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27. 15:25ㆍ백두대간
일시-2015년 5월26일 화요일 맑음
장소-백두대간 점봉산 구간 남진
코스-한계령 휴계소 1km 아래 지점-천연 기념물 보호비-초소 삼거리-1158봉-12담곡 계곡길
-망대암산-점봉산 정상-오색약수 갈림길
대간길 8.9km+접속구간 5km=13.9km를 7시간 걸음
산악회에서 진행하는 백두대간 남진에 7회차 부터 참가하다보니
6회차까지 진행된 진부령에서 두로봉구간은 빠진 상태라
안 그래도 따라 가기 바쁜 내가 머리속에 지도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산불방지 예방으로 빠졌던 설악비경을 볼수 있는 점봉산 구간과 설악산 구간은
이번과 다음번에 이어가기로 하였다
오늘 코스는 설악의 품으로 들어서는 한계령 일킬로 못미쳐 시작점이다
서울을 벗어난 산악버스는 푸르름이 선명한 강원도 산자락을 굽이굽이 돌아
해발 천미터를 올랐다.
한계령 휴계소를 벗어난 버스는 오던길을 회차하여 일킬로쯤 벗어난
도로에 일행을 풀어 놓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스틱빼고 자시고 준비할 겨를도 없이 대장이 하는대로
출입금지 구역인지 길도 없는 산언덕을 뛰어올라 산길로 접어드니
연두빛 녹음이 제법 숲을 이루고 있어 시원한 청량감이 든다
점봉산을 향해 한발한발 내딛는 오월에
봄이 언제 왔던가,벌써 여름이 와 있었다.
한계령에서 점봉산까지 가는길은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 그리고 희귀한 야생화가 많아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된 곳중의 하나란다
지금은 포장도로가 잘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을 설악산으로
실어 나르는 고갯길이 된 한계령(1004m)은
재내,와천이라고도 불렀으며 또는 소동자령이라고도 불렀다
한계령은 태백산맥의 설악산과 점봉산과의 경계가 되고
동해안 지역과 내륙지방을 잇는 험한 고개였다
한양을 넘나들던 조선시대에는 양양쪽에 오색역이 있었고
당시 고개 이름은 오색령이었다
조선 중기 중종25(1530년)에 '신중동국여지승람'에는 이미 없어졌다는
간략한 기록만 남았다
조선 중기 이후 한계령 고개는 한양 가는길의 기능은 잃고
단지 인제군 북면 주민들이 소금이나 생선등을 구해올때
넘나드는 고갯길로만 이용되었다.
그러나 영조27(1751년) 이중환의'택리지'에는 오색령이란 지명이 여전히 등장하고
백두대간중 강원도 지역의 이름난 영 여섯개를 꼽았는데
그중에서 으뜸으로 알려진 곳이다
한계는 신라말 망한 나라의 태자로 한을 품은 채 베옷을 입고 세속을 벗어나
산수에 몸을 숨겼던 마의태자의 전설이 곳곳에 서려있다
들머리에서 이제 막 산속으로 들어서서 한계령 휴계소를 지나
백두대간길로 접어드나 싶었더만 백두대간길은 끊겨지고 말았다.
산을 뚫고 만들어낸 지방도로 탓이다.
사람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팬스가 처져있는 산을 돌고 도느라
대간꾼 일행들을 이끌고 다니는 산악대장도 헷갈려
산죽밭을 왔다갔다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천연기념물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출입금지 구역까지 굳이 가야하는 백두대간길을
이어나가는게 목적인 대간꾼들 따라나선걸 후회가 드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미 길 도둑과 일행된 나도 그들 따라 이리저리 낮고 작은 풀을 밟으며
헤집고 다니는 한패가 되어 버려 잡혀가도 아무말을 못하게 생겼다
한참을 돌아서 길 바닥으로 내려와 다시 초소앞에 있는 산으로 기어 올라섰다.
영락없이 빨치산 토벌대를 연상시키는 대간꾼 일행의 행진이다.
오늘 기온이 삼십도에 달한다더니 지열은 점점 달아 오는데
숲으로 들어서는 순간 피부에 와 닿는 기온은 서늘했다.
1156봉 1158봉 올라가는 산길은 밧줄없이 오르기에는
너무 무섭고 힘이 들었다
선두그룹은 모두 바위 타다 온 사람모양 어느새 올라가
흔적도 없이 안보인다.
후미그룹은 체력 딸려 쩔쩔매는 나같은 사람 몇몇과
건장한 남자들 몇명만 남았다
기운센 남자가 앞에서 손잡아 올리고 뒤에서 엉덩이 밭치고 발 올려가며
올라선 바위 위에는 또 다른 바위가 기다리고 있다
그야말로 기암괴석의 연속이다
한발이라도 헛디어 떨어지는 날에는 그날이 바로 훅 가는 날이 될것이다.
설악의 남쪽으로 들어서는 점봉산에 오르기가 이렇게 어려운 산행이 될지
조금전까지는 몰랐다.
바위 덩어리 앞에서 무서워 뒤도 돌아볼 겨를도 없이
행여 떨어지는 낙석이라도 만나면 큰일이라 조심조심 앞사람만 쫓아
방금전까지 죽을 용을 써서 오른 바위를 딛고 일어서니
아찔한 바위끝에 서서 살아있는 나무와
출렁출렁 물결치는 설악의 마루금이 바로 눈앞이다.
이 맛에 산을 탄다는 산꾼들은 푸르게 변해가는 설악능선을
사진기에 담느라고 바쁘고 아직도 오금저린 상태로 서 있는 나는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다.
백두대간의 중심부로 들어서기가 이렇게 힘든지
인생길이 뭐 하나 쉬운게 하나 없다.
그렇게 오르기를 한참, 언제까지 오르기만 하겠나 오르면 내리막길도 있는법
산죽나무 내리막길에서는 비록 옆구리와 어깨 얼굴을 할퀴어도
기분 좋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점 바람에도 하늘거리는 산죽이파리가
투명하게 비추어 칼날처럼 시원했다
발길을 재촉하여 12담곡 계곡 갈림길에서 십이담 계곡과
십이 폭포로 내려 가는길을 피해 망대암산쪽으로 가야 한다.
점심으로 닭가슴살 주먹밥을 후다닥 먹고 다시 길을 나서
오르막길을 한시간여를 올라서 망대암봉 바위를 좌측으로 끼고 돌아섰다.
망대암산은
한때 폭우가 쏟아져 내릴때 주전골에서 상평통보가 발견되었다
주전골은 옛날 도둑들이 떼로 거주하면서 위폐를 주조했었다는 설이
전해진는 곳으로 주조할때 이곳에서 관리들의 동태를 도적들이
망을 보던 곳이라 한다
그래서 주전 즉 돈을 주조하던곳이라 하여 불려왔다
또한 망대암산은 설악산의 봉우리들과 한계령 주위에 있는 바위들을
조망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의 뜻이 바위산을 마주하고 바라본다는 뜻이라는 설도 있다
무겁고 웅장한 바위 덩어리를 힘겹게 올라서서 울울 창창한 나무사이를
얼만큼이나 벗어나 고개들어 하늘을 보니 푸른 하늘에 뜨거운 태양이
눈을 찌른다.
이제 점봉산까지는 산철쭉이 많은 둥근산 하나만 오르면
바로 점봉산이 나온다.
산 아래 철쭉꽃은 이미 지고 싱싱한 푸른 이파리로 변했건만
정상에서는 얼마남지 않은 연한 분홍꽃을 아직 피우고 있었다.
언덕길 같은 점봉산 정상 오르막은 연두와 분홍길 사이로
앞서가는 일행의 베낭들이 울긋불긋 산중턱에서 빛이 났다.
내 키만한 산 철쭉 밭을 한시간 삽십여분 올라 드디어
점봉산에 도달했다.
바위타고 산타고 어렵게 오른 점봉산이 뾰족할거라 생각되지만
오히려 넓은 평지였다.
이미 도착한 선두그룹과 중간그룹들은 사진 촬영을 끝내고
여기저기 흩어져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상태이고
나는 그제사 인증샷을 찍고 미수가루 한잔과 과일 몇조각을
꺼내 먹었다.
일행이 건낸 새콤달콤한 체리 한알을 입안에 넣는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점봉산(1424m)은 설악산에 속해 있으면서 한계령 남쪽에 위치해 있어
남설악이라 부른다
산 남쪽의 작은 점봉산 둘레의 부드러운 육산과 북쪽의 칠형제봉 만물상등
날카로운 암봉이 있는 점봉산을 등봉산 등빙산,점붕산이라고도 하였으며
둥근산이라는 뜻의 덤붕에서 한자화 하면서 점봉산이 되었다 한다
토양이 기름져 예로부터 맛 좋은 산나물이 많이 나기로 유명하며
점봉산은 희귀 야생화가 많아 동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2026년까지 통제되고 있다.
오르지 말라는 점봉산에 서서 다음구간에 오를 높고 깊은 설악의
중청과 대청을 바라보니 설악의 초록 능선이 장관이다
점봉산은 깊은 계곡과 가을 단풍 겨울 설경이 뛰어나지만
설악산에 비해 덜 알려진 산으로 정상에 오르면
시원한 동해와 설악의 장쾌한 능산과 암봉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여
오르단다.
점봉산은 높이 4척인 한계고성터가 있으며
아래로는 폭포수와 약수터가 많아 물이 좋기로 유명하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한계령풀과 미스김 라일락이 핀다.
여기저기 산길에 야생화와 야생풀이 많기도 많지만
알수있는 이름은 몇개뿐이다.
바람과 물과 햇빛으로 생명을 틔워낸 야생초나
이름모를 풀처럼 살다 사라지는 사람살이가
우주를 이끌어간 자연임에는 진배없다.
생명력으로 꿈틀대는 이런 봄날이 가난과 기근에는
생명을 건지는날이 되었을것이다
오죽했으면 초근목피라는 말이 생겼으니 하는말이다
여기저기 나물들이 지천이나 대간길 걷는자는
우리국토의 산야와 역사를 공부하면서 걷는 일에만 집중해 달라는
대장님의 말대로 웰빙 나물 먹겠다고 뜯었다간 걸리면 벌금이고
식용대신 독초를 먹었다간 죽음이니 아예 나물에는 눈독 들이지
말아야 한다.
산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땀을 식힌후
점봉산에서의 꿀같은 휴식을 접고 단목령 방향으로
완만한 내리막길을 한시간 걸었다.
오색 삼거리까지의 백두대간길 8.9km를 지나 이제 남은 접속 구간만 내려가면
오늘 일정은 마무리 된다
누가 산행시 오르막이 힘들다고 했던가 오르막보다 더 힘든게 내리막이란걸
보여주는 진수길이 나오고 말았다.
작은 돌덩이들이 지맘대로 헝클어져 있는 마사토에 가파른 내리막에서는
넘어지지 않고 내려가기가 힘이 들 정도이다
발가락에 힘을 줘서 내딛지 않으면 금새 미끌어져 버리는길로 내려오려니
오전에 암벽 등반 하느라 후들거렸던 다리가 또 떨려오는 순간들의 연속은
한시간이 훌쩍 넘고 기진 맥진해져 나중에는 눈까지 침침해지고
두통까지 몰고온다
산행에 동행 한다해도 결국은 내 발로 내가 걸어가는 길이라는걸 알지만
똥개 훈련시키듯 앞서만 가는 남편이 미워진 내리막길이었다
오르막처럼 기어갈수도 없고 순전히 스틱과 발바닥으로 가까스로 휘청거릴때쯤
드디어 물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험한 점봉산 아래 오색의 오지에도 사람 사는곳이 있어
주택가에 설치된 약수 수도꼭지에서 시원한 물이 콸콸 솟아나온다
배가 터지도록 약숫물을 들이키고 주차장에 들어서니
이미 도착한 일행들의 웃음소리가 시끄럽다
기운빠진 나는 웃음은 커녕 땀에 베인 옷을 갈아입을 겨를도 없이
차에 올라탔다
언제쯤이나 그들처럼 시간이 남아 한가하게 웃고 떠들때가 있을려나
아홉번째 참가한 대간꾼 흉내가 어찌 가면 갈수옥 어려워
그런때가 오기는 오려나 두렵기까지 하다.
오전 열시넘어 시작된 산행은 저녁일곱시가 넘어 무려 아홉시간만에
끝이 났다.
지끈거리는 두통에 이브프로펜 한알 먹고 잠시 눈늘 붙이고 일어나자
머리는 맑아졌으나 귀경하는 중간 휴계소에서 내릴려니
무릎 통증으로 나도 모르게 아고고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고속도로를 내달린 버스가 서울로 들어서 한강의 반짝이는 물빛이 보이자
비로소 안도감이 든다
"자연은 절대로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우리를 속이는 것은
언제나 우리 자신이다."루소의 말을 공감하면서
거대한 기암괴석과 웅장한 설악 언저리의 기에 자연의 위력을
조금이나마 깨달은 하루였다.
봄이 어디에
어느날,현기증나게
빨강꽃 노랑꽃 보라꽃으로
봄은 왔네.
돌멩이와 푸른 초목
기암괴석 골짜기가 되어
청풍명월 이루었네
산줄기에 걸린 태양
잡으려고 따라가도
감히 하늘과 만날수 없네.
봄날의 마법이
뜨거운 한숨으로
가까이 와서 멀리
봄은 갔네.
2015년 5월 하순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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