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5월23일 금요일 오전

2014. 5. 26. 04:53여행

 

 

역사적인 종교개혁에 불을 붙인 마틴 루터와

자신의 연애 경험을 소설로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먼저 떠오르는 작가 괴테의 나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아침에 눈을 떴다.

화창한 날씨가 여행객에 딱 좋은 날씨였다.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유리창문을 열어 베를린 공기를

한껏 들이 마시고는 지나 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젊은이들이 많고 모두 바삐 움직인다.

유럽에서 오랜만에 활기찬 걸음걸이를 보는거 같아

서울 거리로 착각이 들정도다.

펜션 마루방 민박은 호텔방보다 넓고 깔끔해서 좋아 했더만

대로변에 위치한지라 밤새도록 차 지나 다니는 소리로 시끌었다.

집나오면 개고생인걸 알기에 여행중에 내집처럼 편하기를 바라는것은

어불성설이다.

아침 식사를 제공한다기에 일찍 여행 준비를 하고 기다리다

남편은 일인당 6,7 유로하는 하루 교통 이용권을 근처 메트로역에가서

구입하여 왔다

아침 여덟시가 되자 식사하라는 말과 함께 들리는 노크소리에

사무실겸 식당으로 가보니 벌써 와 식사중인 한국인 세명이 있었다.

커다란 식탁에 마련된 정갈한 한식 음식은 한국에서 공수해온

꼬들빼기 김치와 조미된 김, 마른반찬과 매운 생선국과 밥이었다.

전날 4유로 때문에 상해던 기분이 말끔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식사를 같이한 투숙객은 회사 출장차 나와서 묵고 있는 세사람이고

전날밤 복도에서 웅성웅성 인터넷 셔핑하던 외국 아가씨들은

없었다.

알고보니 시티인이라는 호텔을 겸하고 있는 펜션마루방은

한국인에게는 조식포함 민박으로 외국인에게는 조식없는 호텔로

이용되어지는 모양이다.

베를린 지도와 여행정보를 얻으려고 굳이 민박집을 선택했던 남편은

시내 지도를 준비해주지 않고 메트로 지도만으로 설명해주는걸

영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도 독일 온지 삼십년이 되었다는 여 사장님의 통일에 대한

견해가 확실한건 맘에 들었다.

M46번 버스를 타고 가니 버스는 Kadewe 백화점과

Breitscheid platz 광장과 카이젤 빌헬르 교회를 돌아

Zoologis cher Garten역이 종점이다.

이역에서 100이나 200번을 타고 다니면 베를린 주요 관광지 대부분을

경유 한단다.

Zoo역에서 100번을 타고 카이젤 빌헬름 교회를 지나쳐 전승 기념탑

Schloss Bellevue에서 제국의 의사당, 브란덴브르크문,역사 박물관

베를린돔,마리엔 교회를 지나 TV tower,알렉산더 광장까지 갔다.

버스에서 내리니 길거리에서 파는 딸기가 신선하고 맛있어 보여

오백그램에 3,6유로를 사서 광장앞에 커피숍 노천 의자에 앉아

먹었다.

값은 비싼편이지만 향이 풍부한 딸기맛은 좋았다

 

 

 

 

 

 

 

 

 

 

 

 

 

 

 

Alexanderplatz 알렉산더 광장은

동베를린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지만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대부분 파괴되고 지금은 옛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1805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1세가 베를린 방문을 기념하여

알렉산더 광장이라 이름 붙여졌다.

중세때에는 우시장과 양모시장이 있던 장터였고

광장주변에는 상점들이 있던 번화가로 교통요지였다.

광장 가운데에 1969년에 만들어진 Urania우라니아로 불리는

만국 시계가 있어 만남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공상당 치하에서 제작된 '인민 우애의 분수'가 광장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Fernsehturm 일명 텔레비젼 송신탑으로

파리 하면 에펠탑이 서울은 남산타워 하듯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높이 365m의 탑이다

1969년 스웨덴 전문가들의 조언으로 건설된 탑으로

탑위에 있는 둥근 공속에 있는 회전카페는 삼십분에 한번씩 일회전하여

베를린 시내 전경 감상에는 그만이어서 통일 되기전에는 동독의 공산당 관료들의

자랑거리였다.

베를린 시민들은 이 탑은 아스파라거스에 빗대어

Telespargel 텔레슈파겔이라고도 부른다.

작은 엘리베이터로 기다리는 사람들로 긴 줄이 서 있고

십유로가 넘는 요금도 비싼듯 하여 포기했다.

 

 

 

 

 

 

 

 

 

방송 송신탑을 비켜 나와 멀리 베를린 대성당의 돔을 바라보며

방송탑 옆에 위치한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빨강지붕이 아름다운 성당으로 걸어왔다

 

Marienkirche 마리엔 성당은

성모 성당 즉 노트르담 성당이다.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고딕양식의 중세건물은

1270년경에 포목상들이 세운것이다.

1380년 화제로 소실된이후 증축되었다

종탑은 1790년에 덧붙여진 것이다.

성당안에 죽음의 무도라는 벽화는 페스트 전쟁 흉년등으로

중세의 염세적인 세계관을 잘 나타낸다.

뜨거운 오월 햇살이 낮은 성당 지붕으로 내려와 살포시 앉고

나는 아름답고 겸손한 성당옆에 한참을 섰다 앉았다 찍사 주문대로

모델포즈를 취했다.

찍자는 소리만 들리면 뻣뻣해지는 모델도 아무나 하는것은 아닌거 같다

 

 

 

 

 

 

 

 

 

송신탑과 마르크스 엥겔스 포룸 광장 사이에 있는

Neptun brunnen 넵툰 분수는

라인홀트가 제작한 것으로 원래는 호엔촐레른 궁앞에 있던것을

1969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1886년 네오바르크 양식으로 삼지창을 든 바다의 신 넵튠과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거두는 여인 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삼지창을 든 조각은 바다의신 넵튠 즉 포세이돈을 생각하면 맞다

로마의 바로크 대가로 알려진 베르니니의 작품을 모방한것으로

로마의 나보나 광장의 4대강 분수와 베르사유 궁의 분수를 참고했다.

네명의 여인은 라인강 엘베강 오데르강 뷔스타강등 옛독일의

4대강을 상징한다.

베를린에 흐르고 있는 강 이름은 Spree슈프레 강이다.

 

 

 

 

 

 

 

 

걸어서 이동하여

공사중으로 가림막을 쳐놓은 Rotes Rathaus붉은 시청 건물이다.

Rotes Rathaus 붉은 시청은

붉은 벽돌로 지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186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건축가 헤르만 프리드리히 베제만은

이탈리아 중세 건물을 모방해 건물 중앙에 종탑을 연상시키는

100미터의 높은 탑을 세웠다.

통일전에는 동베를린 시청이 있었고 현재는 베를린시 의사당 건물로

사용중이다.

 

 

 

 

 

 

 

관광지에는 어디를 걷든지 기념품 가게를 만난다.

자식들에게 선물할만것이 없는지 살피면서 걷다가

쌍둥이 첨탑이 우뚝선 성당에 섰다.

St,Nikolaikirche 성 니콜라우스 또는 니콜라이 성당은

두개의 첨탑이 나란히 있는 교회이다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유적지이기도 한 성당은 13세기 초인

1230년경에 세워졌다.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이었지만 옛 성당은 거의 사라지고

종탑과 문의 기초 부분만 남아있다.

그러나 고딕 양식의 성가대는 1380년에 제작된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2차 세계대전후 완파된것을 1987년에 다시 지어

성당 내부에는 베를린 역사를 증언하는 시장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베를린의 마스코트인 곰이 갇힌듯 안갇힌듯 앉아있는 곰탑이

인상적이었다. 

Buddy Bear 버디베어는 베를린을 상징하는 곰으로 평화를 의미한다

베를린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알수없는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은

아코디언 반주에 맞춰 춤을 추며 오후 한때를 즐기고 있었다.

학교 끝나면 학원으로 실어나르는 우리와는 거리가 먼 풍경이

애들은 놀면서 커가는게 정답인거 같다.

세명의 자식들 하나같이 남들 다하는 사교육 모른채 키워낸것이

그동안 부모노릇 제대로 안한 죄책감도 있었는데

맘껏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엉덩이와 의자에 붙어있는 시간이  길어야 들어간다는 대학도

뭐 별거 아니고 오히려 엉덩이는 의자에서 멀리 있어

돌아다니며 배우는게 진정 대학이라 생각된다.

우애있고 효심많은 자식들을 생각하니 가슴 한켠으로

찡하게 울려온다.

 

 

 

 

 

 

 

 

 

 

슈프레 강변을 따라 걷고 또 걸어

예전에는 궁의 마굿간으로 사용하고 지금은 콘서트홀로 사용중인

햐얀 건물을 지나 베를린 대성당에 도착했다.

강변 공사 가리막에는 독일 역사의 흔적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1951년 전쟁고아인 동양 어린이들은 우리의 모습인데 재팬으로 적혀 있었다.

 

강위에 뜬 유람선은 많은 관광객을 싣고 베를린 슈프레강을

지나가고 있었다.

Berliner Dom베를린 대성당 또는 베를리너 돔으로 불리는 성당은

로마의 바티칸과 밀라노와 피렌체의 두오모,파리의 노트르담,

런던의 세인폴과 같이 베를린을 상징하는 대성당이다.

1747년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원래 도미니코 수도회 성당이 있던 자리에

건립되었다

프리드리히 2세는 먼 조상인 호엔촐레른 가의 묘를 모시기 위해

교회를 건립했다

베를린 대성당은 카톨릭이 아니라 개신교이기 때문에 우리식으로는

베를린 교회라 불러야 한다.

요한 부만이 설계한 바로크 양식의 건물은 1816년부터 1821년까지

오년동안 보수가 이루워졌고 그후 1905년에 완공하였다

전체 길이 114m 폭73m 높이 85m에 이르는 거대한 루터교 성당이다

당시 황제 아우구스타의 신앙과 제국의 수도에 어울리는 대성당을 짓고 싶었던

빌헬름 2세의 야망에 건립되었다.

2차세계대전때 파괴되어 보수공사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내부의 회장 벽토와 금박 장식이 화려했다.

중앙돔은 예배실이고 남쪽의 작은돔은 결혼식과 세례식이 거행되는곳이고

북쪽돔은 장례식이 치러지는 곳이란다.

 

성당안에는 휴대폰 금지 그림이 그려있는데 하필 이때 헝가리에 남아있는

지원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는 전화를 그것도 국제전화인데 안받을수 없어 소근소근 전화하는 소리에

관광객인 독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야단을 친다.

둘이서도 걱정없이 여행 잘다닌다는 안부만 전한채 우리는 270개 계단을

일인당 7유로의 돈을 지불하고 성당 꼭대기에 올라갔다.

각 도시마다 성당 계단은 돈내고 올라간다.

성당 꼭대기에서 바라 보이는 빨간 지붕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이 살아있는 과거와

유리지붕의 새로운 문화를 건설중인 베를린 시내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계단을 내려와 출구를 찾다 엉겹결에 들어선 성당지하는

백개쯤 되어보이는 관들이 꽉차 음산한 분위기가 감돌아

많은 관에 놀라고 또 공개하는것도 놀라웠다.

 

 

 

 

 

 

 

 

 

 

 

 

 

 

 

 

 

 

 

 

 

 

 

 

 

 

 

 

 

 

 

 

 

 

 

 

 

 

 

 

의시시한 무덤을 빠져나와 일층 기념품 가게로 올라오면

성당밖으로 나오는 출입문이 있다

시원한 대성당을 나오니 여러 박물관이 한데 모인 박물관섬 광장인

루스트 가르텐 앞이다

 

Lustgarten 루스트 가르텐은

구박물관과 베를린 대성당앞에 조성된 넓은 광장이다.

원래는 선제후의 개인 정원이 있었던 곳이다.

17세기에 조성된 이후 통독 직전까지인 1989년까지 연병장이나

군사 퍼레이드를 실시하였던곳이다

광장에는 지름70m에 무게 70톤이 넘는 화강암 초대형 수반에서

뿜어내는 물줄기가 지친 나를 쉬게하였다.

원래는 구 박물관 안에 내부를 위해 제작되었는데 무거워 옮길수가 없어

1828년 이후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단다.

오전내내 걸어 다리도 아프고 기운이 빠져 급기야 의자에 퍼질러 앉았고

그사이를 못참고 남편은 한바뀌 돌아

박물관 사진을 찍어왔다.

 

박물관섬은 5개의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슈프레강을 오르내리던 배들이 짐을 싣고 부리는 창고가 있던자리에

19세기초 베를린을 학문과 예술의 존거지로 삼으려는 황태자 시절

프리드리히 빌헬름4세의 의지대로 건축가 쉰켈의 주도하에

1841년 처음으로 구박물관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구 국립박물관 페르가몬 박물관 보데 박물관 신박물관이 들어섰다.

1871년 비스마르크이후 독일의 국운이 웅성하면서 수도에 맞는

문화 위상을 갖추어가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으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이후 2차세계대전 당시 피해를입어 많은 유물들이 분실되기도 했다.

하지만 통일이후 재건에 힘써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고대 그리스유물을 비롯하여 현대미술작품들까지 전시되고 있는

박물관 안마당에도 많은 관광객의 휴식터를 제공하고 있다.

어디를가나 베를린은 녹지공원이 많은게 다른도시와는 차별되고

시내 한복판에서 새소리를 듣는 영광도 누릴수 있다.

복잡하면서 편안한 도시라는 생각이 점점 들어가고 있다.

넓은 잔디 정원에서 드러누워 쉬는 젊은 남녀가 많다.

햇볕드는 잔디밭에 누워 잠자고 쉬는 사람들이 부러워도

나는 그늘에 앉아 쉬었다.

 

 

 

 

 

 

 

 

 

 

 

 

 

 

 

 

오전내내 걸어서 관광을 마치고 나자 배가 고파 음식점을 찾으니

노천카페만 있고 음식점이 보이지 않아 200번 버스로 타고

Breitscheid platz으로 와 KFC 치킨집에서 닭고기 세트메뉴와

햄버거 하나 추가시켜 10,48유로를 내고 점심을 대신했다.

화장실 사용에는 0,3유로라 적혀있는데 그런것도 모른채

그냥 들어 가려다가 흑인 총각에게 제지당했다.

제일 작은 동전 세개를 주니 흑인 총각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길래

치킨 먹은 영수증을 보여주고 간신히 화장실 출입을 허용받았다.

삼십센트를 삼센트로 냈으니 흑인총각 황당한 표정 그럴만도 하였겠다.

헝가리는 포린트를 체코는 코루나를 런던은 파운드를 사용하고

오스트리아 파리 베를린은 유로화를 사용하는데 지폐도 아니고

그많은 동전을 구분 하기란 나에게는 어차피 두달안에 불가능한일이라

충분히 그런일은 벌어질수 있는일이다.

우리는 거의 사용 안하는 동전을 유럽은 꽤 많이 사용한다.

 

점심을 마치고 다시 100번 버스를 타기 위해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어린 꼬마 아이들이 귀여워 쓰다듬어주니 부끄러워하는 아이는

천사의 미소를 보낸다

피부색이 하얗든 까맣든 누렇든 어린아이는 모두 천사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년5월24일 토요일 오전  (0) 2014.05.27
2014년5월23일 금요일 오후  (1) 2014.05.27
2014년5월22일 목요일 베를린으로  (0) 2014.05.26
2014년5월21일 수요일  (0) 2014.05.22
2014년5월20일 화요일  (0) 2014.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