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를 걷다.TMB일정을 마치고

2019. 7. 18. 10:48TMB


일정-2019년 6월17일~7월8일

코스-인천공항~독일 프랑크 푸르트~헝가리 부다페스트~TMB일정(스위스 제네바~프랑스 샤모니~쁘랑프라~꽁따민느~세이뉴고개~

       이탈리아~꾸르마이예~페레고개~스위스~상팩스~아르파뜨고개~발므고개~프랑스~락블랑~플레제르~쁘랑프라~샤모니

       ~스위스 제네바)~독일 뮌헨을 거쳐 귀국

      TMB거리 174.2km+접속거리 7.5km=총 181.7km를 11일 걸쳐 걸음




블로거에 저장된 세세한 후기 대신 그 후일담과 그산에서 풍경이 되어버린 사람들과 함께

그림같은 사진 일부를 첨부한다.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진정한 여행자는 지루함을 고통스러워 하지않고 즐긴다

지루함이란 자유의 상징이고 잉여의 자유를 뜻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누구는 신비한 호흡이 감지될때 여행을 떠나고

누구는 잠자던 생각이 깨어날때 여행을 떠날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정한 여행자로 살기에는 현실이 많이 부족하여

바람에 떠밀리듯 다녀왔다

티엠비 일정에 앞선 딸네집 방문까지 스무날의 여행중에

해야할일이 정해져 있었기에 어느하루 지루한날이 없었다

다만 초행길을 걷는일은 고통도 따랐지만 때론 환희도 있었다



TMB는

알프스의 지붕인 해발고도 4807m의 몽블랑을 중심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에 걸쳐있는

십여개의 산들을 타원형으로 170여km를 한바뀌 도는 일정이다

이년전 우연히 제네바의 레만호수와 샤모니의 브레방 언덕밑을 걸으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알프스 설산에 다시 오리라는 마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다니 꿈 하나를 이루게 되었다

사계절 내내 만년설산이라고 여겨졌던 하얀산들은 지구 온난화를 실감나듯

그때보다 많이 녹아내려 검은색 바위 침봉들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순백의 설산과 파란 호수곳곳에 박힌 에머랄드빛 침봉들 푸른 초원위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각종 야생화

셔터를 누르기만하면 모두가 그림엽서가 되는 풍경에 전세계 트랙커들이

가고 싶은곳으로 손꼽는다



몽블랑의 관문인 프랑스 작은 산악마을인 샤모니에 도착하였다

첫째날 샤모니 슈드에서 케이블카로 쁘랑프라에 오르면서 나의 일정이 시작된다

처음엔 경치 바라보는 재미로 넋을 잃어 그리 험하고 어려운 산행은 없으리라 기대했다

브레방 고개를 넘어 몽블랑 일주중 걸을수 있는한 몽블랑 봉우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브레방 전망대까지 지금 생각하면 고작 오백여미터의 고도를 올린거뿐인데

그땐 죽을만치 힘들어 기진맥진 했었다

알프스에 가면 공기가 서늘하고 바람에 실려오는 야생꽃 냄새로 머리가 시원할줄 알았더니

이건 왠 날벼락 같은 일인가

유럽의 유월하순 기온이 예상과는 다르게 사십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였다




발 아래는 눈밭이라 아이젠을 차고도 머리는 뜨거운 햇볕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올라오는 내내 아니 내려가는 구간에서도 내리쬐는 땡볕으로 첫날부터 일사병 걸리기 직전이다

급기야 긴바지에서 하의를 실종시킨듯 짧은 바지로 갈아입고 벨라샤 산장 가는 돌길에서

더운날씨임에도 다리는 무서워 떨어야 했고 드디어 이천미터 아래에서 만난 전나무숲 그늘에서

쓰러지다시피 누워 쉬어야 했다

이천미터 이상은 나무들이 자랄수 없는 환경이라 햇볕을 두려워 하면 일정에 차질이 생긴단다

보통 순례길 정도로만 여겼더니 그게 아닌가 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보다는 끝나기전까지 끝난것이 아니라는 말이 더 와닿았다

유언장을 써놓고 오길 망정이지,첫날을 마치지도 못하고 죽을것만 같다



고도를 점점 내려 자연 동물원을 지나고 보통의 트랙커들의 시작점이 된다는 레우슈 마을까지

그리고 다시 땡볕에 아스팔트를 걸어 숙소 찾아가는일이 고행중의 상고행이였다

이미 뱃속 내장까지 뜨거워진 내몸을 주체할길이 없어 숙소에 들어가 찬물샤워와

한동안 먹을 생각도 없이 몸에 닿는건 다 타버릴것 같아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 마루바닥에

드러누웠다

다행이 첫날 숙소는 호텔이였다

뭐라도 먹어야 산다길래 레스토랑에서 시켜먹은 생으로 숙성시킨 햄은 혀가 마비될정도로 짜고

파프리카를 넣은 피자는 너무 매워 오늘 소비한 단백질과 나트륨 미네랄을 보충하기에는 충분했지만

얼얼한 혀와 이미 탈수된 몸을 달래려 연신 물을 들이켜도 오줌양은 많지 않고 색깔도 진하다

첫날 무리한 강행군으로 호되게 몽블랑과 재회한후

둘째날 나는 새롭게 태어나 버스로 벨뷔 케이블카역으로 이동했다

가이드인 남편 생각대로라면 팔백미터의 고도를 올리는 벨뷔언덕까지 걸어 오르려던 참이었는데

전날 죽다 살아난 나를 보고는 이러다 알프스에 묻고 갈것같아 바꾼 계획이란다

벨뷔언덕에 하차하여 벨뷔역 기차역을 가로 지르고 한동안 내리막을 룰루날라 걷다가

비오나세이 빙하밑을 가로지른다

빙하물은 손이 시러울정도로 차갑다

급류로 흘러 내려오는 출렁출렁 계곡 구름다리를 건너고 가파른 오르막으로 트리코 고개까지 오른다

이천미터의 고개를 넘어서고 미아즈 산장까지 지그재그 돌발길이다

초원지대의 풀밭길을 유유히 걷고 싶은데 발바닥에 무리가 많이 가는 돌밭길 정말 싫다

꽃길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도전장을 내밀고도 남는 길이건만 길은 쉽고 편한길만

기다리진 않았다

둘째날 미아즈 산장에서 맛본 야채스프는 말라가는 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듯 

입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날 묵었던 뜨룩 산장에서는 이글거리던 해가 단 몇초만에 산넘어 사라지고

추워서 달달 떨며 안으로 들어와 거위침낭을 뒤집어쓰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시즌 초입이라 단 몇명만이 손님이 되어 극진한 대접을 받았던 그날밤은

웅대한 자연의 설산아래 구름조차 검은색이 되어버리니 적막함이 더해가고

검은 하늘에는 푸른별만이 반짝거렸다

고요한 산중에서 밤을 보내고 또 하루가 지나 삼일째다

여명이 트이기전 산새들이 아침을 알리고 희뿌연 안개속에 잠자던 알프스가 서서히 깨어날때

산장을 빠져 나왔다

이슬맺힌 풀들이 촉촉히 종아리를 적신다

손에 꼽힐정도의 주변 경관을 자랑하는 산장에서 가까운 돔 더 미아즈와 에귀 더 비오나세이의

위용을 뒤로하고 다시 꿈길 같은 길을 걷는다

육백여미터의 고도를 내려 산악마을인 꽁따민느로 하산하여 비상식량도 구입하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비상식량은 주로 샌드위치를 만들수있는 재료다

초반에는 빵에 치즈와 햄을 주로 넣어 먹었는데 높은 기온에 치즈와 햄도 곤죽이 되어

나중에는 빵에 꿀을 발라 먹으며 다녔다

마을을 벗어나면 딱히 생수를 살만한 곳이 없으니 생수와 주스도 구입할때 해둬야 한다

길을 걷다 가끔 우물이 나오면 배가 터지지않는한 양껏 마시고도

식수통에 가득 채워가야 한다

마을 중심가를 벗어나 계곡을 따라 서서히 오르막인 숲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노트르담 더 라 고르쥬 성당이 나온다

유럽의 도심 성당들은 주변의 건물들에 비해 높고 크기도 하지만 고풍스런 매력에 먼저 반하고

성당안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장식과 묵직한 분위기에 신자가 아니여도 절로

숨이 작아지고 숙연해져 심신이 가라않는다

산악지역 숲속의 작은 성당은 그런 위압적인 모습을 몽땅 잊게 했다

이어 길은 오르막을 오르면서 폭포 계곡을 만나고 랑보랑 산장을 지나고 발므산장으로

알프스 산간의 목가적 정취를 느끼는 목장길을 걷는다

길은 조베 평원을 지나 고도는 점점 올라 해발고도 2329m의 본옴므 고개에 이르자

다시 산허리 경사면에는 눈이 쌓여 초여름이 무색하게 바람이 거세게 몰아친다

계절을 잊게 하는 알프스 산자락에서 불과 몇 분전 더위는 어딜갔나

예측 불가능한 바람에도 지분거리며 달라붙는 작은 벌레만도 못해

더웠다 추웠다 간사하기짝이 없는 사람에 불과했다



돌무더기길과 흙길을 번가라 백여미터의 고도를 올리자

우리가 하룻밤 신세를 질 크로와 뒤 본옴므 산장까지 무려 이십사킬로를 열시간 넘게 걸어 

녹초가 되다시피한 산행으로 무리를 하였으나

다음날 아침이면 다시 길을 나서야 한다

나흘째는 푸르고개를 지나 세이뉴 고개를 넘었다

길은 프랑스땅에서 이탈리아땅으로 들어서고 점점 걷는일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목소리톤이 낮고 조근거리던 프랑스 사람들에 비해 이탈리아 산장에서 저녁식사 시간은

무슨 할말들이 그리도 많은지 시끄럽고 수다스러워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도무지 적응이 안된다

나중에는 냅킨을 찢어 한쪽 귀를 번가라 막아가며 먹었다

산장에서 나오는 주된 요리는 옥수수가루와 밀가루를 버무려 오븐에 구운 맛없는 콘요리에

곁들여 돼지고기나 닭고기 소고기를 스튜처럼 만들어 각자 접시에 담아먹는식이다

디저트로는 푸딩 아이스크림이나 치즈가 많이 나온다

먹지 못한 음식으로 고생한적은 한번도 없었으나

그네들이 우리 청국장을 먹고도 그럴까 딱 한가지 웩하며 구역질이 올라와 먹다말은 치즈가

한번 있었다

몽블랑에서 발원한 미아즈 빙하와 몽블랑 남벽과 에귀 더 빼떠레 능선의 침봉들을

가슴 가득 시야에 담으며 오일째가 넘어가고 칠월이다

삭스 언덕을 지나 사팡고개를 넘을때는 드디어 전형적인 알프스 언덕이다

발 페레계곡 건너편에 우뚝 솟은 몽블랑 산군들과 그랑드 조라스 봉우리의 설산아래

드넓은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노랗고 하얀 야생화가 지천으로 깔려

몽블랑 일정중 걷기 편하면서도 경치가 가장 빼어난길을 지난다



다시 길은 산 넘고 물 건너 페레 고개를 넘어서면 이탈리아를 벗어나고 스위스 땅으로 접어든다

산허리를 돌면서 느리게 움직이는 소목장에는 소들 목에 걸린 딸랑이가

어찌나 크고 무겁게 보이던지

멀리서도 딸랑거리는 소리가 산의 적막을 깼다

그러고 보니 산장에서도 소방울소리로 식사 시간을 알렸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의 국경을 접한 삼국의 봉우리인 몽돌랑과 프레 더 바 빙하를 바라보며

걷던 길은 스위스 산간마을로 들어서니 만화속에나 나올 법한 작고 정겨운 집들을 나온다

무엇보다 작은 마을임에도 땅속으로 연결된 분리수거 쓰레기통이 인상적이였다

걷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넘어가고 이제는 자고나면 의례 걷는것이 낯설지가 않다

햇볕드는 공기라도 맞으려고 걷어붙인 다리는 이미 새까맣게 그을렸다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서기가 힘들지 걸을때는 아무 탈이 없는 무릎은 아직 쓸만했다

프랑스 서부에서 시작한 길은 어느덧 이탈리아 북부를 지나 스위스남부 땅을 밟으며

이번 일정중에 가장 어렵다는 구간을 남겨놓고

여명이 트이기전 산장의 조식도 거른채 길을 나섰다

시간도 많이 소비되거니와 무엇보다 더위를 피해 눈꼽만 떼어내고 밥은 굶은채로 나왔더니

오히려 상쾌하다

그동안 먹은만치 간다는 정설이 가끔은 틀릴때도 있나보다

아르페뜨 고개를 넘는일은 비나 눈으로 날씨가 좋지 않을때는

적극적으로 말리는 구간이다 

우리산으로 비교하자면 오색에서 올라 설악의 대청봉을 찍고 희운각으로 하산하였다가 다시

공룡능선을 타고 마등령과 저항령을 거쳐 황철봉으로 하산하는격이란다

백두대간에서 가장 힘들다는 구간이다



각오가 필요한 날

숙소에서 나온 나는 시원한 아침나절에 거의 천미터 고도를 올렸다

무려 천이백여미터의 고도를 높이면서 상부에 남은 가파른 눈사면길은 게걸음으로

산 절벽들이 부서져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다 멈춰진 너덜 바위길은 거북이 걸음으로 올라서니

드디어 이번 일정중 가장 높다는 2665m의 검고 진한 잿빛 무서운 바위들이 기다린다

아르페뜨고개 너덜바위 정상에는 사색에 빠진 젊은 남자 한명이 바위에 앉아 있고

이 높은곳까지 애완견과 동행한 할아버지 한분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어 내 뒤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두명의 커플이 올라오고 또 한명의 남자가 큰 카메라를

매고 올라선다

고개 정상은 알프스 설산 침봉들과 검푸른 트리앙 빙하벽을 좀더 가까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몽블랑 일정을 소화하는 사람중에서도 십분의 일 정도만 올라온다는 고개에 우뚝서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올라온길을 뒤돌아보니 급경사의 산사면으로 너덜바위들이 흐르고 있는것만 같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이천미터 아래로 떼구르르 구르고도 남는 무서운 높이다



놀라고 감탄하는것도 그만 이제는 급경사 너덜바위를 뚫고 내려갈일이 걱정이다

뒷쫒아 내려오던 개새끼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잘도 가는데

나는 스틱으로 미리 바위를 점검한뒤 내려서야 하길래 많이 뒤쳐졌다

눈으로 보기엔 마을이 바로 아래건만 하산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바위가 징글징글 드디어 흙이 나오고 하얗고 노랑 작은 풀꽃들과 초록 이끼가 있는 숲길을 지나

산장이다

소비한 칼로리에 비하면 택도 없는 작은양의 파이조각을 사먹고 다시 길을 떠나는데

딱 여기까지가 내 체력이다



앞산을 넘어야 예약한 숙소가 나온다니 할수 없이 갈수밖에 정말 힘든시간들이 아닐수 없다

오후 햇볕을 고스란히 맞으며 계곡물이 나오면 나오는대로 머리를 감으면서 갔다

작고 낮은 둥근 산만 넘어가면 될줄 알았더니 산을 한바귀 뺑돌며 절벽 코너를 돌때는 쇠밧줄도

잡아야한다

대간길에서나 밧줄구간이 있으려니 했는데 그랑산장 아래에는 바위절벽을 뚫어 만든 벽쪽에 

밧줄이 매여 있었다

브레방고개와 락블랑 호수를 올라갈때는 철사다리와 철계단도 나온다

보기에는 동그랗고 구릉진 언덕으로 보이는 산의 속살은 있는 체력 없는 체력 모두 빨아먹고 나서야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표시점이 있는 발므고개에 닿았다

내 생애 기준이 되어버린 백두대간 하기전과 하고 난후를 비교하더라도

머리털 나고 처음 맛본 따끔한 경험을 하고 그날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타원형의 테엠비 길은 몽블랑 최북단을 넘어 스위스를 지나 프랑스로 다시 돌아왔다

국경표시는 주로 작은 돌비석이나 깃대봉에 달린 이정표정도 뿐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그네들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길은 다시 포제트 고개를 넘고 몽떼 고개를 넘고 락블랑 고개로 오르면서

며칠전 작별했던 몽블랑을 다시 재회하게 되고 샤모니쪽으로 흐르는 아르브 하천계곡이 한눈에 들어오게 온다

점점 계획된 일정이 마무리 되어가고 마침내 마지막날이다

에귀 루즈 산군의 허리길을 따라 마지막 여정을 마쳐가는 길목에서 발목을 붙잡는다

트롤르의 진한 노랑색과 아가판서스의 하얗고 블루색 알펜로제의 분홍과 진빨간색이 초록 초원에서

하늘과 바람과 알프스의 공기가 키워내는 작은꽃들이 천상화원을 만들어

가파른 눈사면과 너덜 바위길과 돌 자갈길을 걸으면서 겪었던 고통을 한방에 날려 보냈다



락블랑아래의 세서리 호수들속에 빠져버린 보석들을 다시보고 프레제르 언덕으로 넘어

시작점인 쁘랑프라로 원점회귀하였다

케이블카로 하산하여 출발전에 만났던 샤모니 중심 번화거리에 있는 동상을 찾아갔다

지금의 몽블랑을 세상에 알린 파카르와 발마 그리고 소쉬르의 좌상과 입상이다

그들은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 설산이 인류에게 두려움과 신비의 대상만이 아니라

도전과 탐험의 영역으로 바뀐 계기를 만든 영웅이다

신이나 악마만이 살수있다는 알프스의 심장인 몽블랑 정상을 바라 보는것도 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귀국하여 일주일만에 대간길에서 만난 산우는 고통의 깊이만큼 기쁨과 성찰이 되돌아온다는걸

알았다면 그런 진문을 했을까,티엠비중에서도 평이한 길을 나두고

굳이 난해한 길로 왜 사서 고생했냐고 묻는다

열하루중 어느하루 고되지 않은날이 없어 입으로는 꺼져가는 한숨과 아고고 곡소리로 구시렁거렸지만

게슴츠레한 눈도 번쩍 트일만큼 눈 호강과 벅차 오르는 가슴으로 감탄사가 연신 터져나왔던

날들이다

무슨 영화를 보자고 집 나와 그것도 멀리 알프스까지 와서 이런 쌩고생을 하고 있는지

후회가 밀려올때도 있었다

떠나기전 목감기를 된통 앓고 나서 사전준비운동이 부족하여 처음 며칠은 적응하기 힘들었으나

내가 나를 보고 놀랄만치 일주일이 지나자 자고 나면 근육세포들은 걸을준비를 하고 있었다


악마의 이빨을 베어물고 이글거리며 몸부림치는 태양으로 나도 타버리는줄 알았지만

푸른 초원에서는 야생풀들과 야생꽃들이 길동무가 되어주었고

하얀 설원에서는 검푸른 빙하와 은빛 눈꽃들이 길을 안내했다

알파인 지대에서는 생긴것도 하는짓도 쥐와 비슷한 마모트의 현란한 춤사위는 보았는데

자주 출몰한다는 산양인 샤모아나 야생염소인 부크땡은 싸놓은 똥만 잔뜩 보고

그들의 뿔이 멋지다는데 정작 만나질 못해 아쉬웠다

많이 먹고 배설물도 많이 내놓는 말과 소.특히 소목장주변의 풀밭은 온통 넓적한 소똥 천지에

비하면 알프스산에서 내가 싸고 온 똥들은 지금쯤 거름이 되었을것이다


무엇보다 칠 킬로가 넘는 배낭 무게로 고생했고 복병으로 만난 땡볕으로 포기와 오기 사이에서

죽을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송곳같이 내리쬐는 햇볕 더위에 얼음만큼 찬 빙하눈을 머리에 이고 다니다 그것도 무거워

나중에는 머리통을 계곡물에 담갔다 빼면서 머리를 식히고 계곡물도 마셨다

이삼십분이면 말라버리지만 더위를 피하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나마 견딜수 있었다

무릎에 부담없이 좀 더 자유스런 여행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건으로 배낭을

가볍게 하는 방법을 터득해야한다

걷기도 버거운 산자락을 자전거를 타고 오르 내리는 사람이 있고 

산에서 마라톤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사람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놀라지 않을수없다

내가 본 알프스는 전체 알프스의 속살중에서도 삼분의일 정도밖에 아니 된다니

마음보다 육체가 먼저 늙어가고 한번 병들면 쉽게 낫지도 않는 체질이라 

나머진 살아생전 구경하기도 힘들겠다


초여름에 만난 알프스에는 가끔 밤이 되면 우박과 비로 대지를 적시고

한낮에는 머리카락을 불쏘시개로 써도 될 정도로 뙤얔볕이 내려

이른 아침과 오전 오후 저녁 기온차가 심해 사계절을 만났다

산 아래는 여름이고 산 위는 겨울인 변화무쌍한 체험을 하였다

구름도 걷어차버린 태양을 한번 마주보고 싶었지만

눈을 뜰수없어 끝내 내가 지고 말았다

한달도 못된 기간에 헝가리어 불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거기다 영어까지

꼬부랑 말들속에 갇혀 있다보니 듣는 귀와 말하는 입이 피로하여

빨리 한국말속에 풍덩 빠지고 싶었다

돌아와 보니

사천오백여장의 사진이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게 하고

몸무게는 딱 이킬로 줄었다

길을 나서는 순간 고난의 연속이라더니 그을린 무릎은 테이핑을 떼어내고 보니 마치 문신처럼 되어있고

군데군데 산벌레들에게 물린 자국들은 오래도록 가려움이 가실질 않았다

열하루치의 시간들이 지나서야 내몸의 세포들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고 반갑지않은 뱃살도

다시 붙고 있다

아마도 고행길이라는걸 미리 알았다면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똑같은 감동이 미리 예정된 순서대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다는것을 깨달았다"라고

마르셀 프루스트는 말했다

난 감동받을 순서도 모른채 단지 꿈만 꾸다 그만 감동까지 한순간에 이루어진 셈이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산,그 길들이 펼쳐진다

우뚝선 몽블랑 침봉들과 검푸른 빙하벽들과 하얀 설산 절벽이 만들어내는 계곡물

그아래 푸른 초원 그리고 흰꽃과 노랑꽃 빨간꽃 보라꽃이 길위에서 손짓한다

내가 만났던 유럽의 지붕인 알프스의 자연은 때론 경이롭고 때론 자연스러움의 극치였다

그산 그길에는 자유로운 영혼의 그사람들이 있었다






















































































2019년 7월 하순

글,사진- 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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