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2. 11:04ㆍ친구
2018년 재경 정기총회및 송년모임 후기
일시-2018년 12월3일 월요일
장소-그랜드힐 컨벤션
낮은 점점 짧아지고 빛과 공기도 다른 한 해의 마지막 달 컴퓨터 뒤편에서
열 달 내내 빼꼼히 앉아있던 달력도 끝장으로 넘겨졌다.
그동안 넘긴 달력 속에 빨간 동그라미 안의 검은 숫자들이 약속이란 단어와 함께
기억의 파편으로 밀려왔다 밀려간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꿈들을 잃었다.
물리적인 시간은 똑같은데 심리적으론 왜 이렇게 빠른지,
정초에 세웠던 계획과 바람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열두 장안에서 맘껏 놀다가도
왔다갔다 흔들리는 시계추를 붙들어 하루쯤 멈추게 만들고 싶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겨울에 눈으로 내리지 못하고 뭐가 그리 닦아 낼 것이 많은지,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스산한 바람 불고 겨울비 내리니 가을이 남겨준 그리움마저 젖어 내릴까 두려워
마음의 우산까지 챙겨야 한다.
차디찬 대리석 빌딩에 걸린 대형 광고판 안에서 디지털 시계의 밝은 숫자만이
낮임을 알려주는 어두운 날이다.
어둠이 내리면 그믐달이 뜨고 밤공기가 더욱 차가워지는 이런 겨울날에는
낮모임이 반갑다.
2018년 재경 정기총회 및 송년 모임은 대낮에 만난다.
하늘마저 낮게 가라앉은 비구름 사이로 잠깐이라도 햇볕 쬐고 싶은 맘 굴뚝같은데
기다리는 해는 어디로 숨었는지,
가느다란 실바람에도 젖은 도로가에 떨어진 낙엽이 푸르르 떤다.
한때는 초록 물결로 그 존재감이 무성했고 또 한때는 붉은 피를 토하듯 찬란했던 단풍이
찬 서리 내리고 비 오는 바닥에서 이리저리 드러누워 가엽기만 하다.
이내 무심한 발걸음은 즐거운 축제 생각으로 종종거리며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랜드힐 컨벤션 그랜드 볼륨홀에 그득해진 동문들로 환해졌다.
재경 영란 꽃잔치에 모인 동문들 모두 마법에 걸려들 시간이다.
제1부 순서로 한 해를 마감하는 정기총회가 개회를 선언하며 차분하게 막을 열고
회의는 강물 흐르듯 유연하게 진행되었다.
국민의례와 내빈소개, 12대 회장인 이봉학 회장의 인사말 그리고 이영자 고문과
총동창회장인 최영미 회장의 축사로 이어졌다.
예식장소로 많이 이용하는 곳이라 무대는 작고 밝은 대신에 객석이 너무 어두워
웬만한 기술로는 음영조절이 쉽지 않은 홀 내부가 점점 환해지고 있었다.
이어 한 해 동안 활동보고 영상을 관람하고 시상식이다.
임원직을 수락하냐 마냐로 옥신각신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 전이라니,
사진을 보니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자랑스러운 전주여고인상과 공로상에 이어 감사패, 연회비 최다 납부상과
최다 참가상을 수여했다.
한마디의 말과 한 줄의 글을 보면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듯이
설레는 기쁨으로 감사의 답글을 읽어내는 박관순 선배님에게서 맑은 영혼을 봤다.
같을 수는 없지만 동창회에 누가 되지 않는 행실로 살면 동문 모두
자랑스러운 전주여고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식순으로 어린 영란꽃들에게 주는 장학금 수여식을 마치고
감사보고, 회무보고, 회계보고를 했다.
안건으로는 결산 승인과 주니어 위원장 승인을 하고 회보지 표지 결정은
두 개의 안에서 다수결로 하기로 했다.
기 대표 소개를 마치고 영란 우먼스콰이어 합창에 이어 우리도 하나가 되어
구교가와 신교가를 불렀다.
마지막 순서로 케이크 커팅을 하고 정기총회는 막을 내렸다.
제2부의 오찬이 끝나고 화합의 시간이 다가왔다.
즐거움을 나누는 동문들도 전주여고답게 품격 잃지 않는 제각각 나름대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여 홀 내부가 뜨거워졌다.
누가 늙었는지 누가 젊었는지 졸업기수를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조명 불빛 아래 하얀 봄꽃으로 돌아간 우리들의 이야기가 순서를 기다리며
꽁당꽁당 가슴이 뛰었다.
기별 장기자랑으로 기쁨과 놀라움까지 선사하는 개인과 함께하여
더욱 정이 돈독해지는 단체 장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거나 쇠 접시가 드논다’라는 속담은
이제 쓸모없는 말이 되었다.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 모여 있어도 접시가 깨지기는커녕
반질반질 윤기 나는 접시 위에 꽃이 되니 말이다.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는 여자의 화색이 돌아야 평화도 찾아오고
흥망성쇠의 역사에는 늘 여자가 있었다.
삼백 개의 영란꽃들이 눈부신 봄날 햇빛에 취하고 환장한 가을 단풍에 취하다 보니
어느새 텅 비어 가는 겨울 냄새가 옷깃으로 스며들어온다.
오전 오후 시간을 접어 잠시 빨랫줄에 걸어두면 시간이 늘어나지 않을까
내일이 없는 것처럼 붉은 입술로 노래 부르고 뜨거운 피로 춤추고 싶지만
정해진 우리들의 연회는 막을 내려야 한다.
벌써 보랏빛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인가,
아니 밖은 겨울비로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안될 텐데 몸과 맘이 절로 초조해진다.
지금 내 앞에 하얀 김이 피어 오르며 진한 숲 향기 나는 한잔의 마약이 놓여있어도
자리를 박차고 이제 빠져나올 시각이다.
꽃 시절 보석 같은 눈망울의 기억은 은은한 조명 속 홀에 버려두고
우리는 다시 인생 바다에서 파도타기 항해를 떠나야 한다.
저만큼 멀었던 선후배와 동기분들이 이만큼 가까워진 계기가 되었으니
바늘처럼 콕콕 찌르는 고통과 추위가 엄습해도 컨벤션의 뜨거웠던 열기를 생각하면
견딜만할 것이다.
격려와 덕담으로 하나가 된 임원들의 무한한 용기와 책임감이 만들어낸
정기총회와 송년모임을 무사히 마쳤다.
배부르게 먹고 마시고 가무가 있는 카페에서 길게 놀아도 모범생들인
우리는 긴 겨울밤의 절반은 가정을 위해 산다.
아침부터 내린 비는 촉촉하게 도로를 적시고 우리 맘도 적셨다.
난생 처음 생음악이 있는 라이브 카페에 와보니 내 영혼도 따뜻하게 데워져
오늘 밤은 이별의 아픔 없이도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될 것만 같다.
기쁘게 뒤풀이로 마감한 올해의 정기총회와 송년모임 축제를 기획하고
실행 연주한 우리 임원들 모두 이미 챔피언이었다.
우리의 챔피언은 나의 선후배와 나의 친구들이다.
그대들이 있어 한 해가 바쁘고 즐거웠다.
어제의 시간과 오늘 내일의 시간이 이어져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듯
우리도 과거와 현재 미래의 흐름으로 시간을 기억한다.
선배와 동기 후배로 연결되는 전주여고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영란이란 인연으로 맺어진 우리들 삶은 계속되고 살아 있는 한 꿈은 꾸어야 한다.
비록 꿈이 꿈으로 남는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선배들이 가르쳐준 지혜로운 용기를 얻어 양을 쫓는 모험은 못 해도
닭이라도 잡을 도전으로 멋진 꿈을 꾸며 살다 보면
예언처럼 희망과 행복도 함께 온다.
함께라서 덩달아 즐거운 내년을 기약합시다.
(2018년 12월28일 파주시 마장호수의 겨울)
또 한해가 가고
겨울새가
공기를 찢으며
까악까악 운다.
희망
환희
폭풍
하나 둘 사라지고
고뇌
적요
침묵
하나 둘 나타나니
다시, 겨울이 찾아오고
또, 한해가 지나간다
사랑
자유
영혼
마음은 만질수없는 단어로 흔들리고
시간은 세월의 사면으로 미끌어졌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
아직 가보지 않은길을 가야한다
고요하게 흐르는 겨울의 지혜로
발자국 없는 새로운 길을 걷는다
겨울새가
하늘을 베어내며
까악까악 날아간다.
아듀! 2018!
2018년 12월 씀
글,사진-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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