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5월2일 금요일 오후

2014. 5. 4. 16:10여행

 

오후투어 시간 오후1시30분까지 부랴부랴 서둘러 도착한

Rudolfinun루돌피눔 공연장으로 가니 벌써 오후 투어를 시작한듯

사람들로 웅성인다.

Rudolfinun루돌피눔은

루돌피눔은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웅장한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고

19세기 체코 민족주의 상징이다

예술가의 집이라고도 하는 이곳은 체코의 저축은행이 50주년을 기념으로

지은 것이다.

루돌피눔이란 이름은 1889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루돌프가 마이어링에서

자살한것을 애도하야 붙인것이다.

특히 드보르작홀에서 열리는 공연은 유럽 최고로 수준급이며

체코 필하모니의 주무대이자 프라하의 봄 메인 공연장이기도 하다.

 

오전 투어를 진행했던 이혜진 가이드는 보이지 않고 옆머리는 밀어올리고

꽁지머리를 뒤로 묶은 남자분이 서 있다.

오늘밤 락카페에서 삼주년 팁 투어를 기념하는 연주에서 기타를 당담하여

연습중이라 오후 일정도 이혜진님이 대신한다더니

아무래도 삼년전 그날을 생각하니 꼭 나오고 싶었다는 

백승우 가이드의 설명이다.

우연히 하게된 고급 공무원들의 통역을 하던중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면서 자유로운 팁 투어 가이드까지 참여하게 되었다는

한국사람들 궁금증을 미리 알아 자기소개를 마치고는 그는 결혼 오년차에

체코생활 구년째란다.

체코의 작곡가인 드보르작 동상이 건물앞 정원에 서있다.

드보르작은 스메타나와 함께 체코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가이다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정육점을 운영하는

그의 아버지의 가업을 뒤로 한채 프라하 음악학교로 유학을 와

스메타나에게 음악을 배웠다.

보헤미아의 사전적 의미는 규칙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방랑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집시에서 유래된 말이란다.

어릴때부터 얽매이지 않은 사고와 자유 그런 지역 특색으로

그는 민속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에서 쓴 교향곡9번 '신세계로 부터'를 미국인들은 신세계는

미국이라 말하지만 체코인들은 고향을 그리며 쓴 곡이라 여긴다.

영화'조스'의 ost곡으로도 이곡이 삽입되었다.

 

다음 일정으로 까를교를 향해 걷다 야경좋은 장소를 지나고

까를교를 오르는데 인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Karluv most까를교는

Vltava블타바강을 잇는 다리로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1357년 카를4세때 성 비투스 성당을 지은 페테르 파를레르시가

건설을 시작해 바츨라프 4세 때인 1402년에 완공했다.

유럽의 심장이라 불릴만큼 중세풍이고 낭만적이다

처음에는 나무다리였으나 후에 돌로 개축 되었다

볼타바강의 13개 다리중에 유일하게 차량이 금지된 다리로

볼타바강을 가로지르는 폭 9,5m길이 516m의 보행자 전용다리위에서

그림과 각종 전시품을 파는 노점상과 퍼포먼스를 벌이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많다.

이들은 매년 시에서 인정하는 자격증을 가진 사람으로 일년에 한번씩

시험을 통해 일년간 다리위에서 장사를 할수 있다 한다.

까를교를 바라보는 구시가지와 프라하성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1683년부터 300 여 년 동안 다리 양쪽 난간에 각각 15개씩 총 30개의

체코 성인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17세기 후반부터 20세기중반에 이르기까지 약250년에 걸쳐 제작한 것으로

첫번째 세운 조각상은 예수 수난십자가로 당시 신성 모독죄로 처형된

유대인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중 성 얀 네포무츠키 조각상은

15번째 조각상으로 십자가를 머리에 이고 있고 가장 유명한 조각상이다

역사는 바츨라프 왕비인 조피에가 네모무츠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했는데

왕이 왕비의 고해성사를 주도했던 네포무츠키에게 무슨고백을 하였는지 물었으나

신부는 하느님의 약속대로 거절하자 혀가 잘리는 고문을 받고 죽고

시체를 볼타바강이 던져 버렸다가 후에 볼타강 하류에서 떠오른 시신을 찾아

프라성에 있는 성 비투스 성당에 묻었다.

야사에서 전해지는 말로는 왕비를 의심하더 왕이 네포무츠키 신부에게

왕이 생각한대로 말할것을 요구했으나 거부하자 왕이 다리에 던져 죽게 하자

물위로 별 다섯개를 머리에 달고 누운채로 떠올라 성인으로

추대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1729년 성인 반열에 올랐고 보통 십자가를 붙잡고 있는 동상이 체코에서 보이면

네포무츠키 성인이라 여기면 된단다.

그의 청동 동상이 가장 오래된 동상이고 순교장면이 조각되어있다.

중간쯤 서있는 요한 네포무크 성상의 부조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전설로 부조는 금빛으로 윤이 나고 있었으나

전설은 전설일뿐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가이드 설 명이다.

너도나도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며 이루어진다는 전설로  조각상은 반질반질했다.

왼쪽 개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이 보이는데 개에다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개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농담섞인 가이드의 설명이 우스웠다.

나의 소원은 지극히 평범한지라 부조에 손을 대지 않았다.

 

 

 

 

 

 

 

 

 

 

 

 

 

 

 

 

 

 

 

 

 

 

 

 

 

까를교 거의 다 건널즈음에 계단으로 내려오면 캄파공원이라는 섬에는

존 레논의 벽이 유명하다.

존 레논은

1940년 영국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인 1980년 향년 40세의 나이에

과격팬인 마크 채프먼의 총에 암살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비틀즈 그룹의 창립 맴버로 폴매카트니와 공동 작공을 통해 로큰롤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음악을 썼다는 평을 받는다

영국 싱글차트에서 폴매카트니에 이어 두번째로 성공적인 작곡가로

기록 되어진다.

1965년 대영제국훈장 5등급을 받았으나 영국의 베트남 참전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후에 이 훈장을 반납한다.

비틀즈 해체이후 그는 Imagine,give peace a chance,love등의 곡을 통해

솔로 경력을 쌓다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가 1978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다.

반한적인 성향과 평화운동과 그림작품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그는

그의 부인인 일본인 오노요코와는 두번째 부인으로  음반및 음악작업을 같이 하다

레논이 죽을때까지 함께한 부인이다.

체코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존 레논은 이메이진 노래로 세상을 향한

자유와 평화 평등을 이야기하는 가사가 카톨릭 수녀원 담벼락에 적히면서

존 레논이 부르는 노래와 체코인들이 부르짓는 민주화 바람이

이 벽 하나에서 부터 표현되고 일어나 민주화의 여론이 확산되었다

함부로 부술수 없는 수녀원 벽이고 앞에는 프랑스 대사관이 있어

그들의 열광적인 표현을 막기란 어려웠단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다녀간 흔적이 대부분이고 빨강색과 파랑색 권총이

마주대고 있는 태극기가 어렴풋이 보여 400년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다

1차세계 대전후에는 독일 나치의 지배하에 있고

2차 세계대전후에는 소련 공산주의 체제 억압하에 있었던 체코가

멀리 고려 조선까지 가지 않더라도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로 신음하다 간신히 독립하자

강대국들의 입김 한번으로 둘로 갈라져 사는 한 많은 우리와 흡사 비슷하여

아픈 역사를 머금은 체코의 땅덩이와 하늘과 바람과 공기가 달라 보였다.

이메이진의 노래는 어느덧 내방에 흐르고 한달여만에

어느새 녹음이 우거진 창가에 서서 상상에 젖었다,

자유와 평화의 끝은 어디있는지,

 

Imagine---------존 레논

상상해 보세요 그곳에 천국이 없다고요

당신이 하려고만 한다면 쉬운일 입니다

우리 아래에는 지옥은 없습니다

우리 위에는 오직 하늘만이 있습니다

상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서로 나누는 것들요.

 

상상해 보세요 국경이 없다고요

그렇게 어려운일이 아닙니다

죽여야 하거나 죽을 이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종교란것 또한 없이

상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속에 사는 모습을요.

 

후렴

당신은 나를 몽상가라 말할지 몰라도

이런 생각을 가지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닙니다

 

나는 언젠가는 당신이 함께 하길 바래요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거예요

 

상상합니다 소유가 없는 세상을요

당신이 그럴수 있을지 의문이지만요

욕심도 없고 배고픔도 필요없는 한 형제처럼요

상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나누며 사는 세상을요.

 

 

 

 

 

 

 

 

 

 

 

프라하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하는 프라하성에 가기위해

성 미클라쉬교회를 지나쳐 향해 걸어가는데

빗방울이 하나둘 옷깃을 적신다.

프라하에서는 등산길이고 우리에게는 오르막 골목길정도의

네루도바거리는 고풍 스럽다.

19세가 이전까지는 주소가 없이 집집이 백조나 양등 동물 문양이나

다양한 심벌도는 문장으로 번지를 대신하였고

그중에 47번 저택이 얀 네루다가 살던 집이 이는 네루도바 거리 이름이 유

래된곳이기도 하다

거리 양쪽에는 기념품점과 잡화점들이 즐비하고

거리 바닥은 온통 사각형 돌멩이 더미를 가지런하게 박은듯

어제 오늘 밟고 지난 거리 풍경이다.

발바닥 지압은 확실하게 생겼다.

프라하 시내 전체가 돌 바닥이므로 케리어를 끌고 다니며 관광하면

바뀌가 금세 망가진다.

 

볼타바강과 인접한 언덕위에 위치한 프라하성은

제대로 둘러보려면 한두시간은 금세 지나가나 팁 가이드 설명으로

간단한 투어를 할수 있었다.

Prazsky Hrad 프라하성은

블타바강 서안 언덕위에 세워진 성으로 880년 보르지보이왕부터

처음 건축하기 시작해 10세기에 로마레스크 양식이 가미되고

체코 공화국 역사상 최고 번성기였던 14세기 카를4세때 고딕 양식으로

재건한후 1526년 합스부르크왕가가 지배하면서부터 르레상스 양식이 더해져

오늘날의 모습을 이루었다

성 내에는 하나의 도시같은 요새와 흡사하다

16세기말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2세가 이곳에 궁정을 둠으로

중세 체코의 중심지로 번성했으나 마티아스왕이 궁정을 다시 빈으로 옮겨

성은 쇠락하기 시작했다

그후 마리아 테레지아가 개축했다.

구왕궁과 성 비투스 대성당,성리르지 교회와 보물관 황금소로등이 있다.

현재 구왕궁은 대통령 집무실과 영빈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성 구역 자체는 무료입장이고 건물 내부 세부입장은 입장권을 사야 된다

동서로 길게뻗은 성은 흐라트차니 광장방향의 서쪽정문과

말라스트라나 방향의 동문과 성의 정원방향의 북문의 3개의 문이 있다

정문에는 싸우는 거인상이 있다. 

포세이돈과 헤라클레스를 본뜬 큰칼과 몽둥이를 든조각은 오스트리아인이고

그 밑에 당하고 있는 조각은 체코인을 표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합스부르크 통치 시절 체코는 오스트리아의 속국이었다.

 

katedrala sv.vita 성비타 대성당은

프라하를 상징하는 고딕양식이다

첨탑의 서쪽82m 남쪽 96,5m 길이 124m 너비 60m에 이르는

거대 규모의 성당이다.

926년 현재의 자리에 원형교회가 들어선것을 11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축했으며 1344년에 이르러 카를4세에 의해 현재의 모습인 웅장한

고딕 양식을 갖추게 되었는데 재단부터 건축이 이뤄지는 성당의 건축이

중단되었다가 1929년에 와서야 다시 이어져 건축함으로 성당 건축년도에 따라

앞부문과 뒷부분의 색깔이 다르게 보인다.

내부에 있는 바츨라프 대성당 예배당은 성비타 대성당의 백미로

석류 수정 에메랄드 온갖 보석이 박힌 예배당벽과 재단 성 바츨라프의 조각상과

그의 생애를 다룬 프레스코화가 있다.

재단위로 내려오는 환상적인 색감은 천국을 연상시키고

아침 미사를 드리는 신부님 뒤로는 하늘의 오묘한 빛이 더해

성당의 위치는 동향을 향해 짓는다고 한다

여행중 방향감각을 잃었을때는 근처의 성당을 찾아 동쪽으로 향한 제단을 보고

다시 방향을 찾아 길을 떠나면 도움이 된단다.

아르누보 예술가인 '알폰스 무카'의 디자인이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다웠다,

주제단 오른편에는 14세기 사제였던 성 얀네포무츠키의 묘가 있고

그위의 장식 조각은 순은 2톤을 녹여 만든거이라 찬란하게 빛나고

묘 맞은편에 그의 예배당이 있다.

대성당 지하에는 카를4세 바츠라프 4세 루돌프 2세등왕가의 납골당이

있단다

 

체코의 유지 일곱명이 한날 한시에 각자 소지한 열쇠로 문을 열어야 열리는

일곱개의 열쇠를 잠겨있는 성 바츨라프 무덤에 있는 유골을 매년 9월23일

그의 장례식날에 마추어 꺼내 왕관을 씌우고

그 유골을 들고 동생에게 죽임을 당한 시골집까지

그가 다녀온길을 재현하는 행사가 매년 한번씩 열린다고 한다.

앞을 봐도 대리석 뒤를봐도 대리석 대리석 일색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개미만큼이나 작게 만들어 주눅들게 만들어 버리는

로마의 대성당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프라하의 성비타 대 성당도 대 자가 붙은 거대 성당이나 로마에 비하면

크기는 작아도 인간이 만든 오묘한 빛깔체험이 볼수있을 것이다.

원빈이 모회사 커피음료 광고를 이곳에서 촬영했단다.

물론 종교가 달라도 그곳에서는 소매없는 옷이나 짧은 옷은 삼가고 

모자등을 벗어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바츨라프 왕의 조모가 안치된 석관에 쓴 은이 무려 3톤을

녹여 만든것이란다.

성당안에 쳐진 노끈안으로 들어가려면 요금을 지불하여야 하고

우리는 줄 밖에서 설명을 들었다.

 

 

 

 

 

 

 

 

 

 

 

 

 

 

 

 

 

 

 

 

 

 

 

하나 둘 내리던 빗방울은 마침내 먹구름을 몰고

소나기 예보를 이제야 맞추고 있는듯

빗줄기가 거세진다.

들고 다니던 우산으로 가려도 신발과 바지 가랑이로 빗물이 스며들어

온몸은 덜덜덜 떨렸다.

한낮에 덥다고 벗어버린 티셔츠를 다시 꺼내 입는다고 꾸물거리는 사이에

팁투어 가이드와 일행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안보였다.

일정이 황금소로까지 한다했는데 우리는 팁도 아직 안 주었는데

그만 일행을 놓쳐 네루도바 거리로 내려왔다.

 

Zlata Ulicka 황금소로는

이르지 거리를 내려와 달리보르 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색상의 집들이 보이는 좁은 골목길이다

황금소로는 중세시대 금술사와 금 세공사가 거주했던 곳으로

지금은 서점과 보헤미안 글라스상점이 많고

22번의 푸른집이 프란츠 카프카가 대표작'성'등을 집필했던곳이란다

 

Bohemian glass보헤미안 글라스는

산화칼슘이 들어간 최초의 크리스탈 글라스로 유명하다

예술을 사랑하던 루돌프 2세의 후원으로 16~17세기에 발달해

18세기까지 최전성을 누렸다.

일반 유리보다 강하기 때문에 투명도와 광택이 우수하고

맑은 소리를 내어 와인잔으로 각광을 받는다

한기물에 두 층의 크리스털 유리층을 만들어 외부에서 조각을 하면서

한층을 드러내어 아래층에 다른 색상이 그림처럼 올라오게 하는것이

체코 보헤미안글라스의 기법이다.

오늘 팁 투어 공부는 이것으로 만족하고 수퍼에서 오렌지 세망과

내일 아침 마실 우유 한통을 사서 민박으로 돌아왔다.

저녁식사로 돼지갈비찜과 깻잎김치 두부조림 나왔는데

반찬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물어보니

고향이 전라도 광주란다.

머나먼 체코땅에서 전통 한식을 맛보다니 부다페스트에서

내가 차리는 밥상보다 훨씬 나았다.

아프리카에서도 살았다는 그녀는 다부진 첫인상과 다르지 않아 체구만큼이나

맛깔스런 음식은 예술이었다.

무엇보다 말과 손이 빨랐다.

내가 사온 오렌지가 식탁에 올라와 베낭 여행하는 학생들의 피로 회복제로

한몫 거들어 기분좋은 저녁식사를 마쳤다.

아무래도 오전 오후 두번이나 팁 투어를 참여해놓고는

그녀과 그남자의 열정과 성의를 저버리고 도망쳐나온 기분을

떨쳐 버릴수가 없어  프라하 야경도 볼겸 오늘밤 열시에 연주한다는

락그룹을 찾아나섰다.

마네수부 다리에서 올려다본 프라하성과 카를교 야경을 잔뜩 기대하고 나왔다가

부다페스트 야경을 거의 매일 취하다보니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야경은 부다페스트를 따라올 도시가 없어 보였다

낮에는 검붉은 도시가 밤에는 푸른빛이 도는 하얀 조명이 특색이었다.

시계탑에서 클럽이 삼분거리에 있다하여 지원이는 쉬게 하고

둘이 한참을 걸어 구청사 시계탑까지는 잘왔는데

여기서부터 또 길찾는게 문제라 스마트폰에 저장된 락클럽 프로파간다 지도를

펼쳐보면서 걸어도 구시청사 시계탑에서는 사방팔방 골목길이

한 아홉골목은 되는거 같아 방향잡기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찾아낸 스타벅스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니 어제는 그렇게 해매고

오늘은 장까지 보았던 하벨시장이 또 나온다.

하벨은 체코 대통령을 지내신 이름으로 지은 거란다

하벨 시장을 돌아 락카페 찾는것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 가려할즈음에

락클럽 프로파간다를 찾아  들어가려니 입구의 컴컴한 조명아래 앉아있는

흙인 아가씨가 출입을 제지한다.

안되는 영어로 기타리스트 백승우를 만나러 왔다고하니 그녀는 취했나

검지 손가락 한개로 까딱까딱 내려 가랜다.

계단을 막내려가는데 백승우 가이드가 맥주잔을 손에 들고 올라오는게 아닌가

다시 만나니 반가움에 인사하고 시끄런 음악소리에 묻혀 들리기나 하는지 마는지

고맙고 특히 오전에 만났던 이혜진씨에게 반했다고 했다

생판 모르는 체코에서 애국심이 더 선명해진 그들에게 격려와

체코의 역사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게 된만큼

사는 방법은 달라도 우리 역사를 잊지 않고 살았음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는 얼마되지 않는 십 유로를 성의표시로 건냈다.

그가 친다는 기타소리도 듣고 싶었으나 젊은이들만 입장하는 클럽인지

귀청이 떨어질것 같은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먼저 질겁하고

안그래도 유럽와서 밤만되면 형광등 밝게 켜진 우리 아파트로 날라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데 눈도 제대로 안보이는 지하소굴같은 장소가 무서워

뒤돌아 나오는길에 이혜진 그녀를 만나 또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이국땅에서는 누구나 애국심이 가슴속 저 멀리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는데

기분 좋은 밤하늘에는 비는 그쳤으나 푸르스름 구름들만 오갈뿐이다

한밤중에 되어 고단한 일정을 끝내고 침대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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