두꺼운게 아니라 종이장 처럼 얇은 고기를 튀겨낸것이었다.
돈까스와 곁들여 나오는 채썰은 감자도 튀긴음식이여서
뱃속이 그득하게 차 있는 느낌이었다.
부다페스트에 오후8시55분에 도착하여 빈에서 같이 동행한 젊은 아가씨들
일일 교통권 티켓 발매를 도와주고 여섯정거장을 지나 모리츠오거리에서
다시 61번 트램으로 바꿔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스트리아 수도인 빈을 제대로 관광하기에는 부족했던 긴하루를
보내고 쉬는데 튀긴음식 때문인지 늦은 밥까지 들이킨 물만 여러컵이고
내 곁을 떠난 썬글라스 때문인지 더 피곤함이 몰려온다.
남편말에 의하면 억지로 하는 여행처럼 내가 짜증을 내서
자기가 더 피곤한 하루였다며 하마터면 여행 열흘만에
부부싸움 할뻔 했다.
변덕스런 오스트리아 날씨탓을 하고 남편은 레드와인 한잔을 따라 마시고는
금새 코를 곤다.
한국에서는 막걸리보다는 소주 소주보다는 맥주를 선호하던 남편은
헝가리와서는 지원이가 세팅해준 진자백이 와인맛에 반해
밤마다 와인을 한잔씩 들이켜 벌써 세병째 마시는 중이다.
에그리 비커베르 레드와인도 헝가리 산이고 특히 유명한 헝가리 와인은
Tokaj토카이라는 호박색 와인이다.
헝가리는 와인의 왕국으로
10세기 경부터 포도를 재배하였다
16세기 토커이 지방에서 세계 최초 귀부 와인이 개발되어 일약 유명해졌다
프랑스 루이14세가 토커이를 '왕의 와인''와인의 왕'이라 극찬한 이야기는
잘 얄려져 있다
헝가리 동북부 티서강 유역의 완만한 구릉 지대에 포도밭이 펼쳐져 있는데
이곳은 주로 백포도주 산지이지만 토카이 와인 하면 귀부 와인 토커이 아수라
불리는 호박색의 귀부 와인이 최고이다.
당도가 숫자 3에서6까지 표시되는데 숫자가 높을 수록 당도도 높고
호박색 농도도 짙어진다.
첫 입맛이 달달해 여자에게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조금이래도 마실수만 있다면 헝가리 와인맛에 푹빠질텐데
아쉽다.
빈은 독일식 발음이고 비엔나는 영어식 발음으로
시가지가 링으로 이루어졌다
링은 반지처럼 생긴 환상로로를 뜻한다
원래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도심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성벽을 쌓았는데
1857년 도시계획에 의해 성벽을 허물고 그자리에 링을 따라 오페라 하우스 자연사 박물관
국회 의사당 시청사 건물과 공원을 조성하였다.
빈은 전 유럽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근거지로 과거 합부르크 왕조의
영화를 되새겨볼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많다.
시가를 둘러싸고 있는 오각형의 환상도시로 링을 중심으로 주요 관광명소가
모여 있다.
시내 교통편은 삼일간 사용할수있는 빈카드를 이용하거나
승차권 한장으로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수 있는 교통권을 사용시 편리하다.
원을 그리며 순환하는 링 트램노선을 이용해도 좋고
Fiacres 피아커라는 관광마차를 이용해도 좋다
도보로 관광해도 충분한 거리이다
우리는 Railjet기차표가 있어 지하철은 공짜로 이용할수 있었다.
자전거나 워킹투어로도 시내 관광은 충분하다.
모차르트 베토벤 수베르트 하이든 브람스등 거장들의 숨쉬던 음악의 도시
빈은 로맨틱한 도시였다.
돌아와 생각하니 당일치기 빈 여행은
음악의 숨결과 예술의 가치를 느끼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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