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13. 10:45ㆍ둘레길
일시-2019년 4월11일 목요일 맑음
코스-서울숲 3번출구-숲 산책-한강수도사업본부-한강변 산책로-용비교-금호나들목-응봉산-독서당공원-대현산공원-금호터널위
-응봉공원-매봉산-국립극장-남산 남측순환로-N타워-남산 북측순환로-장충공원-동대입구 6번출구
대략 20km를 사진 찍고 휴식포함 7시간걸림
개나리 벚꽃따라 도심걷기
피고지는 꽃계절 이때를 놓치면 일년을 기다려야해서 길을 나섰다
어느새 아침공기는 어제의 빗물로 씻은듯 깨끗하고 하늘은 쾌청하다
햇살은 따뜻하고 그늘은 서늘한 전형적인 봄날씨다
'보리누름에 선늙은이 얼어죽는다'는 속담대로 봄철은 옷입기가 애매하다
서울에서는 노숙자로 살면 모를까 사월에 얼어 죽었단 얘기는 못들어 봤어도
산에서는 길을 잃고 해매다 탈진이나 추락사고 뒤에 얼어 죽는때는 한겨울이 아닌
대부분 봄철이나 가을철인 사월이나 구시월이 많다
산불났던 강원도 산골에도 눈과 비가 내렸단다
좁은 땅덩이인줄 알았더니 봄 날씨는 이동네 저동네 천차만별 변덕스럽기가 짝이 없다
꽃 구경 나섰다가 얼어 죽을일은 없겠지만 감기라도 걸리면 나만 힘들어지니
두세벌의 바람막이를 배낭에 넣고 봄풍경을 찍을 카메라도 챙겼다
지하철 서울숲 3번출구로 올라오니 햇빛이 쨍 눈이 부시다
서울숲이라는 하얀색 표지판이 공원 입구에 설치되어 눈뜨고 걸을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찾아가게 만들어져 있다
먼저 공원 방문자 센터에 들러 안내지도와 팜플렛을 열어보니
오래전 임금의 사냥터였던게 지금의 공원이 되기까지 조성사업과 상세한 시설들이
안내되어 있었다
서울숲이라는 이름을 얻기전에는 버려진 모퉁이 땅이였던 이곳은
1908년 서울 최초 상수원 수원지였으며 이후 경마장과 골프장으로 활용되기도 했었다
2002년 개발사업대신 대규모 공원으로 조성하기로 결정하고 서울 그린트러스트운동을 통해
다음해부터 시민 오천여명이 나무심기 행사를 시작 했다
시민들이 직접 나무를 심고 물길도 만들어 나무가 우거지고 호수가 있는
지금의 도시숲으로 탈바꿈 되었다
한강과 중량천이 만나고 한강에서 용산 남산 청계천 서울숲 다시 한강으로 연결되어
도심을 가로지르는 녹지축의 하나로 중요한 역활을 하게 되었다
엊그제 부산의 진달래 핀 금정산을 다녀오며 일년치 진달래값이 왕복 열시간이라고 했더니
멀리까지 시간들이고 돈들여 꽃 구경갈 필요가 없다
서울숲 산책길에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밝은 햇볕에 송이송이 꽃송이가 팝콘을 아주 가마니로 쏟아 부은듯
고개 들어 보니 구름도 모두 사라진 파란색 하늘과 하얗고 연분홍색꽃 뿐이다
물감으로 색칠한들 그색이 나올까
봄색감은 눈동자에 색칠하고 심연에 그려 넣어야한다
동네 유치원에서 아주 작은 꼬마들이 연두색 봄맞이 소풍을 나왔다
너른 잔디의 가족 마당이 있어 가족끼리 도시락 싸들고 소풍 나오기에 안성마춤인 공원이다
개울가에도 봄이 오고 동물원에도 봄이 와서 서울숲은 요즘 봄향기가 물씬났다
튤립정원에도 가보고 싶고 메타세콰에어길도 걸어보고 싶은데
오늘갈길이 구만리라 사과나무길로 걸어나와 한강사업본부를 지나쳐
서울숲속을 빠져나왔다
에레베이터를 타고 한강변으로 나오니 한강물이 시원스럽게 흐르고
성수대교 한강 다리가 보인다
칠년전 겨울 강동대교에서 신행주대교까지 한강다리 따라 걸은적이 있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아리랑'에 이어 우리민족의 분단뒤 경제발전속에 이루어진 삶과 고통의
현대사를 그린 '한강'을 읽으며 꼭 내 발로 한강을 걸으리라 맘먹고 한강변 걷기를 마치며
"신행주대교를 넘으면 서쪽으로 달려온 한강은 김포대교를 흘러 바다로 향한다
강이 바다로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다시 구름과 물방울로 이어지고
어디로 흘러가든지 크게 요동치고 파도치지 않아도 흘러가는거처럼
한강물은 시간이 흐르듯 영원히 흘러간다."라고 글을 썼었다
그뒤 한강다리는 암사대교와 월드컵대교가 더 설치되어 지금은 서른한개로 알고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고 북쪽에서 흘러온 임진강을 만난 바다가 되려하는 한강의
강변을 달리는 자전거 행렬과 도보자들이 평일임에도 제법 많다
강변길둑에도 개나리가 흐드러지고 둑 아래에는 민들레 개불알꽃 양지꽃 제비꽃등이
벌써 지천으로 피었다
강물에 기대선채 늘어진 버드나무가 연두색 가지를 축 늘어뜨린채 점점 물가로 기울어진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스피린의 유래가 되는 버드나무는 왜 그렇게 가지에 기운이 없어 보이는지
버드나무 껍질이 통증이나 염증을 없애는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히포크라테스 시대에는 물론이고
기원전 1550년에 만들어진 파피루스에도 기록되었다고 한다
버드나무 껍질속에 들어있는 물질이 해열 진통 소염뿐 아니라 장티푸스와 류머티즘에도 효과가 있었지만
맛이 좋지 않고 구역질이 나기 때문에 먹기 어려웠다
그후 독일의 제약회사에 근무하던 펠릭스 호프만은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는 아버지를 위해
살리실산에 아세트산을 섞어 보았는데 이전보다 먹기가 수월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인류 최초 합성의약품인 아스피린이 개발되었다
썩은 버드나무 원줄기는 캄캄할때 빛이나서 흔히 도깨비불이라고 하는것은
습지가 많은 버드나무가 무성한 숲인곳이 많다고한다
지금도 이 나무의 수피는 수렴제와 해열 이뇨제로 사용한다
튀밥냄새같은 고소한 냄새가 있는 이팝나무꽃도 피고 개복숭아꽃인 복사꽃도 피었다
성수대교를 지났다
성수동과 압구정동을 잇는 다리가 1994년 그해 시월 아침시각에 무너져 한강물에 떨어졌었다
등교하던 학생과 출근하던 직장인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새로이 건설된 다리는 아무일도 모르는듯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미끈하여
아름답기만 하다
중량천과 한강이 만나는 강변북로 아래 강바람은 시원했다
노릇노릇 개나리꽃으로 뒤덮힌 응봉산이 바로 가까이에 있고 중량천변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머리위로는 동부간선도로가 지나고 발아래에는 중량천이 흐르는데 잉어가 떼로 몰려있다
소쿠리로 건져도 될만치 많은 잉어떼가 산란기인가 물속에서 꾸물꾸물 징글맞다
용비교를 건너 다시 한강변이다
금호나들목에서 푸르지오 아파트쪽으로 나와 길을 건너면
응봉산 오르는 나무계단이 나온다
개나리가 많아 봄이면 노란물결이 이는 응봉산은 해발고도 95.4m의 낮은 언덕같은 산이다
낮은 산에 나무계단으로 정상까지 이어놓을 필요가 있을까
정상엔 팔각정이 놓여있고 한강 너머로 우면산과 청계산 그리고 관악산이 보이는 조망터이기도 하다
해질녁 한강물로 떨어지는 석양을 찍기위해 아차산과 더불어 찍사들이 자주 찾는곳이다
팔각정에 올라가서 팥빵과 두유로 점심을 먹었다
등산로와 신동아 아파트를 연결하는 고가도로를 건너 아파트를 끼고 독서당 공원으로 진입했다
작은 독서당 공원에도 개나리와 벚꽃이 만개했다
운동시설을 지나고 대현산공원을 도는 독서당길로 걸었다
어젯밤 먹은 유산균 탓인지 바람부는 정자에서 마신 찬 두유 탓인지
배가 살살 아프더니 갑자기 천둥을 친다
공중 화장실이 가까운곳에 있어 다행이 볼일을 보고 걷기를 재촉한다
구립금호 청소년독서실앞을 지나 행당로로 방향을 틀어 논골 사거리로 와서 다시 길을 건넜다
두산위브와 이편안 세상 아파트 사이를 지나 금호1가동 주민센터를 지났다
신금호역 2번출구 위쪽으로 올라가 다시 한번 설사를 하고 말끔한 정신으로 언덕배기를 오르니
대경상업고등학교 앞이다
곳곳에 화장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지 하마트면 똥질로 걷기를 중도 포기할뻔했다
오고가는 학교길이 등산길이라 통학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이어 응봉근린공원이다
공원 안에는 방송고등학교와 동호초등학교가 있다
학교앞을 지나 매봉산으로 진입이다
매봉산은 해발고도 172.7m로 주변의 주변 시민들이 운동하기에는 안성마춤이다
남산 둘레길이 곳곳이 표시되어 있어 표지판만 따라가면 길잃을 일은 없다
한남테니스 코트 방향으로 동물 이동통로를 건너 산 아래 도로까지 내려왔다
다산로를 건너 장충단로를 걸어 반야트리클럽 호텔앞에 있는 국립극장에 다달았다
드디어 남산 진입이다
여기서 부터 돌아야할 남산 순환로는 7.6km이다
걷기 시작한지 벌써 다섯시간이 되어가고 많이 지쳤다
나무가 우거진 숲길만 걸으면 피로가 덜할텐데 아파트 사이사이의 아스팔트 도로와
햇볕드는 강변까지 걸어온 탓이다
달구어질대로 달구어진 몸은 열불이 났다
순환로 시작점에서 아리수 수돗물을 콸콸 틀어 손을 적시고 위생상으로 따지면 안되는 일이지만
손바닥으로 물을 받아 마시며 몸을 식혔다
길거리 판매대에서 파는 뜨거운 코코아 한잔으로 다시 기운을 돋구고
꼭대기까지 오르기에 비교적 짧고 쉬운 남측순환로에서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주부터 피기 시작한 벚꽃은 벌써 떨어지기 시작했고 개나리도 푸릇푸릇 푸른잎이 돋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피고 지는 꽃들로 남산은 과거의 역사를 잊은듯 했다
걷기 쉽고 아름다운 지금의 남산은 본래 이름이 인경산이였다
해발고도 262m로 서울의 상징 타워가 있는 산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도 되고 완만한 남측과 북측 순환로나 가파른 계단을 이용하여
오를수 있는 남산은 종남산 열경산 마뫼등으로 불리던 인경산이 남산으로 불리기 시작한것은
조선태조 이성계가 1394년 풍수지리에 따라 개성에서 서울로 수도를 옮긴후부터다
천도당시부터 신성한 산으로 여긴 남산은 백악산 낙산 인왕산과 더불어 한양의 내사산을 이루었고
서울성곽이 바로 이들 산능선 따라 이어졌다
정상에서는 인왕산과 북악산 그리고 멀리 북한산과 수락산이 파노라마로 조망되었다
남산의 또 다른 이름은 목멱산인데 이는 한양 천도후 남산꼭대기에 목멱대왕 산신을 모시는 목멱신사를 짓고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낸데서 유래한다
일본은 남산에 신궁을 모셔 민족정신을 말살하려했다
일제가 황국신민화 교육을 위해 남산에 신사와 신궁을 세우고 신사참배를 강요하게 되면서
목멱신사는 제자리와 제기능을 잃었다
현재 인왕산 선바위 아래에 있는 국사당이 바로 옛날의 목멱신사이다
목멱산 봉수대터는 서울에 있다하여 경봉수라고도 불렀었는데 봉수제도는 신호체계에 따라 연기나 불을 피워서 변방의 긴급 사정을 중앙에까지 전달하여 알리며주민들이 빨리 대처하도록 하는 일종의 통신수단이다봉수대에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남산 꼭대기에 있는 봉수대는 남산의 다섯봉수대중 한곳을 복원한것이다서울타워 아래에는 사랑을 꼭 이루고 싶은 사람들이 채워둔 자물쇠가 많았다어찌된 일인지 갈때마다 늘어나는 사랑의 자물쇠가 옥죄는 느낌이 든다이월 중순 너무 이른철이라 동강 백운산에 가서도 못본 동강할미꽃이 성곽아래에서 수줍게 피어 있었다노루귀도 그렇고 할미꽃은 솜털이 꽃보다 신기하다관광객들과 그들을 실어나르는 차들로 남산꼭대기는 북새통을 이루어 빨리 그자리를 벗어나 북측 순환로로 진입했다
구한말 우리는 1876년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1905년 을사늑약까지 삼십년동안
국난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임오군변 갑신정변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 을미사변 러일전쟁등 격변을 겪으면서
일제의 침략도 노골화해졌다
지운다고 지웠어도 일제가 생각나는 산이다
남산 도서관 방향으로 내려온 남측 산책길은 다시 교육정보원앞에 있는 안중근 동상으로 올라선다정원아래에는 안중근 기념관이 있다일일부독서구중 생형극,국가안위 노심초사,견리사의 견위수명그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 정원에 가면 정의가 새롭게 살아나는 곳이다안의사는 구한말 열강의 침략으로 나라가 소용돌이 칠때 1879년 9월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어릴때 이름은 응칠였던 그는 러일전쟁과 을사늑약으로 삶에 일대변화를 가져왔다구국일념으로 망명하여 교육과 의병활동을 하다동지들과 단지동맹을 맺고 나라에 한몸을 던졌다서른한살 1909년 10월26일 대한의군참모중장 자격으로 하얼빈역에서 68세 침략의 원흉인 이또히로부미를 사살하고 대한민국만세 삼창를 하며 체포되어 1910년 3월26일 뤼순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남산에 오면 꽃구경만 하지말고 민족의 영웅인 안의사 박물관에 들러독립이 무엇이며 애국은 무엇인지 공부하고 조국의 이름으로 살다 조국의 이름으로 죽은많은 민족의 영웅들을 닮아가려 해야할것이다이어 건립중인 도성 유적박물관 앞을 지난다드라마에 나와 한동안 인기 있었던 삼순이 계단으로 내려와서 소파로를 따라 걷가 다시 공원길인 북측 산책로로 걸었다프랑스 미쉘린 가이드에 나온다는 목멱산장 식당을 지나고 재갈량을 모신 신당인 와룡묘옆을 지난다프랑스 영화촬영 한다고 거리 곳곳에서 진입을 막고 있고 전통한복을 입은 출연진과 농악패들도 보인다빠르게 인파를 벗어나 남산 한옥마을로 내려갈수있는 삼거리를 지나고 지금은 시청 별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유신독재시절 잡혀가면 제정신으로 돌아오기 힘들었던 중정건물을 지나쳐 장충단공원으로 내려섰다공원에는 청계천을 가로질러 쌓았던 돌다리로 물의 수위를 측량하던 관측기구인 수표교와 장충단비가 세워져 있다장충단비는 을미사변때 희생당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한 비석이다1895년 고종 32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궁내부대신 이경직과 시위대장인 홍계훈을 비롯한 많은 병사들이일본군에 대항하다 죽었다고종은 이들을 위한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도록 장충단을 세웠는데 이때 비석도 함께 세웠다한일합방과 함께 장충단은 폐지되고 비석도 뽑히고 일제는 이곳에 벚나무를 심어 공원을 조성하고장충단공원이라 하였다해방을 맞아 장충단비를 다시 찾아 지금의 신라호텔 자리에 세웠다가 1969년 이곳으로 옮겨왔다비석의 앞면에 새겨진 장충단은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황제의 글씨이고 뒷면은 당시 육군부장이었던 민영환이 장충단의 내력과 의미를 기리며 쓴 글이다동국대가 보이는 언덕에는 사명대사 동상도 서 있다대사는 임란때 의병활동을 한 승려로 유명하고 임란후 일본에 건너가도쿠가와이에야스와 강화를 맺고 포로 삼천오백명을 데리고온 애국 스님이다또한 공원에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고자 이상설 이위종과 헤이그에서 합류했던 이준열사의 동상도 서 있다만국평화회의 개장일에 의장을 만나 고종의 친서를 전달했지만 일본의 반대로회의에 참석치 못해 울분을 참지 못하고 곡기를 끊어 순직한 열사다항간에는 활복자살이나 일제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소문도 돌았다"인생이 죽는다는것은 무엇이며 인생이 산다는것이 무엇이냐죽어도 죽잖은 것이 있고 살아도 살지 않은것이 있나니그릇 살면 차라리 죽음만도 못하고 제대로 죽으면 영생하느니살고 죽는게 모두 제게 달렸다면 모름지기 죽고 삶을 바르게 힘쓰라"라는열사의 생사관은 유명하다남산은 백범 김구 동상과 안중근 의사 동상을 세우고 성곽보수로 우리 얼을 간직한 역사적인 장소임에도 일제 치하의 치욕스런 역사의 상징이 또한 벚꽃이다벚꽃은 일제가 창경궁을 동물원인 창경원으로 만들면서 심어대고 장충단공원에도 심었었다지금은 장충단공원에는 소나무가 더 많다궁궐 복원사업하면서 여의도로 옮겨진 벚꽃이나 진해 남산 벚꽃놀이도 그렇고 화려한 그 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일본을 떠올릴수밖에 없다꽃이 뭔죄가 있다냐,일본이 싫을때는 벚꽃 질때가 제일 아름답다고 하면 될것이다역사의 아픔과 슬픔을 위로하고 때론 연인 가족간의 희망을 안겨준 남산을 한바퀴 돌아 배호의 안개낀 장충단공원 노래가 생각나는 공원에서 오늘 걷기를 마친다서울숲에서 응봉산을 거쳐 남산까지 이십킬로의 여정을 마치자다리는 뻐근하고 피로가 몰려와 지하철에서 졸면서 귀가했다아~잔인한 사월 꽃 구경 한번에 이렇게 봄이 떠나가고 있네~
2019년 4월13일 토요일 이 정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